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건축이 백성을 착취한 것이 아닌지요?
[질문]
여호와께 올리는 '단'에 대한 기준을 철저히 지키려고 솔로몬이 쇠를 두드리는 소리 없이 모든 자재를 미리 준비해 성전 건축을 마친 것은 칭찬할 만합니다.(왕상6장) 그런데 7년이나 백성들을 노역에 동원했습니다. 모세오경에 나오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장소는 이렇게 거창하지 않지 않나요? 다윗과 솔로몬이 성전 건축하려는 마음은 갸륵하나 백성의 의견을 듣지 않고 독단적으로 내린 결정이라 왕의 지위를 이용해 백성의 노동력을 착취한 것 아닌가요? 반면에 스룹바벨의 성전 건축은 백성의 동의를 얻어 '자발적으로' 건축에 임하게 한 의로운 경우 같습니다. 금과 은으로 하지 말라고 하신 걸로 아는데 성전 안에 도금으로 씌운 것도 국력 낭비 같습니다. 요컨대 주님께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이 갸륵하다고 해도 자기 능력을 넘는 범위에서, 혹은 동의 없이 다른 이들의 노고를 동원하는 것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헌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답변]
인간 세상에 죄악과 불의가 없는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는 청년들은 신앙생활에서도 그런 소망과 의도가 강하게 작동됩니다. 대표적으로 성경을 읽고 이해할 때도 인간 신자가 어떻게 의롭게 행해야만 하는지를 추적하는 데에 우선적인 초점을 맞춥니다.
왕이 자기 권력을 사용해 백성의 노동력을 착취하거나, 자기 능력을 넘어서는 일을 하거나, 다른 이의 동의를 얻지 않고 일방적으로 행하는 것은 잘못이고, 모든 이가 자발적으로 참여해야만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일반 도덕과 종교에서 다 가르치는 내용이며, 그 전에 따로 배우지 않아도 인간 이성만으로 쉽게 알 수 있는 도덕적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영적 진리를 계시한 성경이 굳이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은 반드시 하나님 중심으로, 즉 그분의 성품 속성 권능 은혜 등이 어떠한지 나아가 인간 세상과 당신의 백성들을 어떻게 다스려 나가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읽어야 합니다. 특별히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당신의 백성과 맺은 언약을 실현해 나가는 구속사라는 맥락으로 접근 해석해야 합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는 그분에 대한 앎에 근거하여서 이차적으로 따져나가야 합니다. 사실은 그분과 그분의 뜻부터 정확하게 먼저 알면 신자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는 자연히 결정됩니다.
구약성경에서 거듭거듭 회상하며 가장 강조하는 주제는 출애굽 시킨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이스라엘로 사백 년간의 애굽 노예살이에서 구출해 낸 당신의 권능과 은혜를 절대 잊지 말고 또 그렇게 구원하신 목적에 순종케 하려는 것입니다. 그 목적은 알다시피 가나안 땅에 당신만 왕으로 섬기는 나라를 세워서 열방을 당신께로 초대 인도하는 역할을 맡기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거룩한 율법을 주면서 제사장 나라 언약을 맺었는데 백성들도 기꺼이 당신의 뜻대로 순종하겠다고 피의 맹세까지 했습니다.(출19장)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 이스라엘이 열방 앞에 제사장 나라가 되려면 그들이 먼저 거룩해야 합니다. 레위기가 죄를 속하는 동물 희생 제사를 자세히 가르치면서 ‘거룩’을 주제로 삼은 까닭입니다. 또 그래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하나님 앞에서 죄를 깨끗이 씻으라는 번제(1장)부터 가장 먼저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은 당신께서 임재하여 백성들의 제사를 받으며 죄를 사해주고 또 백성들에게 당신의 뜻을 지시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습니다. 모세더러 당신과 만나는 회막(會幕)을 짓도록 명하고 구체적인 명세도 가르쳐 주었습니다.(출25-31장)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계속 옮겨 다녀야 하므로 장막 형태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막이 함께 옮겨 다닌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절대 떠나지 않고서 보호 인도하고 계신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성막의 구름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을 세밀히 인도해서 광야를 안전하게 건너서 가나안에 입경 정착시켰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은 여호와의 지시대로 성막을 짓는 데에 필요한 물자를 자원해서 넘치도록 내었고 나중에는 그만 갖고 오라고 명할 정도였으며(출36:5,6), 최선을 다해 각자만의 기술과 노동력으로 봉사했습니다.(출35:21) 특별히 여호와는 성막에 필요한 금도 바치라고 명하면서(출35:4), 반드시 지성소에 안치할 언약궤는 전부 금으로 덮고 성소 안의 집기들도 금으로 제작하라고 지시했습니다.(출37장) 금은 흠이라곤 하나 없고 오직 선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재하여서, 백성들의 죄도 대제사장의 중보를 통해 완전한 깨끗이 씻어줄 것이라는 뜻을 상징합니다. 이때도 성막 제작에 들어간 금과 은의 양이 아주 많았습니다.(출38:21-31)
이스라엘의 40년 광야 방황이 끝나고 가나안에 입경하기 직전에 여호와는 온 백성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성전을 건축하라는 새로운 계명을 주십니다.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 거주하게 될 때 또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너희 주위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사 너희를 평안히 거주하게 하실 때에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 곳으로 내가 명령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가고”(신12:10,11)
성막은 광야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에 편한 천막 형식의 임시적인 하나님의 전(殿)이었습니다. 이제 곧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든든히 신정국가로 세워지면 당신의 백성과 영원히 함께하실 것이므로 당신의 전도 수도인 예루살렘에 아주 튼튼하게 지어져야만 했습니다. 당연히 그 기본 구조와 양식은 기존의 성막을 그대로 이어받아야 했습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성전이므로 특별히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족속의 전들과는 달리 건물부터 거룩해야 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죄 사함을 받을 지성소 중심으로 지어져야 했기에 성전(회막) 자체는 아주 간단하고 검소하게 성소와 지성소로만 구분되었습니다.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행하는 가장 중요한, 거의 전부다시피 하는 역할도 동물 희생 제사였습니다.
반면에 이방 신전은 장엄하고 기괴한 신상을 화려하게 치장해야 하고, 음주 가무를 하는 장소가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성전에 상시 대기하여서 음란한 성행위를 하는 창기들의 방들을 두었습니다. 그들과는 완전히 다르게 오직 하나님과만 만나는 거룩하고도 단출한 모습으로 세워져야 했습니다.
다윗은 사방 대적을 물리치고 나라가 안정되자 신명기 계명대로 성전을 짓기로 결심했고 가장 먼저 블레셋에 빼앗긴 언약궤부터 천신만고 끝에 회수했습니다.(삼상7:1) 다윗의 갸륵한 성전 건축 소망은 안타깝게도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는 전쟁에서 피를 너무 흘렸고 또 간음과 살인이라는 엄청난 죄를 지었기에 성전 건축에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보라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그는 온순한 사람이라 내가 그로 주변 모든 대적에게서 평온을 얻게 하리라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그의 생전에 평안과 안일함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지라 그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어 그 나라 왕위를 이스라엘 위에 굳게 세워 영원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니.”(대상22:8-10)
다윗이 죽기 직전에 솔로몬에게 유언한 내용으로, 사무엘하 17장에서 이미 하나님과 맺은 다윗 가문을 통한 영원한 왕국 건설에 대한 언약이 성전 건축을 통해 실현될 것이라고 다시 다짐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가 죄가 많은 자기 대신에 평생토록 이스라엘에게 평안과 안일함을 주게 될 아들 솔로몬더러 성전을 건축하라고 직접 지명해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뜻은 다윗과의 언약대로 성전을 굳건히 세워서 백성들이 죄를 씻고 당신의 율법에 순종하면 “그 나라 왕위를 이스라엘 위에 굳게 세워 영원까지 이르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솔로몬을 위해서 미리 모든 건축 자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대상22:2-5) 또 솔로몬은 7년에 걸쳐서 성전 건축을 마쳤습니다.(왕상6:38) 언뜻 보면 백성을 혹사하고 성전을 너무 화려하게 지은 것 같으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막의 양식 그대로 장막을 건물로 바꾼 것뿐이며, 실제로 솔로몬의 왕궁보다 적었으며, 광야 방황 시절의 회막에서부터 지성소 등에 전부 황금으로 장식했습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전체에 오직 하나 있는 성전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한국 서울의 중심부에 교회를 딱하나 세운 셈인데, 아무리 장중하고 화려하게 지어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전 봉헌을 마치고 솔로몬은 백성들에게 7일간 큰 잔치를 베풀어 주었으며 백성들도 성전을 완성한 것에 대해 아주 기뻐했습니다. “여덟째 날에 솔로몬이 백성을 돌려보내매 백성이 왕을 위하여 축복하고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는데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왕상8:66)
성전 건축에 백성들이 기쁨으로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뜻입니다. 솔로몬 왕이 노동력을 착취한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임금도 지불했을 것이며, 나아가 장기 작업이므로 교대로 조를 짜서 작업을 시켰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은 주로 이방인으로 구성된 징집된 역군을 성전 건축에 동원했습니다.(왕상5:13-18, 9:15-23, 11:28, 대하2:2, 17,18,8:7-10) 솔로몬은 그 이방 역군들에게도 충분히 보상했습니다.(대하2:10) 그리고 훨씬 후대의 요시야 왕이 퇴락한 성전을 보수할 때 그 비용을 충분히 주었다고 성경이 증언하는데(왕하22:3-7), 역사상 가장 지혜로웠던 왕 솔로몬이 백성들의 노동력을 착취했을 리는 만무합니다. 나아가 고대에는 다들 가난하고 특별한 일거리가 없기에 그런 공공 노역에 동원되면 오히려 더 좋아했을 것입니다.
성전 건축이 하나님의 뜻에 전혀 어긋나지 않았고 다윗과 솔로몬 두 왕의 인간적인 잘못도 없었음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왕상8:10,11) 제사장들이 순금으로 덮은 언약궤를 순금으로 뒤덮인 지성소에 안치하자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 차서 제사장들이 성령으로 임재한 하나님의 권능 앞에 서 있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엎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을 아주 흡족하게 받아주셨다는 뜻입니다.
노아는 방주를 짓는데 120년을 하나님을 위해 바쳤습니다. 백성이 하나님이 임재하여서 자기들을 거룩하게 다스리고, 또 자기들이 기도하면 고난에서 구해주시고, 나아가 죄를 사하는 은혜를 베푸실 성전을 짓는 일에 7년을 그것도 조를 짜서 번갈아 가며 노력 봉사했다고 불만을 터트릴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전국에 하나뿐으로 다른 이방 신전과 전혀 다르게 거룩했습니다. 거기다 사백 년간 나라도 없이 노예 생활했고 바로 윗대 선조들은 하나님의 벌을 받아서 사십 년간 광야에서 방황하다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성전으로 자기들만의 독립 국가가 열방과 다르게 거룩한 모습으로 설 것입니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을 중앙기관, 요즘으로 치면 전 국민이 힘을 합쳐서 서울에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는 물론 교회까지 합쳐진 한 개의 건물을 짓는데.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습니까?
마리아가 값비싼 옥합을 병째로 깨트려서 예수님의 죽음을 예비한 사건의 의미 중 하나는 하나님을 위해서 “거룩한 낭비”를 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성전 건축은 그것과도 비교가 안 되는 너무나 엄청난 기쁨을 품고서 자발적으로 온 백성이 한마음이 되어 건축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과 구체적인 지시대로 따른 것입니다.
성전 건축에 소요 된 황금이 낭비가 절대 아니었고 그들의 능력에 부치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출12:35,36) 출애굽할 때 하나님은 애굽사람의 은금 패물을 다 걷어 나오게 했습니다. 사백 년간 노동력을 착취한 임금을 일시불로 정산받게 한 것이며, 더 중요하게는 성막에 들어갈 금과 은을 미리 마련하게 한 것입니다.
그 양이 얼마나 많았는지 노예로 살던 거지 집단이 그 일부로만 광야에서 황금송아지 상을 만들 정도였습니다.(출32:2) 성전을 지을 때 언약궤는 이미 금으로 덮여 있었고, 성막에 소용될 정도의 금도 이스라엘은 이미 충분히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너무 놀랍고 은혜롭지 않습니까? 그래서 성경에서 출애굽 구원 사건을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고 메시아도 모세 같은 선지자로 올 것이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물론 솔로몬의 과중한 노역으로 백성이 불만을 품고 나라가 둘로 분열되는 원인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전보다 더 크고 더 화려하게 왕궁을 짓느라 무려 두 배인 13년이 걸렸고(왕상7장), 또 여러 대규모 토목과 건축사업 때문이었습니다. (왕상9:10-28) 백성들은 이전에 사무엘 선지자가 경고했던 왕정제도의 잘못은 물론 왕이 지켜야 할 율법 계명을 알고 있었습니다. 성전 외의 사업에서 질문하신 대로 솔로몬 왕이 권력을 임의로 과도하게 휘두른다는 불만을 품게 되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상숭배의 길을 열었던 잘못은 솔로몬이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성전 건축에선 하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 영광스러운 성전을 더럽혔고 율법대로 순종하지 않으며 여호와와 우상을 함께 섬기는 혼합주의 배교를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벌을 받아 성전은 불이 타서 훼손되었고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비로소 자기들이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고 성전 제사도 형식적으로 드리고 오히려 우상을 섬긴 죄로 이런 큰 벌을 받았음을 절감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러니까 스룹바벨 성전을 지을 때는 백성들이 한마음으로, 더 이상 왕도 없음,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 대한 향수와 감격을 그들은 결코 잊지 못했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족장들 중에 여러 노인은 첫 성전을 보았던 고로 이제 이 전 지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며 여러 사람은 기뻐하여 즐거이 부르니.”(스3:12)
그러다 다시 헬라 제국 같은 이방 세력에 의해 성전이 훼파되자 또 다른 이방 족속인 이두메 사람 헤롯 대왕이 유대인들의 인심을 얻고자,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무관하게,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규모로 성전을 개축했습니다. 당시에 지중해 지역의 사람들이 성전을 구경하러 올 정도로 관광명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건축물이 예수님 예언대로 지금은 흔적 하나 없이 다 부서졌습니다. 언약궤는 완전히 실종되어서 영화의 소재로만 등장하며, 성전은 하나님의 역사에도 세속의 역사에도 아무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예수님이 백성이 기도하는 전이 또다시 강도의 소굴로 변해버렸다고 꾸짓으며 성전을 청소했고, 당신께서 그 장중했던 성전을 헐고서 진짜 성전인 당신의 육신이 죽음에서 부활하여 영원한 성전을 사흘 만에 다시 지었습니다. 만약 첫 성전이 너무 작은 규모로 지어졌다면 성전 중심의 율법적 종교와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 은혜가 서로 극명하게 대조되는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을 것입니다.
솔로몬의 성전은 반드시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지어져야 했고, 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지어진 것입니다. 아주 간략하게 살펴보았지만, 성전만을 갖고도 신학책 몇 권을 저작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오묘한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이 숨겨져 있습니다. 성경은 반드시 하나님 중심, 그것도 당신의 언약을 실현하는 구속사 관점에서 읽고 해석해야 합니다. 한두 문장을 따로 떼어 읽고선 신자 인간이 실천해야 할 도덕적 가르침이 먼저 떠오르면 틀린 해석은 아닐 수 있으나, 지금 성경에 대해 올바르게 접근하고 있지 않다고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책을 연결해 통전적(通典的)으로 세밀하게 읽고서 하나님의 깊은 뜻을 찾고 또 찾으셔야 합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한두 문장을 따로 떼어서 읽는 것이 가장 잘못된 해석입니다.
(아래 학개서에 관한 이전 글도 참조하십시오.)
11/20/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