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장과 22장이 서로 틀립니다.

조회 수 179 추천 수 0 2020.03.01 15:53:02

사도행전 9장과 22장이 서로 틀립니다.

 

[질문]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있더라”(행9:7)에선 “소리는 듣고 빛은 못 보았다”고 기록된 반면에,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행22:9)에선 “빛은 보고 소리는 못 들었다”고 말합니다.

 

이런 차이에 대해서 혼자서 추측해봤습니다. 9장의 경우 저자 누가가 그 사건에 대해 적은 것이고, 22장의 경우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변호하면서 그 사건에 대해 말하는 장면입니다. 9장의 경우는 저자인 누가가 여러 증언들을 수집하고 파악해서 추려서 적은 것일 테고, 22장의 경우는 바울이 자신이 그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대로 말했을 것인데 바울이 주변사람들에 대해서는 자기 자신이 아니기 때문에 잘못 파악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잘못 기억하고 있던 것이 아닐까도 의심해보았지만 여러 이유로 그런 것은 아닐 것 같네요.) 다메섹에서 본인이 겪었던 상황(빛과 소리)에 대해서는 당연히 알 테지만 같은 시각에 주변인들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는 바울이 눈도 멀고 자신이 겪은 상황 때문에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나중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그게 잘못된 정보였던 것이 아닌가 추측해봤습니다. 아니면 어떤 이들은 빛은 보고 소리만 듣고, 어떤 이들은 소리만 듣고 빛은 못 본게 아닐까도 추측해보았지만 그렇다면 왜 그대로 기록하지 않았을까라는 반론이 생기네요. 어느 쪽 추측이 옳을까요?

 

[답변]

 

성경의 오류에 대한 이해

 

아주 예리하게 성경의 오류 아닌 오류 하나를 지적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합리적으로 그 차이를 규명해보려고 최선을 다하셨는데 성경해석자로써의 올바른 자세를 갖추었습니다. 이와 같이 단어의 순서가 바뀌거나 연대 족보 수량 등에서 서로 차이가 있는 기록들이 성경에는 가끔 나옵니다. 성경이 글자나 숫자 하나하나까지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그 첫째 원인은 성경의 최초 원본은 현재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손으로 전문을 베껴 쓴 필사본들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구텐베르그가 서기 1440년 인쇄술을 발명하기 전까지는 모든 고대의 책들이 다 그랬고 복음서의 서기관들이 그런 일을 맡았습니다. 성경을 옮겨 적는 필사자들이 피로하거나 부주의로 그 내용에는 지장이 없는 사소한 차이들이 생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뒤 문맥에서의 뜻에 비추어 보거나, 같은 성경의 다른 부분 내지 다른 성경책들과 비교해보거나, 여러 필사본들을 대조해 보면 무엇이 잘못인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만약 필사자들이 자기 개인의 의견을 첨부했어도 여러 수도원에서 함께 필사 작업이 이뤄졌으므로 다른 필사본과 비교해 보면 따로 구별해 낼 수 있습니다. 그 전에 앞뒤 문맥의 의미의 흐름과 비교해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필사자들 모두가 믿음이 신실하고 성경을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임을 확신하기에 첨가할 엄두도 내지 않고 필사에 오류 착오 실수가 나오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했습니다. 한마디로 오늘날 우리가 소지하여 읽고 있는 성경은 원전과 일치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변증-믿지 않는 형제에게] 사이트의 #22 “성경은 과연 믿을만한 책인가?”에서 더 상세하게 설명했으니 참조하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한 책에서 동일 사안을 두고 서로 다른 설명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차이가 있는 대로 살려둔 것은 모든 필사본들 즉, 사실상의 원본들이 그렇게 기록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원본을 저작한 누가가 자기 실수를 미처 몰랐을 수 있으며 최초 혹은 후대의 필사자들이 발견했다 쳐도 의미의 흐름에 별다른 모순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누가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기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어쨌든 일행은 소리와 빛 둘 중에 하나씩만 인지했다는 것인데 그들의 반응은 사실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빛을 보고 소리도 들었고 그에 합당한 반응을 했다는 설명으로 충분합니다.

 

행간의 의미를 추적하려면

 

성경이 서로 다르지만 어쨌든 바울 일행이 둘 중에 하나만 인지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바울의 회심 사건에 대한 증인이 충분히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사건에 대한 확실한 증인이 없다면 바울 혼자서 지어낸 이야기로 치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질문하신 대로 과연 어느 쪽이 사실과 일치하는지 추측해볼 차례입니다.

 

성경은 다메섹 도상에서의 예수님과 바울의 개인적인 만남을 네 번(행9:1-19, 22:4-16, 26:9-19, 갈1:11-24)에 걸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 사도행전 9장만 간접적인 보고의 형식이고 나머지 셋은 바울의 직접적인 고백입니다. 갈라디아서 기록은 아주 간략하게 간접적으로 언급하므로 본 논의에서 제외하겠습니다.

 

질문자님께서도 아주 합리적으로 추측하셨습니다. 누가가 9장에선 “여러 증언들을 수집하고 파악해서 추려서 적은 것일 테고”라고 했는데 이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반면에 바울이 22장에선 “자신이 그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대로 말했을 것인데 바울이 주변사람들에 대해서는 자기 자신이 아니기 때문에 잘못 파악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 반대로 생각합니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는 행간의 의미를 추측할 때에 적용해야 할 대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성경의 인물들이 우리와 성정이 동일한 사람이지 특별히 신령하고 거룩한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 안의 불신자와 신자들은 오늘날의 불신자와 신자의 믿음의 양태를 그대로 지닙니다. 모든 세대의 인간의 성정이 동일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일상적 삶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대는 물질적 기술적인 풍요와 편리만 늘었다 뿐이지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 일이나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이해와 인식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기록을 오늘날의 상황에 대입하거나, 우리가 그들의 입장이 되어서 이성적으로 추론 판단해보면 개연성 있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구태여 심오한 기독교 교리와 신학의 잣대를 갖다 댈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본인의 체험이 더 정확하다.

 

본인이 체험한 사건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 본인이 가장 잘 기억하는 법입니다. 주변 사람은 아무래도 제삼자이기에 당사자가 주관적으로 정확하게 인식 체험한 후에야 기왕에 일어난 일과 상황을 뒤늦게 객관적으로 파악할 뿐입니다.

 

지금 바울로선 생전 처음 겪는 신비한 일인데다 그토록 미워했던 예수님과의 대면이기에 하나에서 열까지 생생하게 기억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나아가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울의 직접적인 고백은 재판정에서 이뤄진 것이므로 거짓 증언을 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행들도 바울처럼 열렬한 유대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이 만약 빛은 보지 못하고 소리만 들었다면 예수님이 바울에게 맡기신 일에 관해서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럼 그 자리에서 일행이 당장에 바울을 해하려 들거나, 더 이상 다메섹으로 가지 못하게 하거나, 체포해서 유대로 돌아갈 것입니다. 일행과 바울의 관계가 아주 곤란해질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와 비슷한 언급이 없고 정반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울에게만 따로 맡길 일이 있었고 나아가 이런 상황까지 미리 배려해서 바울에게만 들리도록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일행이 그 내용을 모르니까 일시적으로 실명이 된 그를 부축해서 다메섹까지 데려갈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회심하고 예수 믿는 형제들을 만나서 시력을 회복한 후에는 그들의 보호를 받았을 것입니다. 일행은 바울의 수하이므로 상급자의 회심에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 없어서 기이하다고 여기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바울의 개종에 대해서 공회에 보고했을 것입니다.

 

반면에 빛은 모두가 분명하게 보았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빛이 무대 조명처럼 바울에게 강력히 내려 쪼였기에 일시적으로 실명했고 조금 떨어져서 본 일행에게는 아무런 해가 없었습니다. 또 빛은 멀리서도 볼 수 있으나 소리는 조금 떨어지면 들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경의 의문은 성경이 답을 한다.

 

바울도 자기 입으로 그런 사실을 분명히 말했습니다. 사도행전 22장과만 비교하지 말고 26장의 기록도 살펴보십시오. 그래서 같은 성경 안의 다른 구절이나, 다른 책의 동일사건 등을 항상 대조해서 봐야 한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성경의 의문은 거의 모두가 성경 안에 답이 있습니다.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비추는지라.”(행26:13) 분명히 빛이 동행들을 둘러 비추었다고 바울은 진술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재판을 받는 입장에서 거짓 증언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행26:15-18) 바울이 예수님께 들은 바를 전하는데 일행이 함께 들었다면 바로 문제가 생겼을 법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진짜 해석의 결정적인 열쇠가 막상 사도행전 9:7 본문 안에 있습니다. “아무도 그 빛을 보지 못하여”라고 하지 않은데다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했다”고 한 문장으로 연결된 표현입니다. 그럼 보지 못하여 앞에 “예수님의 모습은”이 생략된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하지 않고 ‘소리’라고 표현했습니다. 소리는 들었으나 무슨 내용인지는 몰랐다는 뜻입니다.

 

결국 일행들은 바울에게 집중적으로 내려 비취는 밝은 빛을 조금 떨어져서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나는 어떤 소리는 들었으나 그 구체적인 내용은 인지 못했고 또 예수님의 모습도 보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댓글로 올려주신 한 회원님의 아래의 해석이 아주 정확합니다. 하늘에서 나는 소리가 웅장한 굉음이었을지, 단순히 바울과 조금 떨어져 있어서 예수님 말씀의 구체적인 내용만 몰랐을지는 불명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이는 의미에 아무런 차이가 없어서 구태여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두 구절이 모순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울 주변 사람들이 '웅장한 굉음만 듣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못 알아 들었으며', 빛은 보았으되 '아무도 보지 못하고' 즉 예수님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인지하지 못 했다면 두 진술 다 참이 됩니다. 더불어 바울은 예수님의 말과 부활하신 모습을 모두 보고들은 것이죠.”

 

결론적으로 행9장과 22장의 내용은 전혀 상충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9장은 누가 내지 필사자들이 잘못 기록한 것이 아니며, 22장의 바울이 고백한 내용도 틀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또 그래서 모든 후대 필사본 성경들이 그대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기에 제가 추론해본 것은 성경의 행간의 의미를 개연성 있게 추적하는 한 가지 예로서 참조하시면 될 것입니다.

 

1/29/2020

 

 

성경은 과연 믿을만한 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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