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1,2 일곱째 날의 비밀

조회 수 734 추천 수 18 2011.05.26 05:3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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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 날의 비밀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2:1,2)


하나님은 첫 육일 동안 창조의 사역을 완수하신 후에 7일 째에 안식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모든 일을 중지하시고 마냥 쉬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당신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보존하고 운행하는 사역은 여전히 쉼 없이 하셨습니다. 이 땅을 아름답고 풍성하며 거룩하게 만드시는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의 주인으로서 당신만의 사역을 영원토록 하고 계십니다. 그분에게 쉼이나 중지 등은 전혀 해당되지 않습니다. 안식일은 오히려 인간을 위해 마련한 것입니다. 인간더러 6 일간 일하고 7 일 째 쉬라는 것입니다. 만물 중에 특별히 인간이 가장 풍성하고 활讐耽?번창하려면 그런 시간표에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가 7일 째를 설명하는 이 기사에는 그 전 6일 간의 묘사와 비교해 주목해야 할 사항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표현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 뜻은 우선 본문의 설명대로 지으시던 일을 마쳤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앞선 6일 간은 아침저녁의 반복이 있다는 즉, 더 수행해야 할 창조사역이 남아 있는 다음 날이 온다는 뜻입니다.

그러다 창조 사역이 끝났으니 안식일 다음 날을 더 기록할 이유가 없어졌기에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표현이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럼 무슨 뜻이 됩니까? 안식일이 영원히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평생을 놀고먹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전히 6일간 일하고 7일 째 쉬는 패턴은 반복되어져야 합니다.

안식일이 영원이 지속이 됨은 인간의 참 안식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만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마지막 날에 만드셨습니다. 모든 피조세계를 인간이 생존, 번식하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으로 조성하신 것입니다. 창조의 궁극적 목적 자체가 인간을 통해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겠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인간은 그 분 외에는 결코 참 안식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조성하시고 견고케 하시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 그 말씀에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45:18) 이사야 선지자는 하늘과 땅을 다 만든 후에 인간을 만들었는데 그 목적은 사람으로 거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또 여호와 외에 다른 이가 없다고 했으므로 인생의 의미를 둘 대상은 그 분 외에는 절대 없다는 것입니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표현이 없다면 하나님의 인간 안식에 대한 사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안식일 제정 목적이 완전히 달성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전 6일 동안에 그 다음 날로 이어진다는 표현을 했던 이유는 그 날에 하실 일을 당신의 계획과 뜻대로 완벽하게 종결되었음을 의미한 것입니다. 7일 째에도 그런 표현이 등장해야만 안식일의 제정하신 뜻이 달성되었음을 의미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정작 더 중요한 사항은 그 표현이 일곱째 날에도 없지만 여섯째 날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일곱째 날에 없음은 안식 사역이 끝이 나지 않았다는 뜻이라면, 여섯째 날에 없음은 창조사역 또한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 됩니다.

성경이 "지으시던 일이 마쳤다"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는데 무슨 엉뚱한 말인가 싶습니까? 아닙니다. "창조하던" 일이 마쳤다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어로 무에서 유로 창조하는 일은 '바라'라는 단어를, 이미 창조된 요소를 사용해 다른 것을 만들어내는 일은 '아사'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본문에 사용된 단어는 당연히 후자입니다. (이에 대해선 성경의 맥을 잡자 사이트의 # 20 "하나님이 진짜로 창조한 세 가지"의 글도 함께 참조 바람)

그렇다면 안식 사역 뿐 아니라 창조 사역도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 안식 사역이 끝이 나지 않아서 창조 사역이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그 반대입니다. 창조 사역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안식 사역도 당연히 끝이 나지 않은 것입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간극 이론(the gap theory)처럼 최초의 창조가 두 번에 걸쳐 이뤄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진정한 안식은 먼 미래의 새로운 창조를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 최초의 종말론적 소망을 담은 기술입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사65:17,18a) 그 때에는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갈"(계21:3,4)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여 당신의 온전한 백성이 될 때에 비로소 그분의 온전한 안식이 임하게 됩니다. 그러나 최초 아담이 그 일에 실패함으로써 비록 안식일 제도는 제정되었어도 그 이후의 모든 인간들이 참 안식을 얻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타락을 아시고 궁극적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여 구원하기로 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창조 시의 제 칠일에 하나님이 수행한 안식 사역은 바로 이 영원한 참 안식의 전조요 예표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영원한 새 창조 이전에 또 다른 창조가 이미 있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고후5:17,18)

하나님과 불화하여 원수 사이로 있던 죄인의 심령 안에 새로운 창조가 일어났습니다. 죄에 찌든 영혼을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어서 새로운 피조물로 바뀌어주셨습니다. 흑암의 세력 아래 노예가 되어 있던 이전 것은 지나갔고 새것이 되었습니다. 아담 이후 인간 스스로는 아무리 해도 결코 얻지 못하던 참 안식을 주님의 십자가의 권능과 은혜 안에서 누리게 된 것입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신약의 주님의 날(the Lord's Day)에 누릴 참 안식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히11:13,14) 그러나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 도다.”(히4:3) 주님 안에서만 이 땅에서부터 참 안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 찌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4-16)

제 칠일의 비밀이 알지도 못하는 최초 조상 아담 때문에 인간의 참 안식이 먼 장래로 무한정 미뤄지기만 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물론 피조 세계가 원죄로 인해 고난 가운데서 신음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인간도 하나님의 진노 아래 태어나기에 그 상태로는 참 안식을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그 절망의 상황에 한 줄기 소망의 빛이 비췄습니다. 비록 완전한 참 안식이 마지막 부활 때까지 미뤄진 것은 사실이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 진정으로 겸비하게 엎드리는 자에게는 주님이 그 인생을 이전 것은 다 없애고 새것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궁극적이고 영원한 안식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보장되어집니다. 아무리 이 땅의 삶이 고난과 상처와 질병이 그치지 않는다 해도 신자만은 오직 그리스도와만 동행함으로써 매일 매일이 참 안식의 여정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인류의 역사가 우연에 의해 형성되어 쳇바퀴처럼 돌고도는 원형이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만의 절대적 주권으로 주관하는 시작과 끝이 있는 직선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인생도 하나님 품 안에서 궁극적인 거룩한 완성을 지향하지 않으면 참 안식이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불신자의 삶이 향방 없는 달음박질이나 허공을 치는 싸움처럼 항상 허망하고 갈급할 수밖에 없는 까닭입니다.

대신에 십자가 복음 안에 들어와 있는 신자의 인생은 승리가 보장된 종말론적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실제로 의식을 하든 못하든 주님이 그렇게 이끌고 있는 중입니다. 삶의 모든 순간과 사건에 주님의 놀랍고도 신비한 생명이 풍성하게 감춰져 있습니다. 신자의 죽음도 단순한 존재의 멸절이나 실패가 두려워서 도피하는 양상이 결코 아닙니다. 창조 때부터 바로 나를 위해 예비되어 있는 영광을 향한 첫걸음일 뿐입니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19-22,39)

5/13/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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