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요, 하나님의 본바탕의 본보기이시요, 자기의 능력 있는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죄를 깨끗하게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히1 : 3)표준새번역.
히브리서는 말 그대로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히브리인들이란 애굽에서 사백년동안 노예로 살다가,종으로 살다가 기적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방된 민족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기적이고 성경을 통해보면 이미 약속되었던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성취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그 자손들이 이방의 객이 되고 종노릇하다가 그 땅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출되어 약속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올것이라는 언약의 성취입니다.
히브리인들은 강을 건너온 사람들입니다. 홍해를 건너온 사람들입니다. 죽음의 강을 건너서 살아나온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입니다. 유대민족입니다. 이들을 구원하신 신은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히브리민족을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창세기부터 출애굽기사를 통해서 엄청난 사건들을 알수 있습니다. 이것을 믿는자들이 있고 믿지않는자들이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이렇게 두부류의 사람으로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동일하게 받았지만 어떤 이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길로 혹은 전혀 상관없는길로 또는 전혀 모르는 상태로 다만 눈에 보이는 현실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았고 살고 있습니다. 반면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보고 듣고 순종하며 살아왔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동일하게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학자들마다 주장이 다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바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한것은 성령께서 저자인것은 틀림없습니다. 문제는 이 서신서를 기록한 의도와 목적이 무엇인가가 중요합니다. 히브리서의 특징은 한마디로 옛 것에서 새 것으로의 관계를 계속적으로 비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유대인들이 절대적으로 존경하는 최고의 인물이 모세입니다. 모세보다 뛰어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권위를 느끼고 두려워하는것이 율법입니다. 율법보다 더 완전하신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천사를 최고의 영적인 존재로 생각합니다. 그 천사보다 더 영광스러운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거합니다. 유대인들은 대제사장을 존경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시고 살아계시는 대제사장이시며 멜기세댁의 반차를 쫓아 우리에게 항상 살아서 하나님 앞에서 보증하시는 영원한 대제사장이라고 증거합니다.
히브리서를 기록한 목적은 이방인들을 위한것이 아닙니다. 다시말해서 믿는자들을 위한 서신입니다. 유대교에서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했거나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받아드린 사람들입니다. 또한 이방인으로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신앙하는 이들을 위한 서신입니다. 그러므로 이 서신을 받는 수신인들은 당시에 예수를 구주로 믿고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보낸 서신이면서 그 당시에 수 많은 핍박과 고통과 환란가운데서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상황이 발생하는 지경에 있는 성도들을 위하여 굳게 믿음을 잡으라는 위로와 격려의 편지입니다.
그때의 형편은 유대인들로부터 집요하게 위협과 핍박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모세의 율법은 절대적이었으며 장로들의 유전과 전통사상을 어기고 지키지 않는다는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배신행위이며 민족적으로는 매국노와 같았기 때문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며 경배하며 예배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볼 때 당연하게 죽이려고 하는것입니다.
거기다가 로마의 권력또한 그리스도인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것입니다. 가이사 황제 외에는 참신이 없다고 로마는 통치를 하고 있었고 그것을 인정하는 나라의 모든 종교와 그들이 섬기는 신들을 인정하는 정책을 사용했었기에 유일하게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 황제숭배를 거절하는것을 참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유대교역시 로마의 정책을 수용하였기 때문에 제사장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오히려 탄탄한 권위를 유지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유대인들역시 그들이 외치는 유일하신 여호와만 섬긴다고 했다면 실제로 가이사를 인정하지 않았을것이며 당연하게 핍박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과거 일제에 주권을 빼앗긴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신사참배를 요구하는 일본의 정책에 끝까지 거부하고 항거했던 주기철목사님같은 신앙의 선배들과 교회는 엄청난 박해를 당해야 했지만 신사참배를 수용했던 많은 교회들은 살아남았고 오히려 번성했다는것이 역사의 진실입니다. 똑같습니다. 유대교가 존재할 수 있었고 종교지도자들이 그어려운 시기에도 떵떵거리며 살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로마의 정책에 동조하지 않고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그와같이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의 상황이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신앙이 흔들리고 두렵기도 하고 여러가지 이유로 인하여 유대교로 돌아가는 자들이 나타났었고 신앙과 정체성에서 요동했다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교의 전통에 얽매였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그것을 훌훌 털어 버릴수가 없었기에 갈등하는 것이지요. 수 천년을 익숙하게 살아온 유대전통들이 그렇게 간단하게 떨어지는게 아닙니다. 우리가 죄가운데서 살다가 예수 믿는다고 순식간에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듯이 말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 입니다. 오랫동안 유교와 불교와 토속적인 무속의 문화속에 살았던 민족이 기독교가 들어 왔다고 쉽게 변할리가 없지요. 세살 버릇 여든간다는 속담이 있듯이 한번 익숙해진 습관이나 사상과 가치를 바꾸기란 굉장히 어렵습니다. 기독교가 상당한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얼마나 토속신앙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볼수 있습니다. 미국의 실용주의 편리주의조차도 한국에서는 비빔밥처럼 뒤섞여서 희안한 변종으로 개량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이 별로 효력을 발하지 못하고 오히려 유대교적인 유일신관과 율법주의에 사로잡힘을 보게 됩니다.
제가 이제 신약시대를 살고 있는 구원얻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은 아무런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고 글을 올렸더니 대뜸 율법폐기론자라고 쏘아부칩니다. 일점 일획이라도 떨어지지 않는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저를 나무랍니다. 이것은 제 아내도 아직까지 수긍을하지 못하고서 저를 이상하게 바라봅니다. 신실한 믿음을 바탕으로 신앙하시는 주변의 목사님들 역시 저를 염려하며 바라봅니다. 마치 율법을 무시하면 큰일이라도 나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처럼 놀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글을 읽는 여러분들 가운데서도 혀를 차면서 잘못가고 있구나 하시는 분들 계실줄 압니다. 하지만 신약의 사도들은 동일하게 율법보다 더 권위가 있으신 예수님께서 그의 십자가로 다 이루셨기 때문에 더이상 율법은 신약의 구원얻은 성도들에게 전혀 구속력을 행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가장 자세하게 집요하게 그것을 변증하는 성경이 저는 히브리서라고 봅니다. 오늘날 교회는 히브리서를 자세하게 풀어서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복음의 빛이 찬란하게 증거되면서 성도들의 영혼이 자유함과 기쁨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옛날에는 예언자들을 시켜서
하나님께서 옛날에는 예언자들을 시켜서,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으나,
유대인이면서 그리스도인들이 된 성도들에게 구약의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말은 오늘날 성도들역시 구약 성경을 읽지 않았거나 알지 못한다면 도무지 무슨 뜻인지를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창세기나 출애굽기를 읽어 본적이 없는 교인들이 알수가 없는것은 당연하며 또한 읽었다 해도 지식과 학문적으로 의무감에서 읽었다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유대인들 역시 모세의 율법 오경과 선지서들을 오랫동안 읽고 묵상하고 가르쳤고 들었지만 성령의 조명을 받지 못하므로 오실 메시아를, 오신 메시아를 몰라본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들은 무수하게 많은 전통과 관습과 규례들에는 철두철미 했지만 그것들을 재정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했기에 결국은 광야에서 성전에서 회당에서 행하는 모든것들이 하나님께 한것이 아니라 귀신들에게 제사한것이라고 분명하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밝힌 것입니다.
그런데 여수룬이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도다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귀신들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이 알지 못하던 신들, 근래에 들어온 새로운 신들 너희의 조상들이 두려워하지 아니하던 것들이로다 너를 낳은 반석을 네가 상관하지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을 네가 잊었도다 (신32:15-18)개역개정.
이스라엘은 부자가 되더니, 반역자가 되었다. 먹을거리가 넉넉해지고, 실컷 먹고 나더니, 자기들을 지으신 하나님을 저버리고, 자기들의 반석이신 구원자를 업신여겼다. 그들은 이방 신을 섬겨서 주께서 질투하시게 하였으며, 역겨운 짓을 하여 주께서 진노하시게 하였다. 너희는 하나님도 아닌 신들에게 제사를 드렸다. 너희가 알지도 못하는 신들, 새롭게 나타난 새 신들, 너희 조상이 섬기지 않던 신들이다. 너희는 너희를 낳은 바위를 버리고, 너희를 낳은 하나님을 잊었다.(표준새번역)
다양하게 여러 모양으로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유대인들의 조상들이 알아듣지를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더 확실하게 말씀 하시려고 새로운 모양으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의 율법으로 아무리 말씀하시고 선지자들로 예언하시고 뜻을 가르쳤어도 깨닫지 못하고 더 완악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신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이 마지막 날에는 아들을 시켜서
이 마지막 날에는 아들을 시켜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들을 만물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그로 말미암아 온 세상을 지으셨습니다.
이 마지막 날이란 율법시대를 마감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를 필하시고 새로운 시대를 건설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직접 보낸것입니다.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모든 전권을 위임받아서 내려오신 전권대사요 특사요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주십니다. 아멘.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의 상속자입니다. 만물이라함은 모든 피조물과 피조된 세계를 말합니다.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된게 아니라 아들이시며 아버지와 동등이시며 피조세계를 상속하시며 다스리는 분입니다. 또한 증거하기를 아들로 말미암아 온 세상을 지으셨다는 것이니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동등하게 사역하신 창조주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벽이며 문이며 강이었습니다.
이러한 가치와 문화와 세계관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으로 새롭게 새로운 하나님의세계를 경험한 것입니다. 이것을 철학적인 용어로 깨달았다는 것이겠지요. 듣고 깨우쳐야합니다. 사람이 깨달음이 없다면 짐승과 다를게 뭐가 있습니까? 미개인들과 야만족들을 짐승과 같다고 하듯이 요즘도 악한 자들을 가리켜서 짐승만도 못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을 향하여 선지자는 탄식합니다.
하늘아, 들어라! 땅아, 귀를 기울여라! 주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자식이라고 기르고 키웠는데,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저를 어떻게 먹여 키우는지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 슬프다! 죄 지은 민족, 허물이 많은 백성, 흉악한 종자, 타락한 자식들! 너희가 주를 버렸구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업신여겨서, 등을 돌리고 말았구나.(사1:2-4)표준새번역.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주라는 것을 믿으십니까?
유대인들은 그것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더구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영적으로 못보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죽이고자 빌라도에게 넘겨준 것입니다. 그 시대의 부자들과 권세자들은 부와 인기와 명예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에 아무리 성경을 읽고 보고 들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보냄을 받아서 회개하라고 가르친 선지자들역시 듣기 싫다고 죽인자들입니다. 세례요한을 선지자로 알고도 죽였잖습니까? 오늘날 우리는 과연 어떤 자리에 지금 있는지 심각하게 돌아볼일입니다. 구약의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을 비난할 처지가 못되지는 않은지요?
당시 세례요한과 예수께 지독하게 욕을 먹은 바리새인들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그가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떠받들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서, 예수를 비웃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를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희의 마음을 아신다. 사람들이 높이 평가하는 그러한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혐오스러운 것이다. (눅16:13-15)표준새번역.
아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요
아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요, 하나님의 본바탕의 본보기이시요, 자기의 능력 있는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죄를 깨끗하게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능력과 권능이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만물을 보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심은 죄를 깨끗하게 하시는 권세자요 땅에 있는 불완전한 제사장과 다른 영원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같힌 유대인들은 전혀 알수가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속에 철저하게 빠져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무리 종교적으로 탁월하게 교회에서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한다해도 이 비밀을 알지 못하거나 믿지 못하기에 여전히 율법의 구속에 따라서 살수 밖에 없습니다.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은 하나님 입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지극히 높으신 곳에 계시는 지존자라고 여호와 하나님을 표현하였습니다. 높으신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으신 분이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임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의 우편에는 아들만이 앉는 것입니다. 아무리 뛰어나고 능력이 있는 천사장도 우편에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 자리는 오직 아들만이 앉는 자리입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멘.
이 비밀을 누가 알수 있습니까?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구원얻은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거듭나고 구원얻은 자녀들만이 알고 즐거워 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며 비밀입니다. 예수 그이름안에 있는 놀라운 비밀입니다. 초대교회 공동체의 성도들은 사도들과 함께 이러한 기쁨에 충만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복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한분이면 충분한 것입니다. 신약시대의 성도들에게는 예수 한분이면 만족하는 것입니다. 그 이름이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이 복음의 의미를 모르면 예수 말고도 잡다한 것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각종 규율과 제도와 관습과 다양한 전통들을 만들고 그것을 힘써 지켜온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많은 엄격한 제도와 전통과 형식들이 난무하는지요? 오늘날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예수 한분으로 모자라서 수도 없이 많은 비본질적인 것들로 주렁주렁 치장을 합니다. 그것을 하나라도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분노하셔서 벌을 주시고 모든것을 다 빼앗으시는것처럼 두려움에 살고 있습니다.
어쩌다가 하나님이 이방의 알지 못하는 신들과 같이 건물에 좌정하시는 죽은 신들과 동격이 되어버렸는지요? 예수그리스도는 자신을 내어 죽으시고 그 피 값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사셨습니다. 이제는 더이상 헛된 우상숭배를 벗어버리고 종이나 노예가 아니라 당당하게 아들로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아버지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기뻐하심으로 복되고 즐겁게 살도록 부름 받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한다
나를 보내신 분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 두지 않으신다. 그것은 내가 언제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의 말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게 될 것이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8 :29-32)
이제는 분명해 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모든 율법과 죄와 사망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죄 없으신 자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은 죄악에 사로잡혀 죽었던 우리를 살리시고 하나님과 원수돤 관계에서 화목되도록 제물이 되셔서 죽으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십자가에서 나타나셨고 죽음의 벽을 넘어서 부활의 생명으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사망의 빗장을 깨트리시고 죄의 감옥에서 우리를 해방하여 주셨습니다. 사도들과 우리들은 그럼으로 부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세주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으며 이 땅에서 영원을 살아가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신분이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세상의 어떤것이 우리를 구속하며 억압하며 가둘수 있단 말입니까? 율법조차도 구원얻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속할 수 없다는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생명의 법이 오기까지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까지만 맡겨놓은 옛 언약입니다. 이미 새 언약을 작정하신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사 성취하셨습니다. 사도들과 성도들이 온 삶을 통하여 전한 복음이 십자가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부르시고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복음의 비밀을 알게 하셔서 전하는 것입니다. 이미 계시된 하나님의 뜻은 신 구약 성경을 통해 온세상에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오라고 초청하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 27-28).
2009/01/10.ⓒ 주사랑.
관련 URL: http://cafe.naver.com/pray153/1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