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은 성인 오락실에서 대박의 꿈을 꾸며 도박 열풍에 빠져 있고 청소년들은 게임 광풍에 휩쓸려 낮과 밤을 바꿔서 생활하는 것이 일상의 모습이 됐다.
또한 어린이뿐만 아니라 기성세대까지 왕따 현상에 전염돼 남을 배려하고 함께 사는 공동체의 모습보다는 그들만의 울타리를 쌓고 기뻐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것도 모자라 동·서로 나뉘고 진보와 보수로 벽을 쌓고 계층간 대립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더구나 빛과 소금이 돼서 갈등을 치유하고 통합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교회는 맘모니즘에 함몰돼 성경적 세계관이 세속적 가치관에 지배되는 처지에 이르렀다.
지나친 성장주의와 개교회주의 때문에 본보기와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할 교회는 사회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는 참담한 상황에 처해 있다. 가슴을 찢는 참된 회개만이 적신호가 켜져 있는 대한민국호를 살릴 수 있다. 이 시간에는 참된 회개의 의미를 알아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의 ‘서시’다. 한평생을 부끄럼없이 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그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부끄러워하며 죄로 고백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둠과 바람 속에서도 외롭게 양심을 지키며 끊임없는 자기성찰적 자세를 견지하겠다는 고백이다. 나를 돌아보는 반성적인 삶이 인생의 이정표를 제시해주며 어두운 찌꺼기를 걸러내준다. 윤동주는 이렇게 회개의 삶을 실천적으로 보여준 인물이다.
그럼 참된 회개란 무엇인가.
찰스 피니의 저서 ‘구원에 이르는 회개’에 따르면 죄의 견해에 따라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며 죄를 반복하는 경향이 사라진다. 행동의 변화를 일으킨다. 죄를 고백하고 동시에 범죄한 일에 대한 보상을 한다. 성격과 행동이 영원히 변화된다.
진정 회개한 자에게는 죄는 혐오스럽고 추악한 것으로 보인다. 죄를 두려워하거나 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미워해서 피하게 된다.
참된 회개를 한 사람은 과거에 탐닉했던 세속적 쾌락을 버리는 변화가 나타난다. 누군가를 속이고 부당하게 취한 것이 있다면 돌려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 일이 있다면 그 행위에 대해 보상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거짓 회개는 어떻게 식별하는가. 행동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이기심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일시적인 변화로 옛 상태로 되돌아간다. 불법을 완전히 마음에서 몰아내지 못한다.
거짓 회개가 낳는 변화는 마지 못해서 행한 변화이다. 이것은 율법적인 회개이고 두려움으로 인한 회개이다. 거짓된 안전을 기대하며 마음을 완악하게 한다. 이러한 거짓된 회개는 죄에 대한 진정한 거부를 낳지 않아 달궈진 쇠처럼 양심을 무디게 한다.
회개란 하나님을 향한 완전한 방향 전환이다. 죄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을 거꾸로 돌려나가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닮기 위해서 죄악의 실타래를 풀어가며 거짓의 옷을 벗고 양심의 옷으로 갈아입는 행위다.
출처: http://www.kukinews.com/news/nMain/index.a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