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14:39-45) 그래도 거역하는 개을러빠진 신자들 

구약성경강해 (31) / 민수기강해 (21) - 가데스 바네야의 불순종(11)

 

“모세가 이 말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고하매 백성이 크게 슬퍼하여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산꼭대기로 올라가며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가 여호와의 허락하신 곳으로 올라 가리니 우리가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모세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제 여호와의 명령을 범하느냐 이 일이 형통치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 중에 계시지 아니하니 올라가지 말라 너희 대적 앞에서 패할까 하노라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너희 앞에 있으니 너희가 그 칼에 망하리라 너희가 여호와를 배반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나 그들이 그래도 산꼭대기로 올라갔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모세는 진을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아말렉인과 산지에 거하는 가나안인이 내려와 쳐서 파하고 호르마까지 이르렀더라.” (민14:39-45)

 

너무 늦은 회개

 

하나님은 당신을 거역한 이스라엘을 그들의 말이 당신의 귀에 들린 대로 심판을 선고했습니다. 그 문자적인 의미대로가 아니라 평소의 생각까지 꿰뚫어 보시고 당신의 뜻에 맞추어 당신만의 절대적이고 완전한 방식에 따라 형벌을 주신 것입니다.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그들을 광야에서 40년 간 방황하다 죽어야 한다고 명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 심판의 선언을 모세로부터 전해들은 이스라엘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보인 반응과 그 결과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자기들이 범죄 한 사실을 인정 고백한 후에 여호와의 허락하신 곳으로 올라갔습니다.(40절)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주신다고 약속하셨기에 전투에 나서기만 하면 도와주시리라 믿었다는 뜻입니다.

 

모세가 그러지 말라고 만류했지만 기어이 전투를 시작했으나 도리어 대패하여 호르마까지 퇴각한 것으로 결말이 났습니다.(45절) 이는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이 겪는 첫 패배였습니다. 이번에도 이스라엘은 여호와가 허락했다고 말했지만 정작 하나님은 그 말이 당신의 귀에 들린 대로 행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도 두려워했던 아말렉 족속으로 그들을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흔히 회개는 제일 늦었다고 생각하는 그 때가 제일 빠른 회개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늦은 회개라도 일단 하면 하나님이 받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분명히 자기들 죄를 시인하고 그 죄를 바로 잡으려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했는데도 성경은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을 떠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44절) 그 상징적 의미는 하나님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아예 눈길도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전도서 3:1-2는 천하 범사에 기한이 있고 모든 것의 목적이 이룰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으면 뽑을 때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럼 하나님이 회개를 받아줄 때도 있고 받지 않고 심판을 할 때도 있는 것입니까? 쉽게 말해 하나님의 긍휼이 무한한 것이 아니라 인내의 한계가 있는 것입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열 번이나 거역하는 이 백성을 내가 언제까지 참아야 하느냐고 분노에 찬 말씀을 하신 것입니까?

 

만약에 그럼 영적으로 너무나 어리석은 우리로선 그분의 인내의 한계를 미리 알 수 없지 않습니까? 아예 죄를 짓지 않으면 그런 염려를 할 필요가 없겠지만 신앙생활을 아무리 오래 했어도 그럴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분명히 잘못을 깨닫고 다시는 죄 짖지 않겠다고 회개하고도 또 짓게 됩니다. 그럼 언젠가는 그분의 형벌을 피할 길이 없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당연히 그렇습니다. 이미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영원한 심판은 없으나 징계는 반드시 따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11:8-10에서 징계가 없으면 하나님의 참 아들이 아니며 부모가 아들을 훈육하듯이 우리의 유익을 위하고 당신의 신적 거룩함에 참예케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은 우리도 이미 그런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다 언젠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이 나를 치실 거야!”라고 말하거나 그런 심경이 들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금방 자기가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조차 잊고는 다시 범죄합니다.

 

영적 진리와 구체적 명령

 

본문에서 이스라엘이 실패한 이유는 인내의 한계를 넘어선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모세가 “너희가 어찌하여 이제 여호와의 명령을 범하느냐”(41절)라고 적극 만류했습니다. 하나님 그분이나, 그분의 언약이나, 그분의 계명을 거역했다고 하지 않고 명령을 범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데도 각기 내용이 다름을 좀 정리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어긴 것은 그분의 성품이나 그분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과 어긋나게 행동하는 것인데 우리는 평생을 그럴 것입니다. 언약은 하나님과 백성이 쌍방이 준행할 것을 서약하는데 한 쪽 당사자인 신자가 그 준행에 나태하거나 위반하더라도 기본적으로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걸고 당신께서 반드시 이루십니다.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주신다는 언약을 이 거역에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주시듯이 말입니다. 그분의 계명은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처럼 영적 원리에 관한 것인데 종종 삶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해야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예컨대 이웃 사랑의 계명만 해도 매번 누구에게나 그럴 수 없습니다.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경지에 까지 안 되어도 나름 자기 방식으로 섬깁니다. 제대로 섬기지 못해도 안타까이 여기며 기도해 줄 수 있습니다. 아니 때로 상처를 주고받거나 심하면 싸울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일일이 잘못했다고 벌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이 인간 신자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이며 독선적인 징벌이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 “너희는 내일 돌이켜 홍해 길로 하여 광야로 들어갈찌니라”(25절)고 명령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일시, 장소, 행동을 적시했습니다. 다시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그대로 실행해야만 합니다.

 

모세의 왜 명령을 ‘범하느냐’라는 말을 영어로 transgress라고 번역했듯이 원어로는 어떤 선을 넘었다는 뜻입니다. 쉽게 비유하면 한국 DMZ를 사이에 두고 남북한이 철책을 쌓고 “이 철망을 뚫고 넘어들어 오면 즉시 발포한다.”고 써 붙인 경고문이 명령인 셈입니다. 흰 깃발 들고 무조건 항복하지 않고 철조망을 뚫으려 하면 당연히 바로 사살합니다. 명령을 위반하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거역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성경이 완비되지 않았고 성령도 모든 믿는 이에게 강림 내주하지 않은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과 구체적으로, 때로는 육하원칙에 따른 분명한 문장으로 직통으로 소통했습니다. 그 중에 모세는 하나님이 은밀한 말로 하지 않고 대면하여 가장 명백히 대화하는, 쉽게 말해 그분의 대변인이었습니다.

 

그럼 우리에게 고민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벌을 주신 이유는 이해가 되는데 오늘날에는 하나님의 직통 계시를 받지 못합니다. 성경을 매일 읽고 묵상하며 성령이 내주해 있음을 알지만 성경의 계명들이 구체적이지 않고 일반적인 원리가 대부분입니다. 그마저도 현대 생활에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계명들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럼 항상 죄를 범할 소지가 있고 심지어 어떤 측면에서 하나님의 뜻을 위반했는지도 몰라 회개도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할 것입니다. 그분의 인내의 한계를 가름할 수도 없습니다. 언제 그분의 징계가 임할지 모르게 됩니다. 그러니까 현실적 고난이 닥치면 제일 먼저 내가 하나님을 거역한 측면이 있어서 형벌을 받는 것 아닌가라는 의심부터 제일 먼저 듭니다. 기도해도 말씀을 봐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어서 더욱 난감합니다.

 

그래도 거역하는 이스라엘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이 본문 44절에 나옵니다. “그들이 그래도 산꼭대기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문자적으로는 모세가 만류하는데도 고집을 피웠다는 뜻입니다. 원어로는 부주의하게 판단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일부 우리말 번역본에도 ‘그래도’라는 단어 대신에 ‘자기 뜻대로’, 혹은 ‘더 생각지도 않고’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모세를 통해 전해들은 하나님 명령의 뜻을 경시 내지 오해한 것입니다. 그들이 내일 홍해 길로 광야로 들어가라는 말씀의 뜻을 몰랐을 리는 없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심판의 말을 전하자 백성들은 “크게 슬퍼하여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39b-40a) 전쟁을 치러나갔습니다. 최소한 하루 밤은 지났습니다.

 

처음 열 명의 정탐꾼들이 슈퍼 거인 족속들이 지키고 있다는 악평을 들었을 때는 꼼짝 없이 모두 다 죽었다고 생각하고 밤새 곡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당장 죽지는 않고 광야에서 40년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하나님의 양보 아닌 양보를 받아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무미건조하고 고달프며 죽지 못해 겨우 연명만 하는 광야생활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니 그 신세가 너무 서글펐던 것입니다. 밤새도록 곰곰이 궁리에 궁리를 해보았을 것입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다는 것은 그 명령에 순종하기보다는 뭔가 다른 결단을 했다는 뜻입니다. 광야로 돌아갈 양이면 서두를 필요 전혀 없이 가능한 늦장을 부렸을 것입니다.

 

그럼 그들이 밤새 궁리해서 내린 결론이 무엇입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말씀은 저렇게 해도 우리가 다시 가나안 정복 전쟁을 시작하면 설마 벌은 주지 않겠지? 지금껏 우리가 불평하고 원망하고 심지어 금송아지 만들어 숭배했어도 주모자 삼천 명만 죽이고 백성들은 살려 주었지 않는가? 이번에도 악평한 자들은 이미 벌을 받아 현장에서 즉사했으니(27절) 남은 우리가 전쟁 치러나가면 하나님은 못 이긴 척 하고 다시 기회를 주실 것이야!”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는 말을 당신의 귀에 들리는 대로 형벌을 내렸습니다. 이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들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여 시행한 것입니다. 어리석고 불완전하며 죄와 탐욕에 찌든 인간이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자의적으로 판단하려든 것 자체가 너무나 큰 불경이며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인 줄도 모르고 말입니다.

 

지난주에 신자들이 하나님의 미래 언약이나 계획을 도무지 알 수 없고, 심지어 미리 가르쳐 주어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으니까 순전히 따르기만 해야 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본문에선 하나님의 말씀이 그 들리는 대로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감히 인간이 하나님처럼 하나님 그분 마음의 깊은 내면까지 헤아려들었습니다. 성경은 구체적인 해답을 제시하는 책이 아닙니다. 해답을 얻을 수 있는 원리를 밝혀놓은 말하자면 자습서 같은 것입니다. 그런 중에 하나님이 특별히 시간 장소 방식까지 구체적으로 적시해서 명령 했다면 더더욱 즉시 순종하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죽기보다 싫은 광야 생활

 

누차 강조하지만 이스라엘이 절대로 바보가 아닙니다. 아주 똑똑하다 못해 영악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명령에 대놓고 거역하는 셈인데 하나님이 그렇게 해도 무조건 눈감아 주리라고 확신했을 리는 없습니다. 다시 더 큰 벌을 받을 가능성도 있음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십 세 이상 여호와를 원망한 자는 가나안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고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는(29,30절) 말씀에만 온 신경이 집중되었던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광야에서 그렇게 죽으나, 가나안 전쟁에서 죽으나,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여기서 바로 죽으나, 어차피 마찬가지라고 결론을 내렸던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해선 광야에서 사십 년이나 그렇게 살기는 죽기보다 싫다는 뜻입니다.

 

솔직히 그들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만나만 먹어서 지겨워죽겠다는 그들의 불평이 그 체험을 하지 못한 우리가 봐도 그런대로 타당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이미 그 지겹고 아무 즐거움 없는 생활, 눈만 뜨면 똑같은 생활을 많이 겪어 봤습니다. 푸른색이라곤 거의 없고 흙모래와 바위뿐인 적막한 광야에서 아침에 일어나면 만나를 거두어서 먹는 일 말고는 아무 할 일이 없습니다. 만나를 모아서 저축하는 재미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현실의 치열한 경쟁에서 실패하고 우울증에 걸렸다가 자살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이와 같습니다. 종일 자기 방에 박혀 지내는 매일의 삶이 너무 지겹습니다. 내일도, 모레도, 그 다음날도, 다음의 다음 날도 똑같은 일상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잠자리에 들 때에 이대로 계속 잠만 자다가 제발 내일 아침에는 눈이 안 떠지길 바란다고 합니다. 단 하나도 다르지 않고 똑같은 하루하루를 억지로 사는 것을 도무지 견디지 못하고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자살을 결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장 손쉽게 이용하는 자살 방식도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취해서 안 깨어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이 미처 몰랐던 아주 중요한 영적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요즘 한국의 연예인이나 사회 유명 인사들이 범법 행위나 도덕적 잘못을 저지르면 일이 년간 칩거하며 자숙하는 기간을 갖습니다. 그러다 다시 이전처럼 활동을 재개하면 대중이 용서해줍니다. 한국인이 쉽게 흥분했다 쉽게 가라앉는 냄비 근성이 있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 잘못을 회개하려고 노력한 모습이 가상하다고 인정해준 셈입니다.

 

이스라엘은 전혀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라는 공부는 않고 밤늦게까지 밖에서 놀면서 사고만치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여러 번 훈계하고 체벌도 가했습니다. 열 번째에 또 그러자 아예 외출 금지를 시키면서 내일부터는 학교에서 돌아와선 한 시간은 휴식하지만 여섯시부터 잠잘 때까지는 네 방에서 공부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형벌의 구체적인 장소 시간 방식을 지시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하루도 참지 못하고 또 외출했으면 아버지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연히 당신이 명한 그대로 엄격히 시행할 것입니다. 이젠 그 명령을 어겼다는 행동이 문제가 아닙니다. 자식의 마음에 아버지가 아버지로서의 아예 위치하고 있지 않습니다. 죄송하지만 아버지를 지나가는 강아지 취급도 않은 것입니다. 강아지가 짖으면 겁을 내고 피하기라도 하지만 아버지 말은 완전히 무시했습니다. 주차 금지라는 간판이 붙어있고 그 앞에 교통경찰이 서있는데도 당당하게 주차한 꼴입니다. 당장 주차위반 벌금 고지서를 발부하는데다 공무집행방해죄까지 추가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다시 14:22,2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형벌을 내리는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라고 전제합니다. 하나님으로선 당신이 어떤 분인지 보여줄 대로 다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더 이상 보여줄 것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당신을 열 번이나 시험했다고 하나님이 분노하신 것이 더 이상 참지 못하는 인내의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죄를 반성 회개 순종하라는 의미마저도 불충분합니다. 당신의 영광을 충분히 보여주었고 더 이상 보여 줄 것이 없으니 제발 그 영광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연약한 인간과 인내력과 의지력을 걸고 내기해야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로선 당신을 의심하고 원망하고 불순종할 이유가 전혀 없게 해준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1) 당신을 시험했고 2) 당신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했고, 3) 특별히 본문 사건에선 당신을 멸시했기에 결단코 가나안 땅을 보지 못한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의 원칙은 너무나 공평합니다. 열 명의 정탐꾼은 적극적으로 당신을 거역했을 뿐 아니라 백성들을 거짓으로 선동해 당신께 거역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결단코 사할 수 없는 죄악을 지었기에 현장에서 즉사하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비록 처자를 위한다는 목적이었지만 그 선동에 넘어간 백성들도 계속해서 하나님을 시험하고 청종치 않고 특별히 본문의 사건에선 당신을 완전히 멸시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승리케 해줄 리는 없습니다.

 

하나님과 직접 교통하는 모세는 이번에는 전혀 만류하지 않았고 땅에 엎드리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내린 명령을 거두어 드릴 리는 없음을 잘 알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대패할 것이라는 결과가 너무 확실히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항상 “당장이 여기”가 문제다

 

광야에서 매일 반복되는 지겨운 생활이 죽기보다 싫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항상 지금 당장 여기에서 즐겁고 신나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되도록 도와줄 때만 필요하고 하나님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멸시한다고 해서 대놓고 욕을 하거나 비방하지는 않습니다. 겁이 나서라도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그분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세상 부모들이 자식이 구태여 효도하지 않더라도 벌을 주지 않지만 부모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불신자들도 천하의 패륜아라고 정죄하지 않습니까?

 

그들이 전쟁을 치르러 나가면서 모세에게 행한 말을 다시 보십시오. “보소서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자신들의 뒤늦게나마, 이미 너무 늦었고 그 본심은 딴 데 있으면서도, 순종하는 모습을 보라는 말부터 먼저 했습니다. 다음에 “우리가 여호와의 허락하신 곳으로 올라간다고” 합니다. 이왕에 하나님이 주신다고 약속한 땅이지 않느냐 그럼 그대로 해주어야 옳다는 뜻이 깔려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단순히 “우리가 범죄하였음이니이다.”라고만 했습니다. 여호와께 죽을 죄를 지었다, 최소한 여호와와 그 계명을 무시 혹은 시험했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뭔가 잘못한 것 같기는 하다, 죄를 지은 것은 맞다 정도의 뜻이지 않습니까?

 

어디선가 많이 들었던 문장이자 표현법 아닙니까? 잘 생각해보십시오. 성경에서 찾지 않아도 됩니다. 그럴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신앙지식은 높지 않습니다. 우리가 급한 일이 생겨서 새벽 기도 모임에 나와 행하는 기도문이지 않습니까? “하나님 제가 여기에 있나이다. 주님 제단에 나왔습니다.”로 일단 시작합니다. 새벽예배에 나온 것도 일종의 공로가 됩니다.

 

다음에는 어김없이 이스라엘의 말과 같은 내용이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성경에 허락하신 이런 저런 축복이 많지 않습니까? 또 여러 계명들을 지키라고 해서 저는 그 동안 예배, 기도, 봉사, 헌금 성실히 감당했고 오늘은 또 새벽 모임에도 나왔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고난을 허락하신 것을 보니 뭔가 하나님께 범죄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죄 안 짓고 착하게 살고 교회에 더욱 충성할 테니까 고난을 빨리 끝내시고 허락한 복을 주십시오.”

 

구체적으로 육하원칙에 따라 회개하지 않습니다. 평소에 순종에 게으르니까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모릅니다. 단지 고난에서 구출 받는데 가장 큰 장애일 것 같다는 생각에서 일단 그렇게 말하고 보는 것입니다. 거기다 공수표가 될 것이 빤한데도 점수를 더 따려고 새삼 헌신의 서약을 덧붙입니다.

 

급한 일에만 기도한다는 것도 지금 당장이 너무 고달프고 힘들다는 뜻입니다. 가데스 바네야의 이스라엘이나 오늘날 우리나 하나님을 무시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과거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까지도 주관하십니다. 아니 미래의 당신의 언약으로 이끌기 위해서 현재를 조성하신 것입니다. 그 현재가 괴롭다고 벗어나려면 하나님이 마련해 놓은 미래를 걷어차겠다는 뜻입니다. 당신의 선물을 거부하는 것만큼 당신을 멸시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 반대도 성립합니다. 지금 현재 풍요하고 안락하니까 최소한 큰 고난이 없으니까 미래도 풍요하고 안락하겠고 최소한 큰 고난이 없으리라 여깁니다. 열 번이나 나를 시험했다고 하나님이 분노한 것이 단순히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동안에 열 번이나 큰 심판 없이 넘어갔으니 이번에도 당연히 그러리라고 하나님의 엄숙한 명령을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고 그분을 무시한 것입니다.

 

침노하는 자가 천국을 차지한다.

 

거기다 지금까지 애굽과 광야에서 베푼 이적은 그들의 탈출과 생존을 위해선 필수불가결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선조와 맹세했고 또 광야로 이끈 것도 하나님입니다. 어폐가 있는 표현이지만 하나님 쪽에서 지켜서 보호해 줄 책임과 의무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시험하거나, 청종하지 아니 하거나, 그 명령을 무시해도 다시 기회를 줄 수 있는 그런 차원이 결코 아닙니다. 지금부터는 이스라엘이 피의 언약식을 거행했듯이 목숨 걸고 실제로 전쟁을 감당해야 합니다. 자기들이 그렇게 염려했던 처자들과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그 땅에 건설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12)고 선포했습니다. 메시아로서 공사역을 시작하는 첫 메시지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였습니다. 이제 얼마 안 있어서 당신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완전히 가시적으로 실현될 것이니 그 은혜 안에 들어가기를 적극적 열정적으로 소망하라는 것입니다. 당신께서 공평과 정의로 통치할 새 시대가 열렸으니 그런 자만이 새 시대를 살아갈 자격이 있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그 말씀을 출애굽에 적용하면 떨기나무 불꽃에서 소명을 수여받은 모세가 애굽에 돌아가 너희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할 때부터 천국은 강력하게 임했습니다. 광야를 거쳐 가데스 바네야에 이르러서는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가 빼앗아야 한다고 모세를 통해 여호와가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말씀에 전혀 청종하지 않고 지금 당장 여기서 안락하게 해주어야만 하고 그러지 않으면 여호와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버틴 것입니다. 애굽으로 당장 돌아가겠다고 설쳤고, 그것이 막히자 이왕에 죽을 것인데 애굽보다 못하겠지만 광야보다는 훨씬 나을 가나안에라도 들어가 보기라도 하자고 나선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세워질 천국을 침노할 의도는 전혀 없고 지금 당장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 조금만 불편해도 참지 못하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에게 인내의 한계가 없는 것은 절대적인 진리입니다. 아무리 늦은 회개라도 진정한 회개를 하면 제일 빠른 회개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지 않습니까?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인내이자 긍휼이자 사랑이자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만약 인간이었다면 십자가에 오를 리도 없지만 빌라도 법정에서 당신의 화에 못 이겨 죽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이라곤 한 명도 없고 수제자는 당신이 예고한 대로 세 번이나 스승인 당신을 저주하면서까지 부인하는 꼴을 보고 어떻게 견딜 수 있습니까?

 

만약 이스라엘이 광야로 들어가 사십일 금식 기도하며 순전한 모습으로 자숙기간을 가졌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했겠습니까? 저는 단연코 장담하건대 그 사십일을 다시 일 년씩으로 환산해서 기왕에 내렸던 광야 방황 형벌의 기간을 감해주었을 것입니다. 제가 장담했어도 제 개인적 의견이 아닙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세 번 당신을 부인했으나 부활 후에 그를 대면하여 다시 세 번의 회개 기회를 주면서 수제자 겸 유대인의 사도로 복직시켜주었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그 말씀이나 여호와가 이스라엘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겠다는 언약은 동일한 차원이며 또 정말로 심각한 의미를 지닙니다. 단순히 순종만 하면 복 받는다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 뜻대로 따를 각오도 되어 있고 재물 권력 명예 등에 관한 탐욕도 거의 다 없앴습니다. 그러나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적극적으로 침노해서 차지하려 합니까? 주님이 십자가로 달성하신 천국을 침노해서 빼앗고 있습니까? 혹시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가데스 바네야에서 서성거리고만 있지 않습니까? 순전한 믿음으로 성실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맞지만 혹시라도 지금 당장 여기서 큰 문제만 없으면, 나쁜 일만 안 생기게 해달라는 의도로만 신앙생활을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지금은 시간과 여유가 없어서 그렇지만 앞으로는 더욱 선하게 살고 주님의 일도 적극 참여 하겠다는 뜻은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선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하나님을, 십자가 예수님의 죽음을 멸시하는 죄입니다. 여전히 현재의 자기 상황을 갖고 자기 미래를 재단하고 있습니다. 미래에도 큰 어려움만 없다면 그 때가서 헌신하겠다고 하지만 여전히 그 미래에 도달하면 지금 당장 여기서의 안락이 목적인 신앙이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야단치면서 첫째로 전제한 것이 당신의 영광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다음에 애굽과 광야에서의 이적들은 가나안으로 가기위한 필수 과정일 뿐이고 가나안에 제사장 나라로 세우는 이유는 그곳에서 당신의 영광을 열방에 비추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당신의 명령에 청종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천국을 침노해서 차지하라는 뜻이 단순히 예수 믿고 구원 얻으라는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 본체이신 당신이 우리 대신에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천국은 미래에 확정되어 있습니다. 이젠 우리가 이 땅에 천국을 실현시킬 차례입니다. 주님이 그래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게 해달라는 기도부터 항상 가장 먼저 하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십자가 구원 안에 들어온 자는 그 확보된 미래가 지금 이 땅의 신자의 현실과 삶에 적극적으로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자라면 당연히 현재의 환난을 붙들고 새벽에 교회 나아서 울부짖으며 기도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그마저 하지 않았습니다. 참 신자라면 그것으로 그쳐선 안 됩니다. 이 땅에서부터 주님의 거룩한 통치를 날마다 순간마다 누리며 천국 안에서 살고 있는 이 큰 영광을 나를 통해 주변에 비취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모두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보길 원합니다. 아무리 회개에 유효기간이 없어도 진정한 회개를 늦추지 말고 해보자는 것입니다. 오늘만큼은 윤리적 종교적 영적 죄를 떠나서 더 근본적으로 자신의 믿음을 살펴봅시다. 혹시 나쁜 일만 생기지 않게 해달라는 생각으로, 천국을 적극적으로 침노해서 내 주변에 실현시킬 생각은 없이, 신앙생활 하고 있지 않는지를 말입니다.

 

하늘의 천국이 확보되어 있고 그곳에 이를 동안 주님이 땅과 하늘의 권세로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해주시는데 이 땅의 천국을 침노 못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아니 더 이상 무엇을 염려하거나 주저할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6/30/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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