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처럼 사랑하려면
-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종교적 의무로 간주해선 안 된다. 신자 본인의 삶이 더 풍부해지는 최선의 길이다. 예수를 믿으라는 권면도 기독교라는 종교를 택하라는 뜻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반드시 누려야 할 인생의 참된 자유와 만족을 얻는 유일한 길이다. (11/8/2019)
- 성경은 예수님을 알아서 따르려는 순전한 마음으로 읽으면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으나 그런 마음 없이는 천재 어른이 읽어도 도무지 알지 못한다.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11/7/2019)
- 사람들이 악을 가름하는 기준도 셋이다. 세속적 불신자는 자신의 출세와 형통을 훼방하는 것, 의로운 불신자는 인간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해치는 것, 신자는 하나님과의 교제 동행을 방해하여서 그분의 일에 헌신할 수 없게 만드는 모든 것을 악이라고 여긴다. (11/6/2019)
- 직업을 가지는 목적은 셋이다. 세속적 불신자는 자신과 가족의 안녕 형통을 늘리려고, 의로운 불신자는 자기 삯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려고, 신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서다. 직업이 첫째는 노동, 둘째는 선행, 셋째는 예배가 된다는 뜻이다. (11/5/2019)
- 하나님이 신자 일생에 대한 온전한 계획을 갖고 앞장서 가신다. 다른 길로 갈 때에 징계로 바로 세워주는 것 외에는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다고 억지로 끌고 가지는 않으신다. 우리가 천천히 가거나 멈추면 그분의 사랑과 권능도 천천히 오거나 멈추실 뿐이다. (11/4/2019)
-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으로 알기 전까지는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없다. 그 사랑을 받아 누려본 자라면 예배를 안 드리고는 도무지 견딜 수 없다. 신자는 예배자여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주님 십자가만 생각하면 감사와 기쁨의 눈물이 절로 흐른다는 뜻이다. (11/1/2019)
- 예수님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 참 어렵긴 해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사랑의 세기를 최대한 높이려들면 반드시 실패한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대하든 시종일관 잘해주면 상대가 먼저 마음을 열기 마련이다. 요컨대 그 사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10/31/2019)
- 우리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려고 종교의식을 행할 필요는 없다. 매일을 하나님 손을 잡고 시작해서 끝내는 것이다. 아침에 그날 일정을 주님 뜻에 맞게 계획하고 낮에 자기 일을 통해 그 뜻을 실현하고 저녁에 그 결과를 주님께 그대로 보고하면 된다. (10/30/2019)
- 하나님이 미래를 전적으로 주관하지만 신자의 손발을 묶어 놓는 법은 없다. 스스로 미래를 계획해 수행하도록 허용해도 항상 당신의 완벽하신 섭리대로 그 길을 인도하신다. 신자더러 미래가 자기 계획대로만 되어야 한다는 고집은 제발 버리라는 뜻이다. (10/29/2019)
- 미래가 하나님께 달렸다고 신자가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손을 놓고 있어선 안 된다. 현재 위치에서 그분이 나에게 맡긴 일에 최선을 다해 헌신하면서 주변에 선한 영향을 끼쳐야 한다. 그분은 게으름을 종교적 헌신으로 위장하는 것을 아주 싫어하신다. (10/28/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