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하나님을 말하면 십중팔구 돌아오는 대답입니다. 불신자든 수십년 교회다닌 사람이든 대동소이합니다. 물론 감히 누구 앞에서? 하는 얼굴로 자존심 상한다는 듯 화를 내는 이들도 있지만 그런 반응 역시 모른다는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안다면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자신의 소망에 대해 겸손과 온유로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잘 모르겠다는 말은 진짜 모르겠다는 의미보다는 내 생각은 다르다는 완곡한 거부의 표현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아무리 행위로 얻는 구원이 아니라지만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각 사람이 교회이고 각자의 몸이 성전이라고는 하지만 특별한 사유 없이 주일에 교회가지 않으면 안될 거 같고, 누구나 왕같은 제사장이라지만 목사말 안 들으면 벌 받을 것같기 때문입니다. 기껏 시간과 열심을 내어 참여하던 봉사와 성경공부의 뿌듯함, 해외선교, 단기선교, 전도집회, 부흥회, 야유회 등 다양한 명목으로 해오던 형제자매들과의 즐거운 시간들, 애써 지켜온 양심적이고 좋은 사람이라는 포지션, 큰 결단으로 드렸던 십일조와 건축헌금, 감사헌금 같은 것들이 모두 아무 것도 아니라는데 쉽사리 동의할 수는 없겠지요. 그렇지만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도 없으니 그저 애매하게 잘 모르겠다거나, 어렵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분명히 자기의 생각과 행위를 뒷받침해줄 성경구절이 어디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지금 이 순간은 내가 알지 못하고, 그래서 속 시원하게 반박하지 못하지만, 내 믿음을 부정하는 저 놈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고, 내 신앙이 옳다는 것을 입증할 무언가가 반드시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천년 기독교 역사 속에서 교회와 신자들이 해 온 모든 일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말 테니까요.
그래서 예수님께 하늘나라에 대한 가르침을 듣고도 외면했던 유대인들처럼 그냥 가던 길을 갑니다. 먼 변방 갈릴리에서 목수질하던 촌놈 주제에, 레위인도 아니고, 제사장, 율법사, 서기관은 더더욱 아닌 주제에, 가말리엘 같은 훌륭한 스승 밑에서 배운 적도 없으면서, 감히 유대인 전부의 믿음을 싸잡아 매도하는 예수의 말 따위는 귀담아 들을 가치가 없다고 여긴 유대인들처럼, 신자라는 이들 역시 성경이 하는 말을 무시합니다. 심지어 날마다 성경을 보면서도 그렇습니다.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너는 와서 나를 따르라는 말에 울상이 되어 돌아간 젊은 부자 관원이나, 거듭남을 엄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 나오는 것으로 오해한 니고데모의 예에서 보듯 예수님의 말은 유대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않았습니다. 혈통을 필요조건으로, 율법준수를 충분조건으로 여기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딴소리만 하셨습니다. 제사장과 율법사, 서기관들이 한 목소리로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과는 전혀 다른 말만 해대는 예수님을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나 메시아는 커녕 랍비로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태도도 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을 뿐더러 읽어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쏭달쏭한 성경보다, 차라리 내가 믿어온 시간과 열심, 나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모이는 자들의 숫자, 담임 목사의 학력과 인품이 더 분명하고 확실한 증거라고 여깁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그 긴 시간 동안 뜻과 힘을 모아, 예배하고 찬양하며, 봉사하고 가르치고, 전도와 선교에 힘쓰는 것은 분명히 성령의 인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믿어 버립니다. 결국 새 생명이 아니라, 성경이 아니라, 내가 속한 집단과 나의 행위가 믿음의 근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을 어렵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도무지 지킬 수 없는 명령들 때문입니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나아가 원수까지 사랑하라니까 지레 포기해버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려고 애는 써볼 수 있겠지만 어떻게 진정으로 남을 나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으며, 철천지 원수에게까지도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과연 누가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사는 동안 음욕조차 품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 명령을 내가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로 바꿔버리는 것입니다. 사랑도, 자기 부인도, 보다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행위들로 대체하다보니 오늘날 이런 엉터리 기독교가 정통행세를 하며 참 복음을 이단시하고 배척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도 안되는 말을 하고 성경이 도저히 지킬 수 없는 명령을 하는 것입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성경을 생명의 말씀이라고 믿는 것입니까.
젊은 부자 관원이 울상을 하고 돌아간 뒤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다고.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바로 그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피조물인 너희들은 불가능하다. 창조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 그런데 사악한 인간들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무제한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인간의 얄팍한 동정심으로, 각자의 삶 전부와 바꾸어야할 믿음을 입술로 하는 고백과 겉치레뿐인 종교생활로 바꿔치기한 것입니다.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신자들에게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어렵고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것과 성경이 말하는 것이 다르다면 나의 앎에 억지로 성경을 꿰어맞추려 하지말고 잘못 알고 있었던 나를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 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여버릴지언정 자기들의 의를 버리지 않은 유대인들처럼, 우리는 성경을 어렵고 헷갈리는 책으로 버려둘지언정 우리의 잘못된 믿음은 바꾸지 않습니다. 그것이 성경을 어렵게 여기고, 참 복음 앞에서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우리의 본심입니다.
기호님 참으로 귀하고 은혜로운 나눔 감사합니다.
특별히 일반 신자의 심정을 대변하면서도 그 올바른 성경적 해법까지 제시해주셨네요.
올려주시는 댓글들마다 제가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성령 안에서의 동역 교제 나눔이 아름답게 이어지기를 소원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