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목사님 요새 출애굽기를 읽고 있습니다.
비교적 간단한 의문이 생겼는데 혼자서 결론 내리고 넘어가자니 좀 찜찜해서 여쭤봅니다.
출애굽기 13장에 보면 2절(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부분)과 11절~13절(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하는 부분)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처음 난 것은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모두 거룩하게 구별하여 주님께 바칠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14~16절에는 그렇게 하는 이유가 주님께서 강한 손으로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셨기 때문이라고 하죠.
2."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태를 제일 먼저 열고 나온 것 곧 처음 난 것은, 모두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에게 바쳐라.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처음 난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11. "주님께서, 당신들과 당신들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당신들을 가나안 사람의 땅에 이르게 하셔서 그 땅을 당신들에게 주시거든,
12. 당신들은 태를 처음 열고 나오는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치십시오. 그리고 당신들이 기르는 짐승이 처음 낳는 수컷은 다 주님의 것입니다.
13. 그러나 나귀의 맏배는 어린 양을 대신 바쳐서 대속하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대속하지 않으려거든, 그 목을 꺾으십시오. 당신들 자식들 가운데서 맏아들은 모두 대속하여야 합니다.
이 13장을 읽을 때 의문이 들었지만 대략적인 결론을 잠정적으로 내리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법들을 말하고 있는 22장에 가니 또 이 내용이 나옵니다. 22장 29절 뒷부분과 30절을 보면,
너희는 맏아들을 나에게 바쳐야 한다. 너희는 소나 양도 처음 난 것은 나에게 바쳐야 한다. 처음 난 것들은, 이레 동안은 어미와 함께 있게 하고, 여드렛 날에는 나에게 바쳐야 한다.
그래서 질문드립니다. 맏아들과 처음 난 짐승의 새끼를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시는데, 짐승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은 제물로 바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같이 취급되고 있는 맏아들도 제물로 바칠 것을 요구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현대에 쓰이는 말처럼 은유적으로 하나님께 삶을 바친다는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처음엔 상식적으로 봤을 때나 성경 전체에 드러난 하나님의 성품을 생각해봤을 때 후자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신들처럼 인신제사를 요구하실리 없다' 이런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칠 것을 명령하신 사례나, 현대적인 사고로 해당 구절들을 현대적 의미(하나님께 삶을 바친다)로 받아들이는 것은 근거가 부실한 해석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실인 규정들도 아직 근처에 나오지 않아서 엮어도 되는지 잘 모르겠고요.
그렇다고 전자로 보기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자비로우심이라는 두 측면에 모두 들어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편에는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피조물이자 하나님의 소유이고, 우리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빚졌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빚지신 것은 전혀 없음을 또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모든 것을(목숨까지도) 요구하실 수 있다는 사실이 걸립니다.
그래서 전자와 후자 어느쪽으로 해석하는 게 맞고, 또 그 근거가 무엇인지 설명을 듣고 싶어서 질문드리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질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다른 해답을 찾은 것 같아서 검증 받고자 더 적겠습니다.
13장 13절에 보면 나귀의 맏배는 어린양으로 대신 바쳐서 대속하라고 되어있습니다. 왜 나귀는 어린양으로 대신 바치라고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나귀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에서 중요한 짐승이지 않았을까, 또는 새끼를 별로 안낳아서 맏배를 바치면 대가 끊겨 백성에게 돌아가는게 없는 것 아닐까 정도로 추측합니다. 아무튼 이어서 어린양으로 대속하지 않을거면 그 목을 꺾으라고 하는데 그는 아마 나귀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양으로 대속하기 싫으면 나귀를 바치라는 것 같습니다. 또 그 뒤에 백성들 자식들 가운데서 맏아들은 모두 대속하여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맏아들을 주님께 바치라는 의미는 전자의 의미 즉, 진짜로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라는 의미이고,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므로 진짜로 맏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대신 어린양으로 대속하는 방법(길)을 열어주신 것 같습니다. 또 어린양의 대속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상징하는 예표일 것입니다.
이 마지막 해석이 맞는지 확인 받고 싶습니다.
추가적으로 세세한 의문이 생겼는데 13장 2절에서는 주님께서 모세에게 그냥 바치라고 하셨는데 11절에 모세가 백성에게 전할 때는 가나안 약속의 땅에 도착하면 그 이후에 바치라고 합니다. 11절에 이어서 13절까지 그 부분만 보면 가나안에 도착한 이후 한 번만 그렇게 바치라는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다른 부분들을 보면 조건없이 그냥 바치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자손은 처음 난 것을 계속해서 바쳐야 할 것 같은데 요새도 유대인들은 이 법을 계속해서 지키고 있나요?
한 마디로 후자의 해석이 맞다는 뜻이군요. 동물이나 식물의 첫 소산에 대해서는 헌금이나 십일조의 의미와 일치하고, 장남을 바치라는 것은 구별되어 하나님께 충성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모든 것을 주신 분과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을 담고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이런 해석에 대해서 동의하고 수긍하지만 한 편으로 이런 해석이 나오게 되는 근거가 알고 싶습니다. 이 해석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고, 단지 이 해석에 도달하는 데에 어떤 자원이 바탕에 있는지 알아 더 풍성하게 알고 싶어서요. 교리와 어긋나는 해석은 틀린 것으로 간주하는 원칙 외에도 특별히 후자의 해석으로 기우는 자원이 있나요? 바치라는 원어의 의미라든지, 연결/연관된 본문이라든지 하는 식으로요
'바치라'는 동사의 히브리 원어 '카다쉬'는 "따로 떼어내어서 구별한다 즉 성별한다"는 의미인데, 그 동사 단어 하나에 대해 우리말로는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바쳐라)",고 길게 번역했습니다. 말하자면 후자의 의미라고 출13:2 본문 자체가 그대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로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던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하는 근거나 배경은 이미 설명드렸습니다. 초태생만이 아니라 모든 것을 대표하기에 이스라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죄악으로 타락해 모든 족속이 우상을 숭배하는 가운데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따로 불러내어 당신의 언약 백성("이는 내 것이라")의 선조로 세워주었습니다. 그 후손인 이스라엘의 모든 장남은(사실은 이스라엘 백성 전부가) 하나님이 그 언약에 따라 보호 인도해주시는 은혜 가운데 있다는 뜻으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묵상하는 습관을 드리면 좋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라, 예배하라, 기도하라, 충성하라, 순종하라고 명하셨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이유 근거 배경을 감히 일개 피조물로 죄에 타락한 우리가 따질 수도 없고 묻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분을 믿고 따르는 백성으로선, 마치 자식이 아비에게 왜 사랑하고 존경하고 의지해야하는지 따질 필요도 없고 따지는 사람도 없듯이, 당연히 그분을 언제 어디서 어떤 형편에 있어도 진심으로 사랑 예배 기도 충성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자로선 은혜 축복 특권 영광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나를 실제로 찾아와서 "너는 내 것이다 너 인생을 나에게 바치라"고 명하셨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성경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나 진리의 계시는 바로 지금 나에게 직접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서 묵상 적용하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샬롬!
그러니까 제 질문은 '바치라'는 명령에 대해 왜 바쳐야 되는지 의문을 표하고 그 근거를 묻는 것이 아니라 그 바치는 방식이 제물로 바치는 것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다른 의미(예를 들어 삶을 바친다)인지를 묻는 것입니다. 본문의 질문이나 댓글의 추가 질문이나 같습니다. 주신 답변에서 교리나 하나님의 성품에 어긋나는 해석은 잘못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원칙 외에는 '바치라'는 명령이 제물의 방식으로 바치는 것이 아니라고 해석할만한 근거가 없는 것 같아서 추가적으로 질문 드린 것이였습니다. 히브리어 '카다쉬' 또한 '따로 떼어내어서 구별하다 성별하다'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바치라)'의 의미라고 하셨는데 그 방식이 제물로써 거룩하게 구별하여 돌리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식인지 단어의 의미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그리고 바치는 방식이 제물이라는 방식이 아니라면 맏아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돌리는 다른 방식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맏아들을 바치라는 명령이 하나님께 평생을 두고 충성한다는 의미라고 하셨는데 당시 이스라엘 민족들이 이 의미를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지켰는지 알고 싶습니다.(막연하게 하나님께 충성하는 마음만 가지도록 했는지, 어떤 성결 의식을 치뤘는지, 어떤 사역이나 노동 또는 봉사를 맏아들에게 지웠는지)
낭여님 한국말인데도 서로 이렇게 소통이 안 되다니 제가 미처 이해를 못해서 죄송합니다.
이스라엘은 모든 열방을 대신하는 하나님의 장자 백성(제사장 나라)이고 장남은 이스라엘 전부를 대표합니다. 이스라엘의 장자를 출애굽 사건의 뜻에 비추어서 바치라는 것은 출애굽 당일 밤에 이스라엘 장자도 당연히 죽었어야 하나 어린 양의 대속 은혜에 의해서 따로 구별되어서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장자를 바치라는 의미도 그래서 따로 구별된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서 평생을 두고 당신의 일에 헌신하라는 것인데 하나님은 레위지파를 택해 그 일을 대신 담당하게 했습니다. 레위 지파를 채택한 까닭은 야곱의 유언(창49:7), 광야의 금송아지 사건 때에 레위 족속의 충성(출32:26-29), 모세와 아론의 헌신 등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바쳐지는 방식도 출애굽 때의 정신을 살리고 또 반드시 정결하게 바쳐져야하므로 그 장남을 대신하는 레위인과 함께 성막(성전)에서 어린 양을 죽이는 대속의식을 행했습니다. 가난하거나 대신할 레위인이 없을 경우 등에는 어린 양 대신에 다른 제물이나 성전 세겔로도 바쳐졌습니다. 요셉의 장남인 예수님의 경우는 많이 간소화 되어서 산모 마리아의 정결의식으로(레12:2,8) 장남봉헌식을 대행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유대인은 모든 남아는 할례 할 때에 여호와의 언약 백성으로 그분의 소유임을 기념하는 의식을 치릅니다. 장남의 경우는 당연히 더 크게 할례의식을 치르겠지만 짐승 대속제사는 유월절 제물도 닭으로 대신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듯이 생략 내지 많이 간략하게 바뀌었으리라 추측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난 자의 대신에 레위인을 취하고 또 그들의 가축 대신에 레위인의 가축을 취하라 레위인은 내 것이라 나는 여호와니라 이스라엘 자손의 처음 난 자가 레위인보다 이백 칠십 삼 인이 더한즉 속하기 위하여 매명에 오세겔씩 취하되 성소의 세겔대로 취하라 한 세겔은 이십 게라니라 그 더한 자의 속전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줄 것이니라"(민3:44-48)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눅2:21-24)
낭여님 간단히 답변 드리겠습니다. 누차 강조했듯이 하나님의 성품과 기독교교리에 어긋나는 묵상 내지 해석은 일단 잘못된 것으로 단정지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불려 나온 갈대아 우르는 어린 아들을 산 채로 불로 태워 우상 신에게 바치는 곳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런 너무나 사악한 관습과 우상 숭배를 그만 두게 하고 참 하나님 여호와만 따르는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려고 불러냈습니다. 그더러 이삭을 바치게 한 사건은 크게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미리 어린 양으로 대속제물을 마련해놓으신 하나님입니다. 모리아 산이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던 골고다 언덕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구원을 예표하는 사건입니다.
2)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한 외아들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지 보는 시험이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 반드시 서야할 자리로 오늘날 우리도 그 자리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자신이 가진 가치 있는 모든 것이, 자기 생명마저 없어져도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는 믿음입니다.
3) 혹시 그에게 아직도 남아있을지 모르는 우상숭배의 잔재를 완전히 깨끗이 없애주려는 배려였습니다.
구약율법에서 장남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계명에 인신제물이라는 의미는 추호도 없습니다. 동물과 식물의 첫 열매는 성전(성막) 유지 관리와 생업이 없는 제사장들의 생활을 위한 것입니다. 장남을 구별하는 의식은 당연히 하나님께 평생을 두고 충성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장남이나 첫 소산만 바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 것은 모든 것을 대표합니다. 자녀나 땅의 소산이나 전부 하나님이 주셨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나아가 장자를 특별히 구분해서 바치는 것은 장남은 그 가문(이름)을 이어가고 집안의 대소사를 관리하며 영적 지도자로 서야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그만큼 갖고 싶어 했던 장자권을 부여해줍니다. 이런 의미는 지파별로도 확장되었는데 율법을 수여 받고 가르친 모세와 대제사장직을 수행한 아론이 속한 레위 지파가 이스라엘 열두 지파 전체를 대표하는 제사장 가문으로 따로 구별되어서 세워집니다.(레9장, 민8장)
출13:13의 나귀는 모든 부정한 동물의 대표로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부정한 것을 정한 것으로 대속한다는 원리는 동물에게도 적용되어졌고(민18:15), 그래서 어린 양으로 대신 바치게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은 온 천하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바꾸실 완전한 우주적 구원이었음을 상징합니다.
오늘날에도 구체적으로는 모르지만 추측컨대 모세오경을 중요시 하는 유대인들인지라 장자권을 유지하고 또 어떤 방식으로든 장자를 따로 구별해서 바치는 의식도 거행할 것입니다. 구약 율법대로 문자적으로 행하지 않고 약식으로 행할 것입니다. 예컨대 대속죄일의 경우 닭으로 제물을 대신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