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예수님 처형 재판장이었다면?

조회 수 347 추천 수 1 2015.08.01 16:07:09

 

 

[질문]

 

저는 19살 고등학생입니다. 최근 들어 여러 무신론자들의 주장을 들어서 많이 곤란에 빠져있었는데, 목사님의 답변이 너무나 통쾌하여 이제 하나님에게 가졌던 의심은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다만 딱 한 가지가 남았어요. 그 문제는 목사님께서 다루시지 않은 것 같아 이렇게 질문 드립니다.

 

한 무신론 유트브 영상에서 본 내용인데요. 우리 신자들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데, 만약 제가 예수님 처형 재판장이 되었더라면, 저는 예수님이 당연 십자가를 지셔야 하니까 예수님께 사형을 내려야 하나요? 아니면 예수님을 사랑하니까 풀어줘야 하나요?

 

[답변]

 

예수님에게 올무를 씌우려든 유대인

 

요한복음 8:1-11에 너무나 유명한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한 여인을 간음하는 현장에서 잡아다 예수님께 끌고 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5절)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평소에 원수까지 사랑하고 잘못한 자를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도 용서해주라고 가르쳤습니다. 반면에 모세 율법은 간음한 자는 돌로 쳐서 죽이라고 명합니다.(신22:22, 레20:10) 지금 성경적으로 따지면 예수님이 이 여인에게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용서하든지 사형에 처하든지 둘 중 하나뿐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물은 까닭은 잘 알다시피 예수님에게 올무를 걸려는 뜻입니다. 모세 율법대로 처형하라고 하면 평소에 원수까지 사랑하고 끝까지 용서하라는 당신의 가르침을 어기는 자가당착을 범하는 셈이 됩니다. 반면에 용서해주라고 하면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율법을 위반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대답하든 유대인이 쳐놓은 함정에 걸리게 됩니다.

 

율법으로만 따지면 그들이 그녀를 주님에게까지 데리고 올 필요도 없었습니다. 사형이라는 판결이 명시되어 있기에 그 자리에서 죽이면 됩니다. 오직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목적이었고 그들의 숨은 의도를 주님이 모를 리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7절)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장기로 치면 외통수 같은 질문을 받았는데 상대에게 진짜 외통수의 질문으로 반격한 셈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더러 여인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따지려 들었습니다. 주님은 지금 너희라면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옳을지 그들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단순히 율법에 따라 너희가 알아서 행하라든지,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의도는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니 용서해주어도 된다고 길게 설명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율법의 그 규정이나 당신의 가르침이나 어떤 인간도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진리를 바탕으로 하는 계명이자 가르침이라고 말한 셈입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은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8)는 당신의 가르침을 상기시킨 것입니다. 너희 모두가 마음으로는 수도 없이 간음했고 너희 모두가 돌로 쳐 죽임을 당해 마땅한 자들인데도 이 여인을 정죄할 자격이 있느냐고 예리하게 지적했습니다.

 

이는 그들의 심령에 크게 울리는 영적 꾸짖음이었습니다. 구원과 심판은 자기 본인과 하나님과의 일대일의 온전한 개인적 인격적 관계에서만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이의 구원과 심판에 인간 제 삼자가, 그 개입이 아무리 도덕적 종교적으로 옳은 길이라고 해도 절대로 눈곱만큼도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결과적으로 모든 유대인들은 물러가고 그 여인만 남아서 주님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네가 빌라도의 자리에 앉았다면?

 

무신론자들의 유트브 영상에서 상기의 질문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요한복음 8장의 간음한 여인 사건과 똑 같습니다. 불신자들이 신자에게 올무를 걸려는 너무나 헛되고 어리석은 시도입니다.

 

신자는 원수까지 용서해주라는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인간의 죄를 대속하여 준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 들여야만 구원을 얻는다는 절대적 진리 위에 서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지 않았으면 인간 세상에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죽음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예수님을 살려주라고 명하면 원수까지 용서하라는 계명은 따랐지만 기독교가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반면에 십자가에 죽이면 원수까지 용서해야 할 계명을 위반하는 자가당착에 걸립니다. 거기다 “빌라도는 그런 논리에 의하면 아무 죄가 없지 않느냐? 기독교를 세우는데 일등 공신이지 않느냐? 그가 없었다면 기독교가 시작도 하지 못했을 텐데 왜 사도신경에서 그를 정죄하는 고백을 하느냐?” 등등 덮어씌울 올무는 많습니다. 말꼬리만 잡으려는 일종의 순환논리적인 질문입니다.

 

간음한 여인 사건에서 예수님이 하셨듯이 공을 그들의 코트에 다시 넘겨야 합니다. 신자인 나에게 묻기 전에 불신자인 네라면 그 때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 것인가라고 말입니다. 단순히 곤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얼버무리고 기술적으로 교묘하게 빠져나가라는 의도는 절대 없습니다.

 

아마도 그럼 그들의 십중팔구는 아무 죄 없는 예수를 풀어주었을 것이라고, 또 그래야 마땅한 것 아니냐고 대답할 것입니다. 또 그래서 기독교의 가르침은 앞뒤 모순이 많고 스스로 합당한 변론도 못하는 엉터리 종교라고 비난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전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의 무죄함을 알았습니다. 로마에 반역을 도모하지도 않았고, 그로 인해 민란도 일어나지 않을 것을 꿰뚫어 알았습니다. 제국에 대한 식민지 백성의 반동적 동향을 탐지하는 것이 총독의 첫째 직무이지 않습니까? 그는 심지어 예수님에게서 뭔가 신성한 권능도 감지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살려보려고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예수님 처형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계기가 있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요19:12) 유대인들은 제국의 왕은 로마황제 한 명 뿐이기에 스스로 왕이라고 하는 예수를 총독이 놓아주면 황제에게 반역하는 결과라고 빌라도에게 겁을 주었습니다. 만약 풀어주면 그 사실을 적어서 황제에게 직소하겠다는 엄포이기도 합니다.

 

빌라도로선 자기 양심으로는 예수를 풀어주고 싶었으나 지금껏 자기가 쌓아온 총독이라는 직위, 신분, 위치를 단 번에 잃어버리거나 황제의 눈 밖에 나는 것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변방 소국의 정치적 종교적 소요 하나도 재량껏 다스리지 못하는 무능한 총독으로 낙인찍힐 것입니다. 그래서 양심의 소리에는 짐짓 귀를 막고 자신의 형통과 안위를 택한 것입니다.

 

따라서 불신자에게 반문할 질문도 달라져야 합니다. 단순히 “네가 예수 처형 재판관이라면?”이 아니라, “네가 당시의 빌라도 총독과 똑같은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여야 합니다. 정말로 그런 상황 여건에서 예수를 살렸을 것인지 솔직하게 자신을 따져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양심이 있고 가끔 선한 행동을 한다고 해도 막상 자기 지위 재산을 다 걸어야 할 경우가 닥치면 하나님을 따르기는커녕 양심의 소리도 외면하고 적절한 구실을 찾아서 악한 길로 간다는 것이 빌라도가 보여주는 교훈입니다.

 

지금 겨우 이런 정도의 질문을 가지고 기독교의 모순을 찾아내거나, 예수 십자가 구원에서 하자를 찾으려는 것이 얼마나 인간들이 하나님과 그분의 절대적 진리에 대해 완악하게 거역하는지를 반증하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죄에 찌든 인간의 대표적 전형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런 자리에 있었다면 예수를 살릴 수 있는 인간은 없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바입니다. 또 그래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 오셔서 아무 말 없이 십자가에 죽으셨고 그 은혜와 사랑을 믿는 자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범주의 오류(Category Mistake)

 

거기다 상기 불신자의 질문에는 또 다른 결정적 하자가 있습니다. 아예 성립이 안 되는 질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로선 제 설명에 동의하지도 납득하지도 못하겠지만 기독교와 예수님에 대한 너무나 치사하고 엉터리이다 못해 우스꽝스런 반박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기 전에는 무엇을 했을까?” 태초라는 것은 시간과 무관한 개념입니다. 시간이 시작도 되기 전입니다. 그런 태초의 이전이라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누가 만들었을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만드신 분입니다. 하나님을 만들 분은 따로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토록 자존하시는 유일한 분입니다.

 

이처럼 ‘태초’, ‘하나님’이라는 명제가 붙으면 범위가 한정되는 특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질문이나 토론은 그 한정된 범위 내에서만 가능한데 이를 넘어가는 질문이나 토론은 아예 성립되지 않습니다. 이를 두고 전문용어로 “범주의 오류”라고 칭합니다. 가장 쉬운 예로 “총각의 부인은 미인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총각은 아내가 없다는 뜻인데 부인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벌써 오류인 것입니다.

 

“네가 예수를 처형하는 입장이었다면?”라는 질문도 실은 이와 유사한 성격을 지닙니다. 상기의 예처럼 완전한 오류는 아닙니다. 또 빌라도와 같은 인간의 입장에서 가정은 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는 십자가 처형은 유일무이한 사건입니다. 그 전에도 그 후에도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사건입니다. 반드시 그 때에, 그런 여건과 장소에서, 바로 그런 인물들에 의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일어났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과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로선 동의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빌라도는 절대적으로 전무후무한 인물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 자리에 자기를 대입해서 그 사건을 구태여 달리 분석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은 태초부터 삼위 하나님의 인류구속의 경륜 안에 작정된 것입니다. 빌라도도 그에 가장 합당한 인물로 작정 예비 되어서 그런 모습으로 하나님의 드라마에 쓰임 받은 것입니다. 예수 십자가 구원의 절대성, 완전성, 영원성, 유일성을 믿는 신자로선 생각해 볼 필요도 없는 질문입니다. 그야말로 시간과 영적 낭비일 뿐입니다.

 

구태여 불신자들이 요구하는 가정이라도 해보려면 단순히 지금의 나를 대입해선 안 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내가 당시의 빌라도와 동일한 위치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물어야 합니다. 그럼 나도 예수를 처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성경적 답입니다. 감히 예수를 살려주었을 것이라고 대답한다는 것은 너무나 큰 교만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부패했는지 모르는 무지함입니다.

 

실제로 예수님 십자가 사건에 관련된 유대종교지도자, 로마당국자, 선동에 넘어간 유대군중, 짐짓 외면한 일반 유대인은 물론 예수님과 삼년 간 동고동락하며 배웠던 제자들 중 예수님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기는커녕 적극 변호한 자도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빌라도가 그를 살리려 노력한 유일한 사람입니다. 예수 십자가 사건은 다시 강조하지만 어떤 인간도 자기 안위와 영달을 위해선 하나님은 당연히 따르지 않고 자기 양심의 소리도 끝까지 귀를 막는다는 뜻입니다. 아니 서슴없이 악한 길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또 그래서 예수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질문은 인간의 너무나 얄팍한 상식과 이성, 비뚤어진데다 그나마 제대로 실행도 못하는 양심, 기독교와 예수님에 대한 근거 없고 불합리한 반감과 시기,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최고이며 인간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선한 존재라는 죄의 본성에서 나온 너무나 음흉하고 치사한 말꼬리 잡기 시합입니다. 나아가 너무나 안타깝고 불쌍하게도 자기들이, 정확하게는 예수를 모르는 모든 인간의 실체가 그렇게 어리석고 비겁하고 완악한 존재인 줄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의 사람들을, 예컨대 유튜브에 말도 안 되는 이 질문을 던진 자들을, 두고 성경은 엄중히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롬1:18-20)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롬3:10-12,18)

 

8/1/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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