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이스라엘은 과연 2백만이 넘었는가?
“염병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와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의 총수를 그 조상의 집을 따라 조사하되 이스라엘 중에 무릇 이십 세 이상으로 능히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계수하라 하시니”(민26:1,2)
민수기에는 두 번의 인구조사가 나옵니다. 출애굽한 후 얼마 안 되어 가데스 바네야에서의 실패가 있기 전에 1차 조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40년간의 광야 방황이 끝나는 시점에 2차 조사를 했습니다. 이 두 인구조사의 일차적인 목적은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계수하는 데에 있었습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을 위한 군사력을 점검하여 군대 조직을 편성하고 신정국가체제를 형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특별히 이 두 번째 인구조사는 바알브올을 섬겼던 사람들이 여호와로부터 염병의 징계를 받은 후에 이뤄졌습니다. 말하자면 그 염병 사건을 끝으로 가나안 입국이 금지된 자들의 죽음이 종식되었고 죄로 얼룩진 광야 생활을 마감하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번의 인구조사가 아주 정밀하게 진행되었음을 그 수치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흔히들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의 숫자가 장정만 60만이 되었을 리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인구조사의 결과를 면밀히 비교해보면 오히려 그 주장의 타당성은 줄고 성경 기록의 정확성만 더 늘어납니다.
우선 전체적으로 603,550에서 601,730으로 1,820명이 줄었습니다. 상식적으로 40년, 즉 약 두 세대가 지나갔다면 당연히 인구가 늘어나야 합니다. 비록 당시의 수명이 지금과 비교해서 짧지만 가족계획을 하지 않아 일반적으로 다산(多産)이었고 또 광야 생활에 전쟁을 겪은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인구가 많이 늘어나 있어야 함에도 줄었습니다.
하나님께 반역하여 징벌을 받은 결과가 반영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각 지파별로 그 가감이 정확하게 나타나 있어 더욱 그 수치의 정확성을 제고시켜 줍니다. 특별히 징계를 받았던 르우벤, 시므온, 갓, 납달리 지파들이 많이 감소되었습니다.
참고로 이 지파들의 감소분의 합계는 53,020인데 광야(16:49)에서, 고라 자손의 반역 때(21:6)에, 불 뱀 사건(25:9)과, 바알브올 사건(25:9) 때의 죽은 자들의 합계와 거의 맞아 떨어집니다. 물론 이들 지파만 범죄한 것이 아니고 또 다른 죄로 죽은 숫자도 많겠지만 수치들이 아주 구체적이고도 당시의 전후 사정을 비교적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아 객관타당성을 지닌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당시의 모든 상황을 보아 이스라엘 인구가 장정 60만, 전체 2백만이라는 것은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수치라고들 합니다. 이를 간단하게 반박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요셉이 총리로 있을 때에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 자손의 숫자는 70명 남짓 했습니다. 그리고 약 400년간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출1:12)했던 민족이었습니다.
한 세대를 20-25년으로 잡으면 4백년은 20-16세대가 지나가는 기간입니다. 그리고 한 세대가 지나면 간단하게 인구가 두 배로 늘어난다고 가정해 봅시다. 당시는 야곱의 예에서 보듯이 자식을 많이 낫는 것이 축복을 받은 상징이자 실제로 많이 낳았습니다. 야곱 한 명이 2대 만에 무려 70명이 넘었지 않습니까? 그럼 70명을 단순 계산으로 2배씩 곱해 나가 2백만이 넘는데 몇 대가 소요되는지 아십니까? 정확하게 15세대가 지나면 2,293,760명이 됩니다. (안 믿어지면 실제 계산을 해 보십시오.) 이 얼마나 정밀한 성경의 기록입니까?
그러나 성경 수치가 정확하다는 것에만 감탄해선 안 됩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출애굽하는 광경을 상상해 보십시오. 특별히 바다가 갈라져 홍해를 육지같이 걸어서 지나가는 그 장엄한 모습을 말입니다. 또 하나님이 그들을 40년간 광야를 방황시키면서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며 반석의 생수로 먹이시는 엄청난 은혜를 말입니다.
광야 방황 중에 전쟁이 없었던 이유는 주변의 이방 민족들은 그들을 안중에도 안 두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광야를 건넌다는 것은 당시로선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굶어죽고 병들어 죽고 더위나 추위에 곧 다 죽어 없어지리라 예측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름기둥 불기둥을 인도하고 보호하셨습니다. 그것도 열 번이나 넘게 반역한 그 완악한 백성들을 말입니다.
가나안 전쟁을 보면 자기들의 죄 때문에 패배한 아이성 전투를 빼고는 연전연승했습니다. 그 이유를 성경은 가나안 족속들의 간담이 미리부터 녹아져 내렸기 때문(수2:9-11)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물론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가 당시 최고 강국 애굽을 상대로 열 가지 재앙과 홍해의 기적을 일으켰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그보다는 광야에서 2백만이 넘는 백성들이 40년간 거의 줄지 않고 그대로 다 살아남았다는 것이 더 큰 이유일 수 있습니다. 자기들 상식으론 상상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당연히 다 죽어 없어졌을 것이라 믿었던 백성들이 어느 날 갑자기 그대로 생생하게 자기들 눈앞에 나타났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그런데 이 두 번째 인구조사에는 전쟁 준비 말고 또 다른 목적이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 명수대로 땅을 나눠주어 기업을 삼게 하라 수가 많은 자에게는 기업을 많이 줄 것이요 수가 적은 자에게는 기업을 적게 줄 것이니 그들이 계수함을 입은 수대로 각기 기업을 주되.”(민26:52-54) 땅을 분배할 준비로 인구 조사를 시켰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땅 분배를 위한 조사라면 가나안 정복 전쟁 후에 해야 원칙입니다. 그 전쟁에서 얼마나 희생이 날지 모르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전쟁 수행 능력과 상관없이 가나안 땅을 당신의 권능으로 반드시 주실 것을 보장했으므로 구태여 전쟁 후에 조사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큰 희생 없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보증이 이만큼 분명하게 나타나 있는 구절도 없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됩니다. 비유컨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미리 김칫국부터 마시는 셈이지 않습니까? 땅을 빼앗기도 전에 나눌 계획부터 세웠지 않습니까? 신자들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시키는 일을 종종 이런, 상식을 초월하는 모습으로 수행한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상식과 이성으로 이해 안 되는 일이 발생하면 오히려 하나님이 뭔가 이루시려는가 보다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지레 겁부터 먹고 빨리 상식 수준으로 되돌려 놓으라고 아우성만 치는 우리입니다.
하나님은 전쟁으로 인구가 줄 것과 그래서 땅의 분배 계획이 달라질 것에 관해선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광야를 방황할 때에 지파별로 인구의 숫자에 어떤 가감이 있었는지 이스라엘더러 정확하게 알라는 것입니다. 많이 늘어난 지파는 그만큼 벌을 받지 않았고 줄게 된 지파는 그동안 배역한 적이 많았다는 뜻입니다.
광야 시절 이스라엘은 국가의 기초 체계를 세웠습니다. 각 지파 별로 지도자로 세운 장로들의 지도력에 따라 그 지파가 번성하느냐 쇠퇴하느냐가 결정되었습니다. 고라당의 반역 때에도 회중의 유명한 족장 250명이 참여했습니다.(16:3), 그때에 참여한 종족(clan)과 지파(tribe)의 인구 숫자는 당연히 줄었을 것입니다.
결국 이 두 번째 인구 조사의 경우는 전쟁과 땅 분배를 위한 통상적 조사가 아니었습니다. 조사를 끝낸 후 각 지파별로 손익계산을 하고 그 원인을 따져 보았을 것입니다. 그 결과 과거의 죄악이 여실히 드러났을 것이며 그래서 새로운 영적 부흥을 위한 계기로 삼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광야에서의 배역과 방황의 시기를 청산하고 이제 하나님이 주시는 왕국을 향해 온전한 믿음으로 진군하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출애굽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겪었던 하나님의 모든 인도와 보호를, 그것이 축복이었든 징벌이었든, 재정리하여 온전한 신정국가를 세울 영적인 기초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2백만이 넘는 한 공동체가 동시에 동일한 믿음으로 동일한 (홍해의) 물 세례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너무나 기이한 체험과 풍성한 은혜들을 헤아려서 가나안 땅에 거룩한 백성으로 제사장 나라를 세우라는 것입니다.
신자에게도 이런 인구 조사가 때때로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가진 실력과 자원을 조사해 마음의 위로를 얻으려는 것은 하나님의 벌을 받지만, 지금껏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징벌을 회상하여 영적 부흥의 계기로 삼는 조사는 아무리 자주해도 상관없습니다.
더구나 이스라엘의 두 번째 인구조사는 하나님이 시킨 것이었습니다. 신자에게도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인구 조사를 시킬 때가 있습니다. 바로 환난이 닥칠 때입니다. 그 때는 하나님께 불평과 간구만 하기 이전에 자신의 여러 영적인 측면에 혹시 어떤 가감(加減)이 있지나 않았는지, 또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은 것이 없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이 새롭게 믿음을 소생시켜서 영적 부흥 아니 도약의 계기를 마련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전쟁 전에 벌써 땅 분배 계획을 다 세웠듯이 환난이 끝나기 전에 승리가 보장되어 있음을 확신케 해줍니다.
7/27/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