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성도인데 어떻게 믿어야 하나요?

조회 수 45 추천 수 0 2020.07.25 10:21:20

가나안 성도인데 어떻게 믿어야 하나요?

 

[질문]

 

저는 지난 40여 년 동안 이사가 잦아서 본의 아니게 여러 교파의 교회들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가르침들이 각기 너무 달라 곤혹스러워 최근에 교회를 떠나 속칭 가나안 성도가 되었습니다. 물론 교회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주님의 뜻임을 잘 알기에 언젠가는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파를 초월해 그나마 동의할 수 있는 본질적인 것보다 교회들의 비본질적인 신앙모습에서 그 차이가 더 심했습니다. 교회가 믿는바가 예정론이냐 자유의지냐에 따라 설교방향이 달라지고, 교회에 모이는 것과 전도 중에 교회마다 강조하는 초점도 다릅니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담임목사님의 신앙색깔로 그 방향이 정해졌는데 어느 정도 당연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제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이런 비본질적인 것들이 진리인 것처럼 선포되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성령님의 이끌림을 받아 하나님이 우리교회에 계시해주신 것처럼 확정적으로 선포되고 (실제로는 담임목사의 신앙노선인데도) 교회의 모든 프로그램이 거기에 맞춰 시행됩니다. 조금 다른 신앙관을 가지고 있으면 교회생활이 힘들어지는 일도 많이 겪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선포되는 주장이 맞다면 다른 주장들은 다 틀린 것일 텐데 도무지 무엇이 맞는지 굉장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예컨대 어떤 목사님은 하나님의 음성을 매순간 귀로 듣고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야한다고 주장하고(그분 자신이 그렇게 살고 있다고 주장함) 또 다른 목사님은 그런 일은 없고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에 다 나왔다고 주장하십니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믿어야 하나요? 하나님은 왜 좀 더 명확하게 알려주시지 않나요? "로렌스 형제"처럼 교리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 교제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나은 것인가요? 솔직히 저는 그렇게 해보려고 교회를 떠났습니다. 이제야 하나님을 만나려고 교회를 떠났다는 말이 우습지만 부족한 저에겐 이길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여러 신앙관을 포용하는 자유로운 교회를 찾으면 되는 것일까요?

 

[답변]

 

많은 교인들이 고민 갈등하는 주제입니다. 교회마다 기독교신앙의 비본질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본질적인 차원에서마저 각기 다른 설교와 가르침과 사역 프로그램 등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일반신자들로선 과연 어떤 노선을 따라야 할지, 출석교회의 담임목사의 가르침에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지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질문자께서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진지하고도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합니다. 늦게나마 하나님을 만나 답을 얻어 보겠다고 결심했으니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아직도 예수님이 아닌 담임목사의 말에만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어리석은 신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무엇을 믿고 따라야 할지 정확히 모르면서 신자라고 말하는 그들의 용감한 무지(無知)가 놀라울 따름입니다. 교회활동에 능한 종교인(church member)들은 흘러넘치는데 진정으로 거듭난 참 신자(true believer)는 보기 드뭅니다.

 

현재 코로나사태로 집에서 자율적으로 온라인 예배를 드리다보니 아예 예배에 참석하지 않거나 다른 교회 예배에 참석하는 분들마저 늘었습니다. 이래선 올바른 신앙성숙은커녕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을지조차 걱정입니다. 거기다 해묵은 목회자와 교회와 성도들의 이런저런 불법과 비리까지 겹쳐서 갈수록 가나안 성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 또한 말씀을 가르쳐야 하는 입장에서 책임을 공유하면서 너무나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정답이다.

 

그간의 여러 잘못들을 성결하게 고치는 제2의 종교개혁을 이뤄서 초대교회의 순전한 모습으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마지막(?)으로 자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 같습니다. 목회자들부터 간절히 회개하고 기도하면서 지난 목회를 되돌아보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온전하신 뜻을 교회 안팎으로 온전히 구현해야 할 것입니다.

 

제2의 종교개혁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상 첫 개혁 때처럼 성경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바 도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완전하며 영원한 진리의 말씀에만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제기하신 질문을 따져 봐도 그렇습니다. 목회자들마다 가르치고 실현하는 내용이 서로 다르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답은 간단하고 하나뿐입니다. 신자들이 성경을 파고들어 연구하여서 그 중에 어떤 것이 정말로 하나님의 진리인지 스스로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전부터 만인제사장직을 넘어서 만인신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학위를 얻어서 강의나 목회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읽고 또 읽어서 성경이 말하는바 진리를 온전히 터득하여서 자기 것이 되게 하고 그대로 삶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집에서 혼자 신앙생활을 하려면 결국은 인터넷에 많이 의존해야 할 수 밖에 없는데 인터넷은 이단까지 설쳐대니 지금껏 교회들에서 혼란스러운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더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저에게 이런 상의를 하게 된 과정도 인터넷으로 서취한 결과일 텐데 그럼 가장 먼저 제가 지금 드리는 답변부터 시작해 다른 글들도 과연 성경과 일치하는지 판단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앞으로도 계속 관계를 이어갈 수 있고 또 그러려면 당연히 성경의 핵심 진리들을 체계적으로 알고 계셔야 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인터넷보다도 성경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비본질적인 부분의 차이들에 대해서 적응하기가 더 힘들다고 하셨는데 그에 대한 해결책도 결국은 성경을 아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물론 성경에는 원리만 계시되어있지 구체적인 방법론은 거의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더더욱 원리를 정확히 알아야만 방법론에 대한 분별과 판단이 가능합니다. 명확한 기준 없이 방법들만 갖고 비교 판단하려면 그 분별이 더 힘들지 않습니까? 이래저래 성경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리들이 즉, 하나님이 인간에게 계시하고자 하는 뜻이 중구난방일 리는 절대로 없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마다 또는 목사에 따라서 설교와 사역 방향이 다른 까닭은 두 가지 뿐입니다. 첫째 성경의 해석을 서로 다르게 한 것이며, 둘째 성경의 본질적인 교리의 해석은 일치하지만 그 적용을 융통성 있게 했느냐 엄격하게 했느냐의 차입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결국은 신자가 성경을 모르고는 가나안 성도로 남든지 앞으로 또 다른 교회와 목사를 만나더라도 계속 같은 문제로 갈등할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 성경 진리는 바르게 해석했는데 그 적용에서 차이가 나는 경우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고급한 수준의 이성, 지성, 양심 등을 이미 부여해주셨습니다. 그것들을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자기 삶에 적용하는 동안 많은 체험도 했습니다. 그 결과로 형성된 건전한 상식과 윤리와 철학과 일반적 진리 등을 동원하여서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과 상충되지 않게 분별 판단 결정 시행할 수 있습니다. 설령 판단에 일부 오류가 있다 해도 순전한 동기에서 행한 것이라면 하나님이 전혀 문제 삼지 않으시고 더 나아가 당신께서 합력하여 선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교단마다 교리가 다른 점에 대해선 아래에 링크한 이전에 제가 쓴 글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일부러 비본질적인 부분에서 자유스러운 교회를 찾아 나설 필요는 없습니다. 본인부터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종교개혁가들 가운데도 성경에 명시적으로 행하라는 것만 시행하고 나머지는 전혀 시행해선 안 된다는 입장과 성경이 명시적으로 금하지 않으면 무엇이든 시행해도 된다는 입장 둘로 나뉘었습니다. 이렇게 제한하는 것 자체도 사실은 참 자유라고 할 수 없습니다. 광대하신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더 깊이 알면 알수록 신앙생활은 물론 삶의 모든 측면에서 그분의 은혜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

 

만인 신학자가 되려면?

 

최근에 이와 비슷한 질문과 상담을 자주 받는데 그럴 때마다 스스로 성경을 연구하라는 답변을 드립니다. 특별히 “조직신학과 성경해석법과 신구약개론” 셋은 반드시 공부해보라고 강력히 권면합니다. 필요하다면 성경전체주석을 구해서 참조하는 것도 좋으며 최소한 주석이 딸린 스터디 성경은 갖고 있어야 합니다. 시실은 이 세 과목은 교회에서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그런 책들을, 특별히 조직신학 책을 구하려면 교단마다 신학노선이 다른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의문이 생기겠지만 저로선 ‘개혁주의’를 따르라고 강력히 추천합니다.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치부해도 좋습니다만, 제가 지금껏 아무리 성경을 연구해도 개혁주의가 성경을 정확히 해석한다고 확신하는데 종교개혁 시에 이미 성경을 깊이 연구한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만약 이와 다른 의견을 가지셨다 해도 이왕에 이렇게 된바 개혁주의도 참조 비교해보겠다는 자세로 한 번 공부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지금은 이해하기 쉬운 관련 책과 자료들의 조달이 크게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도 가능할 것입니다.

 

“로렌스 형제처럼 교리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 교제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은 지금껏 말씀드린 대로 성경을 혼자서라도 깊이 연구하겠다는 뜻이라면 괜찮습니다. 잘은 몰라도 로렌스 형제도 그런 뜻으로 말씀했거나 이미 성경을 잘 알고 있는 바탕에서 말했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성경과 별도로 기도나 명상 같은 체험으로 하나님을 만나려 시도해선 더 혼란스럽고 자칫 이단 교리마저 수용하게 됩니다. 성경이 계시한 바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은 것이 교리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본질적인 교리를 습득해야만 성경의 비본절인 부분도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믿는 자들의 공동체 생활에 동참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이왕에 가나안 성도를 시작했으니 성경이 말하는 본질적인 것을 정확히 알고서 삶에 어떻게 적용할지 정하는 것이 더 급합니다. 주목할 사항은 기존의 교회 형식만이 신자가 속하고 섬겨야 할 신앙공동체는 아닙니다. 만약 가장이라면 이번 결심에 가족도 어쩔 수 없이(?) 따랐을 텐데 그러니까 더더욱 집에서 가족끼리 예배를 드려도 하나의 훌륭한 교회입니다.

 

초대교회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박해를 피해서 오래 동안 그런 형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으나 오히려 그럴 때에 진정한 부흥이 있었습니다. 점차 취지를 같이 하는 형제들도 동참시키고 그 안에서 서로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면 됩니다. 이런 결정이 바로 진리의 적용이자 비본질적인 방법론에 관한 분별인데 사도행전이나 신약서신서들을 연구하면 쉽사리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 외에 해결책이 없습니다. 가나안 성도가 되었다는 것도 혼자서 길을 찾겠다는 뜻인데 성경 말고 어떤 답이 있겠습니까? 저를 비롯한 어느 누구에게도 구체적인 해답을 기대하지 마시고 성경에 진정한 해결책이 있으니 성경만 계속 파고 드십시오. 교회 헌금할 돈으로도 말씀드린 자료들을 구입하는 데에 사용하십시오. 그것도 아주 의로운 하나님의 일입니다.

 

작금 가나안 성도들이 많고 그들끼리 공동체를 결성하여서 온라인 사역도 활발히 전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결정적인 문제는 결국은 이전과 같은 부류의(?) 목회자를 다시 모신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참에 교단과 교리를 구분하지 말고 주일마다 목회자를 각 교파에서 다양하게 초빙하거나 인터넷 사이트를 바꿔 가며 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를 합니다. 그럼 가나안을 시작하게 된 상태에서 전혀 진전이 없고 오히려 더 악화시킬 뿐입니다.

 

기존의 교회와 목사 제도와 교단과 교리로 나눠진 것과 그래서 목회자마다 가르침이 다른 것들은 문제의 본질이 아닙니다. 성경과 다른 혹은 많이 부족한 진리와 적용을 가르치는 것이 잘못입니다. 가나안 성도의 공동체도 목회자를 다시 모시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성도들이 성경을 바로 알아서 그에 합당한 목사를 모시면 됩니다. 가나안 성도가 되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반드시 스스로 성경의 최고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 결단으로 시작한 일에 대해 후회가 없을 것 아닙니까? 교회와 목사들의 차이가 너무 복잡하니까 출석하지 않겠다고 해서 즉, 문제를 회피한다고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습니다. 문제의 본질은 성경적이냐 아니냐 한 가지 뿐입니다.

 

현실적인 문제로 혼자서 성경과 신학을 공부할 처지가 안 되거나 너무 어렵다고 여겨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 성경책에 따라 순서대로 잘 가르치는 목사들을 찾아보거나 그런 사이트들을 참조하십시오. 말하자면 개혁주의 노선을 유지하며 사역 프로그램보다는 성경의 진리만 일관되게 가르치는 교회나 목회자를 다시 택하여 출석해도 좋다는 뜻입니다. 물론 어떤 경우가 되던 반드시 스스로 성경을 깊이 연구는 하셔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일 두 가지

 

마지막이지만 사실은 가장 중요한 사항이 하나 남았습니다. 성경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 성경적 지식을 최대한 많이 쌓으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두 가지 가장 근본적인 뜻이 있습니다. 성경은 한 마디로 예수님과 그 십자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비록 인간 저자들이 자신의 체험과 지식과 영성에 의존해서 저작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으로 영감된 거룩한 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역사하여 인간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 수 있는 유일한 책입니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3:15) 성경은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다고 합니다. 단순히 대속구원의 진리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깊이 알면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성령의 영감으로 저작되었기에 베드로 사도가 경고한 대로 사사로이 풀지 말고 성령의 조명을 구하며 깊이 묵상하며 읽고 또 읽어야 합니다.(벧후1:20,21) 그러다 보면 성령의 초자연적인 간섭이 임하고 영혼이 거듭나서 회심하는 역사도 일어납니다. 말하자면 성경을 통해서 반드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서 회심하는 은혜를 받아야 하며, 이미 그런 구원 체험이 있는 자라도 매일 성경을 통해서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라가는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 요컨대 가나안 성도들더러 성경 연구에 집중하라는 첫째 목적은 반드시 예수님을 인격적 일대일 체험적으로 만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어서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성경이 하는 둘째 역할은 구원의 지혜를 얻은 자의 신앙을 성숙시켜서 실제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선하게 살아가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성경을 연구해야 할 두 번째 뜻은 가장 먼저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최선을 다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며 힘든 이들을 섬기면서 십자가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실제로 살아야만 합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도 십자가 복음에 관해 자세히 설파한 후에 그 복음을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해 이렇게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1,2)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십자가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삶에 적용 실천하면서 이 세대와 다르게 살라고 즉, 그들 앞에 복음을 증거하라고 합니다.

 

가나안 성도로 있다 보면 가장 취약한 점이 바로 예수님과의 실제적인 교제와 동행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교회에만 있다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아무래도 순전한 믿음의 자녀들이 함께 모인 곳에 성령의 역사가 더 충만히 임하며 무엇보다 서로에게 믿음으로 도전 격려 권면할 수 있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남겨둔 경험이 적고 젊은 디모데에게 간곡히 권한 말씀이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는 것이었고(딤후3:14) 바로 이어서 상기에 인용한 대로 구체적으로 성경을 깊이 연구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오늘날 가나안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해야할 진리입니다. 예수님을 반드시 만나고 예수님의 십자가 그리스도 안에서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셔야만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바울처럼 이런 믿음 안에서 살다보면 하나님은 언젠가 말씀의 진리 위에 바로서서 그 진리대로 가르치고 살아가는 참된 목회자와 그런 성도들이 모인 공동체를 다시 순적하게 만나게 해주실 것입니다. 아니면 형제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런 역사를 이뤄나갈 수도 있습니다.

 

(7/13/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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