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16-18) 이태원 사태에도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이유

2022년 추수감사절 설교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마2:16-18)

 

위로받기 거절하는 환난

 

예수님이 탄생할 때 헤롯 대왕이 베들레헴의 두 살 이하의 남자아이들을 몰살시킨 사건은 성경에서 아주 난해한 기록 중의 하나입니다. 기독교 외부에선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예수님이 아무 죄 없는 아이들의 죽음을 대가로 요구했다고 예수님을 미개하고 잔인한 주술적 메시아라고 비방합니다. 신자들은 당연히 그렇지 않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이런 비극이 마침 예수님 탄생 때에 발생했는데도 하나님이 왜 막아주지 않았는지 의아해하다 못해 원망스러운 마음까지 듭니다. 

 

졸지에 그런 끔찍한 불행을 당한 부모님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너무나 억울하고 분통해서 할 말을 잃고 살아갈 소망마저 상실되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이런 일을 허용한 하나님에 대해서 의심 원망하다가 분노까지 터트렸을 것입니다.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이 행한 일이라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습니다. 그랬다간 헤롯에게 부모마저 큰 화를 입을 수 있으니 더더욱 하나님에 대한 원망만 늘어났을 것입니다. 

 

그들로선 그저 한없는 슬픔에 잠겨 피를 토하듯이 목 놓아 울었을 것입니다. 마태도 그래서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렸고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받기를 거절했다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씀을 이 사건에 적용했습니다.(렘31:15) 위로받기를 거절했으니까 이웃들의 위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오히려 화만 돋우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또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생각도 없었고 도무지 말도 안 되는 비극이라 원망만 생겼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비극의 책임은 전적으로 헤롯에게 있기에 하나님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베들레헴에 탄생한 메시아를 장차 자기 왕권을 위협할 대적으로 보고 미리부터 그 싹을 자르려 한 것입니다. 헤롯 대왕은 정통 유대인이 아니고 이두메 출신으로 로마에 아부하여 왕권을 차지한 자입니다. 유대 왕의 정통성을 세우려고 유대 하스몬 왕조의 공주 마리암과 결혼했으나 나중에 그 아내와 그녀 사이에서 난 두 아들마저 왕권의 경쟁자로 간주해 죽일 만큼 잔인무도했습니다. 자기 동족도 아닌 유대인 아이들이야 눈도 깜짝 않고 죽일 수 있었던 자였습니다. 

 

인간 세상에 생기는 모든 모순 파괴 재앙 등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죄악이 원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이 타락했을 때 피조 세계 전체에도 함께 벌을 내렸기에 평생토록 인간은 이마에 땀을 흘리는 수고를 해야만 합니다. 거기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자기만 세상에서 최고로 높이려는 탐욕과 교만에 빠져서 최고 좋은 것을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자기가 최고로 많이 차지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인간사회는 타락 이후로 온갖 실패, 불행, 고난, 재앙이 쉴 새 없이 누구에게나 닥치기 마련이며 신자라고 결코 예외가 아닙니다. 요컨대 인간 세상에 일어나는 고난의 대부분이 인간들이 자초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성경적 진리를 아는 신자들은 이 참극에 대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은 의심할 수 있어도 그분께 대놓고 원망 불평해선 안됩니다. 

 

그러나 헤롯에게 졸지에 핏덩어리 같은 아들을 살해당한 부모들에게 이런 진리를 말해준들 아무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그 자리에서 뺨을 맞지 않는 것만도 다행일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식의 비극이 오늘날도 비일비재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한국 이태원에서 발생한 참극이 그렇지 않습니까? 꽃다운 청년이 자기 소원대로 인생을 꾸려보지도 못하고 아무 잘못도 없이 졸지에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그중에는 분명히 신자도 많이 있었을 것이며 그 부모들의 애끓는 심정이 어떠하겠습니까? 어떤 위로도 받기를 거절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원망만 늘어날 것입니다. 

 

올해는 또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이 헤롯 같은 독재자 푸틴 한 사람의 야욕 때문에 억울하게 희생당한 청년들과 시민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러시아 군인들을 침략자라고 비난해선 안 됩니다. 우크라이나 청년들은 나라를 되찾겠다는 애국심으로 자발적으로 참전했겠지만 러시아 청년들은 아무 의미도 없고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전쟁에 강제로 징용되었습니다. 그들은 억울한 죽음을 넘어서 문자 그대로 개죽음을 당한 것이며 그중에 신자와 그 부모가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신자를 향한 기쁘신 뜻이라고 말합니다.(살전5:18) 범사니까 당연히 이런 끔찍한 비극들도 포함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소원할 수 있을지 몰라도 신자로선 하나님과 무관한 참사인 줄은 알아도 아무래도 진정한 감사는 하기 힘듭니다. 성경이 이상적인 목표로 제시하나보다 여기고 치우는 신자가 대부분입니다. 그렇다고 불신자들처럼 억지로 긍정적 낙관적으로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꾸려니까 뭔가 하나님 앞에 위선을 떠는 것 같아서 내키지 않습니다. 신자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범사에, 특별히 이런 억울한 경우까지 포함해서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베들레헴 탄생의 배경

 

성경의 예수님 탄생에 관한 예언과 기사를 이 사건과 잘 연결해 보면 신자의 감사가 세상 사람의 그것과는 완전히 달라야 하는 근거와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죄에서 구원해주신 은혜를 감사하라는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구원을 베푼 은혜는 이미 신자에게 온전히 실현된 사실입니다. 나아가 그 후로 어떤 죄를 지어도 징계는 있어도 더 이상 정죄는 없습니다. 요컨대 주님의 십자가는 신자의 정체성이나 다름없습니다. 올해에 은혜받은 일에 감사해야 할 추수감사절에 새삼 그것을 두고 감사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우선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게 된 배경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로마 황제 아구스도가 제국 전체의 인구조사를 시행했는데 반드시 고향에서 조사받아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눅2:1) 요셉은 알다시피 다윗 가문의 후손이었고 하나님은 다윗과 그의 후손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케 해줄 것이라고 언약을 맺었습니다. (삼하7:1-17) 이사야 같은 선지자를 통해 “그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사11:10)고 그 언약을 재확인해주었습니다.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로 베들레헴 사람 보아스와 모압 여자 룻의 손자였습니다.(룻4:21,22) 그리고 미가 선지자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5:2)라고 예언했습니다. 근본이 영원에 있는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이므로 독생자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출생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죄 중에 있는 인간을 구원해주실 것이라는 계획은 태초부터 세워져 있었습니다. 구약성경 전반에 예수님이 오신다는 예언이 직간접적으로 많이 나옵니다. 구약 전체 내용을 한 문장으로 간단히 바꾸면 “예수가 오실 것이다!”입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계획하신 그 일을 당신의 종들과 언약을 갱신하면서 또 선지자들의 계시를 통해서 구체화 시켜 나간 것이 구약 역사입니다.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예수님이 잉태되어서 만삭이 되었으나 아구스도의 명령대로 요셉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아구스도는 유대인들의 경전에 대한 지식은 아마도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유일신 창조주를 믿으며 자기들을 구원할 메시아를 기다린다는 정도는 상식으로 알고 있었을지 몰라도 자기 당대에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자기가 명한 호적조사로 인해서 그 예언이 성취된다는 것은 꿈에도 상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수백 년 전에 예언되었습니다. 그런데 아구스도의 이 호적조사가 없었다면 마리아가 만삭의 몸을 이끌고 그곳으로 갈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고향에 친척 친구가 있어도 굳이 갈 필요가 없습니다. 아구스도 같은 불신자의 경우는 자기들 인생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또 그러려고 엄두도 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의 최고 권력자 로마 황제마저 당신의 때와 방식으로 움직여서 만삭의 여인을 베들레헴으로 가게 만든 것입니다. 세상만사를 오직 당신께서 주관하실 뿐만 아니라 반드시 당신 자녀들의 구원과 유익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서 그렇게 하십니다. 인간 세상의 진짜 주인은 로마 황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나사렛에 무슨 선한 것이 나느냐?

 

그리고 헤롯이 두 살 이하 아이를 죽였기에 얼마 동안은 요셉 가족이 베들레헴에서 평안하게 지냈습니다. 율법에 정한 대로 결례를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행했습니다.(눅2:21-39) 예수 출생 후 정확히 언제인지는 몰라도 아무도 예상치도 못했던 동방박사의 헤롯 왕궁의 방문이 이 참극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먼 동방 페르샤의 점성술 학자들이 별자리의 아주 특별한 움직임을 보고서 메시아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깨닫고 경배하려고 그 먼 길을 자기들 경비를 들여가며 선물을 들고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미처 미가의 베들레헴 출생 예언까지는 몰랐습니다. 거기다 헤롯이 유대인이 아니며 오히려 유대인들을 미워하는 줄도 전혀 모르고 순진하게도 그의 왕궁으로 찾아와 너희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어디서 탄생했는지 물었습니다. 

 

음흉하고 탐욕스러운 헤롯은 박사들에게 베들레헴에서 메시아가 태어난다는 구약 예언이 있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그들의 여행 기간과 그 특별한 별자리가 나타난 시기까지 감안하여서 베들레헴이 작은 성읍이라 숫자로는 그리 많지 않지만 두 살 이하의 남아를 전부 몰살해버렸습니다. 그 전에 하나님은 꿈에서 요셉에게 빨리 애굽으로 피신하라고 계시해주어 아기 예수의 목숨을 건져주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예상치 못한 비상 상황이 발생하니까 부랴부랴 긴급 대책을 발동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이 사건으로 인해 애굽으로 피신한 예수가 나중에 베들레헴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려는 뜻이었습니다. 애굽에서 피신했던 요셉 가정은 베들레헴 영아 살인 사건을 일으킨 헤롯 대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헤롯 대왕만큼 잔인한 아켈라오가 그곳 분봉왕이 되었기에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무서워했습니다. 비록 두 살 미만의 남자아이들을 다 죽였어도 여전히 베들레헴은 헤롯 가문의 특별 감시 지역이었을 것입니다. 언제 다시 메시아가 태어날지 모르고, 또 헤롯 대왕 당시에 베들레헴에 잠시 와서 아기를 낳고는 애굽으로 피신했던 요셉이 다시 나타나면 당장에 체포해서 그 아이 예수를 죽이려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갈릴리의 나사렛으로 가서 소년 예수를 양육하라고 또다시 계시해주었습니다. 아기 예수로 안전하게 보호 성장케 하려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나다니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1:46)라고 멸시할 정도였기에 헤롯 왕가는 물론 로마도 반역이나 열혈당원들에 대해서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아주 작은 시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만 삼십 세가 되어서 유대 랍비로서 공사역을 시작할 때까지 어느 누구의 감시는 물론 주목도 받지 않고 구약성경과 기도에 정진하면서 메시아 사역을 완벽하게 준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갈릴리에 비취는 영광 

 

흥미롭게도 나사렛 예수로 사역함으로써 유대인들 사이에 처음 얼마간은 주님의 정체성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요7:41, 42) 서로 다퉜습니다. 일반 대중은 주님이 베들레헴에서 출생해서 애굽으로 피신했다는 사실까지는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절묘한 계획이었습니다. 주님의 정체성이 메시아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니까 유대 당국이나 백성들로선 대놓고 핍박하기도 무조건 추종하기도 애매해졌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당신께서 정하신 기간 동안 당신께서 소망하고 계획하신 대로 메시아 사역을 맘껏 행할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에게 지금까지의 바리새인들의 가르침과는 그 의미와 차원이 전혀 다른 천국 복음을 삼 년간 온전히 가르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공회원 중에 비교적 합리적 판단을 했고 나중에 예수님의 제자가 된 니고데모가 공회에서 예수님에 대해 변호해주었습니다. 그때 공회원들이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요7:52)고 그의 의견을 깡그리 무시해버렸습니다. 이번에는 놀랍게도 나사렛 예수로 활동함으로써 니고데모의 안전까지 하나님은 미리 아시고 보호해준 것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공회원들의 주장과는 달리 갈릴리에서 메시아가 난다고 성경에 예언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전에 고통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사9:1) 직접적으로 예수님의 탄생은 언급하지 않았으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다고 합니다. 갈릴리에서 선지자 중의 최고 선지자이신 예수님이 나셨고 공사역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행하였습니다. 구약성경에 가장 능통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미처 이 말씀을 예수님과 연결시키지 못했던 것입니다. 나사렛이라는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시골 마을 출신이라서 아예 무시했고 또 주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기 싫어서 이 말씀이 메시아 예언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것입니다. 

 

어쨌든 이 비극의 최초 발단은 동방박사의 예루살렘의 헤롯 궁을 방문한 때문이었습니다. 헤롯의 만행을 하나님이 막아주지 않았다고 원망하려면 이 박사들의 방문에 대해서도 그래야 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해서 메시아를 경배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입니까? 다니엘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주님 오시기 전 605년 청년 때에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 와서 느부갓네살왕부터 바사의 초대왕 고레스까지(BC 536) 여섯 왕을 섬겼던 다니엘은 자신의 경건한 삶으로 여호와 신앙의 씨앗을 먼 이방 땅에 뿌리 깊게 심어 놓았습니다.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간 초기에 아주 특별한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당시로선 느부갓네살 왕은 로마 황제와 버금가는 온 세상의 통치자였습니다. 그가 이상한 꿈을 꾸고서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몰라서 괴로워했습니다. 성령의 영감을 받은 다니엘은 왕이 아무 힌트를 주지 않았는데도 큰 신상이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 하고 뜨인 돌에 의해 완전히 무너지고 그 우상을 친 돌이 온 세계에 가득하다고 꿈 내용을 알아맞혔습니다. 그리고 해몽해주길 바벨론 왕국은 망하고 메시아의 나라가 온 열방 위에 견고히 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단2장) 

 

사람 손으로 하지 아니한 뜨인 돌이므로 장차 하나님이 보내실 예수님이 아구스도나 느부갓네살 까지도 다스리는 이 땅의 진정한 왕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당시 상황에서 느부갓네살 왕 앞에서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절대로 입에 담아선 안 될 말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처음부터 여호와의 큰 권능과 자신의 신실한 믿음을 우상숭배의 수도에서 온전히 드러냈고 그 씨앗의 결실이 바로 동방박사들이었습니다. 

 

고대의 인구조사는 군대 징집과 세금 징수 두 가지 목적으로 행합니다. 아구스도는 이미 지중해 세계를 다 정복하여서 전쟁할 필요가 없어졌기에 세금 징수 목적의 조사였습니다. 각 식민지에 전쟁을 없게 해준 대가로 고율의 세금을 매길 작정이었고 식민지로선 경제적 수탈을 각오해야 합니다. 거기다 이 사건에서 보듯이 헤롯 대왕의 폭압 정치는 점점 심해졌습니다. 가뜩이나 로마의 식민지가 되어 있는 유대인들로선 메시아를 대망하는 사상이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이방인 아구스도가 세계를 지배하고 에돔 사람 헤롯이 유대의 왕으로 있던 바로 그런 때에 갈릴리 땅을 영화롭게 하려고 예수님이 탄생한 것입니다. 세상 최고의 권력자들인 아구스도도 헤롯도 느부갓네살도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이라는 장대한 드라마의 단역으로 하나님이 동원시킨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경제적 풍요를 채워주는 자가 참된 와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는 경건과 거룩함을 덧입히고 참 생명으로 죄인을 살려내는 예수님이야말로 진정한 왕이자 만 왕의 왕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시공간을 주관하는 하나님

 

본문에서 정작 주목해야 할 사항이 하나 더 있습니다. 마태가 인용한 예레미야의 예언이 단순히 자식 잃은 부모의 슬픔을 위로하는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라헬에게 자식이 없지 않았고 잃어버린 적도 없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와 씨름하여 이김으로써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은 야곱이 가장 사랑한 아내였고 그녀의 두 아들 요셉과 베냐민은 열두 지파의 선조가 되었습니다. 

 

라헬에게 아들이 없어져 울었다는 것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는 심판을 받음으로써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잃었다는 의미를 상징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 울음 소리와 네 눈물을 멈추어라 네 일에 삯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의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31:16)고 예언했습니다. 반드시 그들을 포로에서 돌아오는 구원을 베풀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더 강조하기 위해서 그 이전에 그런 슬픔이 있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슬픔은 잠시이고 곧 희락의 찬송으로 바뀔 것이라는 뜻입니다. 마태가 의도하지 않았다 쳐도 성경은 헤롯의 참극으로 인한 슬픔도 곧바로 진정한 기쁨으로 바뀔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직접적으로는 이 사건 600년 전에 다니엘로부터 간접적으로는 그 전의 다윗, 모세, 아브라함은 물론 아담이 타락한 창조 때부터 이미 마련된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계획을 신실하게 또 묵묵히 실천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온 땅의 모든 사람을 들어 사용하여 한 치의 어김 없이 예수님을 원시 복음을 실현하려 베들레헴에 보내신 것입니다. 지금도 헤롯의 탐욕으로 어린이들이 억울하게 죽었지만 모든 것을 종합하여 꿰뚫어 아시는 하나님이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계획에 그 일마저 기여되도록 섭리 주관하신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말해 이 사건이 없었으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에 부분적으로 하자가 생긴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신자라면 이에 대해 하나님을 불신 원망 의심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배경에 숨겨진 하나님의 신묘한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아주 어리석은 제가 성경만으로 앞뒤를 맞춰도 이 정도를 알 수 있는데 하나님의 더 깊은 뜻은 물론이고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사건 인물 시대 장소 등에 역사한 것은 도무지 인간의 지혜로는 추측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섭리와 주권은 예수님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다뤘는지 보십시오. 하나님이 독단적으로 당신의 백성에게 넘치는 은혜를 베풀어주신 일들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80이 넘은 노인 모세 한 명의 말 한마디로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렸으나 이스라엘이 노예로 고생하며 거주하던 고센 땅에는 눈곱만큼도 피해가 미치지 않게 구별해 주었습니다. 세계 최강 애굽 군대가 쫓아오고 앞에는 시퍼런 바다가 가로막고 있을 때 홍해를 가르며 마른 땅으로 건너가게 하고 애굽 전차는 수장시켜버린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먹고 마실 것 하나 없는 광야 사십 년 동안 만나, 메추라기, 생수로 갈증 나게도 굶주리지도 않게 해주신 분입니다. 그것도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이 당신을 경배하기는커녕 왜 이런 고난을 주시느냐고 원망만 늘어놓을 때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고 세상 최고 권력자들의 힘까지 완전히 쓰레기처럼 만들면서 당신의 백성을 구해주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 절정으로 바로 하나님과 원수 사이에 있으면서 아직도 세상 쾌락과 죄악에 빠져서 당신을 찾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을 때에 예수님은 우리 죄를 갚으려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당신의 죄인을 향한 사랑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었습니다. 순전히 헤롯이 자기 탐욕으로 일으킨 환난인데도 하나님께만 의심 원망 분노를 퍼부으니 하나님 본체이신 예수님이 죽어서라도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보여야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사항은 이 모든 드라마에 동원된 수많은 사람이 미리부터 어떤 각본에 따른 것도 아니요, 어떤 강제적인 힘이 동원되어서 어쩔 수 없이 행한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부 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과 믿음에 따라 스스로 판단 결정하여 시행한 일들이었습니다. 그 배경에선 광대하신 하나님이 공간적으로는 지구 전체를, 시간적으로는 인류 역사 전부에 걸쳐서 당신의 자녀들과 멀리 따로 떨어져서도 당신의 일을 어김없이 다 이루셨던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해야 할 이유

 

본문과 같은 참극들이 인류 역사 내내 지역을 가리지 않고 사람 사는 곳에선 항상 있어 왔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입니다. 매년 매스컴에서 선정하는 십 대 뉴스에는 이런 재앙이 항상 톱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그 사건을 두고 천재(天災)가 아니고 인재(人災)라고 즉, 불신자들도 인간의 잘못으로 환난과 재앙이 일어났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신자들은 더더욱 그런 인간 잘못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 원망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런 참극의 배경에도 헤롯 사건에서 살펴본 대로 하나님의 온전한 계획과 뜻이 반드시 있습니다. 나아가 우리가 자유의지로 우리 스스로 행한 모든 일에도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가운데서 그분의 완벽한 섭리에 동원되어 쓰임 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실수나 잘못은 물론 멋모르고 지은 죄 가운데도 신자가 순전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선하게 역사해주십니다. 

 

그 결과 다니엘처럼 우리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구원에 우리에게 일어나는 여러 사건을 여러 경로를 통해 서로 고리 맺게 해서 하나님만의 신비한 섭리와 권능으로 영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신자가 행한 그 작은 일이 없었다면 그 구원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아가 신자는 죽을 때까지도 어떤 일에 자기가 쓰임 받았는지 모를 수 있으며 사실은 그런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다니엘이 단지 여호와만 전했는데 육백 년 후에 동방박사로 인해서 이런 사건이 있을 줄 몰랐고 나아가 그 일이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에 큰 역할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 않습니까? 

 

바로 이런 차원에서 신자더러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하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생겨야 감사하거나 억지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은 불신자의 감사입니다. 신자의 감사는 하나님 그분에 대한 감사입니다. 그분의 주권과 섭리는 지금도 완벽한 뜻과 계획에 따라서 이 보잘것없는 나를 통해서 영원까지 이어지는 엄청난 영광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올해의 이태원 사태, 우크라이나 전쟁, 펜데믹 사태 같은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만이 아시는 오묘한 방식으로 당신의 은혜가 실현되고 있었습니다. 물론 감정적으로는 감사하기 힘들어도 최소한 그분의 거룩하심에 대해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감사는 그래서 주로 환난 중에 이뤄집니다. 그분의 거룩한 일은 신자의 고난을 통해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일부러 병 주고 약 주는 방식이 아닙니다. 환난 중에 신자가 그 믿음이 가장 순전해지고 하나님을 더 깊이 찾게 되면서 더욱 헌신 충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그럴 때에 그분의 오묘한 은혜를 더 잘 발견하고 더 크게 감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환난을 인내하기만 하면 나중에 신자에게 더 좋은 복이 기다리니까 감사하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신자의 믿음이 더 성숙되어질 것이라는 이유 때문만도 아닙니다. 이미 알게 모르게 하나님의 엄청난 일에 쓰임 받고 있으니까 얼마나 큰 축복이며 영광인지 제대로 알라는 것입니다. 또 그런 진리를 체험적 사실로 제대로 아는 것이 성숙한 믿음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계획 안에서 신자가 범사에 감사할 이유가 지금 당장 알지 못해도 올해의 비극 가운데도 분명히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참아내는 것이 강한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의지력이 강한 자의 재능일 뿐입니다.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믿음, 구체적으로 범사가 그분의 놀랍고도 온전한 섭리라는 믿음이 더 좋은 믿음입니다. 한 번 상상해보십시오. 나중에 천국에서 우리가 아주 작은 일에 충성하고 작은 소자에게 한 일이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시는 열매로 맺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런 기쁨에 미리 참여하라는 것이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라는 뜻입니다. 또 그런 분별력과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속에 남아 있는 연약한 본성과 어리석은 지혜와 수시로 변하는 감정 때문에 온전히 그럴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는 어떤 악도 하자도 눈곱만치도 없으며 오직 신자와 그 주변을 위하는 선한 뜻뿐임을 의심치는 말아야 합니다. 

 

(11/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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