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비석(碑石) 명은?
“여호와여 내가 깊은 데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찐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케 하심이니이다.”(시130:1-4)
인간은 신자 불신자를 막론하고 어느 누구도 죄악에서 자유로울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도 평생을 두고 언제 어디서나 그렇습니다. 심지어 이웃을 위해 선한 일을 하면서도 시기나 교만의 죄를 지을 수 있으며 또 교회 나와서 예배 중에도 마음으로 살인과 간음의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결국 모든 인간이 항상 죄를 지닌 채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으로 절대적인 선입니다. 단 한 치의 죄도 찾아 볼 수 없는 완벽한 선입니다. 죄와는 곁에서 공존(共存)할 수조차 없습니다. 그분은 소멸하는 불로서 죄가 그 곁에 가면 즉시로 다 타서 없어져 버립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직접 보면 살아남을 자가 하나 없습니다. 당신 앞에 엎드리지 않고 감히 쳐다보아 그 권위가 손상당했기에 죽인다기 보다는 인간이 지닌 죄 때문에 곧바로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간혹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았다고 큰 소리 치는 사람을 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서서 그분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타 없어지는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합니다. 진정으로 하늘을 두려워하여 죄가 무엇인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조금이라도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다면 도저히 꺼낼 수 없는, 아니 생각조차 해선 안 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악에서 도무지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스스로는 그 죄를 도무지 용서받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선행과 공적으로 갚을 수는 결코 없습니다. 자기가 지은 죄 만큼의 선행을 과연 해 낼 수 있겠습니까? 평생을 두고 지은 죄와 선을 행한 것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해 선(善)쪽에 흑자를 볼 자신이 있는 자가 과연 있겠습니까?
인간이 죄를 처리할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으로부터의 용서를 받는 것뿐입니다. 그것도 언제 어디서나 평생을 두고 그렇게 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평생을 두고 용서를 받아야 하기에 오직 하나님의 무제한적이고, 무조건적이며, 일방적인 용서가 아니고는 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만약 자식이 평생을 두고 시도 때도 없이 사고만 일으킨다면 그에 대한 대책은 오직 두 가지 뿐입니다. 아예 자식 취급을 하지 않고 포기해 버리든지 아니면 끝까지 무조건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따름입니다.
묘지에 세우는 비석에는 망자(亡者)의 일생을 간략하게 표현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학력을 비롯해 이룬 업적이나 맡은 직책 등을 기록합니다. 어떤 이들은 경력 대신에 자신이 좋아하는 문구, 자신의 인생관, 또는 후손이 볼 때마다 생각나게 하는 유훈(遺訓) 등을 기록해 놓기도 합니다. 자신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 것인지라 비문을 보면 그 사람의 생전의 사람됨과 일생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뉴욕 시 근교의 한 묘지에 자기 이름 외에 오직 한 단어만 적어 놓은 비석이 있습니다. 그 단어는 “Forgiven”입니다. 한 마디로 자기는 “용서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일생을 결산한 후에 남는 것이라고는 그것뿐이라는 뜻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죄를 지니고 살 수밖에 없었지만, 또 바로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십자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드러난 하나님의 자비로 용서 받으며 평생을 살았다는 뜻입니다.
이 땅에서 어떤 인생을 살았던, 부귀영화에 어떤 차이가 나든 간에 궁극적으로 가는 길은 단 하나입니다. 죽음이라는 종착역은 동일합니다. 단 한 명의 예외라고는 없습니다. 다른 말로 평생을 지니고 다녔던 죄의 문제와 결별하는 순간입니다. 남은 것은 하나님의 판결뿐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판결은 당연히 구원과 심판의 두 가지뿐입니다. 말하자면 인간이 평생을 두고 온갖 수고와 노력을 바치며 살았던 궁극적인 목적과 결실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 오직 하나라는 것입니다. 비석에 어떤 화려한 업적과 심오한 문구로 자신의 평생을 대변하더라도 그 내용은 따지고 보면 "Forgiven"과 "Unforgiven" 뿐이라는 것입니다.
비명이 평생을 대변하는 것이라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가슴에 다는 명찰이나 다름없습니다. 그 명찰에 생전의 지성, 교양, 명예, 권력, 재물을 표시하여 가면 하나님이 유심히 보겠습니까? 아닙니다. 죄가 처리 되지 않고는 하나님과 공존할 수조차 없는데 다른 조건은 따질 필요조차 없지 않습니까? 당신께서 원하시고 정해 놓으신 방식으로 죄를 처리했는지 안 했는지 오직 하나만 따지십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은 방식이라고 해서 따르면 상주고 안 따르면 벌주겠다는 독선적인 의미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 길 외에는 인간이 죄를 도무지 처리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 길을 제발 따르라는 초대이자 또 그래야만 인간이 참 평강과 위로를 누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 길은 본문대로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시기에 어느 누구도 그분 앞에 바로 설 수 없고 사유하심이 오직 주께 있기에 그분 앞에 겸손히 영혼의 깊은 데서부터 경외하는 것”뿐입니다.
당신은 나중에 어떤 명찰을 달고 하나님 앞에 갈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권세 말고는 이 땅에서 호흡의 근거로 삼은 것이 없다고, 최소한 죄 사함의 길로는 결코 모색해 본적이 없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언제 어디서나 오직 그분의 십자가 은혜만 바라보고 살았다고 하나님 앞에 가서 아뢸 자신이 있습니까? 비석에 마지막으로 “Forgiven"이란 문구를 확실하게 남길 자신이 있습니까?
4/6/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