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14:26-35) 내 귀에 들린 대로 너희에게 행하리니.

구약성경강해 (30) / 민수기강해(20) - 가데스 바네야의 불순종(10)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너희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수 사십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그 사십년간 너희가 너희의 죄악을 질지니 너희가 나의 싫어 버림을 알리라 하셨다 하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단정코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민14:26-35)

 

긍정적인 말에 긍정적인 권능이 따른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거역에 대해 가나안으로 진군하지 못하고 광야로 되돌아가는 형벌을 내렸습니다. 그 이유를 단순히 당신의 명령에 불순종했다는 종교적 차원으로만 접근해선 많이 부족합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가족을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고 비교되어서도 안 되는 존재입니다. 이스라엘은 절대적인 하나님이 자기들을 향해 절대적인 사랑을 먼저 베풀었음에도 그 사랑을 거부했던 것입니다.

 

본문에서 지난주엔 하나님이 벌을 내린 이유를 알아보았다면 이번 주는 하나님이 벌을 내리는 방식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한마디로 28절에서 하나님이 선포하신대로 “네 말이 내게 들린 대로 행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말했던 그대로 벌을 준다고 했으므로 그들이 말한 내용 중에 하나님을 분노케 한 부분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럼 역으로 따지면 만약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말을 한다면 상을 주신다는 뜻이 됩니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나 만약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며 능히 온 몸에도 굴레를 씌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입에 재갈을 물리지 못하면 작은 혀가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는데 그 불은 지옥불이라고 즉, 죽음의 심판을 받는다고 선언했습니다.(약3:2-6) 한국 속담에도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고 했고 그 반대로 말이 씨가 된다고도 했습니다. 본문의 경우처럼 사람이 입으로 뱉은 말이 엄청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일부 목사님들이 말에 권능이 따르기에 항상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하고 그럼 그 말한 대로 이뤄진다고 가르칩니다. 대표적으로 미국 텍사스의 어떤 목사는 그런 메시지로 미국 최대의 교회로 성장시켰습니다. 실제로 그 목사 본인도 대저택에서 요트까지 가지고 풍요와 호사를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이왕이면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긍정적인 말을 하는 것이 그 삶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수는 있습니다. 가능하면 부정적 사고로 부정적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이는 누구나 아는 상식입니다. 구태여 교회 강단에서 가르칠 주제가 아닙니다. 심리학에 기초한 자기 개발서만 읽고 그대로 따라하면 됩니다.

 

그리고 평생을 두고 긍정적 사고를 지속하고 그대로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나면서 천성이 소심하고 겁이 많아 쉽게 비관에 빠지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관심은 오히려 그런 사람들에게 더 향할 것입니다. 항상 긍정적 낙관적으로 설치다가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인생살이의 함정을 보지 못해 큰 낭패를 겪는 경우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인생이 절대 그렇게 녹녹하지 않습니다. 죄로 타락한 인간들이 산출해내는 것들이 얼마나 추악한지 모릅니다. 최대한 잘 봐주어도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상대적이고 불완전합니다. 인간 세상은 서로 좋은 것을 더 빨리 더 많이 차지하려는 무한 경쟁 터이므로 어느 누구도 외부 여건을 자기 의도대로 조종 통제할 수 없고 예상 못하는 부정적인 변수가 너무 많습니다.

 

특별히 신자에겐 사탄의 훼방이 너무나 교묘하고 집요해서 어지간한 믿음의 사람도 넘어지기 일쑤입니다. 이처럼 긍정적 사고와 말이 단지 세상살이의 경쟁력을 갖추는 한 가지 요소는 될 수 있어도 모든 이와 모든 경우에 통하는 하나님의 진리일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말했는가?

 

교회는 하나님 그분이 누구이며, 그분 뜻에 비추어서 인간의 가련하고 비참한 실상이 어떠한지 속속들이 알게 해주는 곳입니다. 그런 앎에 기초하여 신자더러 이 땅에서 어떻게 평생을 그분 뜻을 따라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지 교육 훈련시키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계시한 성경을 철저하게 연구하여 정확하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가르쳐야 합니다.

 

간단하게 욥기 전도서 시편 등만 살펴도 성경이 이 주제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지혜문학이라 불리는 이 책들은 하나님이 신자 개인이나 그 공동체의 역사에 개입 주관하셨던 일에 대한 신자들이 느낀 반응 그 생각과 감정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 책들은 공통적으로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잘 믿고 아무 죄 지은 것도 없는데도 고난이 겹친다고 하나님에게 의심 불만 원망을 쏟아놓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하나님이 인생으로 고달프게 하신다는 뜻이므로 인간의 말에 권능이 따른다고 단정지어서 가르쳐선 안 됩니다.

 

하나님이 네가 말한 대로 행하겠다는 본문 말씀의 뜻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벌을 받게 된 말은 밤새도록 두려움에 쌓여 곡한 후에 모세에게 원망했던 그 말입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민14:2,3)

 

그 원망을 정리하면 세 가지 뜻이 됩니다. 첫째 처자가 죽도록 절대 버려둘 수 없다, 둘째 그래서 애굽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셋째 최악의 경우는 광야에서 죽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럼 자기들이 바라던 애굽은 가지 못했으나 처자는 살리고 광야에서 죽었으니 모세의 기도가 반만 응답된 것처럼 자기들 말의 반은 성취된 셈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모세의 소원에 하나님이 반이라도 응답해준 이유를 구태여 모세 쪽에서 찾자면 그가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자신을 희생해가며 간절히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기도는커녕 밤새도록 곡만 했습니다. 다음날 자기들끼리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서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모세와 의논은 전혀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통보만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원했던 것은 애굽으로 돌아가겠다는 것 하나뿐이었습니다.

 

원망이란 자기 생각이나 기대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의 표출입니다.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이라고 과거 시제로 말했습니다. 지금이라도 광야에서 죽게 해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도 무심결에 미래의 부정적 결과를 예상하는 말을 했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을 경우에 적용됩니다. 과거에 대해 원망했으므로 지금 이 상황에서 그들은 광야에서 죽을 의사는 추호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모세와 아론이 엎드려 호소해도 듣지 않았고 갈렙과 여호수아가 말리자 돌로 쳐 죽이고서라도 애굽으로 가려고 한 것입니다.

 

만약 애굽으로 가지 못하게 하고 가나안 정복 전쟁에 하나님이 떠밀어 넣으면 죽어도 순종하지 않을 것이므로 차라리 우리를 광야에서 죽여 달라는 뜻입니다. 그런 마음이었다면 출애굽 때에 모세를 거역하고 안 따라 나왔어야 하지만 모세가 큰 기적으로 애굽에서 끄집어내주니 앞으로도 그런 기적으로 계속해서 풍요하게 해줄 것이라고 잘못 기대했던 것입니다. 진작 광야에서 죽여주었더라면 하나님도 우리도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 우리를 광야에서 만나와 생수로 먹여 살려내어 여기까지 이끈 것은 완전히 헛수고였다고 하나님을 탓하는 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사로잡힐 것을 염려했던 어린 자녀들을 가나안 땅에 안전하게 인도해 들이겠다고 선언했습니다.(31절) 그들이 걱정하며 입으로 뱉어냈던 말과 정반대로 역사했습니다. 대신에 거역한 어른들은 애굽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그 시체가 광야를 덮을 것이라고 합니다.(29절)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한 말의 근처에도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년을 광야에서 유리할”(33절) 것이라고 합니다. 아무 잘못 없는 자녀들의 인생이 아비들의 죄로 사십 년을 광야에서 고생하며 허송세월하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벌은 이스라엘이 원하거나 말했던 대로가 아니라, 그 말이 자기들 나름의 긍정적인 바람을 드러냈음에도, 정반대로 이뤄졌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 그들의 원하고 말한 것 자체가 당신을 거역하고 자기들만 편하고자 하는 뜻인데 하나님이 그대로 들어줄 리는 전혀 없습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성경은 완전하고도 정미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입니다. 정말로 세밀히 읽고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말한 대로” 벌준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벌주겠다고 했습니다. 이 둘은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말한 대로 행하는 하나님이라면 이스라엘이 주인이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종입니다. 이는 믿음 여부와 상관없이 그냥 상식으로만 따져도 완전히 틀린 말입니다. 그런데도 긍정적인 말을 하면 그 말에 권능이 있어서 그대로 된다고 마인드컨트롤 세미나에서나 할 말을 교회 강대상에서 소리 높여 강조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심리학에서조차 긍정적사고의 보편적 효과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어려운 일이 닥쳐 힘들면 누구나 그것이 너무 괴롭고 싫어서 의도적으로 아예 잊어버리거나 좋았던 일만 떠올리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자기방어 기재를 작동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는 평소 부정적 생각을 많이 하는 우울증을 앓는 자로 뇌 호르몬의 이상으로 인한 육체적 질환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는 아직도 케케묵은 심리학의 최고 기본만 붙들고 뒷북을 치고 있는 셈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말 자체를 못 알아들을 리는 없습니다. 인간에게 언어의 기능을 부여한 이가 그분이시며 모든 피조물 중에 인간만 당신과 소통할 대상으로 세웠습니다. 당신을 대신하여 이 땅을 거룩하게 다스리게 하려는 뜻입니다.

 

내 귀에 들린 대로라는 것은 하나님이 그 말을 하는 자의 깊숙한 심령의 생각까지 감찰하시어 판단하신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생각이 먼저 있고 말과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당신께 들린 말의 문자적 의미대로가 아니라 말을 한 자의 생각대로 행해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31절 후반에 어떻게 말했습니까? “너희 자녀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마음으로 가나안 땅을 싫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열 명의 정탐꾼이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라고 악평했습니다. 그전에 어른 두 명이 포도송이를 어깨에 메어야 할 정도로 그 땅이 풍성하고 비옥하다는 사실에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지금 당장 죽게 되었으니까 죽었으면 죽었지 안 들어가겠다고 버틴 것입니다. 그 전에 애굽 땅이 더 좋다고 여기는 그들의 진짜 깊은 속내를 하나님은 벌써부터 당신의 귀로 듣고 계셨던 것입니다.

 

애굽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분의 소명은 둘째치고 그분의 계명대로 거룩하게 사는 것이 싫고 귀찮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구원과 심판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이 땅이 전부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노예 생활을 다시 하더라도 완전히 놀고먹겠다는 뜻입니다. 노예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먹고 사는 데는 전혀 불편이 없도록 주인이 다 마련해줍니다. 육신이 늙고 병드는 것 말고는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요즘 한국 청년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이 공무원입니다. 죄송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스라엘의 노예근성과 방불합니다. 상관이 시키는 대로만 하고 따로 사고만 치지 않으면 자리를 보전하는 철 밥통 같은 직장으로 퇴직 후의 혜택도 좋습니다. 젊은이들이 그 직업을 택하는 현실적인 이유인데 워낙 세상살이가 빠듯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문제는 그런 젊은이가 아니라 교회입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기독 청년들에게 교회는 그저 그냥 위로하기 바쁩니다. 합격할 수 있다는 긍정적 생각을 갖고 기도하면 그대로 이뤄진다고 가르칩니다. 무슨 시험이든 평소 열심히 공부해서 실력이 우수한 자가 걸리게 마련입니다.

 

교회는 무엇보다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그들의 동기와 목적부터 바로 잡아주어야 합니다. 본문 식으로 말하자면 네가 지금 하고 있는 말이 하나님의 귀에 어떻게 들릴지 잘 따져보라고 도전을 주어야 합니다. 철 밥통을 꿰찼다고 안심하고 무사안일로 자리만 보신하려는 공무원 사회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라, 정말로 사회에 공평과 정의를 바로 세워라, 사람 살만한 세상이 되도록 개혁하라. 주님의 사랑으로 국민들을 섬기겠다는 소명의식을 가지라고 말입니다.

 

특별히 예수 믿는 공무원이라서 다른 이와 전혀 다르고 너무 친절하게 잘 섬긴다는 말을 들을 자신이 충분히 있다면 응시하라고 도전을 주어야 합니다. 만약 그런 소명의식이 없다면 자신의 재능과 은사에 맞는 다른 직업을 찾아서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해야 합니다.

 

순전한 믿음대로 역사하는가?

 

하나님이 인간의 말보다 그 생각을 보고 역사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정확히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말에 권능이 따른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긍정적인 말을 계속하다 보면 생각도 긍정적으로 바뀌면서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신자가 스스로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어서 긍정적인 말을 하고 긍정적인 행동으로 이어가면 하나님도 복을 주신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세의 기도가 반만 응답되고 반은 응답되지 않았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스라엘의 죄를 사해달라는 그 반의 기도도 광야에 그들의 시체가 덥히는 벌을 받았으므로 응답된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3:8-11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의 선조들이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그분의 노를 격동시켜서 당신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분명히 선언했습니다.

 

모세가 우리와 비교도 안 되는 굳건한 믿음과 순전한 생각으로 간절히 기도했어도 하나님의 역사는 당신의 귀에 들린 대로만 행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생각의 생각까지 완전히 꿰뚫어 보시면서 오로지 당신의 뜻과 계획대로만 행했던 것입니다.

 

인간의 말은 죄로 타락한 마음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예수님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마15:19)라고 선언했습니다. 당연히 그런 마음을 가진 인간이 뱉어내는 말도 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미사여구로 포장했어도 그 대부분이 자기만 높이려는 탐욕 모략 음해 자랑 교만의 비수를 숨기고 있습니다.

 

물론 일부 의로운 사람들이 선한 의도로 선한 말을 많이 하고 말한 대로 선한 행동으로 실천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 것은 불완전한 인간에게서 완전한 선은 결코 나오지 못합니다. 아무리 경건하고 신령해보여도 상대적이고 일시적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심령이 완전히 뒤집어져 새롭게 바뀐 신자만이 그 새로운 심령에서 새로운 말을 끄집어낼 수 있습니다. 그것도 기도와 말씀으로 계속해서 그분의 뜻대로 사는 것을 하나씩 실천해야만 아주 천천히 조금씩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살펴봐도 죄는 아무 거침없이 거의 자동으로 저지르나 선은 젓 먹던 힘까지 다 짜내어야 겨우 가뭄에 콩 나듯이 실행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불신자를 심판하고 신자를 징계하는 원칙은 아주 간단하고 오직 하나입니다. 당신께서 마음먹은 대로입니다. 인간의 말이 들린 대로만 행하지 않고 그 생각을 추적하되 그 생각이 당신의 마음에 일치하는지 봅니다. 모세의 기도의 예에서 보듯이 신자 마음의 순수함, 선함, 믿음조차도 그분의 뜻과 계획을 앞설 수는 결코 없습니다.

 

문제는 신자는 그분의 뜻과 계획을 미리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또한 간단하며 하나뿐입니다. 그분의 뜻을 모르니까 “죽으면 죽으리라”하고 그분의 처분에 맡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피조물 신분이라 창조주에게 무조건 헌신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순전한 믿음으로 그분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고 그분 계명대로 살아가면 충분합니다. 인간이 할 수 있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곤 아무리 따져 봐도 그것뿐이지 않습니까? 사실은 그마저도 제대로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순전히 그분만 따르면 그 후의 결과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그분의 몫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하나님이 살려줄 것을 믿었지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절대로 우상에게 절할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데스 바네야에서 딱 하나 부족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이 바로 그런 순전한 믿음이었습니다. 슈퍼 거인 족속과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어 주실 것을 믿고 또 간절히 기도하지만 그리 아나하실지라도 절대로 애굽으로 돌아가 우상에게 절하는 일은 않겠다는 그런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과 계획을 미리 알 수는 없지만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그분의 벌을 내리는 구체적인 원리들을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29절)가 벌을 받습니다. 이십 세는 군인으로 전쟁에 참여해야 하는 나이입니다. 가나안 전투에서 자기가 죽는 것이 너무 싫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까지 너무 싫어했던 자들입니다.

 

또 그들이 정탐한 날 수를 일 년으로 환산하여 사십년의 벌을 내립니다.(34절) 악평한 열 명은 재앙으로 그 자리에서 죽음의 벌을 받습니다.(37절)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않으며 죄가 무거운지 가벼운지에 따라서 정확하게 치리하십니다. 어느 누구도 억울한 벌을 받았다고 반론이나 원망을 제기할 수 없도록 공평하십니다. 그분의 행사는 모든 면에서 공평하고 선합니다.

 

가장 중요하게는 “그 사십년간 너희가 너희의 죄악을 질지니 너희가 나의 싫어 버림을 알리라”(34절)고 했듯이 반드시 당신의 뜻을 벌을 받는 중 혹은 벌이 끝나고 나중에라도 알게 되는 방식으로 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또 그럴 때마다 일일이 벌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이 땅과 인간을 아름답게 보전하고 특별히 신자들을 거룩한 당신의 종으로 세우려는 것 하나뿐입니다. 벌을 주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신자의 회개를 촉구하는 목적으로만 벌을 줍니다. 불행하게도 민수기의 이 이후의 기록을 보면 그들은 이때에도 제대로 회개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싫어버림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당신께서 싫어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아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단정코 이같이 행하리니”(34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작당하여 당신을 거역하면 아주 분노하고 절대로 벌주지 않고 넘어가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역사를 단체로 훼방했습니다. 공동체로 모이게 하는 뜻은 서로 믿음으로 도전 격려 위로 권면하며 섬기라는 것이며 최소한 함께 기도라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반대로 행했으니 그야말로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는 용서 받지 못하는 죄를 범한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말씀입니다. 서두에 예를 든 미국 목사가 그렇게 가르치고 실제로도 그렇게 풍요롭게 사니까 교인들은 그 말이 옳다고 받아들입니다. 역으로 따지면 하나님 잘 믿어서 호사스럽게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믿음을 현실 형통의 용도로만 활용하려는 사람들만 그 교회에 주로 모인 것입니다. 함께 모여 하나님의 진리를 거슬리고 마치 그것이 기독교 신앙인양 외부에 비치게 했습니다. 열 명의 이스라엘 정탐꾼처럼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상벌에 관한 원리를 거짓으로 바꾸어 사람들을 선동한 것입니다. 그 교회는 물론 그와 비슷한 가르침을 가르치고 있는 한국 교회들에 본문 34절의 말씀이 그대로 적용될까 두렵고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섭리와 주권

 

본문에서 하나님이 상벌을 주는 가장 중요한 원리가 하나 더 남았습니다. 어른들의 죄를 지고 광야에서 사십 년이나 유리해야 할 자녀들이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하나님이 무엇을 싫어하는지도 제대로 몰랐습니다. 끝까지 온전한 회개를 하지 않고 광야에서 자기들의 내뱉은 원망의 말대로 죽어 엎드려졌습니다.

 

자식들이 부모의 그런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겠습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아버지의 삶과 인생이 너무나 헛되고 헛될 뿐 아니라 정말로 하나님의 싫어버림을 삶에서 철저하게 겪고 있다고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열 번이나 거역한 결과가 저렇게 비참하다고 피부로 느꼈을 것입니다. 아비들의 인생이 광야에 죽어 엎드러지는 모습으로 끝났음을 목격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히 그대로 실현되지 않는 법이 결코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광야에서 죽는다는 것은 온전한 무덤을 만들지 못하고 흙으로 대충 덮는다는 뜻입니다. 사막 특유의 급작스런 홍수가 닥치면 시신이 떠내려가서 야생 동물의 먹이 감이 됩니다. 후손들이 무덤에 비석을 세우고 회상하러 찾아올 수도 없습니다. 죽음 이후 이 땅의 남은 시신도 처참한 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육신은 수명대로 자연사했지만 너무나 불명예스런 하나님의 사형수였다는 이름을 자녀에게 남겨주었습니다.

 

그들의 후손으로선 틀림없이 하나님께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순종하려는 순전한 믿음이. 최소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경외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절대로 하나님의 싫어버림을 당하지 않아야겠다는 각오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자기들이 하나님을 싫어하지 않아야 하고 좋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식들이 아비의 죄를 지고서 광야를 유리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지만 아비의 죄 값으로 자식들까지 벌을 주어서 억울하게 고생시킨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비들의 죄가 얼마나 완악하고 중했는지, 그에 반해 하나님의 형벌을 주는 원리와 방식이 얼마나 공정하고 엄격한지 자식들 눈앞에 똑똑히 보여준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들의 신앙 교육과 훈련을 하나님이 주관해서 부모 대신에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는 물론 자녀들이 전혀 의도 계획하지 않았던 일입니다. 완악하게 당신을 거역한 아비들 대신에 가나안 진군과 하나님의 나라 건설의 첨병으로 세울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걸고 이스라엘과 언약한 그대로 당신의 이름을 걸고 당신께서 완벽하게 실현하고 계신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완전하신 하나님은 그 상벌의 방식도 절대적이고 완전하십니다. 하나님 그분이 긍정적이시기에 당신의 언약을 반드시 온전하게 실현하신다는 사실에 전혀 의심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모든 신자가 반드시 가져야 할 긍정적 사고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긍정 안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아비들이 가나안에 사로잡힐 것을 그렇게 곡해가면 두려워했지만 가나안 정복의 첫 전투의 모습이 어떠했습니까? 여리고 성을 당신만의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자녀들에게 단 한 명의 사상자 없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정복케 해주었지 않습니까? 이 얼마나 놀랍고도 오묘한 은혜로운 그분의 섭리입니까?

 

벌을 받고도 제대로 회개하지 못하는 인간인지라 하나님의 당신의 뜻과 계획을 미리 알려주어도 결코 알아먹지 못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라고 그 앞날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이야기 해주었습니까? 지금도 계속해서 그것을 말해주는 데도 못 알아먹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은, 아니 인간이 실제로 행할 수 있는 일은 다시 강조하지만 죽으면 죽으리라고 순전한 믿음으로 그분을 따르는 것 하나뿐입니다. 우리가 너무 연약하고 어리석고 때로는 잘못과 죄를 범하고도 스스로는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완전하고 선하신 당신을 따른 길만이 인간에게 참 소망과 유익이 됩니다.

 

이는 종교적 의무와 명령을 떠나서 하나님 그분만의 넘치는 배려요 사랑입니다. 당신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라는 쉐마의 교훈을 자녀 대대로 가르치라고 명했는데 지금 하나님이 가장 먼저 그 본을 실제로 실현해보이고 있는 셈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비단 옷을 입은 사람을 보려면 성중에 가면 되고 하나님의 사람은 광야에서 찾으라고 했습니다. 긍정적 사고와 말로 긍정적 열매를 소원하는 것은 결코 탓할 일이 아니고 권장할 만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생각하는 바가, 본문 식으로 말해서 하나님의 귀에 들리는 바가 믿음으로 세상에서 자기만 형통 출세하기를 원한다면 교회로 나올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비단 옷을 입으려는 일은 믿음을 가질 필요도 없이 세상으로 나가면 더 쉽게 달성할 수 있습니다.

 

교회 강단은 침례 요한처럼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를 위해서만 있는 것입니다. 모든 교인들로 오직 십자가 예수만을 바라보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는 원리 즉, 당신의 상벌을 베푸는 방식과 원리는 십자가에 완전히 드러났으며 그 메시지도 오직 하나입니다. 죄는 죽기까지 벌을 주시고 죄인은 죽기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골고다 십자가에서 주님의 거룩한 생명과 우리의 죄에 찌든 생명이 완전히 맞바꿈을 했습니다. 신자는 이미 그분의 거룩한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땅의 장막과는 아예 비교가 불가능한 아름다운 거처가 천국에 철 밥통처럼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런 은혜 안에 있는 신자인데 이 땅에 무엇인들 두려워할 이유나 필요가 전혀 없지 않습니까?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극렬히 타는 풀무 불 같아 보이는 고난이나 하나님의 부르심에도 하나님이 건져주심을 믿고, 아니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따라갈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신자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아주 일부라도 어떤 의미로라도 당신의 싫어버림이 됩니다. 또 그렇게 싫어버림이 되었다는 것을 당신만의 방식으로 신자로 반드시 알아먹게끔 그 삶을 주관 하십니다. 바로 오늘 본문이 말하는 바입니다.

 

6/23/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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