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4:1,2 뱀의 꼬리부터 잡는 영성

조회 수 967 추천 수 32 2009.10.24 23: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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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꼬리부터 잡는 영성


모세가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지팡이니이다.”(출4:1,2)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미국 오클랜드의 한 과부 할머니가 사회활동이 완전히 제약된 가운데도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하기를 간절히 소원했습니다. 기도 가운데 자신이 집안에 머물면서도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따져보았습니다. 그래서 지방 신문에 병든 사람과 낙심한 사람에게 전화를 통하여 무료로 찬송가 피아노 연주를 해주겠다는 광고를 자그맣게 냈습니다. 몇 달 안 되어 수백 명의 전화를 받았고 또 나중에는 인생 및 신앙상담도 해주게 되었습니다.

대보름 축제에 사용하는 엄청나게 큰 달집도 작은 불씨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께서 예비해 놓으신 큰 횃불을 켜기 위해 아주 작은 성냥을 사용하십니다. 물론 그 작은 성냥은 언제 어디서나 그분의 일에 어떤 방식으로든 쓰임 받기를 열망하고 또 준비된 신자입니다. 노쇠해 외출도 여의찮기에 아무 일도 못할 것 같은 할머니도 수많은 영혼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주는 너무나 아름답고도 따뜻한 일군으로 변모시켰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함에 신자가 처한 어려운 여건이나, 혹은 그 반대로 남들보다 앞선 자원과 능력은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자기만의 은사와 재능만으로 충분합니다. 하나님은 신자가 지금 가진 것만으로 당장 당신의 일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해주십니다. 신자가 시간과 여유가 없어 주님의 일을 못하겠다는 것은 너무나 치사한, 아주 잘 봐주어서 하나님의 참 은혜와 권능을 모르는 무지한 변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 각자의 은사와 재능은 질과 양으로 우열을 가릴 수는 결코 없습니다. 단지 그 종류와 역할만 다를 뿐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은 각자에게 가장 적합하고도 아주 고유한 방식의 일로 부르십니다. 말하자면 다른 사람은 잘하지 못하며 오직 본인만 잘할 수 있는, 일종의 맞춤형의 일입니다. 따라서 정작 하나님이 맡기신 일이라면, 자신의 뜻만으로 계획한 자신의 일이 아니라면, 어떤 신자라도 너끈히 감당해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의 할머니의 피아노 연주 솜씨가 좋아야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주 좋았다 해도 많이 녹 쓸었을 것 아닙니까? 또 뛰어난 피아니스트더러 집에 갇혀 먼 곳에 거주하는 오직 한 사람의 청중을 위해, 그것도 전화선을 통해 연주하라면 누가 하겠습니까? 그 일은 그 할머님만이 할 수 있고 또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신나게 잘 할 수 있는 일이었지 않습니까?    

지금 동족을 출애굽 시킬 엄청나게 큰일을 위해 하나님께 불려나온 모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디안에서 목축으로 연명하는 80세 노인이 현재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다 낡은 지팡이하나 말고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었습니다. 바로 그 지팡이 하나만으로도 당신의 일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본문 기사를 읽어보면 그 지팡이가 하는 역할은 예의 할머니와는 조금 경우가 달랐습니다. 할머니는 분명히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는 실력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모세의 지팡이는 양을 칠 때에 들짐승을 막거나 언덕을 오르내릴 때에 몸을 지탱해주는 역할 밖에 못했습니다. 중국 무술영화처럼 그가 지팡이 무술의 고수라도 되어 애굽 군대를 물리칠 힘이 있은 것도 아닙니다. 지팡이는 모세의 은사나 재능과는 아무 관련이 없었습니다.

지금 모세가 하나님에게 질문한 내용도 자신이 무슨 수단으로 동족을 애굽의 군대에서 구해낼 수 있는지 물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동족의 구원자로 그들 앞에 나섰을 때 누가 자기를 인정해주며 또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다는 사실을 어떻게 믿겠느냐고 물었습니다. 한마디로 자신이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가 맞는지 증명할 건더기가 전혀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대답으로 네 손에 있는 지팡이를 땅에 던져 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양치기와 노인을 지탱하는 일 외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나무 막대기를 하나님은 뱀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무생물에 생명을 부여하는 창조주의 권능을 보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어떤 것이라도 사용하여 당신의 당신 되심을 증명할 수 있고 또 사람들로 그 사실을 확인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며 당신의 주관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진짜 은사

그럼 동족을 구원할 자로서의 모세 고유의 은사와 재능은 전혀 없었던 것입니까? 출애굽의 위대한 역사는 모세의 개인적 자질과 능력은 그냥 가만히 놓아둔 채 즉, 그를  꼭두각시나 로봇처럼 하나님이 원격조종한 것에 불과합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잡으니 그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4절)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기로 40년을 보냈습니다. 광야에 득실득실한 뱀의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뱀은 반드시 먼저 머리를 잡아야지 물리지 않지 꼬리를 잡으면 바로 물립니다. 그런데도 그는 손을 내밀어 꼬리를 잡았습니다.

그럼 어떻게 됩니까? 광야의 전문가라는 것이 모세가 가진 실질적 은사와 재능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아예 무시했습니다. 아니 모세더러 그것마저 완전히 무너뜨리라는 명을 내린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순종했습니다. 그럼 모세의 진짜 은사와 재능이 무엇이란 뜻이 됩니까? 바로 자신의 은사와 재능을 고집하지 않고, 심지어 그것을 정반대로 거슬리는 일이라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세입니다.

성경기록이 참 정미하지 않습니까? 모세가 손을 내밀어 잡으니 뱀이 “그 손에서” 지팡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손에 잡힌 것은 분명 꼬리 부분입니다. 꼬리를 잡으면 뱀은 순식간에 머리를 홱 돌려 물어버립니다.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아는 모세에게 두려움은 사뭇 더 컸을 것임에도 꼬리를 잡는 순간 꼬리부분부터, 아니면 순식간에 몸통 전부가 나무로 딱딱해져 뱀이 미처 고개를 돌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어깨에 메고 요단강 급류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물이 좌우에 벽처럼 갈라섰듯이 말입니다.

모세는 분명 하나님께 지도자로서의 천부적 자질 즉, 은사를 받았습니다. 또 그 자질을 바로의 궁정에서 왕자 수업을 받으며 자신만의 뛰어난 재능으로 갈고 닦았습니다. 비록 그의 동족을 위한 첫 시도가 무참한 실패로 끝났지만 나중에 바로와 신하들을 홀로 상대할 때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 그 실패 이후 40년간 양치면서 광야생활의 전문가가 되는 바람에 이스라엘이 광야를 방황할 때에 모세의 인도에 의지한 측면도 아주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크게 모자란 요소 하나는 하나님만 절대적으로 의지하여 그분께 순종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에게 성질이 급한 측면이 많이 나타난 것이 바로 그 사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역으로 말하면 자기 은사와 재능에 너무 의존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무참하게 실패케 하고 또 광야의 은자(隱者)로 그 긴 세월을 보내게 한 뜻은 그를 낮추고 또 낮추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자기를 깎고 또 깎아서 자신은 완전히 없어지고 오직 하나님만이 충만하게 채워져야만 출애굽이라는 대업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쩌면 모세가 지금 이 질문을 하는 순간에도 완전히 낮아진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여줄 하나님을 만난 증거를 달라고 요구한 가운데 그런 모습이 은연중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까? 자신에게 큰 권능을 주어서 사람들이 군말 없이 자기를 따르게 만들어 주셔야 할 것 아니냐고 따진 셈입니다. 그가 자꾸 언변이 부족하다고 핑계를 댄 것도 사실은 사람들을 근사한 말로 휘잡아야 할 것 아니냐는 뜻이었습니다. 아니면 고대왕자가 중점적으로 배우는 것이 웅변술인지라 사실은 말에 궁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순종할 자세가 안 되었다는 핑계였던지 말입니다.  

세계 최강국 애굽과 그 군대를 상대하려면 나에게 뭔가 근사하고 큰 힘을 갖추게 해달라고 요구한 모세의 속내를 하나님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임을 못 믿을 것이라는 말도 사실은 모세 자신이 아직 하나님을 온전히 못 믿는다는 핑계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증거할 수 있는 수단이 모세가 은근히 기대하는 힘과 아무 상관없는, 아니 도리어 그 반대인 정말 낡고 낡은 지팡이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대신에 그 뻣뻣한 작대기에 생명을 불어넣어 광야생활에서 가장 싫어했던 뱀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뱀을 막아내는 용도였던 작대기를 오히려 뱀으로 바꾼 것입니다. 죽음에서 생명을 창조하되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당신의 권능을 행사하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임을 모세의 두 눈으로 똑똑히 목도하게 만든 것입니다.

말하자면 모세는 자기의 은사와 재능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오직 당신만이 증명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대답이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완전히 믿지 못한 것과 또 스스로 높아지려는 모세의 속내가, 비록 지금 단계에선 스스로 많이 낮아져서 그 정도가 아주 미약했겠지만, 하나님께 완전히 들킨 것입니다.

그러니 모세로선 꼬리를 잡으라는 말씀에 비록 겁이 났지만 순종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위험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꼬리를 잡는 순간 바로 지팡이로 다시 변해버렸습니다. 이번에는 생명에서 죽음으로 바꾸었습니다. 생명과 죽음의 온전한 주관자임을 또 다시 확실하게 각인시켜 준 것입니다.

바로와 맞섬에 모세 스스로가 갖출 힘이라곤 전혀 필요 없었습니다. 아니 아무 소용도 없었던 것입니다. 세계 최강국과 맞설 수 있는 현실적 힘은 실상 없습니다. 또 생명과 죽음의 주관자 하나님 그분이 함께 하시는 것만으로 충분하고 넘쳤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 사실을 온전히 깨닫게 해줄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지팡이는 그분의 전지전능하심의 상징이자, 그것을 회상하는 역할만 맡았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홍해를 가를 때 모세더러 바다를 향해 지팡이를 들라고 한 것도  이스라엘 백성과 모든 애굽 군대에게 창조주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과 항상 함께 하시고 또 어떤 위험에서도, 특별히 현실적으로 사방팔방이 완전히 다 막혀버린 환난 가운데서도, 당신 백성을 지켜주신다는 진리를 명확히 보여주는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모세 본인에게도 순종함이 먼저였고 지팡이를 드는 것은 순종의 결과적 행동이었을 뿐입니다.

참 영적 성숙이란?

믿음이 견고해지고 영적으로 성숙해진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성경 말씀에 숙달하고 기도에 능하게 되는 것입니까? 신령한 은사를 통해 능력을 발휘하는 것입니까? 교회 활동과 업무에 능통해서 종교적 업적을 크게 쌓는 것입니까? 다 좋은 일입니다. 신자라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영적 성숙은 따로 있습니다.

우선 현실적으로 어떤 처지에 있든 자신의 은사와 재능을 사용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당장에 실천은 못해도 최소한 그런 소망과 열정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도록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예의 할머니처럼 지금 당장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주를 위해 일할 수 있음을 확신하고 실제로 한 걸음이라도 실행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럼 나머지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신자의 순종과 헌신을 기뻐 받으십니다.

그렇다고 신자가 충성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보상으로 그 일을 이루신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닙니다. 진정 영적으로 성숙하려면 이런 부분에서도 생각을 조금 달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신자가 정작 누려야 할 그분의 은혜와 권능을 절대 맛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신자가 생각으로만 그분을 믿고 따라봐야 실질적인 은혜와 권능은 따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순종이란 당연히 어떤 형식으로든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럼 생각에 머무는 기도와 말씀을 통해선 은혜를 받지 못한다는 뜻인가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와 말씀에 열중인 모습은 동일하지만 정말로 순종하려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에 따라 그 결과는 전혀 다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기도와 말씀 가운데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 지금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기를 원하며 또 그 들은 말씀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 태세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와 비교해 자신의 뜻만 주장하거나 보완하려 기도하고 말씀 보는 것은 그 받는 은혜와 권능에서 천양지차라는 것입니다. 후자는 힘 빠진 기도요 죽은 말씀으로 전락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 당신이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은사와 재능도 당신이 이미 주셔놓은 것입니다. 신자가 처한 여건과 삶의 방식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일이 이뤄진다는 것이 바로 당신께서 전적으로 주관하신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아무리 할머니가 찬송가를 무료 연주해 주겠다는 광고를 냈어도 전화상으로는 듣기 싫다고 연락 안 하면 그만입니다. 많은 자를 불러 모으고, 특별히 신앙 상담할 자를 붙여주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이든 큰일입니다. 작은 일이라곤 없습니다. 하나님 그분이 너무나 크지 않습니까? 그럼 그분이 하시는 일은 당연히 다 큰일입니다. 신자가 무시해도 될 만한 작은 일이란 그분에겐 아예 없습니다. 그분의 일이라면 무엇이든 신자가 기꺼이 감당해야 할 까닭입니다. 할머니도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확신하기에 집에서 전화상으로라도 마음이 곤고한 자들에게 피아노 연주를 해주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전부가 아닙니다. 자기 은사와 재능을 동원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그분의 일을 하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은 영적 성숙의 완성된 모습이 아닙니다. 모세의 경우를 보십시오. 자기 재능과 은사와 정반대로 거슬리는 일에도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 일의 대부분은 신자의 은사와 재능을 당신께서 들어 사용하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그러나 때로는 모세 같이 모든 것을 갖춘 자에게도 그 자신은 완전히 없어지고 오직 하나님만이 당신의 일을 이루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진정으로 성숙된 자라면 그런 일에도 자신의 전부를 온전히 내어맡길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출애굽의 모세와 그 지팡이입니다. 열 가지 재앙이나 홍해의 기적을 일으킬 때에 모세가 자신의 은사와 재능으로 힘을 보탠 것이라곤 전혀 없었지 않습니까? 혹시라도 모세가 뱀 꼬리를 잡을 때 같은 의심과 불안이 있었다면 그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지금 지팡이를 뱀으로 바꾼 사건은 모세더러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온전한 믿음의 종으로 바꾸려는 최종 단계의 시험이자 훈련이었던 것입니다.

모세의 지난 80년의 인생은 처절한 실패였습니다. 갓 태어난 남자 아이가 다 죽어 가는데 혼자 바로의 궁정에서 왕자로 자라게 된 것 하나 빼고는 말입니다. 그것도 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고 인간적으로 따지면 민족 배신자의 왕초가 되는 실패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절대로 실패가 없습니다. 그를 바로 궁정과 광야의 전문가로서 재능을 갖추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하나님의 성공은 그로 완전히 이빨이 다 빠진 늙은이로 만든 것입니다. 자신의 재능과 은사에 더 이상 기댈 곳이 없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결국 영적으로 온전히 성숙해진 단계는 이런 모습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옳다. 무조건 옳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에서나 세상과 인간을 다스리는 그분의 공의와 긍휼은 절대적으로 완벽하다. 그분 앞에 인간이 바칠 것이라곤 감사와 찬양과 경배와 영광뿐이다. 그리고 그분 앞에서 인간이 행할 것이라고는 절대적 순종뿐이다. 또 그런 절대적 순종을 통해서만이 그분의 진정한 은혜와 권능을 제대로 맛볼 수 있다.” 이런 확신의 바탕에서 실제로 그분의 영광만을 목표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알기 쉽게 한 마디로 말하면 “죽으면 죽으리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죽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현재의 상황과 일의 진전되는 징조 등이 도무지 파악이 안 되더라도 순종해야 합니다. 그분이 시키는 일의 목적과 도착지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도, 심지어 아예 오리무중 감감하더라도 일단 그분이 나에게 원하시고 명하신 것이 확실하다면 순종해야 합니다. 모든 선한 것은 그분께로만 오는 것이며 또 그분께로 오는 모든 것은 선하다는 확신의 바탕에서 그래야 합니다.

다시 말해 자신에겐 현실적 인간적으로 유익이라곤 없고 손해만 있을 것 같아도, 아니 목숨이 달아날 전망이 빤히 보이더라도 순종해야 합니다. 자신은 완전히 죽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 실현되어서 그분의 영광만 드러나게 되는 것을 갈망해야 합니다. 죽을 때까지 그분의 궁극적인 뜻을 명확히 몰라도 그래야 합니다. 세상에서 오직 그분만이 절대적으로 옳고 선하니까 말입니다.

특별히 지도자는 더욱 그래야 합니다. 모세처럼 이스라엘과 애굽의 모든 사람 앞에서 보여준 것이라곤 그 자신의 것은 전혀 없고 오직 하나님의 권능뿐이었습니다. 자기는 완전히 죽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만 따랐습니다. 모세와 지팡이는 완전히 실종되었습니다. 지팡이는 나무 작대기로서의 역할도 하지 못했습니다. 맨 처음 뱀으로 바뀌어 애굽 술객의 술수를 무너뜨리는데 쓰인 것 빼고는 말입니다.  

이처럼 지도자가 정말로 힘을 쏟아 평생 동안 해야 할 일은 바로 자신은 실종시키고 하나님의 권능만 실제로 역사하고 있는 모습을 회중들 앞에 드러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여서 이룰 일이 교회를 통한 종교적 업적이 아닙니다. 자기를 따르는 모든 양떼들도 자기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직접 체험하여 모두가 하나님이 죽으라면 기꺼이 죽으리라는 단계에까지 이르도록 하는 일일 뿐입니다.

또 그 일은 지도자부터 그렇게 되지 않고는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지도적 위치에 있는 자들은 그 직분 때문에라도 하나님보다 자신이 앞설 수 있는 가능성이 아주 많아집니다. 지도자이기에 잘해보려는 스스로의 욕심과 열성이 현실의 직무는 잘 달성할지 몰라도 정작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인 하나님을 증명하는 일에 등한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 그 달성된 일로 인해 자연히 지도자가 부각되며, 그러다 보면 지도자는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의 단 맛에 중독되어 하나님께 돌아갈 영광을 중간에 가로채는 큰 죄에 빠지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말해 지도자는 지도자를 죽여야 참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단순히 하나님의 심부름꾼에 불과했습니다. 그것도 아론이 옆에서 도와주어야 겨우 자기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무능한(?) 심부름꾼이었지 않습니까? 지도자가 개인적으로 무능해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지도자가 유능한 모습을 보이되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왔다는 것은 확실하고도 분명하게 알게 해주어야 합니다.      

또 특별히 지도자가 그래야 한다는 것은 일반 신자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도자의 본을 보고 따르는 자로서, 나아가 다시 자기를 보고 따를 자를 키워야 할 미래의 지도자로서 더욱 그래야 합니다. 교회의 맡은 직분과 상관없이 모든 신자에게는 자신은 안 보이고 오직 하나님만 보여야 합니다.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런 모습이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드러낸다고 해서 열 가지 재앙이나 홍해 같은 큰 가시적 역사가 일어나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세를 완전히 죽여 놓고서 일으킨 그 일은 하나님이 꼭 그런 모습으로만 이뤄야 할 역사상 단 한 번 있는 특별한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대신에 현재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사태가 오히려 점점 더 꼬여만 가며 이 힘든 환난이 대체 언제 어떻게 끝날지 감조차 잡을 수 없어도 그분은 절대적으로 옳고 선하다는 믿음을 절대 놓치지만 않으면 됩니다. 재차 강조하지만 하나님은 당신 되심의 증명을 오직 당신만이 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 말은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옳으니 그분이 죽어라고 하면 실제로 죽기만 하면 나머지는 당신께서 다 책임지신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신자가 할 일은 내가 죽어 그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선 증명되는 것은 내뿐이니 어찌 그분이 나를 통해 당신을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의 일을 이루지 못하면 받을 은혜와 권능도 애초부터 없는 것 아닙니까? 너무나 간단명료한 이치입니다. 그럼에도 왜 지금도 시간과 여유가 없으니 그것부터 채워주면 하나님을 증명하겠다는 핑계를 대십니까? 혹시 정작 하나님을 증명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여전히 자기를 채우겠다는 심보가 아닙니까?

10/24/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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