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새로운 법
마태복음5장은 신약의 율법선언장입니다. 여기서 신약의 율법이라함은 예수의 법이라는 뜻입니다. 이 법은 다시 말해서 새 언약입니다. 우리는 본장을 살피면서 반드시 옛 언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구약은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핵심은 십계명으로 자연히 집중할 수 있습니다. 애굽의 장자를 치시고 포로에서 자유를 주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사 홍해를 지나게 하셨습니다. 죽음을 통하지 않고는 건널 수 없는 강을 장정만 60만명을 건너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이 사건을 가리켜서 물세례라고 합니다.
1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사실을 알고 지내기를 바랍니다. 우리 조상들은 모두 구름의 보호 아래에 있었고, 바다 가운데를 지나갔습니다. 2 이렇게 그들은 모두 구름과 바다 속에서 세례를 받아, 모세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고전10:1-2)
그리고 그들을 광야에 이끄시고 언약을 세우십니다. 모세를 통해 돌판에다가 세기신 계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계가 주어진 것입니다.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이 출애굽기 20장의 내용입니다. 이 십계명은 일찌기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새롭게 적용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많아서도 아니고 의로워서도 아니고 탁월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가장 작은 족속이었고 약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긴 백성들도 아니었고 뭔가 쓸모있는 백성들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백성으로 부름을 받았고 택함을 입은것입니다.
십계명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새로운 언약의 관계였다면 신약의 마태복음 5장의 내용은 이미 구약의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서 약속하신 뜻을 성취하심입니다.
31 "그 때가 오면,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과 새 언약을 세우겠다. 나 주의 말이다. 32 이것은 내가 그들의 조상의 손을 붙잡고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던 때에 세운 언약과는 다른 것이다.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은 나의 언약을 깨뜨려 버렸다. 나 주의 말이다.
33 그러나 그 시절이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언약을 세울 것이니,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넣어 주며,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34 그 때에는 이웃이나 동포끼리 서로 '너는 주를 알아라' 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작은 사람으로부터 큰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모두 나를 알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 나 주의 말이다."(예레미야 31장)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약속하신 새 언약은 애굽(이집트) 땅에서 모세를 통해 준 십계명 언약과는 다른 것입니다. 구약의 십계명은 돌판에 세긴 것이고 결론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언약을 깨트려 버렸습니다. 지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고 정죄하는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죄를 죄되게 하여서 사람이 스스로는 죄를 처리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임을 깨달아서 구원자를 갈망하도록, 요청하도록, 간구하도록 인도함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는 범죄한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속죄소를 만드시고 제사장을 세우시고 짐승의 피를 통해 사함받을 수 있도록 은혜를 허락하심입니다.
십계명, 율법을 어긴 백성은 죽어야 하는데 그 죽음을 속죄양을 통해 해결한 것입니다. 어린양의 죽음을 보고서 죄의 결과와 심판의 두려움을 알고서 회개하여 살라는 의미이며 그 제사법은 온전하지 못하므로 약속하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까지만 한시적으로 베푸신 은혜의 법입니다. 열까지 계명중에 아홉을 지키다가 하나를 범하면 결국 모두 범한것이 되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과 능력과 결심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왜 유대인들과 치열하게 율법과 논쟁을 한것입니까?
그도 역시 철저한 율법주의자였습니다. 예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율법으로는 흠이 없을 만큼 지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 눈을 뜨고 보니까 자기의 의로움이 오히려 죄를 더욱 가중시켰고 위선과 기만덩어리 였다는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단언 합니다.
20 그러므로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인식할 뿐입니다.(롬3장) 10 누구든지 율법 전체를 지키다가, 한 조목이라도 어기면, 전체를 어긴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야고보서2장)
율법으로는 사람이 의로워 질 수가 없습니다. 쉽게 말해서 법을 지켜서 의로워질수 없다는 말이 아니라 그 율법 자체를 지킬 능력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범법한 자를 위하여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오해가 뭐냐하면 율법을 잘 지켜서 스스로 깨끗해 지고 죄를 짓지 않아서 당당하게 거룩하신 하나님앞에 갈 수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내가 율법을 잘 지키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이 복을 주며 내가 원하는 소원을 이루워 주신다는 생각입니다. 사실은 십계명을 지키기만 하면 결과적으로 법망을 피하기만 하면 뭐든지 내 욕심을 채워도 나는 무죄다 하는 것입니다.
법을 잘 아는 사람이 법을 오히려 어기는 것이 그런 연유입니다. 법의 전문가들은 어떻게 하면 법의 헛점을 이용해서 탐욕을 부려도 괜찮다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법대로 하라고 큰소리 치는 사람들 보십시오. 수억원의 비자금이나 부당이득을 취하고도 눈하나 깜짝 하지 않습니다. 대기업 총수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잘알고 있습니다. 분식회계에 대하여 잘 모르지만 그런것 아닙니까? 대기업에서 법조계 인사들을 고용하는 이유가 뭘까요? 법을 잘 지키고 싶어서 높은 임금을 주면서 법조계 인재들을 채용할까요? 법을 잘 활용해서 부당이득을 얻고 세금을 탈세하려는 것이 목적인것 아닌가요?
예를 들어본 것입니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마음 이었습니다. 신약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해석을 합니다만 마찬가지로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려는 것보다는 그것을 빌미로 부당한 것을 획득하기 위함이 목적이었습니다. 예수와 사사건건 부닥친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알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법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들은 법 소리만 나와도 벌벌 떨면서 두려워 할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능력으로 율법을 지켜서 온전해질 수있다면, 다른말로 우리가 스스로 의로워져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와 상관없게 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도 사람으로 오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것이 그런내용입니다. 누구한테요? 율법을 지켜서 구원에 이른다고 가르치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직접 말씀하십니다.
메시아로서 구세주로서 오늘 우리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산상수훈을 말씀하십니다. 거기에는 많은 무리들이 모여왔습니다. 거기에는 또한 율법사들 바리새인들 종교지도자들도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구원 얻은 우리들도 함께 있는것입니다. 마치 구약의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아든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렇게 오늘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산상수훈
3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배부를 것이다. 7 자비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자비함을 입을 것이다. 8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9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릴 것이다.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너희에게 복이 있다. 12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늘에서 받을 너희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너희보다 먼저 온 예언자들도 이와 같이 박해를 받았다."
그리고서 말씀하십니다.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18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은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19 누구든지 이 계명 가운데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폐지하고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은,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라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이 계명을 지키며 가르치는 사람은,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운 행실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로운 행실보다 낫지 않으면, 너희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18절을 이해함에 있어서 율법의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고를 십계명을 생각합니다만 전체 문맥을 살펴본다면 여기서의 율법은 십계명이 아니라 새 계명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새로 우리에게 주신 법, 새 계명이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19절 역시 크고 작은 계명이 십계명이 아니라 새 계명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내가(예수)너희에게(제자들)말한다.너희의(제자들) 의로운 행실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로운(율법주의자들) 행실보다 낫지 않으면(더 높지 않으면) 너희는(제자들)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입니다.
만일 예수께서 십계명을 인정하신다면, 표현이 좀 부적절하지만(십계명이 예수 안에서 연결되었다는 것, 완성)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비교하여서 말씀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아무리 율법의 행위를 할지라도 하늘 나라에는 어림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행위를 뛰어 넘는다해도 불가능 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들보다 좀 낫다해서 가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 계명은?
21 "옛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살인하지 말아라. 누구든지 살인하는 사람은 재판을 받을 것이다' 한 것을 너희가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성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 자기 형제나 자매를 모욕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의회에 불려 갈 것이요, 자기 형제나 자매를 바보라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지옥 불 속에 던짐을 받을 것이다.
27 "'간음하지 말아라' 하고 이른 것을, 너희가 들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사람은,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31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는 사람은 그에게 이혼 증서를 써 주어라' 하고 이른 것을 너희가 들었다. 3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행한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사람은, 누구나 그 여자를 간음하게 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은 간음하는 것이다."
33 "옛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너는 거짓 맹세를 하지 말아야 하고, 네가 맹세한 것은 그대로 주께 지켜야 한다' 한 것을, 너희가 또한 들었다. 3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말아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라. 그것은 하나님의 보좌이기 때문이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 하고 이른 것을, 너희가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아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너를 걸어 고소하여 네 속옷을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겉옷까지도 내주어라. 41 누가 너더러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 주어라. 42 네게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네게 꾸려고 하는 사람을 물리치지 말아라."
43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여라' 하고 이른 것을, 너희가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47 또한 너희가 너희 형제자매들에게만 인사를 하면서 지내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이방 사람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
새 계명이 무엇인가 분명히 알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어떤 계명에 순종해야 할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으로 죄 사함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이제 누구의 법을 들어야할까요? 십계명입니까? 그리스도의 계명입니까? 분명 성경은 옛 언약은 오실자손이 오기까지만 유효한 것이라 합니다. 십자가로 모든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셨다고 합니다. 구원은 은혜로 받았지만 아직도 십계명에 의하여 살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 말은 주님의 십자가로는 부족하니까 계명을 지켜서 보완하자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그런 주장과 가르침의 의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옛 계명과 새 계명은 이제 확실해 졌습니다.
주님께서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는 말씀을 십계명의 연속선상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십계명을 잘 지킬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면 됩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 죽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법으로는 더 이상 죄인을 구속할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십계명과는 완전히 다른 새 계명이 필요한 것입니다. 비슷한게 아니라 완전히 다른것입니다. 구약의 양의 피로는 안됩니다. 완전히 다른 하나님의 어린 양이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렇습니다.
16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17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나 있으며,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
율법의 의로는 도저히 불가능 하니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고 그 의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것을 바울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고 합니다.
성도는 이제 새로운 계명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법입니다. 살인은 실행범 에게만 적용하지만 예수께서는 마음으로 미워한것도 살인이라고 합니다. 마음으로 음욕을 품은것으로도 이미 간음한것이랍니다. 십계명과 비슷한게 아니라 완전히 다른법입니다. 주님께서 완성하셨다는 의미가 십계명의 보완이며 연장선상이라고 한다면 왜 주님께서는 사사건건 계명을 어긴것일까요? 주님께서 우리가 할 수 없는 십계명을 대신 지켰다고 주장하는데 과연 그럴까요? 복음서를 주의깊게 살펴보십시오.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과 충돌한 부분이 어느 부분입니까? 안식일을 범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고의적으로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들의 주장처럼 다른날 고쳐도 상관없지요? 또 그들의 주장처럼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 대하여서 모세의 율법으로는 돌로쳐 죽여야 합니다만 주님은 그것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모세보다 더 권위가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주님이 주신 새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켜라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33 사랑하는 사람들아, 내가 아직 잠시 동안은 너희와 함께 있겠다. 그러나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다. 내가 일찍이 유대 사람들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나는 너희에게도 말하여 둔다. 34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나의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는 더 이상 우리를 죄 아래 율법 아래 메이는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종의 멍에를 깨트리셨습니다. 이제는 율법의 구속아래서 근심하거나 두려워서 벌벌떠는 종의 몸에서 해방 하심입니다. 이제는 새로운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우리를 해방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를 구속할 아무런 법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몸을 십자가에 내어 죽기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 안에서 사는 것만 남았습니다.
19 나는 율법 앞에서는 이미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대신하여 자기 몸을 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17 그러므로 나는 주님 안에서 간곡히 권면합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이방 사람들이 허망한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과 같이 살아가지 마십시오. 18 그들은 그들 속에 있는 무지와 그들의 마음의 완고함 때문에 지각이 어두워지고,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습니다. 19 그들은 수치의 감각을 잃고, 스스로를 방탕에 내맡겨서, 탐욕을 부리면서 모든 더러운 일을 합니다. 20 그러나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그렇게 배우지는 않았습니다.
21 여러분이 예수 안에 있는 진리대로 그분에게서 듣고, 또 예수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으면, 22 여러분은, 지난날의 생활방식에 얽매여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다가 썩어 없어질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23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24 하나님을 따라 참된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바울은 권면합니다.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말합니다.
25 그러므로 여러분은 거짓을 버리고, 각각 자기 이웃과 더불어 참된 말을 하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서로 한 몸의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26 화를 내더라도 죄는 짓지 마십시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 27 악마에게 틈을 주지 마십시오.
28 도둑질을 하는 사람은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말고, 수고를 하여, 제 손으로 떳떳하게 벌이를 하십시오. 그리하여 오히려 궁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 있도록 하십시오.
29 나쁜 말은 입 밖에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 데에 필요한 말이 있으면 적절한 때에 해서, 듣는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십시오.
30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성령 안에서 여러분은 구속의 날을 대비해서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31 모든 악독과 격정과 분노와 소란과 욕설은, 모든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32 서로 친절히 하며,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같이, 서로 용서하십시오.
주님께서 주신 새로운 법입니다. 마태복음 5 장의 새로운 계명을 바울 역시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의 삶은 성령안에서 주님의 가르침을 순종한 사람들입니다. 산상 수훈의 삶을 말입니다. 오늘 우리역시 그러한 삶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예수 믿는다는것은 그런삶을 살아야 함으로의 부름이며 부름받은자로서의 응답입니다. 그렇게 살려면 그동안의 모든 가치관을 부인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의 계명은 믿는자들로 하여금 자기를 포기하게 하며 악을 대항하지 아니하며 겉옷 달라는 자에게 속옷까지도 주어야 한답니다.
이쪽 뺨을 누가 때린다면 저쪽 뺨도 맞을 각오를 하랍니다. 죽음이 두렵거든 차라리 도망을 가라합니다. 그러나 살인하지 말라 하십니다. 우리를 핍박하는 원수를 사랑하랍니다. 그들을 위하여 대항하지 말라하십니다. 그러나 율법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정당한 보복을 하라고 하지만 주님은 그것을 하지 말라합니다.어느것이 옳습니까? 과연 십계명과 주님의 새 계명이 똑같습니까?
이제 주님께서 믿는자들에게 이르시기를 좁은문, 좁은길로 가야한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듣고 잊어버리는자는, 행하지 않는자는 모래위에 집을 짓는것처럼 무너질 것이며 듣고 행하는자는 주님의 새 계명을 듣고 실천하는 자는 반석위에 집을 짓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듣고 놀라워 합니다.
부자 청년이 근심하여 돌아가자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부자가 천국들어가기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 가는것보다 어렵다고 말입니다.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까요? 사람으로는 할수 없지만 하나님은 할수 있다하십니다. 그 부자는 어려서부터 계명(십계명)을 지켰습니다만 주님은 그것에 한가지 부족한것이 있다합니다. 율법으로 의로워질수 있다는것에 주님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과거의 전통과 가치관을 철저히 무시하거나 버리지 않는다면 불가능 하답니다. 버리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우리는 오늘 무엇을 버렸습니까? 정말 아낌없이 버렸습니까?
자기를 부인하였습니까?
자기를 부인하였다면 주님의 말씀에 어떻게 생각하시렵니까?
진실로 마태복음 5장 21절부터48절까지 주신 새 계명을 읽으시고도 나는 나를 부인하며 주님을 따르노라 장담할 수 있습니까?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단지 은혜로만 이라고 넘어가지 마십시오. 할수 없다고만 하지 마십시오. 제가 묵상하면서 너무나 걸리는게 많았습니다. 주님의 법을 내가 실천한다면 두렵습니다. 솔직히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산다면 틀림없이 저는 왕따를 당할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없습니다. 그동안의 배운것과 저의 육신의 본성은 주님의 법을 거스르기 때문입니다.
아!
그동안 입으로는 믿는다고 큰소리 쳤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부끄럽고 초라하고 너무 위선적인 제 모습을 떠올리면서 어쩔줄을 몰라 하고 있습니다. 나는 진실로 주님의 법을 따라 살지 않았으면서 입으로는 복음을 말했고 교회에서 배운 형식을 줄줄 외웠으나 삶에서는 바리새인이었고 누군가를 향해 비난과 정죄하기에 빨랐습니다. 조그마한 누군가의 실수를 참지 못햇으며 조금 아는것을 가지고 호들감을 떨며 마치 모든것을 아는양 했더랬습니다.
나는 단 한가지도 주님의 계명을 살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저의 실체였습니다. 하나도 버리지 못한것이 저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주를 사랑하노라 한것이 저였습니다. 사랑 사랑 말은 했지만 진정한 사랑을 하지 못했던 사람이 저였습니다. 그동안 입으로만 고백하는 가짜 신앙인이 저였습니다. 율법에 같혀서 참다운 삶을 알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삶속에서 참다운 사랑으로 생명으로 살기를 원하셨지만 그것을 알지 못한채로 잘살고 있노라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주님께서 완성하심은 바로 우리의 삶을통해 증명하라고 하심입니다. 주님이 완성했으니까 다 끝난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안에 계신 주와함께 이땅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께서 가르치신 그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 이 말씀이 버겁게 들려졌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이말씀이 어떻게 들리시는지요. 정말로 나를 완전하게 부인할수 있을까요? 지금의 제 모습은 결코 부인한 모습이 아니니 큰일 났습니다. 야단나버려습니다. 주의 긍휼하심만을 간구하면서...
2009/02/03.ⓒ주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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