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명실상부하게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 하나님과 동행한 자
라고 평가를 받습니다.
물론 중간에 큰 범죄를 저질렀고, 그 외에도 자잘하게 자신의 힘을 의지한 적이 나오긴하지만,
그는 돌이키면서 회개하였고,
그렇기에 예수님의 선조로서
또 믿음의 거장으로서 우리에게 훌륭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일부일처제가 명실상부한 하나님의 질서이자 뜻인데,
성경에 기록된 다윗의 아내만 제가 보니까 9명입니다.
가끔 구약의 율법에 대해 누군가 공격할 때, 크리스찬으로서 제가 변론할 때
'당시의 시대상을 봐야한다' 라는 논지를 자주 쓰면서 성경과 하나님을 비호하긴 하는데
이런 것도 당시의 이스라엘 왕국의 지방호족 같은 세력과의 연합과 왕권안정을 위해 취한 정책인가요?
그런데 아들인 솔로몬의 경우에도 1천명에 달하는 아내를 거느리면서
이것이 '하나님이 아닌 외교적인 힘을 빌려는 것'
곧, 병거와 말을 의지하고, 금과 은을 통한 막대한 부로서
나라를 통치하였으며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것이 아닌 외교적인 힘을 이용해서
자신과 왕국의 안정을 꾀하려는 것으로서 강하게 비판받는 부분 아닙니까?
다윗 역시 이러한 외교적인 이유로서 9명의 아내를 둔 것이라면
동일하게 솔로몬과 같이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힘을 의지한 것이라 보여집니다.
혹시 제가 성경에 대해 잘 몰라서, 이 9명의 부인들이 전부 '전처'가 사망하고 난 다음에 정당하게 재혼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한 두 명도 아니고 9명이나 아내가 있는데 그 모든 결혼 케이스가 전처가 사망하고 나서
지속적으로 일부일처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좀 믿기 힘듭니다.
다윗이 일부일처제를 지켰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가정 내에서의 법도와 뜻을 이룬 것으로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로서 더 공고하게 인정받았을 텐데
다윗은 위에 적은 외교적 논리에 의해,
혹은 인간적인 욕정으로 인해 하나님의 법도인 일부일처제를 저버린 것인가요?
(밧세바의 사건은 대놓고 하나님께서 진노하셨기에 당연히 죄라는 걸 알지만
그 외에 아내를 거느리고 일부일처제를 깬 사례에 대해서는 진노의 언급을 못찾겠습니다.)
하다못해 다윗은 자신의 죄를 깨달으면 돌이키는 자인데
일부일처제를 깬 것에 대해 돌이키고 회개한 부분을 찾을 수가 없어서 더 의아합니다.
감사합니다.
제 안에서는 자꾸 먼가의 공정에 대한 이미지가 있으니 여기에 역으로 하나님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려고 한 것이 큰 것 같습니다.
누구는 xx한데 누구는aa하는데 왜 하나님께서 방관하시는가
라는 부분인거 같습니다.
목사님이 적으신 대로 끊임없이 예수님을 닮으려는 노력을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야겠습니다.
고대에서 일부다처제는 유력자들이, 특별히 왕 같은 지도자들이 자식을 많이 두어서 나라나 집안의 세력을 더욱 확장하려는 일상적인 방식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은 라멕처럼 남의 아내도 무력으로 탈취했으나 성경의 인물들은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내를 상처한 후에 재혼한 경우는 거의 없고 본처 외에 첩을 여럿 두었습니다.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이삭만 빼고 구약의 거의 모든 인물들이 일부다처를 행했습니다.
당시 상황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도 있었습니다. 전쟁, 역병, 도적, 강도, 열악한 경제 위생 사정 등으로 자식이 많이 죽었습니다. 저희 세대만 해도 집집마다 자식이 6-8명씩 낳았으나 두세 명이 죽었습니다. 한국도 처첩제도가 정죄되고 사라진 것이 실은 수십년 밖에 안 됩니다. 지금도 알게 모르게 행하는 자들도 꽤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이유로 시편(127,128 등)에서 자식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라 많을수록 좋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물론 하나님의 뜻은 일부다처제가 아니지만) 구약성경은 누차 말씀드린 대로 완전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한 것이 아니라 부분적 계시입니다. .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다고 한 것이 그의 행동을 보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의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의 마음에 든 것입니다. 다윗은 무슨 일이든 기도하면서 행했고 죄를 지으면 더욱 기도하면서 참회했습니다. 행동을 보고(정확히 따지면 마음은 더 그러함) 하나님의 마음에 들 사람은 모든 세대에 모든 사람 중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구약의 성경인물은 구약식으로 죄를 지었고, 신약의 사도들은 당시 방식으로 죄를 지었고, 오늘날의 믿음이 좋은 신자도 당장 저부터도 오늘날 방식의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마음의 중심은 항상 (중도에 자꾸 방향을 맞춰나간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 것이지만) 하나님 쪽으로 향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어떤 신자도 예수님의 십자가에 드러내신 하나님의 긍휼을 받지 못하면 단 한 시도 제대로 살 수 없습니다.
이 원리를 놓치면 형제님처럼 자꾸만 모든 신앙적 이슈를 성과 속, 반드시 해야하는 행동 절대로 해선 안 되는 행동으로 나누려 들게 됩니다. 물론 구체적으로 알아서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는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다윗처럼 자기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려 노력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다른 이의 모든 잘못을 탓하기 이전에 용서해주고 그 전에 나부터 나의 죄를 주님 앞에서 회개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