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8:7-13이 구약이 폐지되었다는 뜻인가요?
[질문]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히8:7-13)
새 언약(신약)을 주시고 처음 것(구약)은 낡아지게 되어져 없어져가는 것이라고 합니다.(13절) 첫 언약이 흠이 없는 것이었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다고 합니다.(7절) 성경이 대놓고 구약의 폐지를 주장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결국 구약은 이미 지나간 것으로 신약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성경이 구약폐지를 주장할 리는 없기에 혼란스럽습니다.
[답변]
올바른 성경해석법
성경을 해석함에는, 제가 이 사이트에서 입이 닳도록 강조한 대로, 본문부터 몇 번이고 깊이 묵상하여 그 뜻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그 뜻을 앞뒤 문맥의 의미의 흐름과 비교하고 그 책의 주제와도 연결시켜 봐야 합니다. 나아가 저자의 저작 동기와 저작할 당시의 상황도 살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미 신학자들이 성경 66권 본문 전부를 그렇게 해석한 바탕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은 기독교교리와도 대조해봐야 합니다.
거꾸로 말하면 교리와 어긋나는 해석은 일단 틀린 것입니다. 질문자께서 성경이 구약폐지를 주장할 리 없다고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 해석이 교리와 위반됨을 눈치 챈 것이고 그럼 그런 해석은 틀린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왜 또 어떻게 틀렸는지 확인할 차례인데 처음부터 다시 본문을 찬찬히 따져볼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새롭게 맺을 언약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신약성경만으로 충분하려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언약이 각각 무엇인지부터 정확히 알아야합니다. 상기 본문에서 새 언약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 아니 찾아내어 보십시오. 만약에 너무 길어서 어렵게 여겨지면 10-12절에서 찾아보십시오.
몇 번이고 잘 따져가며 읽어보면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10절의 끝)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구절은 그 언약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방안에 관한 것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라는 말로 시작했으니 예수님이나 구약의 하나님이 이미 말씀하신 것을 인용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용한 말씀들은 모든 성경이 표가 나게끔 한 칸 들어가는 방식으로 진술한 후에 (대부분의 성경책은) 관주로 표시해 놓아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상기 10-12절의 경우는 예레미야 31:33-34라고 작은 글씨로 적혀있습니다. 따로 그 예언을 찾아볼 필요 없이 상기 본문과 똑같습니다.
그럼 두 번째 질문으로 구약성경에서 인용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당연히 같은 분일 뿐 아니라 예레미야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간절한 마음으로 이미 예언했던 것이 이제 신약시대에 실현되었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이 폐기되었다면 히브리서에 이런 인용을 해선 안 되며 그럼 신약시대 이후의 성경의 독자는 이런 전후사정을 정확히 알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이유 하나만으로 구약성경은 필수입니다. 신약성경은 반드시 구약에 근거해서 해석되어야 하고 그와 동시에 구약도 신약에 의해 더 정확히 이해되어지는 것입니다.
신약과 구약의 차이
이제 세 번째 질문입니다. 구약 시대에만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었고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백성이었으나, 신약시대에는 아닙니까? 그럴 리는 절대로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본문의 뜻만 간략히 따져도 하나님의 언약 자체는 절대로 변화되거나 취소되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 되고 우리가 그분의 백성이 된다는 언약의 본질은 창세 때부터 마지막 날까지 영원토록 변화 수정 왜곡 포기 되지 않습니다. 선악과 금령에서부터 계시되었고 원시복음(창3;15)도 바로 그 내용입니다. 그 언약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낼 때에 그와 그의 후손 이스라엘에게 다시 재확인되었고 모세(출19:3-6)와 다윗(삼하7:8-17)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장되어 나갔습니다.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출3:15) 아담과 이브를 창조할 때부터 하나님은 모두의 하나님이었고 모두는 그분의 백성이었습니다. 인류와 맺은 당신의 언약의 내용은 영원토록 동일하나 인간 이성과 믿음의 발달 단계에 맞추어서 조금씩 더 명확하게 드러났을 뿐입니다
그럼 언약 내용은 동일한데 왜 상기본문은, 아니 렘31:33,34 은 구태여 새 언약이라고 표현했습니까? 말씀드린 대로 언약을 실현하는 방안이 달라졌는데 그 변하지 않는 언약 내용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역사하면 신자의 심령에 하나님의 사랑이 확고히 각인 되어서 깨달아 알게 되고 전혀 의심치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언약은 때가 차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창3:15, 갈4:4) 예수님이 골고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한 제물로 바쳐짐으로써 명백하게 드러나고 온전히 실현되었습니다. 당연히 상기 본문에서 “그날 후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모두의 죄 값을 감당하시고 완전한 제물로 바쳐진 날 후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날 후에는 구태여 “여호와를 알라고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가 되었음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그들의 불의를 긍휼이 여기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예언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대속 사역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 다시는 정죄함이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롬8:1-2)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 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 판에 쓴 것이라.”(고후3:3) 바울은 그래서 자기가 전한 십자가 복음은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여 신자들의 마음 판에 새겨졌다고 말한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저작 동기와 주제
상기 문단의 뜻을 더 정확히 하려면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히브리서 저자의 저작 동기와 당시의 상황과 주제 등과 비교해 봐야 합니다. 이전에 제가 쓴 글에서 간략하게 그 부분만 아래에 인용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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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을 정확히 해석하려면 히브리서도 어떤 수신자를 대상으로 어떤 상황에서 기록한 것인 지부터 살펴야 합니다. 책의 제목 그대로 유대인 신자들이 대상입니다. 예수 십자가 복음을 유대인들이 먼저 받아들였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오래 고대하던 메시아임을 인정할 수 있었고 또 유일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기왕에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급속히 성장함에 자기들 기득권이 줄 것을 염려한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유대인 신자들을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핍박은 우상을 믿는 이방제국 로마보다도 여호와를 같이 믿고 따르는 유대교로부터 먼저 있었습니다.(행8:1) 거기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목격한 1세대 증인들도 시일이 지나면서 거의 죽었기에 그 후 세대들에게는 복음이 아무래도 생생한 진리로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유대교에선 아무 공로 없이 주는 십자가 구원은 무효하며 유대인이라면 조상대대로 지켜온 모세율법을 반드시 준행해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유대인 신자들이 믿음을 지키려면 본토 친척 아비 집과 완전히 인연을 끊어야 했습니다. 또 오직 성령의 충만함에 힘입어야만 그런 핍박 멸시를 견딜 수 있는데다 실은 온전하게 거듭나지 않는 신자들도 많았습니다. 결국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신자들이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의 신분적 우월성은 물론, 십자가의 영단번의 대속제사를 구약의 제사들과 비교해서 예수를 믿는 것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단호하고도 객관적으로 변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구약의 믿음의 선진들도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장차 올 약속인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얻었음도 함께 설파합니다.(히11, 12장, 11:26) (아래 링크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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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저자는 그래서 상기본문 바로 앞 7장까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적 우월성을 천사, 모세, 멜기세덱 등과 비교해서 변증했습니다. 성육신하신 예수님만이 흠결이 전혀 없는 대제사장으로써 인간의 죄를 대속할 수 있는 완전한 제물이 됨을 확증한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에 이어지는 9장과 10장은 구약의 동물 대속제사의 불완전성을 설명한 후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영단번(永單番, once for all)의 제사가 되어서 구원이 영원히 완성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중간에 위치하는 8장은 그리스도가 새 언약의 중보자 되심을 변증하는 내용입니다.
구약에서 효력이 다한 것은?
따라서 상기본문에 구약성경이 소멸되고 신약성경으로 충분하다는 뜻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는 말씀은 살펴본 대로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사랑한다는 언약 자체가 아니라 그 진리가 계시되어지고 실현되는 방식만 달라진 것입니다. 한마디로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는 방안만 새 것으로 대체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9,10장이 동물제사법은 일시적이고 불완전하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고, 너무나 당연한 문맥상 흐름으로 상기 본문에서 문제가 되는 8:13의 뜻까지 정확하게 풀어주고 있습니다.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히9:9,10)
성경이 스스로 성경의 일부가 취소되었다고, 정확히 말해 계시의 효력의 시한(時限)이 차서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었다고 공식적으로 말하는 유일한 구절입니다. 이 장막은 9:1-8절까지 설명한 대로 성막에서 동물 제물로 드려지는 구약의 속죄제사법을 말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은 음식과 정결에 관한 구약의 규정들을 말합니다.
개혁할 때까지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죽음으로 영원한 제사가 실현될 때까지를 뜻합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구약 중에서, 그것도 율법 중에 제사법과 정결례만 효력이 다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그래서 상기 9절의 “이 장막”(동물 제사)이 “온전한 장막”으로 바뀌었다고 바로 이어지는 구절이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9:11,12)
구약시대는 영원하고 완전한 예수 십자가 구원으로 가는 준비과정입니다. 구약성경의 내용도 복음을 상징 예표 예언하는 기록입니다. 구약성경의 창조와 타락과 예수님 십자가 복음에 대한 예언과 계시가 없으면 신약성경은 아무 의미가 없고 자칫 도덕 종교 교과서로 전락됩니다. 죄인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이 되지 못합니다.
상기 본문에 대해 이런 의문이 생기는 것은 비록 여러 구절을 함께 묶어 해석하려 노력했으나 여전히 일부 구절의 문자적 의미에 묶이는 큰 오류를 범한 것입니다. 살펴본 대로 옛 언약이 없어졌다고 여겨지는 8:13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바로 이어서 9장이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9장만 천천히 8:13과 비교해서 읽어봐도 이런 의문은 생길 수 없고 제가 상기처럼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질문자님도 이미 그런 뜻이 아니라고 짐작은 했지만 왜 아닌지 궁금해 하셨기에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성경 공부하듯이 답변 드린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의문은 성경 안에서 거의 다, 그것도 앞뒤 문맥에서 심지어 본문 안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모든 성경의 원전은 장과 절의 구분이 없고 죽이어서 저작되었습니다. 당연히 성경 독자도 그렇게 읽어야 합니다. 도덕적 종교적 계명이나 진리를 하나씩 모아서 편집한 책이라면 한절씩 따로 읽고 적용해도 될 것입니다. 구약의 잠언(엄밀히 따지면 그렇지도 않지만)을 빼고는 한 저자가 특정 주제를 갖고서 일관된 논리의 흐름에 따라 저작한 것입니다.
따라서 절대로 한 구절이나 한 문장만 따로 떼어서 읽고 해석하면 안 됩니다. 특별히 신약성경의 서신서들은 길이도 비교적 짧은데다 특정한 주제를 논문 식으로 변증해나가기 때문에 반드시 책 한 권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해서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3/30/2020
(히10:26,27)이미 얻은 구원이 취소될 수 있는가?(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