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순교사화란 책을 보거나
아니면
예수님을 믿는 어린 아이들이
순교를 하는 것을 보면
제가 참 구원을 받지 못 했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질문 드립니다
순교의 상황에 놓일 때 마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들은
모두 다 구원을 받지 못 한 자들이라고 봐야 될까요 ???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0장에서 비슷한 맥락의 조언을 주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언젠가 순교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막상 그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미리부터 걱정하지 말아라. 그때가서 신자의 입술을 주관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지 우리 자신의 의지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 내 믿음의 상태에 비춰봐서 순교를 못할 것 같다고 미리부터 염려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기우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정말로 순교를 지시하시는 상황에서는 그에 적합한 성령 충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저를 포함하여 어느 신자가 감히 자신은 순교도 기꺼이 할 수 있다라고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당장 베드로부터가 그렇게 호언장담하고 실패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베드로가 아직은 순교할 때가 아니라고 여기셔서 그만한 충만을 주지 않으셨죠.
목사인 저도 순교를 당할 처지에 닥치면 끝까지 순종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무나 순교를 당하게 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이 있거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막상 그런 상황이 닥치면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여 담대하게 감당할 수 있게 해주십니다.
신자가 기억해야 할 사항은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의 경우에서 보듯이(행7:55-56) 순교의 고통은 아주 일시적이며 오히려 세상에선 누리지 못하는 천국의 평강과 영광 가운데 주님이 영접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미리부터 순교 당할 것을 염려할 필요는 전혀 없으며 매일 말씀과 기도에 정진하여서 조금씩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자신이 현재 맡은 소명에 충성만 하면 됩니다.
순교의 상황에 놓일 때마다 예수님을 부인한다는 것은 불합리한 말입니다. 순교의 상황이란 정말로 목숨이 끊어지는 단 한 번의 경우입니다. 정말로 그럴 때는 다시 말씀드리지만 성령의 충만함이 임합니다. 따라서 이런 의문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설령 목숨이 달아갈 상황이나 훨씬 더 약한 상황에서 주님을 부인하여 목숨을 부지했다 쳐도 다시 진심으로 회개하면 됩니다. 베드로가 바로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면 구원받는 것이지 순교해야 받는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