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16-17 & 3:1-4) 이브가 사탄에게 넘어간 진짜 이유
인간 타락 담화 (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 2:16-17)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3:1-4)
너무나 평범한 선악과의 모습
주전 약 700년경에 이사야 선지자는 앞으로 오실 메시아의 모습을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53:2) 메시아의 외모와 신분은 매우 평범한 유대 남성으로 가문 재산 권세 등 인간사회에서 통용되는 세속적인능력은 전혀 내세우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유대 땅의 가난한 목수 집안의 장남으로 오셨습니다.
간혹 선악과 금령에 대해 끝내 풀지 못한 한 가지 의구심을 갖고 있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비유로 설명하자면 동네 아이들이 탐스럽게 익은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가지가 담장 밖으로 늘어진 것을 보고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따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집의 심술궂은 할아버지가 아이들이 틀림없이 그럴 줄 예상하고 숨어서 기다리다가 아이들이 감을 따먹자마자 곧바로 혼내준 것처럼 여깁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선악과를 동산 중앙에 두지 말고 깊숙이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두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과 심판을 나눈다는 차원에서 선악과는 예수님을 상징하므로 평범한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처럼 유별나지 않아야 합니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아무 때나 쉽게 볼 수 있는데도 따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까 틀림없이 그 모습, 색깔, 향취에서 아주 평범했을 것입니다. 담장 밖으로 치렁치렁 늘어져서 따먹으라고 유혹하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인간 타락에 하나님도 일말의 책임이 있게 됩니다.
그러나 최초 인간들이 처음 얼마동안 선악과를 따먹을 생각을 하지 않은 이유가 꼭 그 평범한 모습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더 중요하게는 하나님이 임의로 먹으라고 허락한 다른 과실로 충분했기에 굳이 선악과를 먹을 필요도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베푸신 사랑을 풍성히 누림으로써 아무 부족함이 없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불행하게도 이브가 사탄의 꾐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하나님이 경고하신 대로 인간에게 죽음이 임했고 이 땅에 온갖 모순 왜곡 파괴가 나타났습니다. 이브로선 선악과를 굳이 먹지 않았어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는데도 사탄에게 넘어갔으니 분명 그녀의 책임이자 잘못입니다. 나쁜 친구가 협박이나 보상을 약속하지 않고 단순히 말로만 설득했는데 넘어가서 갱단이 되었다면 전적으로 본인의 잘못이듯이 말입니다.
사탄의 유혹의 초점은 그녀로 하여금 모든 과일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잠시 잊어버리게 만들고 대신에 선악과를 통해 떠올리는 하나님의 이미지를 비유의 심술쟁이 할아버지처럼 여겨지게끔 만든 것입니다. 오늘날의 신자들도 그 교묘한 모략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봄으로써 구원 후에도 계속 넘어뜨리려는 사탄을 제대로 이겨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탄의 기원과 능력
뱀이 먼저 이브에게 찾아와서 선악과 금령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이는 사탄이 뱀을 이용해 자기 말을 대신 전하게 한 것입니다. 모압의 주술사 발람이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출발하자 하나님은 나귀의 입을 열어서 그를 꾸짖었습니다.(민22:28) 비록 사탄이 하나님에 의해 피조 된 존재이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신 영적 능력이 대단하므로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지금도 영매나 무당 속에 다른 영을 집어넣어서 그 영의 음성으로 대신 신탁하게 만듭니다. 예컨대 젊은 여자 무당이 굵은 남자 목소리로 점괘를 말하게 만드는 것이 사탄입니다.
사탄의 기원에 대해선 성경은 아주 간략하게 그것도 묵시적으로만 언급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비롯한 물질계를 창조하기 전에 당신의 피조물들을 특별히 당신의 자녀들을 섬기도록(히1:14) 영계에서 천사들을 먼저 만들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뛰어난 지혜를 지닌 천사장이 사탄이었습니다.
이사야 14;12-20에서 계명성(흔히 새벽별로 불리는 금성, 라틴어로 루시퍼)에 비추어서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려 하다가 땅으로 쫓겨나 이 땅을 황무케 하지만 결국 음부 맨 밑에 빠트려질 자라고 합니다. 에스겔 28:11-19에선 두로 왕에 비추어서 지혜가 충족하여 지음을 받던 날부터 완전했으나 마침내 교만한 불의를 드러내었기에 땅으로 던져졌다고 합니다. 특별히 에스겔 선지자는 사탄이 옛적에 에덴동산에 있었으나 범죄 하였다고 말합니다. 요컨대 하나님이 만드신 천사 중에 최고로 지혜로웠으나 감히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넘보다가 지상으로 쫓겨난 영적 존재가 사탄입니다.
사탄이 뱀을 이용한 까닭을 성경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중동지역에는 뱀이 아주 흔한데 고대에는 생명과 죽음과 지혜를 상징하는 동물로 여겼습니다. 아마도 어디에 있는지 모르게 교묘하게 숨어 있다가 불시에 나타나 사람을 물면 바로 죽기 때문에 그런 의미를 부여했을 것입니다. 사탄은 이브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목적으로 그런 뱀을 이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경륜에 따르면 이 물질계 안에선 인간보다 고등한 존재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땅과 인간을 창조하기 이전부터 영계에서 가장 간교하고 능력이 많았던 사탄인지라 하나님은 물론 인간의 속성을 그만큼 잘 아는 존재는 없습니다. 선악과 과실에는 인간의 생명과 죽음을 나누는 하나님의 신묘한 지혜가 충만하게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을 사탄은 익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탄의 교묘한 속임수
간교한 사탄이 이브에게 건넨 첫마디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나님은 모든 과실을 임의로 먹으라고 허락해주면서 딱 하나만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사탄은 정반대로 모든 과실을 먹지 말라고 하더냐고 시침을 뚝 떼고서 완전히 부정적인 뜻으로 바꿔서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99.9%를 허락했고 0.01%만 금지했는데 마치 100% 금지한 양 몰아갑니다. 이브로선 평소에는 하나님의 허락한 99.9에 감사하며 살면서 하나님이 금지한 0.01에 대해선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전부 금지한 것 아니냐고 슬쩍 떠보니까, 그것도 참으로 그랬느냐고 다그치니까 어쨌든 하나는 금지되었으니 불현듯 이브의 모든 생각이 금지한 것 하나에만 집중되었습니다. 왜 하나님이 구태여 그것만 먹지 못하게 했지라는 의심과 원망이 슬금슬금 올라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이브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엉뚱한 대답이 튀어나왔습니다.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나님의 뜻은 동산 나무의 모든 열매를 선악과만 빼고 임의로 먹으라는 넘치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브가 “먹을 수 있으나”라고 하나님이 유보적으로 허락했다고 말합니다. 마치 다른 과실들마저 마지못해 따먹어도 된다고 말했다는 뜻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녀의 생각이 하나님의 금지 쪽으로 편향되면서 사탄의 장단에 맞춰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선악과는 단지 먹지 말라고 했는데 만지지도 말라고 했다고 하나님이 하시지도 않은 말씀을 덧붙였습니다. 두 사람더러 아예 선악과 근처에도 오지 말라는 것이므로 하나님이 자기들을 싫어한다고 오해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내용을 이브 스스로 왜곡시켜버렸고 자신의 감정까지 일부 묻어나왔습니다.
더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뒤집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엄중히 경고했습니다. 죽음 외에 다른 여지는 전혀 없다는 아주 단순한 의미의 서술문입니다. 그런데 이브는 하나님이 “죽을까 하노라”라고 말씀하셨다고 대답함으로써 죽지 않을 가능성이 더 많은 것처럼 변질시켰습니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금지시킨 의미가 완전히 무색해졌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 대신에 사탄을 주인으로 모시겠다는 빈틈을 내보인 것입니다. 간교한 사탄이 그 틈을 놓칠 리 없습니다. 이브가 먼저 선악과를 먹어도 아무런 폐해가 따르지 않을 것처럼 시인한 셈이니까 사탄으로선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단정적 서술문의 형태를 똑같이 그대로 빌려서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정반대의 의미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브의 의심 주저 불신 원망에 사탄이 편승해서 너무나 뻔뻔한 거짓말을 하는데도 그녀는 이미 하나님을 등지고 사탄 쪽으로 고개를 돌렸기에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그대로 질질 끌려가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하나님은 선악과 빼고는 모든 과일을 임의로 먹으라고 했습니다. 엄청난 은혜요 축복을 먼저 베푸셨습니다. 인간에게 적극적 능동적으로 그 복을 찾아서 누릴 권리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브는 어리석게도 스스로 그 권리를 걷어 차버리고 거꾸로 사탄의 교묘한 말장난에 자기도 모르게 맞장구쳐주면서 절대 걸어가서는 안 되는 죽음의 길 쪽으로 들어선 것입니다. 이는 인간이길 스스로 포기하는 인간의 자기비하이자 엄밀히 말해서 스스로 죽음을 구하는 자살과 다름없습니다.
지금 사탄은 하나님의 100% 완전한 진리를 100% 완전한 거짓말로 바꿨습니다. 결국 이브는 물론 아내의 부추김을 받은 아담도 거짓을 진리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거역 대적하는 죄를 범했고 그 결과 그 모든 후손은 그런 죄의 본성을 갖고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 때는 물론 지금까지도 당신을 알만한 것을 만드신 만물과 인간의 양심에 보여주고 있으나 모든 인간들이 그분을 찾지도 두려워하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대신에 그분의 영광을 온갖 우상 특별히 돈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이 땅은 하나님을 싫어하여 대적하는 자들의 놀이터가 되었고 최근 믿음이 없어도 제대로 상식과 이성이 있는 사람들조차 점점 더 체감하듯이 멸망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사탄에게 넘어간 진짜 이유
그런데 이브가 사탄의 교묘한 말장난에 말려들어간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가끔 드는 비유로 알기 쉽게 설명해보겠습니다. 아주 번창하는 대기업에서 매출을 가장 많이 올리는 부서의 부장이 영업직원들에게 연말 보너스로 일억 원씩 주겠다고 약속해도 모두가 반신반의하거나 농담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반면에 오너 사장이 그렇게 약속하면 의심하는 사람이 잘못입니다.
동일한 약속인데도 누가 약속했느냐에 따라서 그 신뢰성과 그에 대한 반응이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약속한 내용으로는 금액이 너무 커서 믿기 힘들지만 약속한 사람이 사장이면 그 사정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것도 평소에 빈말을 절대 하지 않은 사장이라면 그 약속을 의심 불신하는 자가 바보입니다. 사장의 인격과 명예를 훼손하는 큰 잘못일 뿐 아니라 그 사장에게 월급을 받아 살아가는 직원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도리마저 저버린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나이 99세에 여호와 하나님은 내년 이맘때 아들을 준다고 다시 약속했습니다. 부부 둘 다 생리적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었는데 성경은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창15:6,7)고 말합니다. 그가 여호와의 약속보다는 여호와 그분을 더 믿었다는 뜻입니다. 여호와를 믿으니까 그분의 약속도 함께 믿어진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가 가진 믿음에 맞추어서 당신이 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다시 확인해주었습니다. 이전에 그가 당신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갈 바 모른 채 가나안으로 왔지만 당신께서 이방 땅에 강건하게 자리 잡게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크신 권능과 넘치는 은혜를 충분히 체험했으니 그분의 약속도 충분히 신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는 명령도 당시 상황에선 목숨을 거는 모험이었으나 하나님이 모든 환난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주셨습니다. 이 단계에 이르러선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콩을 팥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의 순전한 믿음을 보시고 그의 의로 여기시고 즉, 그의 믿음이 아닌 그를 의롭다고 칭해주신 것입니다.
이브도 하나님이 모든 과일을 임의로 먹어도 된다는 약속을 온전히 지키시는 것을 이미 체험했습니다. 지금껏 그분의 품 안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매일 매일의 삶이 너무나 풍성했음을 익히 체험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분을 절대적으로 믿어야 했는데도 사탄이 너무나 영악하게 하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을 가지고 말장난을 쳤습니다. 이브로 약속하신 분이 누구인지는 잊어버리게 하는 대신 약속의 내용에만 집중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브가 그렇게 된 데는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을 임의로 맡겨두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해도 벌을 주지 않는가보다 착각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브가 하나님의 선악과 금령에 대해서 미처 몰랐던, 알았다 해도 잠시 잊어버린 또 다른 아주 중요한 사항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신자들도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의 구원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진리입니다.
선악과 금령의 진짜 의미
하나님은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선언했습니다. 이를 하나님이 인간이 당신의 명령을 어겼으니까 그 벌로 반드시 죽음을 준다고 해석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피조물 주제에 감히 창조주를 거역하다니 절대로 가만 두지 않겠다는 그런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반드시 죽으리라”고 했지 죽음의 벌을 줄 것이다 혹은 받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선악과를 먹는 순간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벗어나면 진짜로 자동으로 반드시 죽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불순종한 행동을 보고 추가로 벌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태초부터 창조의 경륜과 질서가 그렇게 되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선악과 금령은 인간에게 도덕과 종교적 순종을 요구하기 이전에 생명과 죽음이 나눠지는 피조물들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진술한 객관적인 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 생명이고 그분 밖에 있으면 죽음일 뿐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인간의 나고 죽음은 인간이 절대 좌우할 수 없고 하나님만이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 중간에 이 땅에서 살아가는 평생도 그분과 함께여야만 참된 생명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반대가 되므로 마땅히 죽음입니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이치인지라 불신자들도 사실상 이 진리를 알고 있습니다. 본인이 계획은커녕 전혀 예상치도 않은 불행이나 고난이 닥치면 잘 알지는 못하지만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까? 자신의 나고 죽음만이 아니라 인생 자체를 다스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엄청난 힘이 있다고 어렴풋이 깨달은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이 모든 인간에게 그분의 형상을 닮은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선악과 금령의 의미는 그래서 피조물인 인간은 어느 누구도 그 분의 거룩한 통치에서 절대로 한 시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통치 아래에 있으면 하나님의 순전한 사랑을 충만히 받을 수 있고 또 그 받은 사랑으로 이 땅을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행할 바는 그분의 사랑을 다른 이들과 함께 누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이 선악과 금령에 드러난 참 진리이고 그것을 아는 자는 그 진리가 그 인생을 풍족하고도 자유롭게 해줄 수 있습니다. 반면에 그 진리 밖에 있다고 해서 하나님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신자들의 너무나 어리석은 착각일 뿐으로 반드시 그분의 심판이라는 궁극적인 통치를 받게 됩니다.
바꿔 말해 하나님의 품을 절대 벗어나지만 않으면 인간의 유익 안전 기쁨 만족 행복을 당신께서 다 책임지겠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99.9% 임의로 해도 된다고 했으니 하나님이 그만큼 다 알아서 행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역으로 따져 하나님이 그래야만 인간이 임의로 따먹을 수 있지 않습니까? 반대로 인간더러 0.01%만 지키라는 것은 그것 하나를 못 지킬 때만 유일하게 당신이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지켜야 할 그 최소한의 의무를 선악과를 동산 중앙에 항상 보이도록 둠으로써 인간의 임의에 맡겼습니다. 당신에 대해서 강제적 기계적 자동적 맹목적 혹은 이해타산적인 순종은 하지 말라는 뜻일 뿐입니다. 진짜 더 깊은 뜻은 하나님의 품을 벗어나지 않고 당신과 친밀해질수록 더 큰 은혜와 권능을 누릴 수 있고 그분과 멀어질수록 반대의 결과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에겐 자기 인생의 승패를 가름하는 진리로 마치 축복을 더하고 빼는 것 같은 너무나 간단한 이치입니다. 나무 이름 그대로 선악 간에 분명히 나눠지므로 누구라도 쉽게 따를 수 있는데도 이브도 실제로 하나님의 선을 풍성히 체험하고도 정반대로 악을 택했습니다.
사탄은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어떻게 생성 보존 성숙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을 부인 외면 대적하라고 절대 부추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그분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서 자꾸만 잊어버리게 만들고 그분이 행하는 일에만 주목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그렇게 말했는가라고 즉,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걸고넘어진 것입니다. 이브로 하여금 그 크신 사랑과 권능을 인간적 안목으로만 분별 판단하게끔 만들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의심 불신하는 감정에 휩쓸리게 해서 그 넘치는 은혜의 약속을 단지 심판을 위한 율법적 규정으로 인식하도록 바꿔버린 것입니다.
이브의 결정적 잘못은 그래서 선악과 금령이 이미 창조 안에 마련되어 있는 질서라는 점을 온전히 몰랐던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만이 절대적 진리이자 생명일 뿐 아니라 그분만이 오직 선이므로 그분과 어긋나는 순간 모든 것이 악이자 죽음이라는 것을 미처 실감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무조건적 복종만 요구하는 종교적 계명으로만 간주한 것입니다.
회사사장의 보너스 약속의 비유처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확실하면 어떤 말씀을 해도 믿을 수 있는데 사탄이 그것을 거꾸로 이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상하니까 그렇게 말씀하신 하나님도 이상하지 않는가 한 번 더 잘 생각해보라고 꼬드기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눈에 보이는 현상에다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입니다. 선악과가 동산 중앙에 너희가 항상 볼 수 있도록 버젓이 만들어 놓고 특별히 색깔 모양 향취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너무나 평범한데도 먹지 말라고 명령한 것이 아무래도 조금 이상하지 않느냐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라고 부추긴 것입니다.
오늘날도 동일한 사탄의 시험
오늘날도 영적인 시험이 이와 똑같은 모습으로 옵니다. 현재 일어나는 일들에 정신이 팔려서 왜 이런 고난을 왜 나에게만 주시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싫어하는가,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가, 내 사정을 전혀 모르는가, 그렇게 오래 기도했는데도 왜 아직도 침묵하는가, 등등의 의심부터 생기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님 그분은 옳고 선하며 우리가 생각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정미 신묘 완벽하다는 진리를 수시로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요컨대 하나님 그분에게 모든 영적 시선을 집중해야 하는데도 그분이 주도하는 사건과 여건에 인간적 생각을 덧칠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뜩이나 죄의 본성이 살아 있고 어리석은 인간인지라 아무리 고상하고 경건한 생각이라도 하나님을 등지거나 멀어지면 헛되고 헛된 쓰레기에 불과해집니다.
사탄이 이브에게 하나님이 약속한 내용에 주목토록 만든 것은 그녀로 하여금 결국 과실을 먹느냐 못 먹느냐는 일회성 도덕적 종교적 행위에만 온 신경을 집중시키게 한 것입니다. 자연히 그 동안 바보처럼 먹지 않았다는 것이 불만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부 다 주지 않았고 그만큼 나를 덜 사랑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신자들이 기도하는 제목이 항상 무엇입니까? 하나님 다른 문제들은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제발 이 문제만 해결해 주세요. 그러면 평생을 주님께 충성 헌신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그 하나의 문제 말고는 전부 다 은혜로 받았다는 사실은 전혀 생각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 그분은 안중에 없어지고 그분이 나에게 줄 축복에만 관심이 있는 것인데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만약 아브라함의 믿음이 자식들 많이 낳고 세상에서 형통 출세시키고 가나안에서도 아무 어려움 없이 큰 민족을 일으켜 달라고 요구했다면 갈대아에서 불러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전혀 모르지만 하나님만 따라 나왔습니다. 하나님도 가나안에서도 온갖 고난을 겪게 한 후에 백세에 가서야 비로소 아들을 주었습니다. 비로소 하나님 당신만 바라볼 수 있게 된 때입니다. 그리고 그 후손들도 애굽에서 사백 년 넘게 노예로 핍박받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가장 유익한 길이자 하나님의 이 땅을 다스리는 특별히 죄인을 구원하는 가장 완벽한 계획이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하나님다우심을, 그 첫째 증거인 창조를 부인하는 순간 인간의 정체성을 스스로 비하시키는 것입니다. 인간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의 품을 벗어나지 않을 때만이 인간으로서 고귀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악과에 드러난 그분의 사랑이자 다른 한 편으로는 인간의 한계이자 숙명입니다. 인간이 그 한계를 벗어나는 것은 인간이길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짐승이나 로봇으로 전락하고 말지 절대로 신이나 신적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오해는 마셔야 합니다. 일반인들에도 하나님은 일반적인 은총 즉, 고급한 피조물로서 필수적인 여건 자원 지혜 윤리 등은 베풀어주십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선하게 살고 인간 사회를 위한 큰 업적을 쌓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하나님 즉, 절대적인 생명과 진리가 그들과 함께 하지 않기 때문에 결코 온전한 기쁨 만족 자유는 물론 평강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들이 윤리적으로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기본적으로 자신을 물체나 짐승으로 인식하므로 그 과정과 결말 또한 자신들의 그런 정체성에 맞추어 헛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피조물 중에 가장 뛰어나 인간이라도 영계에서 일어난 천사들의 반란 사건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적 존재인지라 자신의 시작과 끝을 절대 자의로 조정할 수 없는 너무나 연약한 존재임을 자각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 물질계가 전부가 아니고 더 의미가 있고 중요한 영적 차원이 인간이 이 땅에 존재하기 전부터 실재하고 있었다고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가장 먼저 깨달아서 평생 동안 놓치지 말아야 할 진리는 다시 강조하지만 자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출생과 죽음이 당장 그러하며 또 그래서 그 중간의 인생도 그러합니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참된 선을 누리기 위해선 반드시 평생토록 그분 앞에 철저히 처음부터 끝까지 겸손하게 엎드리고 전적으로 의탁해야만 합니다. 그 진리를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정확히 깨달은 신자는 가장 먼저 또 반드시 하나님은 물론 그 만드신 모든 만물 앞에서 절대로 교만하지 말고 항상 한 없이 겸손해야만 합니다. 꼴 보기 싫은 주변 사람들 앞에선 주님을 닮아서 더더욱 그래야 합니다.
사탄은 지금도 이브에게 사용한 전략을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시종일관 신자더러 하나님 당신보다 그분이 약속한 풍성한 내용과 대조되어서 현재 자꾸만 고난으로 이어지는 어려운 상황에만 관심을 쏟게 만듭니다. 하나님 그분이 얼마나 선하시고 은혜가 풍부한지 잊어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믿음의 싸움은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그 사랑과 권능이 너무나 풍성하신 하나님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신자는 언제 어디서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만 바라보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 길 외에는 언제라도 다시 선악과를 따먹고 사탄에게 넘어가는 죄를 범할 수 있음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6/5/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