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14,15) 사탄의 후손과 원수 된 여자의 후손
인간 타락 담화 (9)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3:14,15)
사탄과는 상대도 않는 하나님
하나님은 당신의 음성을 듣고 두려워서 숨은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게 된 경위를 물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뱀의 꾐에 넘어갔다고 이실직고 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아담은 이브가 권했다고, 다음에 이브도 뱀이 자기를 속였다고 둘 다 제삼자에게 책임을 돌렸습니다.
그럼 이제 뱀에게 그 사실 여부를 심문해야 할 차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뱀에게 네가 정말로 거짓말했는지 또 왜 그랬는지는 전혀 묻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라고 그의 죄과를 수용하고 판결부터 내립니다.
뱀으로선 사탄에게 억울하게 이용당했다는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대신해 이 땅의 다스려야 할 청지기인 인간을 감히 거꾸로 조종하려든 것은 물어볼 것도 없이 큰 죄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판결은 사실상 뱀의 배후에 있는 사탄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천하 만물을 만드시고 인생만사를 거룩하게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악의 우두머리인 사탄과 대화를 나누며 상대해줄 위치가 결코 아닙니다. 그간의 모든 전후사정을 꿰뚫어 아시므로 굳이 사탄에게 변호할 기회를 줄 이유나 필요도 없었습니다.
일부 이단 교파에서 이 세상을 사탄과 하나님이 서로 팽팽히 힘겨루기를 하는 전쟁터라고 가르칩니다. 승패가 번갈아 이뤄지므로 인간에 대한 궁극적 통치도 시공간적으로 한 번은 사탄이 한 번은 하나님이 행한다고 주장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영적으로 대단한 능력을 지닌 사탄이라도 하나님의 피조물인 뱀을 당신의 허락도 받지 않고 맘대로 갖고 놀았습니다. 나아가 당신께서 사랑하셔서 보호 인도하고 있는 아담과 이브를 교묘하게 유혹했습니다. 가장 뛰어난 천사였으나 천상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려했던 교만하고 사악했던 생각을 인간에게도 불어넣어서 파멸시키고 당신의 창조 사역의 근간부터 완전히 흔들어버리려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세상 만물과 인간을 당신의 뜻에 합당하게 만드시고 흡족해 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하나님이 예상하고 있었지만 사탄이 최초 인간을 거짓말로 영적 살인한 것은 인간의 잘못과는 별개로 그 자체로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죄악입니다. 하나님으로선 곧바로 심판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심판이 사탄을 당장 멸하거나 큰 벌을 내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사탄에게 실제적인 변화가 전혀 없었기에 사람들로 계속해서 사탄의 유혹과 시험에 노출시켜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이 때 곧바로 사탄의 수족을 꽁꽁 묶지 않으셨는지 추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배로 다니라는 심판의 의미
하나님은 일차적으로 뱀에게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는 선고를 내렸습니다. 다른 모든 가축과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모든 동물들도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함께 저주 받을 것이라는 뜻이 내포되었습니다.
문제는 살아있는 동안에 배로 다니는 것은 분명 뱀에게 해당되지만 이 벌로 인해서 뱀이 흙을 먹고 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뱀을 조종한 사탄을 향한 선고인데 사탄 역시 물질계에 제한받지 않으므로 흙을 먹어야 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흙을 먹는다는 것은 배로 다니는 것을 더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사탄이 살아있는 동안 즉, 하나님이 완전히 멸망시키기 전까지는 땅에서 배로 기면서 지내라는 것입니다.
사탄은 이 땅으로 쫓겨난 직후부터 삼위 하나님 앞에선 영원토록 바싹 엎드려야만 하는 존재였습니다. 사탄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 하나님이 지금 선고하신 내용 그대로 행했습니다. 최초 인간을 최초로 유혹하면서 사자나 코끼리 같이 위엄 있는 자태가 아니라 배로 기는 뱀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틀림없이 아담과 이브가 순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을 때는 아예 나타나지도 못하고 숨어 있다가 하나님과 떨어져서 한가하게 쉬고 있는 빈틈을 노렸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판결은 앞으로도 사탄의 그런 신분과 위치에서 전혀 변함이 없을 것이며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들 앞에서도 반드시 그런 위치로 지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혹시라도 사탄이 그런 신분에서 벗어날 시도를 한다면 하나님이 나서서 벌주겠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을 거역한 큰 죄를 범했고 뱀을 만든 하나님의 책임이라는 궤변까지 늘어놓았는데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에 대한 사랑의 보호막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사탄에 대한 하나님의 실질적인 심판은 이어지는 판결에 담겼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라고 했습니다. 사탄이 먼저 유혹한 대상은 이브였는데 아담에 남자라는 뜻이 있듯이 이브에는 여자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브가 사탄에 속아 넘어가 하나님과 잠시 원수 상태에 빠졌지만 이브부터 구원해서 당신께서 계획하신대로 다시 사탄과 원수 사이가 되게끔 만들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어서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사탄은 영적인 존재인지라 자식을 낳을 수 없기에 네 후손이 사탄의 자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상에서 있었던 반란 사건에 가담했던 천사 중 1/3의 악한 천사들이 지상으로 함께 쫓겨져 내려왔기에(계12;3,4) 사탄은 따로 후손을 둘 필요도 없습니다.
이는 여자의 후손과 대비되는 표현으로 또 다른 인간의 후손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중에 이브를 일방적 은혜로 구원해주면 이브도 하나님을 거역하는 동일한 죄를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회복된 이브처럼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인간들의 계열을 뜻합니다. 사탄의 후손은 그와 반대되는 인간 계열로 사탄의 거짓에 속아서 끝까지 하나님을 거역 대적하며 이 땅이 전부인 줄 알고 사탄처럼 자기를 하나님보다 더 높이려 드는 사람들입니다.
결국 앞으로 인류의 역사는 이런 두 부류의 사람들끼리 하나님을 따르느냐 마느냐, 영적으로 살아 있느냐 죽었느냐, 도덕적으로 선하게 사느냐 악하게 사느냐는 투쟁의 연속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현재로선 이브가 모든 인간의 선조로 유일하게 후손을 낳을 수 있는 여자입니다. 그럼 당연히 이브의 몸에서 사탄의 후손도 나올 것이라는 뜻이 되는데 실제로 차남 아벨은 하나님을 믿고 따랐지만 장남 가인은 정반대의 멸망의 길로 가버렸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분명히 부모로부터 영적 교육을 함께 받았을 텐데도 요셉과 에서의 경우처럼 극과 극으로 나눠졌습니다. 말하자면 한 부모에게서 난 형제들 중에도 구원 받을 자와 그러지 못할 자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선택에 의해서 나눠진다는 뜻이 됩니다. 성경은 창세기의 가인과 아벨 사건, 아니 그전에 본문에서부터 이중예정구원이 진리라고 분명히 드러낸 것입니다. 지금은 예정론에 대해 논할 시간과 여유가 없습니다. 이 말씀의 일차적인 뜻은 사탄이 멸망당하기 전까지 사람은 하나님을 따르는 자와 사탄에 미혹된 자 두 부류로 나눠진다는 예언입니다.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한 예수님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사탄에게 결정적인 선고를 내립니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남자를 가정의 영적 지도자로 세웠기에 남자 혹은 아담의 후손이라고 말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그런데도 여자의 후손이라고 표현한 까닭은 이미 말씀드렸듯이 죄가 들어온 첫째 통로가 이브이므로 그녀부터 깨끗케 되어야만 했습니다. 또 남자와는 무관하게 동정녀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될 것이므로 여자의 후손이라고 적시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는 죄인을 구원하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것이라는 성경 최초의 예언으로 원시복음이라고 칭합니다.
머리는 알다시피 모든 지략이 나오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므로 사탄의 모든 흉계를 깨뜨리고 모든 권세를 무력화시킬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탄도 예수님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머리가 상하면 완전히 망하지만 발꿈치가 상하면 금방 회복됩니다. 그렇다고 사탄이 예수님에게 미약한 손해만 입혔다고 여겨선 안 됩니다.
사탄은 하나님 다음으로 영적으로 뛰어난 존재인지라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자마자 원시복음이 실현될 때가 드디어 왔나보다 직감했습니다. 헤롯 대왕의 권력 욕심을 선동해서 아기 예수를 죽이려했으나 요셉이 꿈에서 천사에게 경고 받은 대로 애굽으로 피신했습니다. 주님이 공사역을 시작하려 하자 사탄은 곧바로 그 시작부터 훼방하고자 광야로 찾아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시험했습니다. 그 시험도 실패하자 유대종교 지도자들을 동원해서 끈질기고도 교묘한 시험을 걸면서 복음 전파 사역을 막으려 들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을 사주해 예수님을 죽이려 유도했으나 주님을 따르는 유대 대중들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사탄은 마지막으로 주님을 십자가에 죽이면 메시아 구원 사역이 종식될 것이라고 보고 자기 후손들을 선동해서 로마 반역죄의 누명을 씌워서 십자가에 매달리게 했습니다. 사탄으로선 주님이 자기 머리를 상하게 하기 전에 자기가 먼저 주님의 머리를 상하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사흘 만에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서 십자가 죽음조차 본문 예언 그대로 주님의 발꿈치만 상하게 하는 것으로 그쳤습니다.
그런데 사탄의 그런 모략들이 있기 이전에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자체가 십자가에 달려서 죽는 것이었습니다. 사탄과 무관하게 죽으러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여러 번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가르쳤고 그 일을 막아서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꾸짖었습니다. 이어서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즉, 여자의 후손인 네가 왜 사탄의 후손이 되려하느냐고 야단쳤습니다.(마16:23) 유다가 당신을 밀고하려 나가자 이제 곧 십자가 죽음으로써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로 인해 영광을 얻었다고 선언했습니다.(요13:31) 스승과 이별을 앞둔 제자들이 슬퍼하자 당신께서 떠나가는 것이 그들에게 도리어 유익인데 성령님을 보내주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위로했습니다.(요16:7)
예수님은 사탄의 그 끈질긴 모략들의 의도를 훤히 꿰뚫어 보시고 오히려 그것들을 이용해서 부활하심으로 당신께서 이 땅에 오신 구원 목적을 완벽하게 성취했던 것입니다. 사탄이 존재하는 이유는 이브의 시험에서 보다시피 인간으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 하나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가로막는 모든 담들을 당신의 육체로 찢어서 다 허물어버렸습니다.
사탄의 일방적 패배가 아니다.
그렇다고 사탄이 일방적으로 패배했다고 간주해선 너무 순진한 생각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이 오실 때부터 메시아임을 알았고 당신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다는 예언까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탄은 그 동안 지켜본 주님의 능력을 봐서 충분히 부활할 수 있다고도 예상했을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의 자리까지 넘봤던 그인지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 예수가 부활해도 사람들에게 큰 영향이나 의미를 끼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메시아를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 하는 것만으로도 여러모로 자기에게 유리하거나 최소한 밑질 것 하나 없다고 영악한 계산을 한 것입니다.
실제로 주님의 십자가 죽음은 사람들에게 많은 실망과 불신을 불러 왔고 제자들마저 깊은 절망과 불안에 빠졌습니다. 당신의 예언대로 삼일 만에 부활하셨지만 예수님은 당신이 택한 신자들에게만 나타났습니다. 부활에 대한 소망은 소수의 제자들만 가질 수 있었고 일반인들은 주님의 부활을 제대로 목격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는 헬라인에겐 미련하게 유대인에겐 거리낌으로 여겨졌습니다.(고전1:23) 이방인들로선 구세주가 자기 자신도 구원 못하고 죽었고 로마 제국은 끄떡없이 더 건재하니까 어리석은 죽음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유대인들로선 나무에 달려 죽으면 하나님께 저주 받은 것으로 간주되었으므로(신21:23)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서 그런 죽음을 당할 수는 없다고 멸시했습니다. 놀랍게도 이런 오해가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이어지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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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의 계산대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찻잔 속의 미풍으로 그칠 판국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수의 부활의 목격자들이 스승이 이 땅에서 살았던 모습을 그대로 따라 당시의 음란하고 타락한 세태와는 정반대의 거룩한 삶을 살았습니다. 로마의 극심한 종교핍박에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십자가 복음을 전하면서 주님처럼 기꺼이 자기 생명까지 던졌습니다. 예수님을 그대로 닮은 소수의 초대 신자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끼치는 의로운 영향력은 너무나 컸고 십자가 복음은 어느 누구도 막지 못하는 염병처럼 번져나갔습니다.
이는 사탄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탄의 머리 위에 계셨던 것입니다. 살아계셨을 때 당신의 사역과 가르침보다 오히려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의 존재와 삶으로 더 큰 구원을 이뤄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전에 제자들에게 격려했습니다.(요14:12) 사탄은 예수님만 이 땅에서 없애면 예수 운동이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예수님이 떠나가는 것이 유익하다고 예언하신 그대로 이 땅에 안 계실 때에 더 크고 뜨거운 예수 운동이 로마 제국 전체를 불태워버렸습니다. 문자 그대로 사탄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밖에 상하게 하지 못했으나 여자의 후손은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했습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에는 모든 인간은 여호와를 믿고 따르는 유대인들과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인들로 나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마저도 우상숭배의 죄에 빠져서 온갖 윤리적 죄악을 범하고 단순히 형식적 성전 제사와 율법의 문자적 준행만 행했으므로 순전한 믿음을 지닌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그러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이후로 그분의 참 생명에 믿음으로 참여하는 자와 그러지 못해 사탄의 죽음 안에 머무는 자 둘로만 나눠졌습니다. 인종 나라 지성 문화 종교 재물 성별 권력 계급 등 그 동안 인간사회에 통용되던 인간을 분류하는 모든 기준은 다 무효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예수를 따르느냐 대적하느냐 둘로만 사람을 구분하게 되었습니다. 사탄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이 원수 사이가 된다는 계시도 완벽하게 성취된 것입니다.
사탄의 훼방을 허용하신 하나님
문제는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사탄의 능력과 그 활동에는 그 때난 지금이나 전혀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신자들을 아담과 이브를 교묘하게 속였던 그런 계략으로 집어삼키려고 우는 사자처럼 항상 노리고 있습니다.
사탄이 삼위 하나님은 물론 그분의 백성들 앞에서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비천한 신분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형벌이라고 할 수 있는 여자의 후손이 와서 그 머리를 상하게 하는 일은 본문의 상황에서 먼 훗날에 실행될 것입니다. 선악과로 인해 사탄이 당장 벌 받은 것은 없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인류역사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어느 시점에서 여자의 후손이 나타나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예언 하나뿐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사탄에게 아무런 심문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여자의 후손이 와서 너를 상하게 한다는 선고를 내렸습니다. 당시로선 사탄도 최초 인간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갔고 오늘날의 성경독자들도 그렇게 중요시 여기지 않는 원시복음을 선포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으로선 반드시 이때 이런 상황에서 그렇게 계시해야만 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 뜻은 한마디로 하나님이 사탄에 대한 대비책을 그 전에 이미 다 마련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간혹 신자들이 하나님이 최초인간이 타락할 줄 다 아시고도 선악과를 주셨기에 세상에 죄가 들어오는데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여기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타락하기 전에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을 이미 예비해 놓으셨다고 선언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간이 타락한 후에야 사탄의 흉계를 알았다면 그 자리에서 사탄에게 큰 벌을 주어야 합니다. 사건이 일어난 후 세우는 대책은 당장의 피해를 처리하는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사탄으로선 형벌이라고 전혀 실감되지 않는 먼 훗날의 계획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먼 훗날의 계획이란 오래 전부터 장기간의 미래를 염두에 두고 세우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사탄에 대한 심판이라기보다는 이 이후에 전개될 인류 역사에 대한 예언인 셈입니다. 하나님은 앞으로 여자의 후손과 사탄의 후손이 서로 다툴 수밖에 없는 인간사회를 오직 이 원시복음이 성취되어가는 모습으로 또 여자의 후손이 오는 그 시점을 지향하면서 이끌어 가실 것이라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타락 전에 마련해 놓았다고 해서 인간의 타락에서 당신의 책임을 인정하거나 나아가 그것을 모면하려는 뜻이 전혀 아닙니다. 한분 하나님이 일부러 인간으로 죄를 짓게 만들면서 그와 동시에 죄에서 구원 받는 방법을 마련한다는 것은 죄송한 표현으로 정신적으로 분열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얼마든지 당신을 따를 수도 있으며 그와 동시에 사탄을 따를 수도 있는 존재로 만든 것뿐입니다. 하나님이 병부터 먼저 주고 그 후에 마지못해 약도 주는 식으로 인간을 갖고 노시는 분이 절대 아닙니다.
인간의 그런 어리석은 오해와는 정반대로 비록 최초 인간이 타락할지라도 다시 온전하게 회복 완성시킬 수 있는 더 좋은, 정확히 말해서 유일하게 인간에게 완전한 축복과 은혜가 되므로 십자가 복음을 태초부터 마련해놓았던 것입니다. 요컨대 선악과 사건에서 아니 하나님의 창조 사역 전체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사항이 선악과 자체가 아니라 바로 이 원시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아담 이후로 예수님이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바로 그 때를 향해 인류 역사는 흘러갈 것입니다. 바꿔 말해 모든 창조도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 계획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는 뜻입니다. 아담과 이브도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짐승이 대신 흘린 피의 공로로 구원해주셨습니다. 최초 인간부터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바탕으로 창조되었기에 그들이 타락할 줄 알고도 하나님은 자유의지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창조와 예수님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한 것입디다. “그(예수님)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사탄과 그 졸개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1:15-17) 이 말씀이야말로 창세기 1-3장을, 아니 성경전체를 축약해 놓은 절대적인 하나의 진리입니다.
원시복음이 없었다면?
혹시 삼위일체도 이해되지 않는데 예수님 그분이 창조주요 그와 동시에 창조의 목적이요 의미요 결과라고 하는 진술이 어렵게만 여겨지십니까? 이는 결코 어려운 신학적 교리가 아닙니다. 간단히 이렇게 접근해 보십시오. 창세기에서 이 원시복음을 빼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사탄에 대한 훗날의 절대적이고 완벽한 십자가의 심판이 없다면 어떤 책이 됩니까?
선악과 범죄 후에 곧바로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의 잘못에 대해서 벌주는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그럼 기껏해야 인간을 훈련시키는 도덕 교과서 조금 잘 봐주어야 유대교 종교 경전이 될 뿐입니다. 그럼 또 하나님은 최초 인간이 죄를 짓는데 분명히 책임이 있으며, 그 전에 그들을 처음부터 완악하게 지었기에 창조 또한 실패였다는 뜻이 됩니다. 그 이후의 인간들의 모든 실패와 인류역사의 왜곡도 원래 인간을 잘못 만드신 하나님의 탓이 됩니다. 그러다가 어쩔 수 없으니까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당신의 독생자를 보내어 십자가 구원의 길을 열어준 것입니다.
신약성경도 예수님의 제자들이 지어낸 이야기라는 비평을 받을 것입니다. 모든 세대의 모든 인간이 반드시 믿고 따라야 할 하나님의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기독교만의 경전으로 제한됩니다. 기독교는 여러 종교 중의 하나에 불과해 예수님의 십자가도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구원 방안 중의 하나가 됩니다. 말하자면 오늘날 예수를 모르는 불신자들의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정당한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죄인에게 영원한 참 생명을 주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조건 없는 은혜의 구원 방도는 없어집니다. 모두가 자기 노력으로 구원을 쟁취해야 하나 최초인간부터 사탄에게 쉽게 넘어가는 판국에 근본적으로 구원은 완전히 불가능해집니다. 한마디로 신앙을 가질 가치가 없으며 생명을 걸고 따라야 할 진리 자체부터 아예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 궁극적 결과도 모두가 흑암 아래에서 사망당할 뿐으로 이 땅 전체가 사탄의 공동묘지가 됩니다. 그 현실적 상황을 어렵게 상상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재 예수님을 몰라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세태가 얼마나 타락해져 가는지만 보면 됩니다. 인간의 뛰어난 지성으로 과학문명을 아무리 발달시켜도 자기들이 만든 핵폭탄에 의해서 최근에는 AI 로봇에 의해 멸망당할 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장엄한 자연과 인간 내면에서부터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막고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인간들 마음대로 세상을 다스리면서도 오히려 자기들이 내는 목소리를 듣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인간 사고의 폭이 넓어져서 수많은 선각자 사상가 철학자들이 나왔어도 그 수천 년 간의 사색의 결론이 절대적 진리는 없다는 것이 되었습니다. 필연적으로 열심히 삶을 살아갈 의미는 물론 자기 전부를 걸어야 할 인생의 목적이 없어졌습니다. 인간은 무에서 와서 무로 돌아가니까 어쨌든 실존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 붙들면 최고 지성인으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죽지 못해서 허망하게 살고 있는데 스스로 자신을 짐승 아니면 로봇이라고 비하시킨 열매일 뿐입니다. 모든 인간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스스로는 전혀 해소할 수 없는 영적 수치심과 공포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한히 영광스러운 분이셨으나 최고로 비참한 자리에까지 내려갔습니다. 무엇보다 죄가 전혀 없으시나 십자가 사형수의 누명도 아무 말씀 없이 담담히 감당하셨습니다. 사탄의 거짓에 미혹되어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그분의 진노를 받아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살리려 한 것입니다. 그들을 단순히 심판에서 면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부활 영생까지 주시려는 것입니다. 나아가 장차 사탄을 멸망시키고 아담의 타락으로 함께 파괴된 피조세계까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바꿀 때에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당신의 영원한 통치에 동참시켜 함께 왕 노릇하게 할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저지른 죄를 뒤치다꺼리 하려고 원시복음을 준 것이 아닙니다. 태초부터 영원까지 이어지는 너무나 거룩하고 완벽한 당신의 은혜 안에 인간을 동참시켜 때가 되면 주님처럼 영광스럽게 완성시키려 한 것입니다. 신자로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게 하여 무슨 일에나 의롭고 거룩하게 만드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악과도 자유의지도 사탄의 유혹도 인간의 타락도 포함해서 이 땅을 창조하셨고 또 그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마지막 날에 아름답고 거룩하게 완성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질문해보길 원합니다. 예수님이 없었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까를 말입니다. 십자가 복음을 몰랐다면 정말로 헛되고 헛된 인생으로 끝났을 것이라고 절감하십니까?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에 사탄이 절대로 흔들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확신하십니까?
그래서 바울이 빌립보서 3장에 말한 대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너무 귀해서 나머지 모든 것이 배설물로 여겨집니까? 성경이 매일 나에게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살아 있는 생명의 소리로 들립니까? 예수님이 너무 귀하고 사랑하기에 그분이 가시는 길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생명까지 주님을 위해서 기꺼이 던져서 로마 제국 전체를 복음으로 불태웠던 초대교회 신자까지는 안 되더라도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닮아가려는 노력은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다면 감히 신자라고 말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6/26/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