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12:6-8) 불신자보다 더 불안해하는 신자

조회 수 473 추천 수 28 2009.09.18 02: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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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자보다 더 불안해하는 신자


"저가 영영히 요동치 아니함이여 의인은 영원히 기념하게 되리로다. 그는 흉한 소식을 두려워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그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 아니할 것이라 그 대저의 받는 보응을 필경보리로다.“(시112:6-8)


휴대폰이 대중화되기 전에 한 세미나에서 강사가 “지금 이 시간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전화 왔습니다.’라는 연락을 받으면 좋은 소식과 흉한 소식 중에 어느 쪽이겠느냐?”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대부분의 참석자가 흉한 소식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흉보에 대한 두려움을 항상 지닌 채 살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속담에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했듯이 밤늦게 혹은 새벽에 전화가 오면 받기도 전에 가슴부터 철렁 내려앉지 않습니다. 가족이나 지인에 대한 사랑과 관심의 발로일 수 있지만 사실은 쓸데없이 막연한 불안감입니다. 휴대폰이 없었을 때는 전화가 오면 불안부터 앞섰지만, 이제는 언제든 전화할 수 있는 데도 없는 것 보니까 사고가 났다고 지레짐작부터 하지 않습니까?

일상적인 삶 속에서 막연한 불안감을 갖는다는 뜻은 인생에 그만큼 돌발적인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면 사실은 특별히 엄청난 일이 아니라 흔히 보는 일입니다. 교통사고 당했다, 빌려 준 돈이 떼였다, 중병에 걸렸다, 등등은 비일비재한 일입니다. 해가 서쪽에서 떴거나 산이 바다에 가라앉은 일이라면 모를까 말입니다.  

사고는 돌발적이라 예측이 불가능할 뿐이지 일어날 수 없거나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 아닙니다. 돌발적이 아니면 또 사고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너무나도 터무니없게도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나에게만은 그런 사고가 일어나선 안 되거나 나지 않기 바랍니다. 역으로 따지면 남들에겐 얼마든지 그런 일이 일어나도 되며 나와는 아무 상관없다는 못된 심보입니다.

물론 우리가 그런 나쁜 마음을 구체적으로 먹지 않습니다. 반면에 사고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또 나에게도 언제든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는 너무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인정합니다. 결국 사고가 언제 누구에게나 발생할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불안한 이유는 그 일이 내 계획에 들어있지 않아서 도저히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예측,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삶과 인생이 펼쳐지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고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영역 밖으로 넘어가는 일은 어떤 일이라도 싫은 것입니다. 나서부터 죽기까지 자기가 인생의 주인으로 남겠다는 뜻입니다. 바로 불신자의 생각입니다.
          
신자는 다릅니다. 아니 달라야 합니다. 인생에 스스로 예측과 통제할 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기에 하나님을 찾고 그분께 모두를 의탁하는 자입니다. 나아가 그런 일들의 배후에 오히려 하나님의 능하고 선하신 손길이 있다는 것을 믿는 자입니다. 비록 때로는 흉보가 날아올지라도 그분께서 결국 합력하여 선으로 이끄시기에 길보의 전조라는 것을 아는 자입니다.  

물론 신자 또한 체질이 연약한지라 흉보를 들으면 믿음과 상관없이 당장에는 염려가 스며듭니다. 그러나 당장 무릎을 꿇고 모든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고 그런 중에도 당신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기에 염려에 사로잡히지는 않아야 합니다.  

신자라고 흉보가 생기지 않는다는 법은 절대 없습니다. 믿음으로 그 발생을 없애거나 빈도를 줄일 수도 없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염려가 안 생긴다는 법은 더더욱 없습니다. 믿음은 흉보를 접했을 때에 그 일의 진행과 종료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렸기에 자신의 마음을 다시 한 번 그분에게 견고하게 묶어서 요동치 않게 하는 능력일 뿐입니다.

휴대폰이 있음에도 전화를 하지 않는 이유는 아무 사고가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일은 구태여 알려주지 않아도 되지만 나쁜 일은 반드시 그 관련자에 알려주어 대책을 세우도록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자꾸 소식이 없다는 자체만으로 불안해지는 이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일의 경위를 알아 그 미래까지 스스로 예측하고 통제하겠다는 뜻입니다.

신자가 되었다는 것은 모든 통제를 하나님에게 완전히 맡겼다는 뜻입니다. 바꿔 말해 미리 장래를 예측하려들 필요가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휴대폰까지 갖고 있으면서도 전화하지 않는 것을 보니까 뭔가 큰일이 있나보다 불안해하는 자는 불신자입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든, 유소식(有消息)이 흉보이든 불안해할 필요가 전혀 없고 하지 않아야 신자입니다.

그럼에도 신자가 된 후에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의탁하기는커녕 불신자 시절에 없던 염려가 오히려 더 늘어났으니 어떻게 된 것입니까? “잘 믿었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열심히 기도했는데도 왜 응답이 빨리 안 되는가? 하나님이 내 형편을 모르시는가? 아니면 내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가?” 그야말로 휴대폰이 있는데도(기도를 했는데도) 전화가(응답이) 없는 것을 보니까 뭔가 큰 일이 있는가보다 식입니다.

하나님은 신자의 모든 삶을 세밀히, 그것도 영원한 계획을 갖고 이끄십니다. 그렇다면 예측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범사에 특별히 흉사에는 더더욱 마음 턱 놓고 그분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신자마저 빨리 기도응답을 받으려 덤비는 것은 자기 통제 밖의 장래 일을 한시라도 빨리 자신의 영역 안으로 집어넣겠다는 심보입니다.

불신자는 세상이 요동할 때에 자신도 같이 요동하는 자입니다. 신자는 세상이 요동할 때에도 불안은 해도 요동치는 않는 자입니다. 비록 세상과 사람은 요동해도 하나님은 결코 요동치 아니하는 분임을 믿는 일에 요동치 않기 때문입니다.

3/27/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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