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어떤 말을 일부분만 믿으려 한다면 1) 상대와의 대화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며, 2)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이라서, 3) 대화를 하는 상대를 믿는 것이 아니며 4) 상대에 대한 큰 실례입니다.
예수님 말씀의 일부만 믿는 것도 1) 주님의 말씀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며, 2) 주님 말씀 전부가 아니라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이라, 3) 말씀의 주체인 주님을 믿지 않는 것이며, 4) 주님에 대한 큰 실례입니다.
나아가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좇지 아니하리라"를 믿으려면 당연히 그 앞의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도 믿어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는 자라야만 주님에게로 올 것이고 그런 자만 내쫓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내용상 한 부분만 믿을 수도 없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택하시고 성령의 간섭이 있어야만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믿을 수 있다는 기독교의 핵심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더더욱 일부만 믿어선 안 됩니다. (기독교 신앙은 기본적으로 성경 전체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과 뜻 전부를 믿는 것입니다.)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어떤 말을 일부분만 믿으려 한다면 1) 상대와의 대화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며, 2)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이라서, 3) 대화를 하는 상대를 믿는 것이 아니며 4) 상대에 대한 큰 실례입니다.
예수님 말씀의 일부만 믿는 것도 1) 주님의 말씀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며, 2) 주님 말씀 전부가 아니라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이라, 3) 말씀의 주체인 주님을 믿지 않는 것이며, 4) 주님에 대한 큰 실례입니다.
나아가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좇지 아니하리라"를 믿으려면 당연히 그 앞의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도 믿어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는 자라야만 주님에게로 올 것이고 그런 자만 내쫓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내용상 한 부분만 믿을 수도 없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택하시고 성령의 간섭이 있어야만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믿을 수 있다는 기독교의 핵심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더더욱 일부만 믿어선 안 됩니다. (기독교 신앙은 기본적으로 성경 전체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과 뜻 전부를 믿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