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16-20) 인생의 고난이 왜 생기는가?

조회 수 48 추천 수 0 2022.07.26 05:47:00

(창3:16-20) 인생의 고난이 왜 생기는가?

인간 타락 담화 (10)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창3:16-20)

 

은혜가 함께 하는 하나님의 징계

 

아담과 이브는 사탄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하나님 안에서 풍요롭고 은혜로운 삶을 충분히 만끽했습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죽는다고 말씀하신 뜻을 정확히 몰랐다 쳐도 선악과를 먹으면 지금과는 정반대로 아주 나쁜 상태가 되리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으므로 따먹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상태보다 훨씬 더 좋은 것으로 유혹해야만 하므로 사탄은 너희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속인 것입니다. 

 

사탄이 아주 영악하긴 했지만 인간의 생각도 그에 버금갔습니다. 하나님처럼 되어버리면 선악과 금령을 어긴 잘못을 가지고 그분이 뭐라고 따질 수 없을 것이고 에덴동산도 완전히 자기들 맘대로 해도 되겠다고 계산한 것입니다. 하늘을 찌르는 그들의 교만과 탐욕은 하나님으로선 도무지 묵과할 수 없는 죄로 사탄의 잘못과는 별개로 반드시 형벌을 내려야 합니다. 

 

천상에서 사탄이 동일한 반역을 했을 때 지상으로 쫓아내버렸습니다. 천상에서 하나님 대신에 왕이 되기는커녕 아예 그곳에 머무를 자격도 안 된다는 뜻입니다. 사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연약한 인간이 감히 하나님의 자리를 넘본 것은 더더욱 큰 죄입니다. 이 땅에서 살 자격도 없으니 이 땅에서 추방해 당장 지옥으로 떨어트려야만 합니다.  

 

그러나 아담과 이브에 대한 심판은 사탄에게 내린 형벌에 비하면 너무 미약합니다. 이 땅이 아니라 에덴동산에서만 내보냈으며(창3:23) 당장 죽이지도 않았습니다. 인간이 타락할 것을 아시고 자유의지를 주었기에 타락 후에 멸절시키면 하나님이 스스로 모순을 범하는 셈입니다. 무엇보다 죽음의 심판을 내리면 인간의 찬양과 경배를 받기 원하신 창조의 목적부터 완전히 무산됩니다. 인간이 없으면 이 지구도 아무리 자연이 아름다워도 하나님에겐 달처럼 흙과 돌뿐인 황무지가 됩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인간으로 이전과 다를 것 없는 상태대로 살아가도록 허락했습니다. 이 땅을 당신 대신에 다스리라는 청지기 명령도 거두지 않았고 자유의지를 빼앗아서 당신의 기계적인 노예로 바꾸지도 않았습니다. 요컨대 타락하실 것을 아셨기에 타락 후의 인간에 대한 대책도 미리 마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비유컨대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린 벌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 아니었습니다. 도적이 올 것을  전혀 대비하지 않다가 막상 소를 잃고 나서야 외양간을 고쳐봐야 가두어야 할 소가 없어져버린 것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부모가 아이들 방을 예쁘게 장식하고 함께 놀라고 어항을 놓아둔 셈인데 아이들이 심하게 장난치면 어항이 깨어질 수 있다는 위험부담은 각오한 것입니다. 막상 그런 일이 일어나자 도무지 어쩔 줄 모르는 아이들 대신에 부모가 새 어항에 물을 붓고 금붕어도 주어 담으며 버려진 아이들 옷도 새것으로 갈아입히지만 다시는 이렇게 과격한 장난은 치지 말라고 야단은 쳐야 합니다. 

 

아담과 이브에 대한 형벌도 하나님 쪽에서 먼저 그들이 쏟아버린 물을 다시 담아주되 그렇게 한 죄는 견책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당신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리는 심판이 아니라 잘못만 꾸짖는 징계입니다. 그분의 징계는 그 관계를 당신 쪽에서 먼저 이전처럼 회복시켜주시거나 그럴 수 있는 여지를 열어 놓으시는 오묘한 은혜가 항상 함께 하는 법입니다.   

 

출산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 이브

 

하나님은 사탄의 꾐에 먼저 넘어가 아담에게 거역에 동참하도록 권한 이브부터 두 가지 벌을 내렸습니다. 첫째로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고통을 주었습니다. 죽었어야 하는데 오히려 생명이 태어나고 계속 이어지는 통로가 되게 했습니다. 인간을 창조한 후에 주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고통을 더하리라고 했으면 없던 고통이 새로 생긴 것이지만 크게 더하리라고 했습니다. 원어도 증가하다, 확대하다, 능가하다의 뜻입니다.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고 해도 출산에 어느 정도의 고통은 있었다는 뜻입니다. 남성은 전혀 체감할 수 없지만 여성이 출산할 때의 고통은 세상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합니다. 다시는 아기를 낳지 않고 싶고 그런 고통을 주게 한 남편이 원수처럼 여기진다고 합니다. 

 

인간의 육체에 가해지는 고통 중에는 십자가 처형 다음으로 큰 고통일 것입니다. 한 여성이 육체적 생명을 탄생시키거나 예수님이 죄인에게 영적 생명을 거듭나게 하거나 둘 다 엄청난 산고의 고통을 거쳐야만 합니다. 신자라면 더더욱 자신의 육체와 영혼 둘 다 아주 귀하게 여기고 강건하도록 소중히 가꿔야 합니다. 

 

아직 출산해보지 않은 이브로선 고통이 더 강해진다고는 실감할 수 없는데도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흥미롭지 않습니까? 이브로선 자신이 먼저 꾐에 넘어갔고 그래서 도무지 해소할 수 없는 수치심과 공포심에 휩싸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당장 죽어 마땅했는데도 거꾸로 생명을 출산케 해주었습니다. 그분께 대한 감사를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으며 나아가 나중에 태어난 자식도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기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이 세상에서 자식을 위해 생명마저 던질 수 있는 모성애만큼 순수한 사랑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출산의 고통은 하나님의 참으로 오묘한 섭리입니다. 다시는 아기를 갖지 않겠다고 단단히 결심을 해도 어머니는 또 아기를 낳습니다. 그만큼 아기를 키우다 보면 자기 목숨과 바꿔도 될 만큼 너무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을 통한 남편과의 사랑의 교감도 참으로 풍성하고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남녀가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첫째가는 축복이자 기쁨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첫째 명령도 인간이 얼마든지 지킬 수 있도록 모든 여건을 다 마련해준 것입니다. 

 

지금 세대는  현실 삶이 너무 빠듯해 아이는 물론 결혼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첫째 명령을 어기는 것은 둘째 치고 하나님이 명하신 일이면 하나님이 책임져주신다는 그분의 능력과 섭리를 믿지 못하는 셈입니다. 또 임신과 출산의 고통을 여자만 당하게 만든 기독교의 하나님은 불공평하다고 비방하는데 여성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일부 기독교인들조차 그런 의견에 동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분명히 임신은 여성에게 내린 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축복이자 하나님의 생명을 재창조하는 역사에 동참하는 고귀한 임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남편의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 이브

 

하나님은 두 번째로 이브에게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창4:7의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 것”이라는 표현법과 같습니다. 죄가 너를 다스릴 것을 원하지만 네가 죄를 다스릴 것이라는 의미이듯이 이브가 남편인 아담을 다스릴 것을 원하나 아담이 너를 다스릴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를 두고 하나님이 남성에게 우월한 위치를 부여하고 여성은 열등한 존재로 만들었다고 오해해선 안 됩니다. 하나님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라고 즉, 가정을 세우라고 명했습니다.(창2:24) ‘합하다’는 히브리 원어 ‘디바크’는 착 달라붙다, 굳게 결합하다는 뜻으로 한 몸이 되어서 떨어지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두 사람이 합하여 한 몸(one flesh)이 되므로 한 사람만 있어선 당연히 한 몸이 안 됩니다. 두 사람이 각기 반씩 분담해야만 하나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한 쪽이 없으면 아예 나머지 반쪽의 삶에도 아무 의미와 기쁨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브만이 아담을 돕는 것이 아니라 아담도 이브를 모든 영역에서 같은 세기와 열정으로 도와야 합니다. 

 

일부 영어성경은 그래서 하나가 된다는 것을 연합한다는 의미로 united라고 번역했습니다. 각기 동등한 자격과 조건과 권리를 갖고 합하되 서로 맡은 기능만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도 당신의 백성과 일대일 개인적인 친밀한 관계를 맺어주십니다. 하나님이 최초의 인간 공동체에 부여한 연합의 원리는 교회나 직장 등 모든 인간 공동체에도 적용해야 하는 그분의 뜻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하나님 안에서 동등한 한 사람의 고귀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절대로 외적 조건으로 차별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두가 당신 안에서 동일한 자격과 신분을 가지므로 하나님이 어떤 공동체를 주관 통치하려면 대표자가 필요합니다. 당신의 뜻을 계시 받아서 공동체의 소속원에게 전달하고 또 소속원들의 반응이나 요구사항을 당신께 전해주는 자입니다. 가정의 경우에 그런 제사장 역할을 아버지에게 맡겼으며 만약 아버지가 없으면 어머니가 맡으면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이를 다 다르게 만들었으므로 어떤 외적 조건으로도 차별하지 않으며 근본적으로 남녀는 각기 반쪽 밖에 안 되므로 더더욱 젠더차별은 하지 않습니다. 

 

이브는 아담의 돕는 배필이었으나 선악과를 따먹는 일에 스스로 앞장섰고 남편도 함께 끌어들였습니다. 그 때 이미 그녀는 돕는 배필로 만족하지 못했고 계속 그런 잘못된 욕심에 묶여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시 원래의 자리인 남편을 돕는 자리로 돌아가 당신께서 결혼과 가정에 대해 정하신 계획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럼 아담도 다시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고 자신의 분신처럼 아끼고 사랑해줄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전처럼 벌거벗어도 전혀 부끄럽지 않을 만큼 서로에게 숨길만한 잘못을 범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브나 아담이나 둘 다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으나 하나님이 징계를 하면서도 다시 새 생명을 주어서 회복시켜주셨습니다. 바울은 그래서 남편은 아내를 그리스도처럼 사랑하고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그리스도에게 하듯이 순복하라고 권면한 것입니다.(엡6;22-24) 결국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라는 이브에 대한 둘째 징계도 이번 일로 인해서 주신 벌이 아니라 처음 이브를 만드신 당신의 목적을 회상시켜준 것입니다. 네가 가정의 영적인 질서를 깨트렸으니 회복시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는 남편을 원했고”라고 했어야 선악과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벌이 되지만 “너는 남편을 원하고”라고 했습니다. 아주 강하게 원한다는 뜻으로 미래시제로 말했습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회개하고서 하나님 뜻에 순종하려고 노력했을 이브보다는 앞으로 태어날 여성들에게도 더 적용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이브의 범죄로 인해서 후대의 여성들에게 남편의 다스림을 거부하고 오히려 자기가 남편을 주도하려는 성향이 생길 것이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가정이 파탄 되고 최근에 화두가 되고 있는 젠더 갈등의 궁극적인 원인도 바로 하나님을 배제하고 거역하는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담이 받은 벌 

 

하나님이 아담에게 내린 벌을 알아볼 차례인데 그 기본맥락은 동일합니다. 우선 이브에게 주신 경고대로 아내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영적으로 다스려야만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3:7)고 권면했습니다.

 

남편더러 기도를 더 많이 하라고 하는데도 실상은 아내들이 훨씬 더 많이 기도합니다. 그 전에 믿음을 가진 자도 여성이 몇 배나 많습니다. 이 사실만 봐도 하나님이 여성을 더 사랑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절대로 차별 대우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어쨌든 하나님의 바람대로 아버지가 순전한 믿음을 갖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그분의 뜻대로 꾸려가는 가정이라면 분란과 문제가 훨씬 적게 생길 것입니다. 또 다시 남자가 여자보다 영적으로 우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대체로 아버지가 가정의 대소사를 주관하므로 아버지의 믿음대로 가족들이 따라갈 것이라는 뜻입니다.

 

아담에게 직접 내린 벌은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먼저 아내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벌을 준다고 합니다. 그럼 앞으로는 아내의 말을 듣지 말라고 해야 하는데 그것은 이미 이브에게 주신 벌에 포함되었습니다. 또 그 의미는 살펴본 대로 원래 가정을 세우신 하나님의 뜻대로 가정을 회복시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보다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았다는 말씀에 더 주목해야 하는데 실제로 벌 받은 것은 아담이 아니라 땅입니다. 저주 받은 모습을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므로 이마에 땀을 흘려야 소산을 먹을 수 있다고 부연해 설명해주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이 땅을 생육 번성 정복하여 거룩하게 다스릴 청지기였습니다. 실제로 에덴동산에서 그 역할을 잘 해왔고 그가 부르는 대로 모든 생물의 이름이 되었습니다.(창2:19) 그런데 아내의 다스림을 받았고 심지어 자신이 다스려야 할 뱀의 거짓말에도 쉽게 넘어갔으니 자신의 직무를 잠시나마 완전히 저버린 것입니다. 

 

땅이 벌을 받았다고 해서 천지개벽이 일어나거나 온 땅이 사막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기후나 자연현상이 에덴에서처럼 쾌적하지는 않고 많은 이상들이 생겼을 것입니다. 또 타락 전에도 아담은 열심히 일했지만 땅이 조금 더 척박해졌으니까 노동의 양과 질을 더 높여야만 합니다. 이마저도 인간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려서 자신들의 삶을 풍족하고 안전하며 편리하게 바꾸는 지혜를 늘려주려는 하나님의 섭리인 셈입니다.  

 

더 중요하게는 이전에는 하나님 뜻대로 따름으로써 기쁨과 행복과 만족을 누렸습니다. 아담 이후로는 모든 인간이 자기만 높이려는 죄의 본성으로 인해서 이 땅에 갈등 분노 다툼 고난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마에 땀을 흘려야 소산을 먹을 정도로 노동이 아주 괴로운 짐이 될 것이란 뜻입니다. 그것도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갈 때 즉, 모든 세대 모든 인간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평생토록 고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형벌의 진짜 의미

 

문제는 아담에게 준 이 벌에 대해 아담의 범죄와 상관없는 후대 사람들로선 너무 억울하다고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불신자들이나 일부 신자들마저 하나님께 직접 죄를 범한 것도 아닌데 태어나보니까 이미 고난의 바다에 빠져서 평생 허우적거리며 살아야하는 현실이 너무 억울하다는 의심과 원망을 갖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에게 큰 벌을 주고 선악과 사건을 완전히 마무리했어야 했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이브의 출산의 고통이나 아담의 노동의 질과 양의 증가의 벌처럼 피조세계에 내린 벌도 땅을 더욱 잘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원래 계획을 다시 천명한 것뿐입니다. 그 벌의 진짜 의미는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고 인간을 지으신 뜻과 계획을 너희가 무너뜨렸으니 다신 원래대로 회복시키라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계속해서 너희만 괴로워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당신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순종하면 에덴 밖이라도 실질적인 에덴은 회복될 수 있다는 소망의 약속입니다. 

 

너희가 선악과를 먹고 너무 춥고 헐벗은 것 같고 모든 면에서 부족 갈급 허망하며 무엇보다 스스로 자신에게 또 배우자를 향해 너무 부끄러워진다는 사실을 이미 절감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 스스로 무화과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대책을 세웠지만 여전히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 못했고 거기다 큰 공포심에 빠졌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먼저 찾아와 아담더러 내게로 돌아오라고 요청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기독교만의 종교적 교리라고 여겨선 안 됩니다. 이브, 아담, 피조세계를 향한 세 벌들은 살펴본 대로 당시보다는 그들의 후손들이 겪을 일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과 인간사회의 미래상을 예언한 셈이며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세태를 특별히 서구선진 사회를 두고 포스트모던을 넘어서 포스트크리스천 사회라고 말합니다. 포스트모던 시대까지는 어쨌든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고달픈 현실 삶에서와 영원한 구원을 받고 싶다는 소망은 있었고 또 자신은 무능무지하고 허물과 잘못이 많은 죄인이라고 인정은 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구원소망과 죄인인식이 완전히 없어졌을 뿐 아니라 서구인들의 기본 사고에 자리 잡은 기독교적 진리마저 완전히 부인되었고 더 나아가 거꾸로 크게 잘못되었다고 간주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동성애 같은 성적 일탈은 물론 낙태도 개인의 자유에 속한 것이라 다른 사람이 절대로 정죄는 물론 간섭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처럼 남편이 가정의 영적 지도자 최소한 대표자로 세워진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다간 여성을 차별한다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판입니다. 

 

지금은 하나님, 창조,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 가정을 세우신 뜻, 인간이 가진 청지기로서의 기본적인 소명, 영원한 본향에 대한 소망, 죄에 대한 심판 등등 모든 성경적 진리들이 완전히 쓰레기가 되어 소각되어 버렸습니다. 그런 도덕적 종교적 제약을 모두 벗어버려야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합니까? 인간이 바라는 대로의 기쁨, 만족,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까? 오히려 정반대이지 않습니까? 

  

인간끼리 부부끼리 아니 부모자식끼리의 사랑마저 실종되어서 가정들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수많은 결손 가정의 수많은 자녀들이 큰 상처를 받고 비뚤어진 길로 흘러갑니다.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고 자기만의 만족을 위해서 이웃과 단절된 일인가구들이 점점 늘어납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부 신자들도 포함해서 돈을 주인으로 삼아서 자신의 형통과 쾌락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이니까 모든 공동체들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서로 집단이익만 다투고 있습니다. 그 모든 잘못의 집합적인 실체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드러났지 않습니까?    

나아가 인간이 자기 이성과 지성을 자랑하며 눈부시게 발전시킨 과학 문명이 오히려 인간을 집어 삼키려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AI가 자체 사고능력을 갖출 수 있다는 연구결과까지 나와서 영화 터미네이터가 현실로 나타날까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현재 이 땅은 환경오염으로 인한 지구온난화의 몸살을 심하게 앓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의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르게 인류를 멸망시킬만한 큰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인간이 겪는 여러 불행과 고통이 하나님이 이 땅을 저주했기 때문이라고 여기지만 실상은 정반대라는 것입니다. 환경이 오염되기 전에는 땅이 비옥했고 기독교 국가인 미국은 땅에도 율법대로 안식년을 실행했습니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곡물로 전 세계 인구가 먹고도 남았고, 미국에서 버려진 음식물 쓰레기로 아프리카를 먹여 살리며, 지금도 남한이 버리는 음식쓰레기로 북한의 기아 문제는 해결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땅을 저주한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더럽힌 것입니다. 인간사회 고통의 원인도 사탄의 훼방 때문이 아닙니다. 이 땅이 전부이고 하나님은 없으니 너희가 주인이 되어서 맘껏 즐기며 살라는 사탄의 달콤한 거짓말에 속았던 아담과 이브처럼 후대 인간의 탐욕과 교만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귀신은 인정하면서 하나님은 부인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니 너무나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요컨대 현재의 인간사회의 모든 갈등 고통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창조의 경륜대로 살아가지 않았기에 인간 스스로 자초한 부정적인 결과일 뿐입니다. 

 

생명의 선조가 될 이브

 

하나님은 오히려 아담과 이브에게 죽음의 형벌이 아니라 갱생의 축복을 다시 부어주었습니다. 이미 땅에 다 쏟아진 물을 다시 담아줄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하나님의 선악과 언약 아래로 다시 들어오면 언제든 넘치는 축복으로 함께 하시겠다는, 정확히 말해선 당신께서 지금 그렇게 하고 있으니 다시는 그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담도 너무나 큰 그 은혜를 비로소 깨닫고는 감사의 고백을 드렸습니다.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21절) 

 

아담은 방금 전까지도 이브를 대할 때 서로 부끄러웠고 함께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견책하시는 말씀을 듣고는 오히려 마음에 안도와 평강으로 채워졌습니다. 그 내용이 자신들은 물론 미래의 후손의 삶까지 보장되는 은혜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단 한 가지 처음 선악과를 주신 의미대로 당신의 사랑의 품을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껏 이브를 단순히 자기만 돕는 배필로 간주했으나 하나님의 창조 과업을 자기와 함께 반쪽을 담당하도록 하나님의 동역자로 세워졌음을 온전히 인식하고 그렇게 대우하겠다는 뜻입니다. 나아가 앞으로 태어날 자식들에게도 하나님의 이런 은혜에 대해서 제대로 영적인 교육을 시키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와의 후손 중에 하나님을 따라서 참 생명을 누리게 되는 여자의 후손이 있고 또 여전히 사탄에 미혹된 자손도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땅은 두 계열의 사람들의 각축장이 될 것입니다. 서로 피를 흘리면서 종교의 자유에 대한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겉으로는 이전에는 물론 지금도 그런 갈등이 있지만 정확하게 말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싸움입니다. 

 

사탄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의 차이가 얼마나 흉악한 잘못과 죄악을 많이 범하느냐가 아닙니다. 인생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뒤덮인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잘못이자 책임이니까 그분을 완전히 부인하고 인간 스스로 그것들을 제거해서 낙원으로 만들겠다고 덤비는 사람이 사탄의 후손입니다. 대신에 이 땅이 이렇게 패역해진 것은 오직 우리 자신의 죄악과 잘못이므로 스스로 겸비해져 하나님께로 돌아가 그분만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는 사람이 여자의 후손입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신자더러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며 한 알의 이름 없는 밀알로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서 수십 배의 거룩한 열매를 맺으라고 당부했습니다. 사탄의 후손들은 물론 일부 신자들까지 신나게 놀다가 깨트린 어항의 뒤치다꺼리를 여자의 후손 크리스천이 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인류역사에서 긍정적 방향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은 기독교 신자들의 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현대 신자와 교회들이 그런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하니까 사람들이 기독교를 외면하는 포스트 크리스천 사회가 된 것입니다. 성경의 진리는 물론 삼위하나님의 인류를 향한 거룩한 뜻과 계획에는 전혀 변함없는데도 말입니다. 

 

그 대표적인 실례가 세계 최대 기독교 국가이자 현 세대의 사조와 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미국의 대법원에서 최근 2주 동안에 일어났습니다. 성경적 진리를 실현하려는 보수 측 대법관이 우세한데도 아주 모순된 두 판결을 내렸습니다. 오십 년 가까이 시행해오던 낙태를 금지시키는 긍정적 판결을 내린 반면에 지구 온난화를 지연 방지할 온실가스 배출 규제 법안을 무효화시켰습니다. 두 번째 판결은 이 땅을 다스려야 할 청지기로서의 하나님이 주신 첫째 직분을 기독교인들 스스로 외면한 것입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하나님이 내린 벌이므로 인간이 감내해야 한다는 뜻이면 그나마 다행일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 과도한 공해규제가 경제 발전을 저해한다는 이유입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주인으로 삼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인간양심의 최후 보루라고 여겨졌던 미국대법원에서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는데 보수와 진보, 친기독교와 반기독교 간의 싸움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자 스스로 자기 사고에 분열이 생긴 것입니다. 돈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기는 혼합주의 신앙으로 이스라엘이 심판받은 결정적 이유입니다. 더더욱 예수님의 십자가 말고는 인간에게 소망이 없어졌습니다. 지금 포스트 크리스천 시대로 하나님이 완전히 부인 제거되고 있으므로 예수님이 구원과 심판을 완성하러 다시 오실 수밖에 없는 진짜 마지막 때로 들어선 것입니다. 

 

이브에게 가인과 아벨 두 아들을 주었고 여자의 후손인 아벨이 아무 잘못 없는데도 억울하게 사탄의 후손인 가인에게 살해당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아벨을 대신할 셋을 주셨고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을 최초 계획한 대로 차질 없이 달성시켰습니다. 죄인들에게 참 생명을 주시는 주님의 구원과업을 제자들에게 위임했습니다. 그런데 신자들마저 본문을 인류에 대한 심판으로만 해석하면 쉽게 사탄에게 넘어가 돈을 섬기게 됩니다. 오직 인간을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끌려는 숨겨진 은혜라고 깨달아야만 여자의 후손이 됩니다. 또 그런 자가 아무리 소수라도 땅에 떨어져 죽으면 주님 오시는 날을 조금이라도 뒤로 미루어서 주위에 불쌍한 영혼들을 복음으로 더 많이 인도할 수 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를 죽이지 않고 징계만 하신 본문의 하나님의 은혜로운 뜻을 바로 오늘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7/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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