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지고 있던 고모부님 막내딸이 갑자기 이혼을 하게 되었다. 그딸은 자녀와 친정 아버지 집에서 함께 살기로 했다. 그 소식에 참 막막해졌다. 우리가족이 어지간히 자리가 잡힐 때까지 편안히 지낼 곳이였고 고모부도 늘 홀로 외롭다가 북적거리는 우리들로 인해 이제 사람 사는 집 같다고 여간 좋아라하시지 않았다. 그렇게 편안히 대해 주시고 마치 친정 아버지같이 친근히 대해주시는 까닭에 굳이 어서 집을 얻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하고 지내고 있었다.
어디로 이사를 해얄지, 또 수중에 돈도 보증금하기에는 터무니 없이 모자라서 그저 기도만 하고 있었다. 몇일후 다급한 전화 한통을 받았다. 다세대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잘알고 지내는 언니로 부터의 전화였다. 이층에 세 들어 살고 있던 사람이 계약기간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이사를 가야한다며 혹시 우리가족이 그리로 이사를 올 수 없겠냐는 것이다. 복덕방에 내어 놓으려는데 자꾸만 내가 생각이 나서 곧장 전화를 넣었다는 것이다. 하나님 역사하심을 바라보는 순간이였다.
솔직히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 돈도 보증금 하기에는 터무니 없이 모자람을 이야기했다. 잠시 생각하던 언니는 자신이 도울 수 있는 길을 찾아 보겠다고 했다. 몇일 후 다시 연락이 왔다. 자신이 융자를 받아줄터이니 일년동안 나누어서 갚으라는 것이였다. 보증금과 월세를 함께 보태어 매달 갚을 것을 계산해 보니 허리 졸라매면 가능할 것 같기에 가족들이 함께 그렇게 하자고 했다. 배려해준 언니가 여간 고맙지가 않았다.
이사하자 마자 옷만드는 곳에 들어가 취직도 하게 되었다. 후다닥 뛰어가면 2분거리인 곳에 또 직장을 준비하시고 계셨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사장님을 만나서 잠시 이야기했는데 언제든지 오고싶을 때부터 오라는 것이였다. 이사짐 정리하고 곧장 일을 시작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 월급으로 보증금이며 집세를 다 감당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올 때 옷 몇벌밖엔 가지고 오지 못했다. 살림을 시작하려니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숟가락, 젖가락도 없었다. 정말 신기하게 필요하다 싶은 것들이 하나 하나 지인들의 손길을 통해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릇은 너무 많아서 오히려 도로 싸들려 보낸 적도 있다. 주인집 언니는 딸이 시집가기전에 쓰던 것이라며 아이들에게 화장대를 가져다 주었다. 어찌나 이쁘던지, 완전 우리 가족 취향에 딱 맞는 색상이며 디자인이였다. 아이보리색과 진한 브라운의 어울림이 아이들 맘에 쏘옥 들었던 것이다. 몇일 후 또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신이 쓰던 책상이 있다며 아이들 책상을 사지 말라고 했다. 책상이 도착하던 날, 우리 가족들 모두 기절할 뻔했다. 화장대와 색상이며 질감이 똑같았다. 세상에 하나님은 오밀조밀 세심하게 신경을 써주신 것이다. 아이들 방의 가구가 세트가 되었다. 또 놀라운 것은 우리방에 책상이 하나 필요했다. 교회에 다녀오는 길에 마침 중고상가가 있기에 남편과 둘러 보았다. 저 구석진 곳에 우리집 가구와 같은 디자인이며 색상인 책상이 있었다. 너무 신기해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만원만 달라고 하는 주인아저씨는 집까지 배달을 해주셨다.
자그마한 공간이지만 마치 신혼살림 차리는 기분으로 요즘 온 가족들이 기뻐하고 있다. 실로 만 2년만에 가족들에게 집이 주어진 것이다. 저녁을 먹으며 미국에서 흩어져 살았던 기억, 삼단요에서 가로로 자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이렇게 한 공간에 함께 있을 수 있음이 여간 행복한 일이 아닌가라며 서로 서로 그간 고생이 많았다며 토닥거려주었다. 그리고 한 곳으로 시선이 모아졌다. 가구들... 완전 세트가 되어진 가구를 바라보았다. 서로가 말은 없었지만 알뜰살뜰 챙겨주시되 우리의 취향까지 생각하시며 챙겨주시는 하나님,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서로 얼굴을 보며 빙그레 웃는 웃음으로 말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