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5:24 가장 축복 받은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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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축복 받은 죽음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5:24)


우리 모두는 반드시 죽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신자에겐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광스런 구원의 완성으로 가는 첫 걸음입니다. 비로소 진정으로 복된 인생이 시작됩니다. 어둠 속에서 그림자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던 이 땅을 벗어나 영원하고 완전한 빛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문제는 육신적으로 늙고 병들어 죽기에 고통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 고통은 곧바로 이어서 이 세상에는 없기에 비교는커녕 상상조차 안 되는 너무나 풍성한 평강과 안락을 벅찬 감격과 감사로 받을 수 있게끔 하려는 하나님의 마지막 배려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마지막 고통이 어떤 형태로 얼마나 심할지 막상 겪어 보지 않고는 모릅니다. 또 천국 입성도 지금껏 보고 만지고 했던 일과는 전혀 다른 미지의 세계로의 탐험이 될 것입니다. 아무리 천국을 소망하더라도 죽음은 심히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잘 아는 한 장로님이 주무시는 가운데 아주 평온하게 소천(召天) 했다고 들었습니다. 큰 병을 몇 번이나 앓느라 온갖 약을 다 써본 제 같은 자는 죽을 때 극심한 고통으로 고생한다고 흔히 말합니다. 그래서 저도 가끔은 자는 가운데 불려가기를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에녹을 육신의 죽음을 거치지 않고 바로 천국으로 데려갔습니다. 모든 신자의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그가 어떤 삶을 살았기에, 또 그래서 어떤 면이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단지 하나님과 “동행했다”고만 하니까 더욱 궁금해집니다. 오늘날의 우리 또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이후로는 죽을 때까지 분명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세상 끝날 까지, 세상 땅 끝까지 함께 해주신다고 하신 약속을 당신께서 파기할 리 만무하지 않습니까?    

먼저 주지할 것은 본문의 동행한다는 단어의 뜻입니다. 실제로 계속해서 함께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실체가 이 땅에 나타나 에녹과 항상 손잡고 다녔다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그만큼 에녹은 하나님과 친밀한 인격적 관계를 쉼 없이 이어갔다는 것입니다. 그 분의 은혜와 권능을 삶의 세밀한 측면에서까지 마음껏 누리며 살았던 것입니다.

이렇게만 따지면 우리도 하나님과 동행함에 틀림없습니다. 새벽기도 빠지지 않으며 날마다 큐티를 하며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에녹 당시는 교회도 성경도 없었기에 어쩌면 우리의 신앙이 더 좋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에녹의 기사에 주눅이 든다면 동행의 의미를 조금 다른 측면에서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公義)를 행하며 인자(仁慈-mercy)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이 아니냐.”(미6:8)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예배드릴 때에 들고 나가야 하는 것에 대해 미가 선지자를 통해 주신 말씀입니다.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7절)보다는 공의를 행한 삶, 인자를 사랑하는 마음 자세를 갖고 나오라고 했습니다. 평소에 하나님과 겸손히 동행하는 모습을 보이라고 합니다.

본문에서의 동행과 에녹의 동행은 다른 단어이지만 그 어근과 의미가 동일합니다. 결국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이웃에게 공의와 선을 베풀고 자신의 죄는 하나님의 자비에 의지하여 항상 용서함을 구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수양의 기름만 바치는 종교생활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바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동행이 단지 신자로서 착하게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창6:9) 여기선 에녹의 ‘동행’과 똑 같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바로 노아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노아의 일생은 이웃에 공의와 선을 베푸는 차원을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소명을 자기 모든 것을 바치며 끝까지 적극적으로 성실하게 수행했습니다. 세상의 어떤 조롱과 멸시와 핍박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틀림없이 광신자나 맹신자이자 전혀 이해 안 되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실제 삶으로 그분의 뜻을 세상 사람들 앞에 온전히 드러내보였습니다.      

우리가 인식하거나 믿고 있는 주님과의 동행과 에녹이나 노아가 행했던 동행에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에녹이나 노아가 동행하는 행동의 주체는 둘 다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에녹이’ 주와 동행하더니,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들 쪽에서 하나님의 뜻에 자발적으로 순종하며 맡겨진 소명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동행의 주체를 하나님뿐으로 여기기 일쑤입니다. 주님 쪽에서, 그것도 하늘과 땅의 권세를 다 가지고 우리와 동행해주기만 기대합니다. 마치 수호천사처럼 언제 어디서 어떤 위급한 일을 만나도 해결해주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문제는 그것마저도 제대로 확신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기도, 예배, 찬양, 어떤 신앙행위를 해도 항상 “주님 함께 해주시옵소서!”라는 선창(先唱)부터 하고 봅니다.

물론 신자가 하나님을 어떤 형태로 찾던 당신께선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평소에 자신이 그분과 동행할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심지어 그분의 나와 동행하심조차 의심하면서 환난이 닥쳐야 동행해 달라고 울고 불며 매달리는 것은 온전한 동행이 전혀 아니라는 뜻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5:17)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요5:1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8:29)

예수님의 하나님과의 동행의 모습을 보십시오. 주님조차 항상 성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혼자 두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성부가 성자를 떠나거나 외면한 적이 있다는, 십자가 죽음의 예외를 빼고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은혜와 권능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알기 쉽게 말해 함께는 하되 침묵으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신자가 적극적으로, 열정적으로, 의지적으로, 큰 기쁨과 감사와 소망과 감격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한 감히 그분과 동행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혹시 하나님이 부재(不在)하는 것은 아닌지 감지할 때가 주로 언제입니까? 환난을 만나 아무리 간절히 기도해도 응답이 더딜 때입니다. 침묵의 하나님을 만나니까 혹시 동행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듭니다. 아닙니다. 당신의 자녀가 어려움 가운데 있는데 외면하는 부모가 있습니까? 자녀보다 더 안타까운 마음으로 앞서 가서 동행하십니다. 해결책을 적극 모색하면서 자녀에게 가장 유익한 때와 방법을 고르는 중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는 미가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그대로 신자가 공의를 행하지 않고 인자를 사랑하지 않을 때입니다. 그러면서도 당신이 주시는 복은 받으려고 천천의 수양의 기름만 바치니까 더더욱 외면하십니다. 어쩌면 그 동행을 진짜 취소할 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우리가 죄와 시험에 빠져 세상 쾌락을 즐기고 있을 때에 하나님 동행해 주시옵소서라고 선창하며 간구한 적이 있습니까? 솔직히 말해 전혀 없지 않습니까? 속마음으로는 제발 이 때만은 동행하지 말고 잠시 눈 감아 주시옵소서라고 바라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벌도 주지 않고 잠시 침묵하셨습니다. 신자의 기도에 얼마나 잘(?) 응답하시는 분입니까?

에녹의 죽음 없는 승천의 중요한 의미가 또 하나 있습니다. 죄악이 관영했던 고대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는 에녹과 노아 둘 뿐이었습니다. 살펴본 대로 적극적으로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다우심을 세상에 드러낸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에녹은 죽음을 맛보지 않는 그야말로 우리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바라는 모습으로 이 땅과 하직하게 만들었습니다. 또 노아는 온 땅을 뒤덮어서 모든 생물을 멸망시키는 그 엄청난 물의 심판 가운데도 건져내어 구원해 주었습니다. 단 두 명만 구원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동행하는 자가 단 두 명뿐이라도 영광의 구원을 베푸신 것입니다. 둘밖에 안 되어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구원의 방법에는 관심을 쏟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동행하는 자는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구원해 주십니다. 비록 마지막에 질병이나 돈이 부족해서 육신적으로 힘든 죽음을 겪을 수밖에 없어도 마지막 종착지 천국은 동일합니다. 노아나 에녹이 가 있는 천국이 천국 중의 천국이 아니며 우리 모두가 가는 바로 그 천국입니다. 서로 입성하는 시기만 다를 뿐입니다. 천국을 이미 보장한 이유는 오직 이 땅에서 온전한 믿음으로 거룩하게 살면서 주님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신자는 주님 쪽에서의 우리와 동행하는 측면에는 완전히 관심을 끊어도 됩니다. 아니 그것이 올바른 신앙입니다. 자꾸만 동행을 간구하는 것이야말로 엄밀히 말해 미성숙하거나 어딘가 모르게 자신이 없는 신앙입니다. 아마도 평소에는 하나님 몰래 어두운 구석에 숨어 있다가 다급한 경우가 닥치니까 자꾸 동행해달라고 부르짖을 것입니다.

다른 말로 실은 우리가 에녹 같은 죽음을, 심지어 누워 자는 가운데 평온한 죽음을 요구 내지 소망할 자격조차 없다는 뜻입니다. 노아나 에녹 같이 우리 쪽에서 세상의 핍박을 감사하게 기쁨으로 감당하며 그분이 맡기신 소명을 적극적으로 실현하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아니 단순히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지도 않지 않습니까? 그분의 너무나 은혜로운 동행을 수호천사 수준으로 격하시켜서 어려울 때만 동행을 간구하면서 에녹 같은 영광을 바랄 수는 결코 없습니다. 정말 낯 뜨거운 요구이자 헛된 소망일뿐입니다.  
    
이제부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주님과 동행을 새롭게 시작하십시오. 주님이 동행해주길 기다리거나 간구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내가 그분의 시키는 일을 감사와 기쁨으로 끝까지 적극적 자발적으로 수행하십시오. 그럼 하나님의 침묵은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나아가 이 땅에서부터 천국의 권능과 은혜를 넘치도록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당연히 기다리는 것은 너무나 복된 죽음이자 영광스런 구원의 완성입니다.

9/14/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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