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70:1-3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려면

조회 수 450 추천 수 11 2011.05.26 05:2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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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려면


"하나님이여 속히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내 영혼을 찾는 자로 수치와 무안을 당케 하시며 나의 상함을 기뻐하는 자로 물러가 욕을 받게 하소서 아하, 아하 하는 자로 자기 수치를 인하여 물러가게 하소서."(시70:1-3)


교회에서 가르쳐지는 내용에 일관성이 없는 것 같아 신자들이 당혹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 교단과 교파가 달라 성경해석이 달라지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한 교회 내에서 한 목사님이 동일한 사안을 두고 어떤 때는 이렇게, 어떤 때는 저렇게 가르치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경우로 기도를 들 수 있는데. 예컨대, "자기 뜻과 계획을 고집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물으라." 또는 "하나님에게 기도 응답의 시기와 방식을 자기가 정해 강요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와 반대로 어떤 때는 "무엇이든 자기 소원을 간절히 끈질기게 아뢰라"고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대체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할지 모르게 됩니다. 하나님 뜻만 물으려면 기도할 내용이 거의 없습니다. 또 하나님의 뜻을 판단은커녕 도무지 짐작도 못합니다. 구체적 음성으로 명확히 들려주면 좋으련만 그런 일은 평생 가도 거의 생기지 않습니다. 반대로 무엇이든 기도해보려니까 하나님의 뜻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내 욕심만 부리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기도라는 경건한 신앙행위를 하면서도 마치 죄 짓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드는 것입니다.

다윗은 지금 속히 구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마지막 5절에는 "지체치 마소서"라고 까지 아뢰었으니 지금 당장 건져달라는 뜻입니다. 기도 응답의 시기를 정하다 못해 아예 숨넘어가도록 재촉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내 영혼을 찾고 나의 상함을 기뻐하는 대적들을 수치와 무안과 욕을 받고 물러가게 해달라고 합니다. 이젠 기도가 응답되는 방식을 정하다 못해, 다른 사람을 벌 받게 하라고 스스로 재판관과 심판주가 되어서 하나님을 부리려 듭니다.

지금껏 기도에 대해 상충되는 가르침은 일부 있었지만, 남을 정죄하고 심판을 구하는 기도를 하라는 것은 진짜 금시초문이지 않습니까? 다윗이 이스라엘 왕인데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서 자기 멋대로 기도해도 된다는 뜻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어쨌든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니 우리도 그처럼 마음 놓고 아무 것이나 아무렇게 기도해도 되는 것입니까?

이런 곤혹이 생기는 이유는 기도를 이해하는 관점과 강단에서의 가르침에 일부 오류, 정확히 말해 착오가 있기 때문입니다. 비유컨대 구구단도 모르는데 방정식부터 가르치는 셈입니다. 방정식을 가르친 내용은 분명 맞지만 구구단을 모르니 아무리 잘 가르쳐도 실제 적용은 안 되는 것입니다. 기도에도 이런 현상이 생기는데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신자의 관심과 교회들의 가르침은 기도를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지에만 쏠려 있습니다. 그보다 "기도를 잘하려 하기보다는, 기도자가 먼저 되어야 한다."는데 초점이 모아져야 합니다. 이 둘이 같은 뜻의 말이 아닙니다. 전자는 기도의 자세나 방법을 올바르게 갖추어서 응답을 잘 얻어내려는 것이 일차 목적입니다. 후자는 응답 여부는 이차적 과제이며 본인의 가치관 인생관부터 완전히 바뀐 상태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전자는 하나님께 힘든 일의 해결을 의탁하려는 것이며, 후자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기든 간에 항상 기도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전자도 아주 좋은 신앙이며 둘 사이의 차이가 미세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힘든 일이 생기면 당연히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좋은 신앙입니다. 그러나 문제 해결이 신앙의 일차 목표이므로 기도 응답에 관심이 모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 자기가 문제라고 판단한지라 그 해결의 시기와 방식마저 자기 계획대로 정해서 간구하게 마련입니다.      

기도자가 먼저 된다는 것은 하나님만이 완벽한 주권을 가지고 자신의 모든 것을 이끄신다는 믿음을 한시라도 놓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범사에서 자신의 절대적 무지와 무력함을 인정하기에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만나도 진심으로 겸손하게 기도부터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일이 생겨도 감사와 경배는 물론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물어서 그에 합당하도록 실제로 반응, 실천하는 것입니다. .

여기서 주지해야 할 사항은 기도자가 먼저 된다고 해서 기도의 내용, 방식, 태도가 아주 고상하고 거룩하게 되었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여전히 동일하게 무엇이든 자기 소원대로, 끈질기게, 응답을 갈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의 다윗처럼 너무 힘들어 지금 당장 해결해달라고, 또 솔직히 원수가 미우면 미운대로 벌 받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진짜로 위급하면 울부짖게 되며, 또 자꾸 되풀이해서 간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위급하지 않은데도 지금 당장 해결해달라거나, 조금만 있어도 충분한데 수십 배로 더 달라는 것이 잘못입니다. 신자가 하나님께 정말로 위급하고 꼭 필요한 양을 구하는데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가 물질을 구하지 말아야 하거나 아주 적게 구하라는 법은 결코 없습니다. 그분은 기도 중에 신자의 진심이 온전히 들어나기를 원하실 뿐입니다.  

모든 신자는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합했다는 것은 두 마음 사이에 아무런 상이점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각하는 대로 신자가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또 그래서 그분의 뜻대로 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그분의 마음을 어떻게 다 정확히 헤아리며 또 그 마음을 항상 그대로 맞출 수 있겠습니까? 물론 성경에 핵심적 진리는 다 나와 있지만 각자 특유의 상황과 개별적 사건에 맞추어 적용하기는 너무나 힘듭니다.

그럼 도무지 방법이 없는 것이니까? 아닙니다. 무엇보다 우리 마음부터 속속들이 그분께  내어 보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단 한 치의 숨김은 물론, 주저와 과장과 가식과 유보와 지연 없이 낱낱이 있는 그대로 아뢰어야 합니다. 마치 복주머니를 완전히 까뒤집듯이, 우리 심령 깊숙이 오래 찌든 때나 먼지 한 톨까지 완전히 다 털어내어야 합니다.

흔히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의 죄 값은 물론 두려움과 상처와 부끄러움까지 다 짊어지셨기에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간다는 고백은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또 기도 중에 지은 죄들을 회개했고 간구하는 내용도 소박하니까 마치 그렇게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단의 신앙 행위를 했다고 해서 하나님 바라는 대로 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언제 어디 어떤 상황과 사건에서도, 자신의 감정적 반응과 지성적 판단과 전혀 관계없이, 진짜로 내면의 온전한 실체를 발가벗길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힘든 일입니다.

말하자면 이웃은 물론 가장 가까운 가족과 배우자에 대한 의심, 시기, 질투, 원망, 분노, 저주까지 기도로 다 털어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갖는 그런 감상, 인식, 이해도 일점일획의 오차 없이 토설해내어야 합니다. 자기 인생에 대한 계획과 삶의 자질구레한 문제는 물론 자기라는 존재 그 전부를 완전히 다 비어서 내어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분과 나 사이에는 성령의 교통밖에는 아무 것도 없어야 합니다.

바꿔 말해 그분의 마음과 내 마음이 합하는데 훼방하거나 가로막는 그 어떤 것도 다 끄집어내어서 주님의 십자가 앞에 갖다 내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상 내 속에는 거의 전부가 방해 되는 것들뿐이기에 나의 모두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도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만나도 그래야 하는데,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또 이렇게 사는 것이 바로 기도자가 먼저 되는 것입니다.

문제의 해결만 기도해선 이런 비움은 결코 일어날 수 없습니다. 어서 빨리 곤경에서 벗어나고픈 생각뿐인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엄두를 갖겠습니까? 아니 자기 영혼의 상태는커녕 진정한 속내마저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거나 스스로 속아 넘어가지 않겠습니까? 말로는 인생의 비전이라고 그럴싸하게 포장할지 몰라도 오히려 자기 욕심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정말로 온전하고 신실한 믿음을 유지하려면 과연 내 마음이 그분의 마음과 합하여서 그대로 따르려는 온전한 헌신의 바탕에서 세워진 비전인지 항상 점검해봐야 합니다.

거기다 문제로 여겨서 해결을 구하는 내용들이 순전히 어리석고 무능한 자기 머리로 판단한 것들뿐이지 않습니까? 그 중에는 하나님이 일부러 우리 앞에 놓아둔 것들도 많을 것입니다. 또 반드시 그 어려움을 인내하고 통과해야만 주어질 놀랍고도 신비한 은혜가 있음에도 우리는 아예 당장 그 난관에서 벗어나게만 혹은 우회라도 할 수 있도록 떼를 쓰는 경우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굴러온 복을 스스로 차버리는 꼴입니다.

진짜로 숨이 넘어가도록 힘들면 주님께 지체 말고 어서 빨리 구해달라고 소리 질러야 합니다. 정말로 갑갑하면 눈물 콧물 흘리며 울부짖어야 합니다. 반드시 필요하고 해야 될 일이 있다면 아무런 부풀림이나 줄임 없이 그대로 이뤄달라고 아뢰어야 합니다. 물론 그 일이 이뤄질 때까지 끈질기게 기도해야 합니다.

비록 기도를 시작하는 시점에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고 순전히 내 욕심과 고집일 수 있어도, 심지어 죄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간 잘못된 간구일지라도, 자신이 생각하는바 소원하는바 대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에서 요체는 내 마음을 그분께 완전히 다 내어보여드리고 싶은지, 그래서 그분의 온전한 인도만 바라는지 여부입니다.

기도를 얼마나 잘, 오래, 고상하게 하느냐는 기도의 본질이 아닙니다. 엄밀히 말해 기도에서 꼭 배워야 할 부분도 아닙니다. 그런 지식들이 있으면 오히려 기도를 더 기도답지 못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기도의 가장 근본은 하나님을 24시간 내내 생각하며 단순하게 그냥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본질이 바로 그분과 일상대화체로 생각을 서로 주고받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2:11,12)

본문은 십자가 구원 진리는 오직 성령을 받은 사람만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우리에게 내주하심으로 구원 후에도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로 알 수 있게 해줍니다. 또 그러려면 우리부터 모든 생각을 정말 한 방울도 남지 않게 그분께 몽땅 쏟아놓아야 합니다. 그럼 성령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마음을 우리 가슴에 조금씩 담아주시고 또  깨닫게 해주십니다. 만약 우리 마음을 완전히 쏟아놓지 못한다 해도 그분이 대신 탄식해주십니다.  

여러분은 기도를 잘 하려 노력하십니까? 항상 기도하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서려 하십니까? 요컨대 내 문제만 빨리 해결하려 듭니까? 내 마음을 그분께 몽땅 쏟아 놓으려 하십니까?

5/6/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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