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1:1-5) 요나를 통해 보는 신앙과 우울증의 관계

(부제: 성경 해석과 적용의 원칙)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욘1:1-5)

 

요나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도망간 상기 본문을 두고 각각 다르게 해석하는 글들을 접했습니다. 간략히 다시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원문은 자유게시판의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whyjesusonly.com/openboardok/37367)

 

첫째 의견(이후 A라고 칭함)은 요나는 일시적인 신앙 방황에 따른 우울증 때문에 도주했는데 그래서 죽으려는 마음도 들었고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아가 그는 감정의 기복이 아주 심해서 하나님께 자꾸 반항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신앙의 회복이 이어지자 자연스럽게 사명을 감당했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족속들을 경시하고 자기들을 학대한 원수인 니느웨를 철저히 미워하는 유대인의 심정을 요나가 대변한다고 해석했습니다.(B라고 칭함) 고래 배속에서 살아나고도 건성으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고 끝까지 니느웨의 멸망할 것을 기대하며 지켜보았던 것이라고 즉, 우울증과는 무관하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또 오늘날 배타적인 기독교인에게 귀담아 들어야 할 경고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A를 제시한 분께서 당연히 그런 진리는 알지만 다양한 해석은 가능하다고 변증했습니다. 한국 교회 신자들이 너무 주입식 수동적 교육만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양하게 해석하지 못하는 결점이 있어서 본인은 가능한 다양하게 해석해보려 노력한다고도 했습니다.

 

성경 해석의 원리

 

우선적으로 분명히 해두고 싶은 사항은 신자들이 나아가 목회자들이 한 본문을 두고 아무리 해석을 다양하게 해도 정작 본문이 말하는 바는 그런 다양함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로 당신이 계시하는 진리에 혼란을 느끼게 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그 본질상 단순 명백하여서 누구나 수긍 합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반면에 묵상과 적용은, 여전히 성경적 원리에 맞추도록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지만, 개인의 상황과 믿음에 따라 다양해질 수 있습니다. 

 

성경 해석이 지향하는 목표는 저자가 저작 당시의 상황에서 당시의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도를 그대로 찾아내는 것입니다. 한 저자가 수백 가지 의미를 생각하면서 글을 쓰지는 않기에 저자가 전하려는 의미는 간단히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해석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최소한 두 가지는 필수적으로 행해야 합니다.

 

첫째 당시의 지리, 역사, 문화, 관습, 제도, 종교, 등등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이에 대해선 아무래도 전문적인 신학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둘째는 이미 갖고 있던 신학적 지식이나 교리는 완전히 제거한 채 백지 상태에서 본문 자체가 말하는 바를 정확히 분별해야 합니다. 이는 일반신자에게도 크게 어렵지 않은데 본문을 자세히 세밀히 따져가며 앞뒤 문맥과 연결해서 계속 읽으면 됩니다. 이 두 요소를 적용해서 요나서를 그 말하는바 그대로 간단히 해석해보겠습니다.

 

니느웨는 이스라엘을 잔인하게 학대 살육한 유대인의 원수였습니다. 유대인 요나로선 그들은 하나님의 큰 심판을 받아 마땅한 족속이었습니다. 그런데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라고 하니까 아무리 하나님의 계시라도 당신의 공의에 크게 어긋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 명령에 순종할 마음이 도무지 들지 않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지중해와 그 주변이 세상의 전부였기에 스페인 남단의 항구 다시스는 세상의 끝이라고 여겼습니다. 거기다 니느웨와는 정반대의 곳에 위치했습니다. 요나는 그곳으로 도망 가버리면 하나님도 그 명령을 포기하리라고 지레 짐작한 것입니다.

 

선창 밑바닥에서 잠을 잔 것은 아마도 폭풍우에 대한 지식도 없었을 것이고 그 동안에 하나님과 영적 씨름을 하느라 지쳐서 떨어졌다고 보는 편이 더 개연성 있는 해석일 것입니다. 거기다 우울증보다는 가능한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도망가려는 생각이 은연 중에 작용했을 수 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간섭으로 되살아났습니다. 사실은 고래도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것이지만, 하나님의 권능에서 벗어날 길은 결코 없다고 깨닫고 여전히 내키지 않았지만 억지로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이 역사하여 엄청나고도 신속한 회개가 일어났으며 요나는 끝까지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지 않는다는 불평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이 한 말씀으로 당신께서 그렇게 하신 뜻을 밝혔습니다. 이것이 바로 요나서가 강조하려는 핵심내용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욘4:10,11)

 

여호와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일 뿐 아니라 이방 족속 그것도 당신의 백성들의 원수까지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 요나서 주제입니다. 말하자면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배워온 단순하고도 명백한 내용 그대로입니다. 본문에서 이것 외의 해석은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런 차원에선 상기 본문에 대해선 B의 해석이 옳습니다. A도 그래서 그 진리는 알지만 자신에게는 우울증이라는 측면에서 묵상해봤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요나서가 말하는 바라고 제시한 것 중에 한두 가지 오류가 있습니다.

 

“요나는 감정의 기복이 아주 심한 사람입니다. 말만 하면 하나님에게 죽는 게 났다고 반항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는데 감정의 기복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니느웨에게 재앙을 내리지 않는 것이(3:10) 너무 싫어서 화가 났던 것입니다.(4:1) 성경은 반드시 죽 연결해서 읽고 문맥 안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또 “요나도 신앙의 회복이 이어지자 자연스럽게 사명을 감당하는 모습으로 회복된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회복되지 않았고 여전히 하나님에게 극도로 화가 나있는 상태였습니다.(4:1) 하나님에게서 도무지 도망갈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회개의 메시지를 전한 것입니다. 그가 자살할 생각이 들었다는 것도 조금 무리한 해석입니다.

 

죄와 죄의 오염

 

본 토론과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요나도 일시적 우울증에 시달렸을 것이라는 A의 의견에 대해 몇 가지 첨언하고자 합니다. 흔히들 교회에서 우울증 같은 정신적 문제를 다루면 아주 비성경적이고 심지어 이단이라고까지 탓하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의도는 이해가 되지만 너무 과도한 반응으로 그래선 안 됩니다.

 

이해가 된다는 뜻은 최근 교회에서마저 세상의 영적 조류에 휩쓸려 윤리적으로 확실한 죄를 정신질환의 탓이라고 얼버무리는 잘못된 경향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몰고 가면 절대적인 죄는 하나도 남지 않게 되는데 실제로 포스트모던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합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 대적하며 자신만 주인으로 삼아 높이려는 끈질긴 성향 습성이 죄의 본질입니다. 하나님과 분리되었기에 자신과 이웃과도 분리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로 인해서 온갖 윤리적 죄를 짓게 됩니다. 그렇게 생기는 죄들과 그로 인한 본인과 주변에 끼치는 부작용 폐해 등은 죄의 오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롬1:28-31)

 

성경은 모든 윤리적인 죄들은 하나님을 멀리한 탓에 생긴다고 분명히 선언합니다. 무정하고 무자비한 것도 포함시켰는데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정신질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울증이 죄의 본질은 아니지만 죄로 오염된 즉,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지 못함으로써 발생하는 부정적인 현상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요나도 나름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자부심이 대단했을 것인데 그런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도망가고 있는 자신이 너무 비참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삶의 아무 의욕이 없고 다만 죽기를 바랄 뿐 이었을 것입니다.”라고 A가 분석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울증이 요나가 범한 죄의 본질은 아니고 성경이 말하려는 뜻도 아닙니다. 그러나 죄의 오염이라는 측면에서 즉, 요나가 일시적이든 하나님을 거역한 때문에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도 있는 가능성은 분명히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적용할 묵상으로선 해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수가 성의 한 많은 여인을 구원하려고 의도적으로 찾아갔습니다. 곧바로 그녀를 정죄하거나 십자가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처한 상황에 맞추어서 과거의 상처를 씻어내는 일부터 하셨습니다. 그녀가 예수님에 대해서 마음을 열고 솔직히 자기 과거의 잘못도 고백하자 비로소 당신을 믿어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마시라고 전도했습니다. 이를테면 예수님도 죄의 오염부터 깨끗케 한 후에 즉, 우울증을 먼저 다루어 해결한 후에 죄의 본질을 다루면서 구원을 베푼 것입니다.

 

정신 의학이나 상담학이 신학을 절대 대체할 수 없으며 죄 자체를 해결하여 구원을 베풀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정신질환도 살인 음란 거짓 폭행 도둑 등 같이 죄로 오염된 결과이므로 교회에서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복음이 제대로 전해지기 위해서라도 먼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도움을 베풀고 끝까지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미국에선 정신질환이 이미 거의 첫째가는 사망원인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인류가 의학적 심리적 영적으로 해결해야만 할 중대 과제입니다.

 

이런 식의 묵상에서 절대적으로 주의할 사항이 있습니다. 반드시 성경 말씀 본문의 뜻은 물론이고 우울증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아는 지식을 바탕으로 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자기 생각의 흐름대로 묵상하면 모든 이의 생각이 믿은 후에도 불완전할 뿐 아니라 때로 개인적인 욕심과 죄의 본성에 좌우되어서 엉뚱하고도 잘못된 묵상에 빠질 우려가 많습니다.

 

한 본문에서 수백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도 동일한 해석을 두고 표현방식만 다른 것은 괜찮지만 뜻 자체가 그렇게 다양하게 나오는 것은 잘못입니다. 아니면 성경해석법에서 극도로 경계해야하는 알레고리칼한 해석의 결과일 것입니다. 문맥에서의 본문의 뜻은 뒷전이고 단어 하나하나에 일일이 영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본문과는 다른 해석이 되어버리는 성경해석학이 발달하기 전에 성행했던 오류가 많은 해석법입니다.

 

12/18/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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