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4:16-22) 정말로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인가?

구원 얻는 믿음 (2)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롬4:16-22)

 

성경은 알다시피 아브라함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의 조상이라고 칭합니다.(롬4:11,16) 믿음으로 구원 얻는 원리가 이전에는 없다가 아브라함 때부터 새로 생겼다는 뜻은 아닙니다. 나중에 히브리서 11장을 통해 알아보겠지만 아브라함의 선조인 아벨 에녹 노아도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신실하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이 세대, 민족, 여건에 따라서 각기 다른 방법으로 구원할 리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율법에 속한 자의 조상인 아브라함부터 믿음으로 구원해주었으니 구약시대에도 행위가 아닌 믿음의 구원이라는 원리를 더 확실히 강조한 것입니다. 유대인들도 이방인과 똑같이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차원에서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인 것입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이 확실한지 그의 믿음을 자세히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기적적 응답만 바라는 신자

 

바울은 본문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한마디로 그가 바랄 수 없는 중에 믿은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18절)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19절) 후손을 하늘의 뭇별처럼 창성케 해주겠다는 약속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하나님이 능히 이루실 줄 확신했으니 하나님도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합니다.(21,22절) 

 

그런데 많은 신자가 종종 그러하듯이 본문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해서 신앙생활에 크게 두 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구원 전과 후의 상황에서 각기 하나씩 잘못을 드러내는데 순서가 뒤바뀌었지만 먼저 이해하기 쉬운 구원 후의 오류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한마디로 아브라함이 도무지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이 이뤄주실 것을 믿었다는 그 측면에만 주목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당면한 문제가 너무 커서 자기 능력으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으나 능치 못하실 일이 없는 하나님께 기도만 하면 다 해결해주신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중병이 걸리거나, 사업이 망해가거나, 심지어 아이들이 명문대학에 입학하는 문제까지 하나님이 큰 능력으로 다 이뤄줄 것을 굳게 믿고 뜨겁게 기도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해도 그대로 응답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음을 서서히 경험하게 됩니다. 자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믿음이 좋은 장로님의 집안에 많은 문제가 있고 목사님도 종종 중병으로 일찍 소천합니다. 

 

그 결과 성경의 진리대로 열심히 노력은 해야 하지만 완전하게는 성취할 수 없는 이상적 목표에 머물고 그 진리가 자신의 일상적 삶에 실제적인 권능으로 역사하지 못합니다. 성경의 진리와 자신의 믿음 간에 연결 고리가 점점 약해지다가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겨우 붙어 있습니다. 이왕에 믿었는데 그만두자니 아깝고 혹시 벌 받을까 두려워 교회 출석은 계속합니다. 가물에 콩 나듯이 기도로 고난을 해결 받기도 하니까 기적을 베푸는 하나님에 대한 미련도 버리지 못합니다. 

 

본문을 단순히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보다 더 큰 잘못은 따로 있습니다. 성경을 전체적으로 종합해 이해하려 들지 않고 자기 마음에 드는 말씀만 따로 떼어내어서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이긴 하지만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도무지 불가능한 일을 전능하신 하나님이 성취시켜주었으니까 자기에게도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고 또 일어나야 한다고 믿는 것입니다. 물론 기적은 신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켜야만 했던 뜻과 그에 대해 아브라함이 어떤 믿음으로 반응했는지는 전혀 감안하지 않습니다. 

 

우선 아브라함은 후손을 크게 창성케 해준다는 약속을 하나님께 직통 계시로 확실히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내용은 너무 의로웠고 또 그대로 성취됨으로써 하나님의 의가 그 일을 통해 세상 앞에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반면에 지금 신자들은 하나님께 받은 그런 직접적인 약속도 없이 자기 계획이나 소원을 하나님이 다 이뤄주시리라 믿고 끈질기게 기도만 합니다. 자신이 기도하는 제목들에 하나님이 의롭다고 여겨줄 내용이 있는지 전혀 따져보지 않고 또 그래야 한다는 신앙적 원리도 모릅니다. 그저 자신의 현실적 고난과 문제들을 해결 받기에만 급급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기도는 이방인도 하는 것이므로 신자의 기도는 달라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1-33) 

 

신자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먼저 구하여야 하고 그럼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직통 계시로 받은 개인적 약속이 없어도 예수님의 이 약속은 모든 세대의 모든 신자에게 항상 적용됩니다. 그럼 신자는 이 약속이라도 온전히 믿고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는 뜻은?

 

하나님이 신자가 고난 중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좋아할 리 없고 끝까지  몰라라고 방치하시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신자가 겪는 고난의 대부분이 죄로 타락했던 아담의 본성이 남아있는 신자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의 잘못 때문에 생깁니다. 새벽 기도의 중요 제목들인 중병에 걸렸거나 사업과 대학 입시에 실패한 일들은 그 원인의 대부분이 자기에게 있습니다. 그럼 일차적으로 그 원인을 가장 잘 아는 본인이 다시 실패하지 않도록 고쳐나가면 됩니다. 

 

신자가 이미 저질러버린 일들을 하나님이 미리 막아줄 수 없고 또 일일이 고쳐줄 이유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분명하신 뜻과 계획이 있는 비상한 경우에만 신자에겐 이미 엎질러진 물이나 하나님은 당신만의 방식으로 그 물을 다시 담아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것도 종교적 실적을 쌓으라는 거창한 의미가 아닙니다. 문맥상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와 완벽한 섭리를 믿는다면, 예컨대 들풀이나 공중의 새를 먹이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면 현실 고난을 염려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신자의 삶의 모든 차원을 더더욱 하나님이 완벽하게 섭리하기에 고난에도 그분의 의가 반드시 드러난다는 것을 믿으라는 뜻입니다. 신자가 고난 중에 하나님의 그런 의를 발견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어서 빨리 구출만 해달라고 하니까 오히려 하나님의 응답은 더디거나 이뤄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고난을 겪고 기도하고 또 고난이 생기고 기도하는 일만 평생 반복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하기 전에 제자들에게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미 같은 차원으로 가르쳤습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 나라가 임하길 기도한 후에 일용할 양식도 구하라고 했습니다.(마6:10,11) 신자도 현실 문제에 대해 기도할 수 있고 해야 하는데 하나님은 당신의 나라가 신자와 그 주변에 임하는 방식으로 응답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알기 쉬운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부동산을 팔 때 신자들이 대체로 최고 높은 가격에 최대한 빨리 팔릴 수 있게 해달라고만 기도합니다. 그럼 역으로 따지면 신자의 집을 사는 사람은 바가지를 쓰게 되는 셈입니다. 그 안에 하나님의 의가 실현될 리는 없으며 정욕으로 잘못 구하는 기도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설령 그렇게 최고 좋은 가격에 팔려도 우연히 시세를 모르는 어리석은 구매자를 만난 것입니다. 그런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자신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해 축복해주셨다고 교회에서 자랑합니다. 

 

실제로 한 장로가 이중장부로 탈세하고 있었는데 세무감사에 안 들키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그대로 응답 되었다고 간증한 적이 있었는데 그와 똑같은 수준입니다. 너무나 한심한 믿음으로, 이러니 “예수쟁이가 세상 사람보다 더 영악하다”는 비난을 받는 것입니다. 죄송하지만 하나님의 크심에 맞추어 자기 소망도 최대한 키워서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또 그런 응답을 받은 자를 믿음이 좋다고 치켜세우는 목사가 더 한심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에 정말로 합당하다면 자기 소망을 얼마든지 크게 잡아도 됩니다. 기도하기 전에 그분의 뜻을 분별해야 하는데 혹시 자신의 소망인지 하나님의 소망인지 잘 구분이 안 되면 기도 중에라도 구별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신자라면 서로 만족할만한, 최소한 불평이 없을 가격과 시기에 꼭 필요한 사람에게 팔리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웃과 사랑의 관계를 맺는 기도이므로 현실 문제를 해결 받는 일에도 하나님의 의가 신자를 통해서 실현됩니다. 그 전에 반드시 부동산을 잘 관리한 상태로 팔아야 하고 혹시라도 하자가 있으면 팔기 전에 완벽하게 고쳐야 합니다. 미처 그러지 못했으면 매수자에게 그 사정을 정확하게 밝히고 그만큼 값을 깎아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역시 예수 믿는 분이 다르시네요”라는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자기만 최고 좋은 가격 받으려는 것은 돈을 주인으로 모시는 불신자들, 이방인들이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신자가 매사에 이처럼 간단한 상식적인 정의만 성실히 실천해도 하나님 나라와 의를 그분 대신에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정도는 교리나 성경과 무관하게 누구나 알 수 있는 일반윤리입니다. 무엇이 옳은지 빤히 알고도 불신자는 돈 때문에 실천하지 못해도 신자는 하나님 때문에 실천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요 신자가 가져야 할 믿음입니다. 

 

하나님께는 당연히 능히 못 하실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신자가 자기 뜻과 계획대로 하나님이 다해주신다는 법은 없으며 그럼 하나님이 신자의 종이 됩니다. 어떤 미국 목사가 만약 하나님이 신자가 소원하여서 기도하는 대로 다 응답해주면 신자들이 전부 교도소에 들어가 있을 것이라고 예리하게 지적했습니다. 신자가 주로 현실적 형통에 대한 무리한 소원을 하나님더러 무리하게라도 이뤄달라고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오래전 짐 캐리가 주연한 All Mighty라는 영화에서도 수많은 신자가 로또 일등에 걸리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그대로 하나님이 다 들어주자 일 인당 일등 당첨금이 몇 불도 안 되었다고 풍자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못 하실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신자의 소원대로 들어주지 않는 일도 얼마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다른 종교의 신들은 신자가 원하는 대로, 그것도 신자가 바치는 치성에 비례해서 더 많이 이뤄준다고 가르칩니다. 그야말로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를 위로하려고 만든 우상 신일 뿐입니다. 우리가 믿는 참 하나님은 신자로 거룩하게 자라고 또 그렇게 자란 신자를 통해 반드시 당신의 나라와 의를 이 땅에 실현하는 목적과 방식이 아니라면, 기도가 그런 내용이 아니라면 죄송하지만 간절히 천일 새벽 제단을 쌓아도 응답해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전능’(全能)은 항상 무엇이든 알 수 있다는 ‘전지’(全知)가 따라옵니다. 신자가 정욕으로 구하는 줄도 훤히 꿰뚫고 있기에 응답해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분은 세상 어떤 존재로부터 아무 방해 없이 어떤 영향도 받지 않고 당신의 뜻과 계획을 당신의 때와 방식으로 행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므로 전지전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이 절대 도깨비방망이 뚝딱 식이 아닙니다. 너무나 유감스럽게도 신자들이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다는 이 간단한 의미조차 정확히 모르고 있습니다.

 

모순된 성경 기록

 

본문에 대한 신자들의 두 번째 오류는 구원 전의 상황에 관한 것인데,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살피지 않는 것입니다. 그 결과 구원받는 믿음의 출발과 과정과 결과에 대해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는 사실은 사라의 태가 닫혔기에 하나님 아들을 준다는 약속을 오랫동안 온전히 믿지 못했습니다. 하나님도 그가 처음부터 전혀 의심하지 않고 온전한 믿음으로 당신의 약속을 철저히 믿었기에 믿음의 조상으로 세운 것이 아닙니다.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이 인간의 죗값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신 은혜를 순전히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아브라함처럼 의심하지 않고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단순하게 생각해선 안 됩니다.

 

그는 처음 그 약속을 받고는 당시 관습대로 충실한 종인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 사라의 권유대로 여종 하갈을 첩으로 취하여 문자 그대로 자기 몸에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은 오히려 집안에 큰 분란 거리만 되었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아버지는 높으시다’는 뜻의 ‘아브람’에서 ‘많은 무리의 아비’라는 뜻의 ‘아브라함’으로 바꾸라고 하면서 그 약속을 다시 다짐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창17:17)라고 그가 의심했다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하갈에서 얻은 당시 열세 살의 이스마엘을 후계로 삼으려 했습니다.(18절) 

 

결국 하나님은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창17:21)고 구체적으로 예언해주었습니다. 사라에게도 그 이름을 ‘나의 공주’라는 뜻의 ‘사래’에서 ‘모든 이의 어머니’라는 뜻의 ‘사라’로 바꾸라고 했습니다. 이때도 아브라함이 확실히 믿었다는 언급은 성경에 없습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여호와가 그 약속을 다시 확인해주었는데도 이번에는 아내 사라가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 속으로 웃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큰 민족을 이루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75세에 받은 후로부터 이 부부는 당연히 아이를 가지려고 계속 시도해봤을 것입니다. 그러나 25년 동안 아무 소식이 없었으니 자연히 그 믿음은 갈수록 약해졌을 것이고 살펴본 대로 창세기도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가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라는 본문의 설명이 잘못된 것 아닙니까? 또 그런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을 바울은 왜 하나님이 의롭 여겼다고 말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바울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고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15:6)라는 창세기 기록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아브라함이 종인 엘리에셀을 후사 삼으려 했는데도 하나님은 그를 의롭다고 여겼습니다. 살펴본 대로 그 후에 하갈을 첩으로 취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그럴 줄 몰랐을 리 없었으므로 그를 의롭다고 여긴 것은 아무래도 석연치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백 세가 되자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일 년이라는 기간을 정해주고, 아들이라고 태어날 아이의 성별도 가르쳐주고, 그 이름까지 이삭으로 지어주면서 정확하게 예언해주었습니다. 아브라함도 마지막으로 온 힘을 다해 부부 관계를 맺었을 것이고 실제로 사라의 배가 불러오자 비로서 온전히 믿을 수 있을 텐데 성경은 그와 다르게 말하고 있습니다. 

 

견고해져 가는 믿음 

 

바울은 창세기 기록과는 달리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졌다”(21절)고 말합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공치사를 한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다음 주에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아브라함이 온전히 믿었던 하나님 약속의 내용이 아들을 준다는 것보다 훨씬 더 넓은 의미였습니다. 후손을 준다는 약속에 제한적으로 적용해도 그의 믿음이 ‘견고해졌다’고 했으니 그 믿음이 서서히 강해졌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그를 의로 여겼다는 창세기 15:6을 자세히 다시 살펴보면 바울의 해석에 아무 하자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종 엘리에셀을 후사로 세우려 할 때 여호와가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여겼는데, 성경은 그 이유로 그가 “여호와의 약속을 믿으니”라고 말하지 않고 단지 “여호와를 믿으니”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내용을 온전히 믿은 것이 아니라 약속을 주신 하나님 그분을 온전히 믿었던 것입니다. 도무지 실현 불가능한 약속의 내용은 온전히 확신 못해도 그 약속을 주신 분이 어떤 존재인 줄 아니까 그분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이전에 들었던 비유로 설명해보겠습니다. 회사의 부장이 이제 갓 입사한 말단직원에게 연말에 일억을 보너스로 주겠다고 약속하면 절대 믿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룹 회장이 직접 그렇게 약속했고 또 회장은 자기가 뱉은 말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킨다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다면, 약속의 내용보다 회장을 믿고 설레며 연말을 기대하게 됩니다. 회장이 주겠다는 일억이라는 액수 즉, 약속의 내용에 대한 의심은 계속 지울 수 없겠지만 평소 회장의 인격을 봐서 빈말은 아닐 것이라는 믿음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가 바로 그러한데 하나님은 절대 실언하지 않는 분이라는 진리는 확실히 믿은 것입니다. 그런 믿음은 사실은 처음 갈대아 우르에서 불려 나올 때부터 가졌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했을 때 그는 군말 없이 순종했습니다. 당시에 외국으로 완전히 이주하는 것은 사실상 생명을 거는 모험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갈 바 모르고 가나안으로 출발한 것은 열방 앞에 복의 근원으로 세우신다는 약속의 내용보다는 그분을 더 믿었기 때문입니다. 큰 민족을 이루고 땅의 모든 족속이 자기로 인해 복을 얻는다는 약속의 내용을 믿었다면 아주 척박하고 약소한 가나안 땅은 그 창대한 약속을 이루는데 너무 부적합합니다. 이왕이면 더 큰 나라로 보내 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의심이 생겨 단번에 쉽게 떠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이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몰랐고 오직 그분만 믿고 떠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성령의 강력한 인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이를 산 채로 불에 태워 우상 신에게 바치고 온갖 음란한 죄로 타락한 갈대아가 너무 싫다는 마음을 계속 품고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이 역사해준 결과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점점 그런 마음을 굳혀가자 하나님이 직통 계시로 그곳을 떠나라고 명한 것입니다. 처음 만난 참 하나님 그분이 직접 명령했기에 당신의 약속도 어떤 방식으로든 지킬 것이며, 최소한 내 생명은 책임져주실 것이라는 믿음은 분명히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가나안 땅에서 기다리는 것은 약속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가는 곳마다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는데 갈대아를 떠날 때의 굳건하고 순전한 믿음으로 감사의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그러다 가나안 족속들의 멸시를 받게 되자 점점 남방으로 내려갔습니다. 그곳에서 큰 기근이 닥치자 바벨론에게 하나 뒤지지 않는 음란한 우상의 땅 애굽으로 넘어 가버렸습니다. 그의 믿음은 강해진 것이 아니라 약해졌습니다. 

 

거기다 알다시피 예쁜 아내 사라로 인해 자기가 죽을 것 같으니까 아내를 누이라 속이는 바람에 바로에게 빼앗기는 곤욕을 치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간섭으로 아내에겐 아무 일도 없었고 오히려 거부가 되어서 가나안으로 돌아옵니다. 애굽 바로의 궁정에서 사라의 정절이 지켜지고 거꾸로 엄청난 보상을 받는 것은 당시 상황에선 도저히 불가능한 일로 하나님이 베푸신 기적이었습니다. 처음에 갈 바 몰라도 여호와만 바라보고 가나안으로 들어왔던 그분에 대한 믿음이 엄청난 고난으로 잠시 주춤했으나 확신으로 다시 굳어진 것입니다.

 

바로 그런 때에 하나님은 그를 의롭다고 여겨주었는데 당신에 대한 그의 믿음이 갈대아를 떠날 때보다 더 강해졌다고 본 것입니다. 놀랍게도 성경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의로’ 즉, 그를 의롭게 여겼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과는 세상 어떤 것으로도 끊을 수 없는 개인적으로 서로 온전히 사랑하는 관계가 되었다고 하나님이 먼저 선포한 것입니다. 

 

의롭다고 여김을 받는 믿음

 

이제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겨주신 아브라함의 믿음의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이국땅 가나안 지역에서 75세부터 제2의 인생으로 살아가야 하므로 사실상 매일 자기 생명을 온전히 그분께 내어 맡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수시로 그의 인간적 본성과 주변 사람들의 죄악 때문에 이런저런 고난과 실패를 겪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처럼 하나님의 기적적 구원을 간구했을 것이나 여전히 환난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결국에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으로 이끄셨다는 사실 하나만은 온전히 깨달았습니다. 자기 일생을 죽음까지 포함해 하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만의 완벽한 섭리로 붙들고 있다는 사실을 온전히 체험적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현실은 자신의 계획과 소망에 어긋날 때가 더 많았으나 하나님이 맺어준 열매는 항상 당신의 이름이 높아지고 자신에게도 유익하고 믿음이 성숙해졌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분이 약속하신 내용은 온전히 믿어지지 않는 것을 넘어 아예 이해가 안 되었어도 어쨌든 그대로 실현하려고 순종했습니다. 또 그런 믿음은 갈대아 우르에서 나올 때부터 있었고 갈수록 견고해졌기에 바울은 그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부부가 백 세에 정말로 임신하게 되자 하나님이 만민의 아비와 어미로 바꿔준 그 새 이름을 실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족속이 자기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나님이 25년 전에 주신 약속에 대해 그 실현이 더딘 것 같아 점점 관심이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가나안 연합 전쟁에서 승리해 조카 롯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또다시 자기가 살려고 사라를 아비멜렉의 후궁으로 들여보냈으나 자기 생명과 사라의 정절을 지켜준 것을 넘어서 아비멜렉 집안의 닫힌 태까지 열어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고 자기를 통해 열방 앞에 당신만의 방식으로 당신의 의를 이루고 있었다는 사실을 온전히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두 번이나 자기가 살려고 아내를 팔았던 그가 정말로 자기 생명까지 아끼지 않고 순종하는 자리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백 세에 난 자기 생명보다 귀한 외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이번에도 그는 틀림없이 명령의 내용이 도무지 이해 안 되고 하나님에 대한 원망도 생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이유는 몰라도 어쨌든 살고 죽음은 하나님께 달렸고 이삭을 주신 이가 그분이니까 그분이 바치라고 하므로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다시 살려주거나, 이 나이에도 백 세에도 한 번 주셨으니까 그 아이 대신에 다른 아들을 또 줄 수 있을 것이며, 그리 아니할지라도 그분의 의로우심에 전혀 손상이 없을 정도로 그분만의 거룩한 뜻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 그분을 완전히 신뢰했기에 자기가 잡은 그분의 손을 자신은 절대 놓지 않겠다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선 갈대아에서 자기 목숨을 그분께 맡기고 떠나올 때 그의 구원은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그 후의 그의 새로운 일생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의 씨인 이삭을 얻는 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을 얻고도 하나님이 다시 바치라고 하자 기꺼이 바쳤습니다. 그럼 그의 믿음의 목적지와 종착지가 약속의 내용이 아니라 하나님 그분이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도 천사를 통해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1)고 그의 믿음을 온전히 인정해주었습니다. 그를 의롭다고 여겨준 것을 넘어서 “이제 네가 실제로 의롭게 되었구나!”라고 칭찬해준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자신의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주인으로서 자기 삶과 인생의 전부가 되므로 기꺼이 당신께 그 전부를 다시 돌려주었다는 것입니다. 신약 신자로 치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우리처럼 이상적 목표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든 믿은 자의 조상이 되기에 필요하고도 충분한 만큼 실제로 장성해진 것입니다. 하나님 쪽에서 그렇게 점진적으로 인도하심에 순순히 순종함으로써 그 자리에까지 도달한 것입니다. 

 

바울이 본문 바로 앞에 어떤 말을 합니까?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롬4:17) 하나님이 단순히 사라의 태를 살린 것이 아니라 제물로 바친 이삭을 살렸고, 정작 아브라함을 새 사람으로 살린 것입니다. 그는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의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가 쏟아버린 물을 다시 담아주시는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믿어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다는 의미도 분명해졌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철두철미 아는 것입니다. 능히 못 할 일이 없지만 당신의 뜻에 합당하지 않으면 절대로 행하지 않으신 분으로 말입니다. 신자가 간혹 인간적 연약함에 져서 실패해도 당신만 의지하면 다시 일어서게 해주시는 분입니다. 아브라함이 정말로 의롭게 되는 데는 첫 약속을 받고 40여 년이 걸렸습니다. 우리도 믿음에 실패해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고 또 일어서야 합니다. 단 인생의 목적과 방향은 세상에서부터 골고다 십자가 쪽으로 완전히 고정되어 있기에 다시 반대로 가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현실 삶이 아무리 내 기대, 소망, 심지어 믿음의 수준과 어긋나는 모습이라도 하나님 그분만은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특별히 기도 응답이 자기 뜻과 달라지더라도 그분에 대한 믿음이 오르락내리락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무리 내가 믿음에 실패해도 하나님이 나를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여전히 변함없이 의롭게 여기고 계신다는 사실을 절대로 의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3/5/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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