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4:16-22) 아브라함의 믿음보다 언약의 후손이 되어라.

구원 얻는 믿음 (3)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롬4:16-22)

 

다른 약속을 믿었다.

 

아브라함이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는 이유를 같은 본문으로 한 번 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였다는(19절) 바울의 해석을 정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는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창17:17)라고 백 세가 될 때까지 아들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사실상 의심했다고 증언합니다. 그는 약속의 내용에 대해선 끝내 의심의 그림자를 지울 수 없었으나 약속해주신 하나님 그분을 믿었던 것입니다. 바울도 4장의 서두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으니”(3절)라고 그 점을 확실히 해두었습니다. 

 

다시 살펴볼 내용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20,21절)라는 바울의 설명이 결코 과장이나 공치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는 이삭을 주신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내용이 있었고 아브라함은 그것을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아들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것이 우리 믿음의 조상이 되는 첫째 이유라면 조금 불합리합니다. 논리적으로 따져 평생 독신으로 지내거나 아무리 믿음으로 기도해도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부부에겐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하나님이 그렇게 기적적으로 역사해주기만 바라고 믿을 수도 없습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아브라함이 견고하게 믿은 하나님의 약속은 훨씬 다른 차원인데 13절에서 처음 언급합니다,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본문도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16절)라고 시작하면서 그 내용을 재확인합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아들을 주겠다는 약속을 넘어서 자신과 자기 후손이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그 언약을 굳건하게 믿어서 의롭게 된 것입니다.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는 하나님의 언약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합니까? 신자라면 익히 알고 있는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불려 나올 때 받은 바로 그 약속을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12:1-3)

 

세 절의 말씀 전부가 세상의 상속자가 된다는 약속은 아닙니다. 첫째 1절은 아브라함이 되기 전의 아브람에게 갈대아를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둘째 2절은 아브람이 큰 민족을 이루어 그 이름이 창대케 되고 그가 복이 되므로 아브람 개인에게 주는 약속입니다. 셋째 3절에서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람으로 인해 복을 받게 된다고 했으니까 그것이 바로 세상의 상속자가 된다는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세상의 상속자가 된다는 것은?

 

세상의 상속자가 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세상을 전부 물려받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실제 통치자가 아브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바벨론 왕이나 애굽의 바로가 세상의 주인과 통치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의 후손도 그렇게 된다고 했으므로 그에게 아들이 생긴다는 것은 기정사실로 단지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아들과 그 아들의 후손까지 조부가 하나님과 맺은 이 언약의 수혜자요 동역자로 참여시킬 것이라고 약속한 것입니다. 

 

이때 아브람의 나이 75세였고 사라는 65세로 이미 태가 닫혔으나 어쨌든 처음에는 하나님의 기적을 바라고 부부가 아이를 갖기로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쉽게 아이가 생기지 않자 당시의 관습대로 종 엘리에셀을 후손으로 세우려 했다가, 하나님이 네 몸에서 날 자가 후손이라고 하니까 하갈을 첩으로 들이고 이스마엘을 낳은 것입니다. 말하자면 아브람은 하나님이 후손을 주신다는 약속을 자기식으로 믿었고 또 그 약속을 성취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한 것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너와 사라 사이에 날 자라고 분명히 밝히지 않은 하나님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습니다.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고는 후처인 주제에 본처 사라를 멸시할 때도 분명히 기적을 바라고 아이를 가지려고 무척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이 백 세 될 때까지 깜깜무소식이었으니까 구체적인 계시를 받고도 이 부부는 선뜻 믿지 못하고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아브라함이 백 세 때 얻은 아들 이삭은 육십 세에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백칠십오 세에 죽었는데 그때 후손이라고는 이삭과 열다섯이 안 된 손자 둘뿐이었습니다. 하갈에서 난 이스마엘은 이미 집을 떠났고 손자 중에 에서도 곧 그 집안을 떠날 것이니까 후손이라고는 사실상 아들 이삭과 손자 야곱뿐입니다. 그로선 손자 야곱이 열두 아들을 낳아서 이스라엘의 선조가 되리라고는 꿈도 꿔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결국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개인적인 약속은 이삭과 야곱 외아들들을 통해 근근이 이어지고 있다는 정도만 확인했습니다. 

 

출애굽 때 야곱의 후손들이 2백만 가량의 큰 민족은 되었으나 당시로선 여전히 약소한 나라였을 뿐입니다. 바벨론이나 애굽이 계속 양대 강국으로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선 우상을 숭배하는 사악한 나라들이 계속 세상을 더럽히며 지배하게 놓아둘 수는 없습니다. 세상을 상속할 당신의 거룩한 나라를 아브라함을 통해서 새롭게 세워야 했습니다. 바울은 지금 아브라함이 창12:3의 약속이 자기와 자기 후손을 통해 하나님이 실현시킬 것이라는 그 점만은 백 세가 되도록 의심치 않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믿음입니다. 

 

세상의 상속자라고 해서 물리적으로 세상의 땅을 다 차지한다는 뜻은 당연히 아닙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언뜻 간단해 보이지만 좀 더 정확히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복을 받거나 저주를 받는 대상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갈대아를 출발할 때부터 이미 세상의 상속자가 되어 있는 복을 받았습니다. 세상을 다 차지할 그에게 하나님이 더 줄 복이 따로 없습니다. 대신에 그를 축복하는 다른 사람이 복을 받고 그를 저주하는 다른 사람이 저주받습니다.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복과 저주를 받는 일이 전적으로 아브라함이 하기에 달렸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뭔가 현실적으로 잘해주거나 최소한 정신적으로 감동을 주어야 그가 아브라함을 축복할 것입니다. 또 반대로 다른 사람에게 뭔가 손해를 끼치거나 기분 나쁘게 하면 그가 아브라함을 저주할 것입니다. 

 

그런데 결론에선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나님은 저주는 빼고 복만 언급합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에 다른 사람더러 자기를 축복하게만 해서 그들로도 하나님의 복만 받게 하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현실적으로는 가나안 사람들을 도울만한 처지는 안 됩니다. 미국에 이민 온 1세는 자기 생존에 급급하고 2세, 3세가 되어야 비로소 미국 주류사회에 유익을 끼칠 수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아브라함더러 가나안 족속들을 현실적으로 도우려 하기보다는 정신적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주변의 사람들에게 복과 저주를 주는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다른 이에게 단순히 잘해주기보다는 반드시 자기 배후에 여호와 하나님의 의로운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그들로 알게 하라는 뜻입니다. 계속 강조하듯이 “역시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따르시는 분은 뭔가 달라도 다르네요!”라는 그런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언약

 

이 언약에서 가장 주목할 사항은 아브라함이 행할 일은 1절뿐이라는 것입니다. 나머지 2, 3절의 약속은 그가 1절을 온전히 수행하면 하나님이 책임지고 베푸실 은혜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갈바 모르지만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갈대아를 온전히 떠났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이 언약은 그의 일생을 통해서 하나님에 의해서 신실하게 지켜졌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런 사실을 처음에는 어렴풋이 인식했으나 날이 갈수록 하나님이 당신의 언약대로 자기를 세상의 상속자로 온전히 세워주고 계신다는 믿음이 견고해졌던 것입니다.

 

우선 갈대아를 떠날 때부터 그가 구체적으로 인식했던 못했던 하나님의 언약은 실현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당시로선 전 가족이 외국으로 이민 가는 것은 생명을 거는 모험이었습니다. 갈대아가 우상을 숭배하고 죄악으로 부패한 땅이지만 그곳에도 아브라함에게 친구 친지들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가 그곳과는 도무지 비교가 안 되는 약소하고 척박한 가나안으로 이주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미국에 살다가 아프리카로 이민 가겠다는 꼴입니다. 그 이유가 자기가 참 하나님을 만났고 그분이 떠나라고 명령했다고 말합니다. 그 땅의 음란한 우상숭배와 죄로 타락한 모습이 너무 싫어서 내 나라 내 고향이지만 어서 빨리 떠나고 싶다고 합니다. 

 

틀림없이 친지들은 그의 말에 크게 충격을 받았을 것이며 그중에는 아브람과 같은 심정이나 용기와 담력이 모자라 실행하지 못함을 안타까이 여기는 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새롭게 믿기 시작한 여호와의 권능이 대단하다고 인정했을 것입니다. 고대에는 신들마다 관장하는 지역과 민족이 각기 다르고 능력에도 차이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도 여호와가 바로 그곳을 떠나라고 명했고 아브라함이 그대로 순종했으니까 말입니다. 그들 중에 당장에 여호와를 믿고 따르겠다는 자는 나오지 않더라도 네가 믿는 여호와가 네 앞날을 안전하게 보호해주고 우리는 그러지 못하나 너라도 거룩하고 의미 있는 인생을 새롭게 살라고 축복해주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친지들에게 하나님이 실제적인 복을 준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참 하나님이 따로 살아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이라도, 최소한 자기네 신들과 종교에 하자가 많다는 점을 새삼 깨달은 것만 해도 하나님이 주신 큰 복입니다. 그들로선 생전 처음으로 영적으로 자신과 자기 주변을 진지하게 점검해보는 기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가 가나안에 들어와선 가는 곳마다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특별히 상수리나무 아래에서도 그랬습니다. 상수리나무 아래에는 대체로 신당이 있어서 가나안 족속이 자기들 우상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는 장소입니다. 아브람은 가나안 족속으로부터 자기들 제사에 참여하라는 초대를 받았을 것이나 정중하게 거절하고 자기가 믿는 여호와께만 예배드렸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족속들이 보기에 아브라함의 제사는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거창한 신상이나 화려한 제단과 장식은 하나 없고 신탁의 주술은 물론 음주 가무가 따르지 않습니다. 다듬지 않은 돌을 몇 개 쌓아놓고 하나님께 엎드려 간절히 기도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 분위기는 너무나 경건했고 제사드리는 동안과 끝난 후의 아브라함의 얼굴에 평강과 기쁨이 흘러넘쳤을 것입니다. 자기들 신전 근처에서 다른 신에게 제사드리니까 야단치고 금지 시키고 싶었을 것이나, 그 예배가 아주 경건했고 평소에 그의 인품과 행동거지가 흠잡을 데 없었기에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예배를 곁에서 보는 자기들의 심령마저 평안해지고 깨끗해지는 느낌도 받았을 것입니다. 그가 믿는 신의 권능이 자기들에게도 의롭게 역사하니까 아주 신기하게 여겨졌을 것입니다. 자기들은 아무리 열성적으로 제사드려도 평강은커녕 오히려 허무하기만 했다는 사실도 비로소 깨달았을 것입니다. 나중에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이 여호와의 참 선지자 엘리야 한 명에게 무참하게 패배했듯이 말입니다. 

 

외계인 아브라함

 

그러다 큰 기근을 만나자 애굽으로 넘어가선 자기가 살려고 아내를 바로의 할렘에 차출당하게 하

는 너무나 큰 잘못을 범했습니다. 동행한 조카 롯과 종들의 생존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라 바로의 요구를 거절할 수도 없었습니다. 자기 부부만 애굽으로 넘어갔다면 조용히 움직여서 아무 일 없었을 텐데 몇백 명이 함께 움직이니까 바로의 신하의 눈에 띈 것입니다. 그의 모든 사정은 물론 아브라함의 인간적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이 바로에게 간섭하여서 모든 일을 정상으로 회복, 아니 이전보다 더 선하게 결말지어주었습니다. 

 

살아 있는 신으로 숭배받으며 스스로 자기 권력에 취해 있는 바로로선 자기가 한 번 내린 결정을 절대 번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심령에 두려움과 경이로움을 아주 강력하게 심어준 것입니다. 바로의 평소와 다른 행보에 놀란 신하들도 나중에 그 경위를 전해 듣고는 아브라함의 신이 참 신이라고, 최소한 자기들보다 더 강력한 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했을 것입니다. 

 

그 후 또 비슷한 상황에서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아내를 넘겨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또 보호해주었을 뿐 아니라 태가 닫혔던 그랄 왕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해 왕자들을 생산케 해주었습니다. 두 번 다 아브라함이 행한 일은 하나 없으나, 아니 거꾸로 큰 잘못을 범했는데도 하나님이 그 허물을 씻어주었습니다. 나아가 애굽과 그랄 땅에 아브라함이 믿는 신의 권능이 얼마나 대단한지 당신께서 확실히 보여주었고 그들 앞에 당신의 종의 허물도 가려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곤욕을 치르고 돌아온지 얼마 안 되어 가나안의 성읍 국가들끼리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소돔에 살던 조카 롯이 잡혀가고 재물도 탈취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집에서 기른 군대 318명을 데고 적군을 패배시키고 롯을 비롯한 소돔의 백성과 그 재물을 다 찾아왔습니다. 그때 소돔 왕이 소돔의 주민만 돌려보내고 재물을 다 가지라고 제안했으나 그 일로 치부했다고 오해받을까 함께 참여한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만 주라고 하고서 자기 몫은 일절 거절했습니다. 대신에 살렘 왕이자 대제사장 멜기세덱에겐 그 탈취물의 십일조를 바쳤습니다. 

 

만약 가나안 족속이라면 자신들의 목숨 걸고 싸워서 탈취한 재물은 당연히 자기들 몫으로 챙기고 소돔 백성을 살린 대가까지 요구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으로선 소돔 왕이 먼저 감사의 표시로 제안한 것은 받아도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거절했습니다. 소돔 왕은 물론 자기와 동맹한 부족들과의 앞으로 관계에 혹시라도 책잡힐 요소를 아예 만들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로 자기에게 크게 신세를 지게 했습니다. 나아가 그가 패배시킨 족속들에게도 자기 조카를 구출하려는 목적으로 싸웠을 뿐 개인적인 원한은 전혀 없다는 점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사라가 죽자 헤브론 땅의 헷 족속이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의 한 왕으로 대우하며 자기들 묘실 중에 가장 좋은 곳을 택해 묻으라고 했습니다. 생존하기 급급한 이민 일세의 삶에서 이미 그 나라 족속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도덕적 영적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이번에도 아브라함은 초라한 막벨라 굴 하나를 정당한 가격을 치르고 구매했습니다. 

 

간략하게 살펴봤지만 아브라함은 당시 가나안 땅 모든 족속에게 그들 세계에선 볼 수 없는 전혀 다른 의로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들로선 마치 다른 행성에서 온 별종 혹은 기인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세상 쾌락과 풍요만 추구하는 자기들과는 전혀 다르게 범사에 돈과는 전혀 연결 고리 없이 인생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실현해 보였습니다. 특별히 그가 기도하며 경배하는 여호와가 그를 그렇게 이끌고 있음을 알고서 그들도 영적으로 많은 찔림을 받았거나 자기들 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봤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으로선 자신에게 잘난 것 하나 없음을 절감하기에 가는 곳마다 여호와께 단을 쌓고 기도하고 그분의 인도대로 따랐을 뿐인데도 하나님이 자기를 통해 의로운 역사를 실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오묘하고 의로운 간섭을 체험할 때마다 소름이 끼치도록 놀라고 저절로 무릎 꿇고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아들을 준다는 약속보다는 자기를 통해 모든 족속으로 여호와를 알게 해주는 복을 주신다는 언약을 날이 갈수록 더욱 견고하게 믿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서 다시 시작한 새로운 인생에서 종종 실패했으나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품 안에 있는 아브라함의 인생도 사실상 실패한 것 하나 없고 결말은 전부 성공뿐이었습니다. 그를 만난 이방 족속들이 저절로 그에게 고개 숙여 축복하도록 하나님이 이끌어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매사를 공평하고 정의롭게 처리하는 성품 인격 행동에 감동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가 믿는 그의 신의 권능에 더욱 놀랐을 것입니다. 

 

그가 겪었던 거의 모든 사건이 아주 위험했기에 여호와께 쉬지 않고 간절히 기도한 결과입니다. 목숨까지 걸어야 할 그런 위험한 상황을 하나님이 왜 허락하는지 의심 원망 심지어 불신까지 들었을 것입니다. 이해조차 안 되는 명령을 받았으나 그로선 가나안 땅에 의논할 상대라곤 아무도 없었습니다. 종들이 많았고 아내도 있고 나중에 아들까지 얻었으나 아직은 어려서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책임져야 하는 위치인지라 매사에 처절하게 고독했을 것입니다. 

 

그가 붙들고 씨름할 상대는 하나님 한 분뿐이었습니다. 아니 매사를 그분이 인도하시니까 그분께 불평을 털어놓고 원망하고 일대일로 다퉈나가면서 그분의 뜻을 헤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장 답을 얻지 못해도, 아니 여전히 의심과 원망이 남아있어도 그분의 인도에 순응했습니다. 그 결과는 항상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으므로 그는 자신이 정말로 세상의 상속자가 되어간다는 확신을 얻고서 그분께 영광을 돌려 드린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려면?

 

우리가 그의 믿음의 후손이 된다는 것은 타락한 세상에서부터 아브라함과 동일한 언약 관계로 불려 나왔기에 그와 같은 믿음의 여정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그를 먼저 찾아와 주셨듯이, 사탄에 미혹되어 죄의 노예가 되어 있던 우리의 영혼에 성령이 먼저 간섭하셔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권능 앞에서 완전히 엎드리게 하는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 후로도 성령님은 신자가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평생토록 붙들어주십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그처럼 갈대아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완전히 떠나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떠나온 갈대아나 다시 살게 된 가나안이나 우상숭배의 땅이자 죄로 타락하기는 똑같습니다. 갈대아에 남아있으면 아무래도 이전의 여러 인간관계나 현실적인 삶에서 연결되는 일이 많아서 새로운 인생을 살기 힘들기에 떠나라는 것입니다. 더 중요하게는 영적으로 사탄에 미혹되어서 죄의 노예가 되어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만 주인으로 모시는 완전한 의의 자녀가 되라는 것입니다. 

 

갈 바 모르지만 목숨을 걸고서 하나님의 지시만 따라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생업을 다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일만 전적으로 행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또 신자는 아무 일 하지 않고 있어도 하나님이 대신 전부 책임져 주신다는 뜻도 아닙니다. 자기 앞에는 한 분 하나님만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분 외에 따라야 할 기준과 일과 능력이 전혀 없게 하라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첫 계명대로 여호와 외에는 자기를 주장 인도 영향을 주는 어떤 존재나 물건이 단 하나도 없게 하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전에 주인으로 모셨던 돈은 그 자리에서 완전히 끌어내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출발과 본질은 하나님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그 어떤 선한 의미 가치 목적이 없다는 사실을 철두철미 절감하는 것입니다. 

 

물론 신자가 된 뒤로도 현실적 환난은 그치지 않고 하나님만 주인으로 삼아 따라가는 삶도 이전의 인간적 본성이 남아서 자꾸 가로막습니다. 그럴수록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과 일대일의 고독한 영적인 씨름을 해야 합니다. 신자에겐 돌아갈 본향은 이미 십자가 앞에서 불태웠기에 죽으나 사나 하나님만 붙들어야 합니다. 그 씨름의 종착지는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앞으로 되돌아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현재 여건과 일어나는 모든 일을 그분의 보혈의 필터를 통해서만 분별 판단해야 합니다. 그럼 자신을 세상의 상속자로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 모든 환난과 때로 이해 안 되는 상황에 이끌어 넣었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신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복 주시기 위해서 이미 온 세상을 차지하고 있는 신자에게 잠깐의 고난을 통해서 그들에게 당신의 사랑과 권능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죄송하지만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하니까 백 세에 아들을 주는 초자연적인 기적만 소망합니다. 자기 개인의 현실적 문제와 고난을 하나님이 단번에 뚝딱 해결해달라는 기도만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세상의 상속자로 세우려고 불러내고 그렇게 평생을 인도했고 그의 후손 또한 그렇게 되도록 하려고 이삭을 준 것입니다. 이삭을 주는 것이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 목적이 아니고 아브라함은 물론 이삭으로 이어지는 후손들로 세상 상속자가 되게 하는 것이 그분의 뜻이었습니다. 

 

신자는 당연히 세상의 상속자가 되어 있어야 하고 자식들도 그렇게 되게끔 양육하고 있어야 하나님의 초자연적 기적을 바랄 수 있는 염치가 생기는 것 아닙니까? 최소한 자식에게 온전한 믿음을 갖게라도 해야 할 것입니다. 작금 자식을 일류대학에 보내려고 중학교만 입학해도 믿음 생활을 중지하라고 하면서 어떻게 일류대학에 입학하는 기적만 바랍니까? 거기다 신자 부모부터 하나님을 이용해서 자신의 현실적 유익만 얻으려는 식의 믿음 생활을 하니까 자식을 믿음 밖으로 더 멀리 밀어내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의 참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그분을 주인으로 모시는 신자는 삶의 모든 차원에서 그분의 주인 되심과 자신은 그분의 종 됨을 드러내야 합니다. 나아가 그분을 왕으로 모시는 그분의 공동체를 세상 속에 세워야 합니다. 계속 강조하지만 아브라함처럼 “역시 예수 믿는 분이라 뭔가 다르네요”라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신자가 세상 앞에 소금과 빛이 안 되면 세상은 썩고 향방을 놓치고 더욱 타락하게 됩니다. 그들도 하나님이 없기에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가 그저 허망하게 느껴져서 그들의 영혼이 항상 갈급해합니다. 정말로 순전한 믿음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신자를 예의주시합니다. 신자의 인생이 정말로 가치 있어 보이면 자기들도 따라오겠다는 뜻입니다. 

 

신자더러 도덕적 종교적으로 거창한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면서 매사에 하나님의 인도에 순응하면 됩니다. 주변에 세상 삶에 찌들어서 힘들어하는 이웃이 있으면 먼저 찾아가서 위로하고 하나님의 도움이 임하도록 기도해주면 됩니다. 그럼 하나님이 그들로 당신의 사랑과 권능을 알게 해주고 그중에 구원해줄 자를 당신께서 구원해주십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다면 그의 믿음보다는 그가 받은 언약에 실제로 동참해서 실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솔직히 스스로 자문해 보십시오. 세상을 차지하는 상속자로 살고 있습니까? 최소한 믿음의 후손을 양성해 자기 가문에서 믿음의 조상이 되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까? 아니 자기만이라도 신자답게 살고 있습니까? 아니 하나님의 내 인생에 대한 뜻이 무엇인지 알려고 그분과 일대일로 영적인 씨름이라도 하고 있습니까? 

 

(3/12/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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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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