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목사님
오랜만에 글 남기네요.
최근 에스라서를 읽는 중인데 궁금한 점이 생겼습니다.
에스라서 10장에서 이제 성전을 복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데,
이방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한 것을 중점적으로 회개하면서 이방여인과 그들에게서 나온 자식을 내보낼 것을 다짐하고 촉구합니다.
모세오경과 율법에서 하나님께서 이방 여인과 결혼을 금하셨던 것 같긴 합니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또 현대에서도 기독교인들에게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결혼을 권장하지는 않습니다. (절대 금하진 않지만요.)
하지만 이미 결혼했다면 이혼하라고 권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혼은 예외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하셨죠.
그리고 예레미야인가 바벨론 포로기 때에 바벨론에 맞서지 말고 어울려 살라고 예언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이스라엘의 저런 행동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행동이었을까요?
에스라서 10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좋게 여기셨다는 등의 반응이 나와있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방인들도 결국 구원 계획에 포함된 하나님의 형상으로 된 사람들이이고,
이미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있으면서 자식까지 있는데 아내와 자식을 내보내는 것이 좋게 보이진 않습니다.
우선 당시의 시대 상황을 아셔야 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복원하고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어긴 죄로 인해서, 특별히 우상숭배의 죄로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서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다고 절절하게 인식했습니다.
율법은(신7:3,4) 이방여인과의 결혼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가장 지혜로웠던 솔로몬 왕의 실패에서 보듯이 남편을 유혹하여 우상 신을 섬기게 될 것을 방지하려는 뜻입니다. 또 당시는 엄마가 주로 아이들 교육을 맡았기에 대대로 우상숭배가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 공동체의 영적인 순결을 유지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고 성전을 중건한 이후의 새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공동체를 세워나가려는 시점에 그런 오염을 그대로 버려둘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아내로 삼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아솨브'는 정상적인 결혼을 뜻하는 용어가 아니며, 여기 외에 느헤미야 13:23에서만 사용되었습니다. (느13:23-31을 읽어 보시면 이 조치의 의미에 대해서 더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 동사는 문자적으로 집을 준다는 의미로 진정한 결혼관계가 아님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다 "내보내다"의 히브리어 '야차'도 이혼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따라서 이들은 단순히 동거 내지 후처로 삼은 것이라고, 즉 율법 규정에 일치하는 적법한 결혼관계가 아니었다는 표현입니다.
에스라 10장에 하나님께서 좋게 여기셨다는 반응이 나와있지 않아도, 에스라를 비롯한 백성들이 성전 앞에서 전국민적 회개 기도를 하면서 결정한 일이라, 성령의 인도에 따랐다고 해석해야 합니다. 바벨론에서 바벨론에 맞서지 말고 어울려 살라는 의미로 예레미야 선지자가 먼저 포로로 잡혀가 있는 동족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렘29:1-9) 그러나 포로 기간이 70여년 정도로 길어질 것이므로 그곳에서 조급하게 행동하지 말고 정착해서 평온하게 살라는 권면이었습니다. 자녀들 결혼도 시키라고 권했으나(렘29:6) 이방여인과 결혼을 허용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이 때가 되면 반드시 포로에서 귀환시켜 줄 것이므로 그 날을 소망하며 안심하고 평안을 누리라는 뜻이었습니다.
구약시대에 아브라함과 모세도 이방 여인을 취했으나, 아직 이스라엘 공동체가 생기지 않았고 율법을 수여 받기 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갈을 결국 내보내었고, 모세의 아내 십보라는 여호와 신앙이 투철했습니다.(출4:24-26) 요셉이 애굽 여인과 결혼해 낳은 두 아들은 심지어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선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내산 언약으로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세우고 율법을 수여한 이후로는 이방 여인과의 결혼은 엄격히 금지되었고 하나님께 큰 죄가 됩니다.
에스라가 공동체를 정결케 하려는 이런 비상 조치를 했음에도 그 후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계속 범죄하여서 결국 제사장 나라가 되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후로는 성령으로 거듭난 신자는 하나님과 일대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신약 교회가 이스라엘 공동체의 역할을 대행하게 되었습니다. 자연히 구약의 이방여인과의 결혼 금지 같은 공동체를 정결하게 하는 율법은 효력이 다했습니다.(히9:9,10) 그래서 이미 결혼한 사이에선 이혼은, 음행한 연고 외에는, 엄격히 금지된 것입니다. 바울도 이미 결혼했는데, 한 쪽이 먼저 크리스찬이 되었고 배우자가 계속 불신자로 남아 있어도 이혼하지 말라고 권한 것입니다.(고전7;12-14)
아내와 자식을 함께 내보낸 것은, 앞에서 설명드린 대로 자식을 엄마가 주로 교육하기에 영적 오염이 대대로 이어지는 것을 차단하고, 또 창세기 21장의 하갈의 경우처럼 아이를 엄마가 돌보라는 뜻이었습니다. 하갈은 하나님이 직접 아브라함에게 내보내라고 명하면서 이삭만이 약속의 씨라고 선언했는데(창21:12), 장차 이스라엘 공동체가 율법 규정에 따라 영적인 정결을 유지해야 할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 일 외에도 구약 성경에는 현대 사회의 윤리는 물론 신약시대의 예수님의 가르침과 상충되는 일들을 두고 종종 하나님의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해선 당시의 시대 상황과 여호와 공동체의 정결 유지라는 관점에서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에게만 해당되는 일시적 조치였다고 접근 해석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