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의 몇몇 의문점들

조회 수 1180 추천 수 0 2015.12.19 10:13:15

창세기의 몇몇 의문점들

 

[질문]

 

성경통독에 도전하여 지금 3일째를 방금 마쳤습니다. 창세기를 읽고 있는데, 모르거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이 목사님께 질문 드립니다.

 

창 2:4 - 땅과 하늘을 만드신 날은 각각 다르지 않나요?, 궁창이 나눈 물은 무엇인가요?

창 2:7 - 4절에 땅과 하늘을 만드신 날이라 되어 있는데, 사람은 여섯째 날에 창조된 게 아닌가요?

창 2:19 - 동물들은 아담이 있기 전에 이미 있었지 않나요?

창 4:24 - 라멕이 가인처럼 사람을 죽였으나 자신을 죽이는 사람은 벌을 칠십 배를 받는다는 소리인가요?

창 6:4 -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네피림을 뜻하나요?

창 7:3 - 동물들이 노아에게 나아온다고 했지만, 여기서는 데려온다고 써져있는데요?

창 7:3 - 창 6:20에는 새도 한 쌍이였는데, 7:3에는 왜 일곱 쌍이라고 적혀있나요?

창 7:15 – 쉬운 성경에는 생명의 호흡이 있는 모든 생물들, 개역개정판에는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체로 나와 있는데, 물고기도 여기에 해당이 되나요? 홍수때 물고기는 어떻게 살아남았나요?, 전 세계적 홍수가 났는데 식물들은 왜 무사한가요?, 노아의 가족들이 아라랏 산에서부터 정착을 했는데, 호주나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 등 항해를 통해서만 갈 수 있던 지역에 어떻게 원주민들이 있었나요?

창 24:4 - 왜 이삭의 아내를 고향출신에서 골랐나요?

창 27:45 - 하루에 둘을 잃는다는 뜻은 무엇인가요?

창 38:10 - 오난이 죽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변]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전에 처음으로 성경통독 할 때에 누구나 갖게 되는 의문들입니다. 아무래도 문자적 의미에 묶일 수밖에 없고, 교리와 신학에 대한 기본적 지식이 얕고, 저작 당시의 상황을 잘 모르는 것 등이 주요 원인입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니까 아무런 의심과 비평 없이 문자적 의미 그대로 믿어야만 한다고 여깁니다.

 

잘 모르는 사실은 믿을 수 없고 또 조금이라도 의심나는 부분은 해소해야만 제대로 믿을 수 있습니다. 질문자께선 지금 아주 좋은 태도로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의심나는 점들은 이처럼 일일이 기록해 놓으시고 부담 없이 질문 주시기 바랍니다.

 

단 한 가지 유념할 사항은 창세기 같이 구체성과 명료성이 부족한 기록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바를 넘어서거나 상충되는 해석은 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질문들이 영적 진리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성경해석 상의 미숙에 기인한 것들인지라 간단히 답변 드리겠습니다.

 

*** 질문 1.

 

- 창 2:4 땅과 하늘을 만드신 날은 각각 다르지 않나요?, 궁창이 나눈 물은 무엇인가요?

- 창 2:7 - 4절에 땅과 하늘을 만드신 날이라 되어 있는데, 사람은 여섯째 날에 창조된 게 아닌가요?

- 창 2:19 - 동물들은 아담이 있기 전에 이미 있었지 않나요?

 

*** 답변 1.

 

세 질문은 같은 맥락이라 함께 묶었습니다. 먼저 아셔야 할 것은 창세기 1장과 2장이 시간적으로 이어지는 기록이 아닙니다. 창세기 1장은 창조전체가 체계적으로 질서 정연히 이뤄졌다는 것을 그 순서대로 기록한 것인 반면에 2장은 창조의 의미와 목적을 밝힌 것입니다. 특별히 인간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과 남녀 간의 결혼과 그 가정을 통해 세상을 다스리겠다는 계획을 밝혀놓은 것입니다.

 

따라서 피조물의 창조된 순서는 1장에 기록된 그대로 이해하면 됩니다. 사람은 여섯째 날에 창조되었고, 동물들도 아담이 있기 전에 이미 있었습니다. 2:19절도 동물을 짓고는 바로 아담에게 데려왔다는 사건보고나 과학논문식의 기록이 아닙니다. 에덴동산 즉 이 땅을 하나님 대신에 다스리는 청지기적 직분을 아담이 하나님의 뜻대로 잘 수행했다는 뜻입니다. 동물을 짖자말자 아담에게 데려온 것이 아니라 이미 지어놓은 동물을 데려왔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인간이 마지막에 창조되었다고 해서 창조적 진화론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창조는 하나님만의 절대적 주권입니다. 인간을 먼저 창조하면 다른 피조물들이 창조되는 모습을 인간이 볼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만의 독선적 행위를 한 것도, 당신의 영광을 보여주기 싫어서도 아닙니다. 사람이 살기에 모든 여건을 완벽하게 조성하신 후에 인간을 맨 마지막에 창조했던 것입니다. 당신의 신성과 영광은 그 만드신 만물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롬1:19,20) 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보지 않고도 믿게 하려는 뜻이었습니다.(히11:1-3)

 

땅과 하늘 즉,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와 대기권의 영역은 첫날에 빛과 함께 창조되었습니다.(창1:1-5) 창세기의 ‘하늘’을 영적인 영역, 천국, 하나님의 불가시적 통치 같은 개념으로 확장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창세기1장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유대인들의 우주관을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늘을 1) 대기권, 2) 태양, 달, 별들이 있는 우주, 3)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보좌 즉, 삼층전(三層天)으로 나눠서 생각했습니다. ‘궁창’이라는 단어에는 그 셋 각각을, 또는 각각을 구분하는 중간의 판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또 창조 시에 세 가지 분리가 일어나는데 1) 빛과 어둠(1:4), 2) 궁창 위의 물과 아래의 물(1:7), 3) 바다와 땅(1:9)의 나눔입니다.

 

궁창 위와 아래의 물이라고 표현할 때(1;7)의 ‘궁창’은 분리하는 판을 뜻합니다. “궁창 위의 물”은 창조 당시 온실 내부처럼 따뜻한 수증기를 충족히 머금은 원시적 대기권 상태를 말합니다. 궁창 아래의 물은 땅에 흐르는 여러 형태의 물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고 칭하시니라”(1:8)에선 삼층천 중의 맨 아래 층 대기권 자체를 뜻합니다.

 

 

*** 질문 2

 

창 4:24 - 라멕이 가인처럼 사람을 죽였으나 자신을 죽이는 사람은 벌을 칠십 배를 받는다는 소리인가요?

 

*** 답변 2

 

친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의 벌이 칠 배이지만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라고 합니다. 성경은 반드시 성경 안에서 해석해야 하는 원칙이 바로 이 구절에 해당됩니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4:15)는 여호와가 하신 말씀입니다. 반면에 본문은 여호와가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대신에 가인에게 하신 여호와의 그 말씀에 빗대어서 라멕 스스로 제 멋대로 큰소리친 것입니다.

 

라멕은 지금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위하여 소년을 죽였도다”라고 아주 떳떳하게 말합니다. 아무 죄 없고 본인에게 잘못도 범하지 않은 친 동생을 하나님에 대한 열심과 질투로 살인한 가인과 자기는 다르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창상과 상함을 입혔기에 그것을 응징하려고 죽였다는 것입니다. 죄의 질로 따져서 가인이 훨씬 중하다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가인을 상하게 하는 자에게 벌을 7배를 내린다면 자기를 해하는 자는 77배의 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너무나 방자 무도한 발언입니다. 우선 하나님이 직접 하신 말씀도 아닌데도 인간이 제 멋대로 교만과 불신에 가득차서 말한 것입니다. 가인은 그래도 하나님의 보호를 간절히 구했습니다.(4:13,14) 뒤늦게나마 그런대로 회개했다는 뜻입니다. 최소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인정한 것입니다.

 

반면에 라멕은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무관한 것을 넘어서 전면 거역했습니다. 우선 복수(複數)의 아내를 취해 일부다처제의 악습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에게 둘이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라고 명했는데 당연히 한 사람의 배우자만 두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다.(2:24) 또 라멕은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4:19)라고 하는데 힘으로 빼앗았다는 뜻입니다. 남의 아내를 강제로 탈취했거나 여자의 동의 없이 아내로 삼았다는 뜻입니다.

 

나아가 상대가 자기를 부상만 입혀도 죽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부여하시고 그 주인 되는 존엄한 생명을 인간 주제에 제 멋대로 소멸시켰습니다. 선악간의 잘잘못은 오직 하나님이 판단하여 심판하십니다. 그런데 자기 자의로, 정확하게는 순전히 분노와 저주로 휩싸인 복수심으로 하나님만의 절대적 주권에 속한 심판을 인간이 행했습니다.

 

이 말은 라멕을 상하게 하는 자를 하나님이 77배나 벌한다는 뜻이 전혀 아닙니다. 자기가 그렇게 무자비하게 복수할 것이고 또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가인의 경우에 비하면 자기는 그래도 당당하다는 뜻입니다. 동료 인간은 물론 하나님까지 자기 발아래 두는 천하의 패륜적인 죄인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말입니다.

 

 

*** 질문 3과 답변

 

창 6:4 -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네피림을 뜻하나요? 댓글에서 밝혔듯이 성경문답 사이트에서 이미 자세히 다뤘습니다. “#172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은 누구입니까?”의 글을 참조하십시오.

 

 

*** 질문 4.

 

창 7:3 - 동물들이 노아에게 나아온다고 했지만, 여기서는 데려온다고 써져 있는데요?

창 7:3 - 창 6:20에는 새도 한 쌍이였는데, 7:3에는 왜 일곱 쌍이라고 적혀있나요?

창 7:15 – 쉬운 성경에는 생명의 호흡이 있는 모든 생물들, 개역개정판에는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체로 나와 있는데, 물고기도 여기에 해당이 되나요? 홍수 때 물고기는 어떻게 살아남았나요?, 전 세계적 홍수가 났는데 식물들은 왜 무사한가요?, 노아의 가족들이 아라랏 산에서부터 정착을 했는데, 호주나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 등 항해를 통해서만 갈 수 있던 지역에 어떻게 원주민들이 있었나요?

 

*** 답변 4.

 

동물이 ‘나아온다’와 동물을 ‘데려온다’ 사이에 아무런 모순도 상충도 없습니다. 동물 입장에선 나아오는 것이며, 인간 쪽에선 데려오는 것입니다. 노아와 그 가족이 모든 동물을 다 찾아서 데려올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것까지 역사하여서 동물이 방주로 나아오게 했고 나아오는 동물들을 노아 일행은 순서대로 방주로 이끌어 들여 각각의 선실(?)에 체계적으로 집어넣어야 했습니다.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여 들여”(6:19)에서 주어는 노아이고 목적어는 동물입니다.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6:20)에선 주어는 동물이지만 수동태 형식인 셈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서 일단 무조건 심각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까진 없습니다. 가장 먼저 문장의 정확한 뜻만 파악해도 상당한 의문이 해소될 수 있습니다.

 

7:3에 새 일곱 쌍을 들인 이유는 바로 앞 구절이 밝혀 놓았습니다.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이라고 말합니다. 정결한 짐승과 새는 홍수 기간과 후에 노아 일행의 식량이 되며 또 하나님께 제사드릴 제물 용도입니다.(8:20 참조) 이처럼 앞뒤 문맥을 잘 이어서 살펴야 합니다. 성경을 통독하는 첫째 이유입니다. 각장과 절은 후대에 붙인 것입니다. 원본은 그런 구분 없이 죽 이어진 책이므로 성경독자도 절대로 한 절씩 떼어서 해석하려 들지 말고 전체 줄거리부터 파악하고 중심주제 맞추어서 그 의미를 분별해야 합니다.

 

7:15의 물고기의 경우는 물에서 그대로 생존했다고 봐야 합니다. 노아 방주 안에 거대한 수조(水槽)를 마련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없었습니다. 또 홍수가 나도 물고기는 조금만 깊이 내려가거나 바위 밑에 숨으면 안전합니다. 그러나 “그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7:11)라고 말하듯이 바다 밑에서도 화산과 지진 같은 대격변이 있었습니다. 분명 물고기도 많이 죽었겠지만 그들도 생명을 보존하여 후손을 이어가야 하므로 하나님의 보존하시는 또 다른 섭리가 있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노아 홍수 심판의 원인과 그 심판 대상의 범위를 6:6,7에서 밝혀 놓았습니다. 땅에 기는 육축과 공중의 새와 인간이 그 대상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대신에 땅을 거룩하게 다스려야 하는 소명을 거역하고 오히려 땅마저 죄악으로 더럽혔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함께 땅도 깨끗케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심판 방식으로 홍수를 택했으므로 물고기는 어차피 직접 심판에서 제외되는데다 아직은 인간이 바다를 다스릴 문명수준이 안 되었다는 실제적 이유도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물고기는 심판의 대상이 아니었고 그 큰 홍수에 대부분 생존했겠지만 바다에도 있었던 지각 격변으로 엄청난 희생도 따랐을 것입니다.

 

홍수의 범위를 즉, 정확한 강수량과 바다나 물의 깊이 등을 어느 누구도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충분히 드러날 만한 가공할 심판이었다는 것입니다. 또 홍수와 동시에 엄청난 지각변동이 수반되었기에 아라랏 산보다 높은 히말라야 산맥 같은 고산준령은 그 때에 생겼을 수 있습니다.

 

홍수가 끝나고 비둘기가 감람나무 잎사귀를 물고 왔다고 해서 식물이 무사했던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일부 나무는 물속에서 오래 동안 생존 가능할 수 있습니다. 또 이때에 솟아 오른 땅에 나무가 있었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경이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찌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9:3)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식물이 다 상했으므로 방주에 일곱 쌍씩 넣은 동물을 식용으로 써도 된다는 것입니다. 식물은 땅이 완전히 마르고 때를 맞춰 씨를 뿌리고 추수 경작할 때까지 오랜 기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 동안 굶을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원래 식물을 먹게 되어 있었으나(1:29) 노아 홍수 후에 육식이 허용된 것입니다

 

세계 도처에서 대홍수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노아 홍수 전후에 고대원시문명에 비하면 엄청난 피해를 입히는 홍수들이 곳곳에 빈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노아 홍수는 없었거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다고 여깁니다. 세계 각지에 수많은 종족이 생존해 내려오니까 더 의심합니다. 그러나 노아 후손들이 이때에 배를 만드는 기술을 전수받아 각지로 흩어졌을 수 있습니다. 지각변동으로 일부 땅이 솟아난 곳에 살았던 자들의 후손일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전지구적인 홍수와 지각대격변으로 전인류적인 심판은 분명히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성경해석은 그 기록한 범위를 벗어나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 질문 5.

 

창 24:4 - 왜 이삭의 아내를 고향출신에서 골랐나요?

 

*** 답변 5.

 

고대에는 가문의 혈통 보존과 전통을 계승하려고 인척끼리 결혼했습니다.(창11:29 참조) 특별히 아브라함의 경우는 우상숭배의 옛 습관을 과감히 버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온 뒤로는 자기 가문 모두가 여호와 신앙과 그분의 언약관계(창12:1-3) 안에 들기를 소원했습니다.  (바벨론을 떠나 가나안에 이르기 전에 하란에 거하는 동안 또 가나안에 입경한 후에 여호와 신앙을 인척들 간에 가르쳤을 것입니다. 이삭이 났을 때는 아브라함 가문만이 여호와를 아는 유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삭이 고향 출신에서 아내를 고른 것은 이방인과 육적 영적 혼합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였습니다.) 후반 부분 (  )은 제 첫 답변인데 조금 잘못된 해석이었기에 아래에 인용한 한 회원님께서 제시하신 더 정확한 의견을 참조하십시오. 

 

"심판의 대상이 될 가나안 백성과 심판에 사용될 아브라함 후손이 혼인을 통하여 섞이는 것은 가나안을 심판할 때 일가친척에게 칼을 휘두르게 되는 결과를 초래해서 옳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까이 일가친척을 두고 있는 가나안 출신 며느리들이 주변을 둘러싼 친정의 신앙과 풍습을 버리고 아브라함 가문의 신앙과 풍습에 녹아들기는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갈대아 우르와 하란의 우상숭배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화와 결별하기 위해서라도 떠나야했던 아브라함처럼 본토 친척으로부터 멀리 떠난 며느리가 필요했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 질문 6.

 

창 27:45 - 하루에 둘을 잃는다는 뜻은 무엇인가요?

 

*** 답변 6.

 

형 에서가 동생 야곱에게 속은 것을 알고 극도의 분노에 휩싸여 야곱을 죽일 참이었습니다. 야곱이 피하지 않으면 우선 형에게 죽습니다. 또 그럼 에서는 고의적인 살인자가 되어서 재판(창9:6)으로나 피의 보수자(고엘제도-민35:12,19,21)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수 있습니다. 하루 만에 아들 둘을 다 잃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답변에 대해서도 아래 댓글처럼 동일한 회원님이 아주 좋은 의견을 제시해 주어서 참고하시라고 첨부합니다.) 

 

회원님의 의견

심판이나 피의 보복은 희생자의 일가친척이 주도하여 집행됩니다. 에서가 야곱을 죽였다고 늙어 눈이 보이지 않는 이삭이 나서기는 어렵고 이삭을 제쳐두고 이스마엘이 나설거라 생각하기도 어렵습니다. 에서는 능숙한 사냥꾼이요 외부활동을 많이 했고 헷 족속과 결혼을 통한 교류를 하고 있었지요. 그래서 심판이나 피의 보복으로 보기는 어렵고, 동생을 죽이고 뻔뻔하게 부모 앞에 나설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대한 저의 답변

답변 6에 대해서도 영적으로 해석한 형제님의 의견을 참조하도록 첨부하겠습니다. 저는 현실적으로 간단하게 답변한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시 아브라함의 인척이 없었기에 피의 보수자가 없을 수 있으나 아무리 가나안 땅이라도 주변 사람들이 형제를 죽인 살인자를 그냥 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 질문 7.

 

창 38:10 - 오난이 죽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 답변 7.

 

당시는 형이 죽으면 시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야 하고 그에서 난 장자는 형의 기업을 물러 받게 됩니다. 나중에 율법에도 규정된 하나님의 뜻입니다.(신25:5-10) 신앙과 혈통의 순수성을 보존하고 기업이 타 종족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하려는 한시적인 법으로 예수 십자가로 하나님의 계시가 완성됨으로써 더 이상 효력은 없어졌습니다.

 

오난으로선 당연히 형수와 사이에 난 장자로 형님의 기업을 잇게 해주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땅에 정액을 설정함으로써 하나님이 규정하신 신성한 규정을 위반했습니다. 훨씬 후대에 모세가 제정한 율법을 오난이 몰랐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모세 율법 이전에 생육 번성하도록 부부가 연합하여 한 몸이 되라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최초로 주신 최고의 계명부터 위반한 것입니다. 결혼제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형수를 단순히 성적 노리개 감으로 전락시킨 것입니다. 고인이 된 형님을 존경은커녕 전혀 안중에도 두지 않고 오히려 그 명예를 실추시킨 너무나 부도덕한 행위였습니다.

 

생육번성하려면 당연히 땅에 정액을 버려선 안 됩니다. 엄격히 말해 고대 유대인에게는 피임이 허락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수음(手淫)의 영어 onanism 이라는 단어도 바로 이 ‘오난’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율법은 몸 밖으로 정액을 설정하는 것까지 부정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레15:16-18, 신23:10) (레위기 규정은 유출병 환자들에게만 적용되는지 일반 성관계까지 확대해석해야 하는지 해석의 논란이 있습니다만...) 어쨌든 오난은 형수와 정식 결혼을 했는데도 남편으로서 의무는 물론,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기업을 물러주어야 책임을 아예 도외시했던 것입니다.

 

11/19/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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