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참된 지혜
- 예수님에 관해 배우는 신자와 그분 안에 거하는 신자로 나뉜다. 주님의 일생에 관해 공부하는 신자와 주님의 거룩한 통치에 자기 일생을 맡기는 신자의 차이다. 전자는 교회 안에만 머물고 후자는 주님의 참사랑을 실제로 누리기에 이웃과 함께 나눌 수밖에 없다. (8/1/2019)
- 고난이 하나님이 신자를 덜 사랑한다는 증거가 결코 아니며 오히려 그 삶에 더 큰 사랑으로 강력하게 역사하신다. 힘겨워하는 신자를 일으켜서 거룩하게 변화시키고 천국소망을 키워주고 당신의 뜻을 분별해 순종케 하려면 반드시 그래야만 하지 않겠는가? (7/31/2019)
- 교회 생활에 성실하면 좋은 일이, 나태하면 나쁜 일이 더 많이 생긴다고 착각하는 신자가 많다. 신자 인생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달렸을 뿐 아니라 그분의 선하심도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 그분만 온전히 따라야 그 선하심을 찾아서 누릴 수 있다. (7/30/2019)
- 불신자는 고난이 부정적 결과만 남긴다고 믿는다. 신자는 어떤 고난에도 당신의 영광을 드러낼 하나님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확신한다. 결과는 그분께 맡기고 묵묵히 그분만 따르면 고난에 자기영혼이 더 거룩해지고 그분 은혜도 더 풍성히 누릴 수 있다. (7/29/2019)
- 지혜란 삶의 올바른 방안을 택하는 능력이다. 불신자는 세상과 사람 위에 자기를 높이는 방안을, 신자는 세상과 사람 아래 자기를 낮추는 방안을 고른다. 자신의 현실풍요와는 무관하게 이웃에게도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실현할 수 있어야 참 지혜라는 뜻이다. (7/26/2019)
- 영적 성장을 자기 신앙 실력의 질과 양이 자라는 것이라 오해한다. 오히려 그것들이 갈수록 정체 내지 퇴보하기에 하나님의 긍휼만 붙들 수밖에 없음을 절감하는 것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그분만 따라가는 눈물겨운 씨름이 믿음이다. (7/25/2019)
- 성령으로 거듭나면 구원의 확신을 오직 예수 십자가 보혈의 공로에서만 찾아서 붙잡게 된다. 자신의 도덕적 종교적 수준을 스스로 평가해 평균 수준 이상이라는 안도감으로 구원을 확인해선 안 된다. 그것은 여전히 선행구원에 묶여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7/24/2019)
- 예수 십자가 밖에선 성령으로 거듭날 수 없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던 죄인들을 대신해 죽으신 주님의 사랑 앞에 자기 영혼이 발가벗겨져야만 거짓된 자화상을 발견하여 깨트릴 수 있다. 그럼 또 자연히 그분을 주인으로 모시고 따르는 인생으로 바뀌게 된다. (7/23/2019)
-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아주 경건하고 신령해진 것이 아니다. 지금껏 갖고 있던 자화상이 과장 가식 위선으로 가득 찬 허상임을 깨닫고 완전히 지워서 없앤 것이다. 신자 된 첫째 증거가 다른 이를 외모로 차별하지 않고 자신은 철저히 낮추는 것이라는 뜻이다. (7/22/2019)
- 죄의 삯인 사망에서 건짐을 얻은 것이 예수 믿어 구원받았다는 뜻이다. 죽음은 영원히 소멸되고 하늘로부터 영원한 새 생명을 받았다. 이 땅의 어떤 문제와 고난도 심지어 죽은 것과 방불한 극심한 환난도 하나님의 새 생명에 단 한 치도 훼손시키지 못한다. (7/19/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