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창조과학 강의를 듣는 중에, 하나님이 창조한 지구를 쓸어버릴 정도의 엄청난 격변과 격랑의 물속에서 사람 손으로 만든 노아의 방주가 전혀 부서지지 않고 무사한 것이 이해가 잘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셨다는 단순한 설명만으로는 조금 미흡한 것 같습니다. 또 바벨탑 사건 후 흩어졌다는데 한 조상에서 태어난 후손들이 창조과학이 주장하는 바가 옳다면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백인, 흑인, 황인으로 뚜렷이 나눠졌을까요?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너무 당연한 사안들이겠지만 불신자들도 동일한 의문 아니 반발하지 않을까요?

 

[답변]

 

교회에선 쉽게 제기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질문하신 의도대로 두 가지 측면에서 답변 드리겠습니다. 믿음이 있는 신자들을 위해서 성경 말씀에 입각한 것과 나름대로 불신자들이 수긍할만한 것입니다.

 

우선 성경은 노아의 방주는 사람 손으로 만들었지만 하나에서 열까지 하나님의 지시한 식양(式樣)대로 만들었다고 증언합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잣나무로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으로 할찌니라.”(창6:13-16 발췌) 배를 만드는 재질과 내부구조 설계도와 외부도장까지 하나님이 세밀하게 지시한 대로 만들었습니다. 인간 노아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이 식양대로 1609년에서야 처음으로 재현해봤더니 놀랍게도 대형선박이 파도를 이기며 대양을 항해하는데 최적의 비율(proposition)임이 확인되었습니다. 조선소들이 선박을 건조하는 선급을 정하는데 최고권위를 자랑하며 그 기준대로 따르는 영국의 “Loyds Register of Shipping”이 그 사실을 증명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가 기록된 연도가 대략 기원전 1500년경이므로 무려 삼천오백년 전에,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인 노아 홍수 때에 초현대식 규격으로 지어졌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님이 지으셨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인간과 동물이 배 안에 다 들어 가고난 후에도 “출입문을 여호와께서 닫아 넣으셨다”(창7:16)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만큼 배 규모가 엄청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배를 지으라고 명하셨고 구체적인 설계도도 주셨는데 그렇게 지은 배라면 어떤 격랑도 이겨낼 수 있음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창조과학회가 창조에 대한 이론적 과학적 뒷받침을 추구하는 것은 아주 선한 일이며 누군가는 반드시 행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 세미나에 참석하면 하나님과 그분의 창조에 대해 더 견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창조가 너무나 광대한데도 완벽하게 정밀하고 오묘함을 깨닫고는 창조주에 대한 경외심이 이전보다 훨씬 더 커집니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성경의 문자적 기록과 과학이론을 일치시키려다 보니 조금 무리한 해석을 하는 우를 범한다는 것입니다.

 

본 질문은 성경의 기록만 정확히 읽으면 가질 수 없는 의문입니다. 신앙상식만으로도 하나님이 노아 가족을 보호하려면 어떻게든 못하실 리는 없는 것입니다. 간단한 예로 태풍의 눈에 들어가면 가장 고요하고 안전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얼마든지 그렇게라도 즉, 과학적으로도 무리가 없는 방안으로 보호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노아 홍수 때에 엄청난 대격변이 있은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정도 규모였는지 또 그 물이 전 지구를 완전히 다 덮을 정도였는지는 어느 누구도 증명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보다는 성경이 노아의 배를 어떻게 말하는지 주목해야 합니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오늘날의 배의 형태와 같았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구태여 방주(方舟, ark-창6:14,18, 7:1 etc.) 즉, 네모난 상자라고 표현합니다. 분명 네모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나중에 누이 미리암이 모세를 갈대상자에 넣어 나일 강물에 띄어 보낼 때에도 방주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갈 상자(ark)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출2:3)

 

갓난 남자 아이는 다 죽여야 함에도 미리암은 동생 모세를 살리기 위해 오직 하나님의 인도만 바라며 악어나 바위나 격류가 있을 수 있는 나일 강에 네모 상자를 띄웠습니다. “그 누이가 어떻게 되는 것을 알려고 멀리 섰더니”(출2:4) 미리암이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가 전부이고 그 다음에는 오직 하나님의 처분만 기다려야 했습니다.

 

노아의 방주나 모세를 담았던 상자의 공통점의 핵심은 네모라는 형식보다 자체적으로 운행 능력(엔진, 노, 돛, 키 같은)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 배를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만 바라는 것입니다. 노아도 홍수 기간에 배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것 말입니다. 신자의 인생이 바로 방주와 같다는 뜻입니다. 노아의 배는 다시 강조하지만 하나님이 만드셨고 하나님이 물에 띄우셨고 하나님이 가장 안전하게 보호했습니다. 마친 신자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말입니다.

 

노아 홍수 이후에 바벨탑 사건까지의 그 짧은 기간 안에 백인, 황인, 흑인이 어떻게 생길 수 있었는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의문입니다. 이는 성경해석학적으로 올바른 접근과 해석을 해야 합니다.

 

우선 성경은 명시적으로 백인 황인 흑인이 어떻게 나뉘어졌는지 언급한 곳이 단 한군데도 없습니다. 후대에 인류학과 인종학이 발달되고 난 후에 종족의 이름과 살았던 지역으로 유추해보디 대체적으로 그렇더라는 뜻일 뿐입니다. 성경에 아기 예수님께 선물을 바친 동방박사가 세 명이라는 언급이 전혀 없는데 선물의 숫자(황금, 몰약, 유향)가 셋이니까 아예 세 명으로 못 박고 지금까지도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또 하나는 성경 기록이 반드시 시대의 순서대로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당장에 바벨탑 사건 이전에 창10:5, 20, 31에 이미 “각종 방언과 지방과 나라로 나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11:1에 “온 땅의 구음이 하나요 언어가 하나”라고 말합니다. 완전히 순서가 뒤바뀌었습니다. 성경을 기록된 그대로, 문자적으로만 접근 해석해선 안 된다는 대표적인 실례(實例)입니다.

 

나아가 성경에 시간을 구분한 구체적인 기록이라도, 대표적으로 창세기의 족보, 그 시기를 그대로만 믿어선 안 됩니다. 기록된 시기가 틀렸다는 뜻이 아니라 많은 생략이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아비와 아들로 표현되어 있어도 사실은 할아버지와, 그것도 몇 대 위의, 손자 사이일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문제는 성경의 다른 부분에선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다가 창세기만 그 년대대로 합산하거나 기록된 그대로만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럼 일관된 해석이 아니기에 그 자체로 이미 신뢰성이 상실됩니다. 인간이 백인 황인 흑인으로 구분된 것은 아주 장구한 세월 동안에 기후와 환경에 적응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것 외에는 현재로선 정답이 없습니다. 성경도 그 이상은, 사실은 그렇게 구체적으로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문자적 기록, 특별히 그 연대에 노아 홍수와 바벨탑 사건을 조화시켜보려다 불신자는 물론 신자들마저 무리한 해석인 것 같이 여겨졌으므로 이런 의문들을 자연스레 갖게 됩니다. 창조과학회가 성경 진술의 과학적 뒷받침을 추구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성경해석학적으로 모순 상충되지 않게 해석 설명 교육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젊은 지구, 그 중에도 인간의 연대가 생각보다 짧다는 것은 성경의 앞뒤 문맥에서 분명히 유추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과학적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여러 정황상 진화론보다 훨씬 젊다고만 말해야자 문자 그대로, 특별히 숫자의 단순 합산으로 절대적 진리라고 주장해선 곤란합니다.

 

살펴본 대로 성경의 영적 진리와 과학적 이론은 반드시 조화 일치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상충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일대일 구체적으로 합치하지 않는다는 뜻일 뿐입니다. 따라서 좀 더 넓고 열린 시각과 관점을 갖고 접근 해석해야 합니다. 무조건 하나님 말씀이니 오류가 없다고 해선 기독교 내부에서도 설득력을 갖지 못합니다. 창조과학회의 이론과 주장에 대해서 최근에 기독교 안에서마저 합리적 비평이 나오기 시작한 까닭입니다.

 

3/18/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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