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마20:16)의 의미와 그 적용은?

조회 수 912765 추천 수 105 2004.02.13 18:03:43
[질문]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태복음 20:16)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마가복음 10:31)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누가복음13:30)


신앙의 열심이 떨어져 있는 자뿐 아니라 현재 잘 믿고 있는 성도들에게도 경각심을 깨우치는 말씀으로 자주 인용되는 구절입니다.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자를 의미하는지요?


[답변]

취소되지 않는 구원

질문자님의 의도가 이미 믿은 신자들이 신앙 생활을 게을리 하거나 죄악에 빠지면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못 받거나 천국에서의 상급이 달라지고 심지어 구원이 취소되는 경우가 있는지에 관한 의문인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우선 결론적으로 말씀 드리면 신자가 게으르고 죄에 빠지면 하나님의 징계는 분명히 받습니다. 스페인 속담에 “하나님은 연기는 하시지만 잊지는 않으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신자의 잘못에 일 대 일로 그 자리 그 순간에 벌을 주시지는 않지만 신자의 죄가 차고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반드시 징계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 징계는 징계를 위한 징계가 아니라 사랑의 매입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히12:5,6) 징계를 주시는 이유는 신자를 사랑하는 아들로 여기시기 때문이며 당신이 온전하신 것 같이 우리 또한 온전하게 세우시기 위한 것입니다. 신자가 복을 받고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품 안에서 뿐이므로 신자를 다시 그 자리로 돌려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거듭남으로 한 번 구원 받은 성도는 비록 시험에 빠지고 죄악을 저질렀다 해도 그 구원이 취소되는 법은 절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따라서 교회에서 신자가 신앙생활을 게을리하거나 시험과 죄에 빠졌을 때에 경각심을 일깨우고 영적인 회복을 위해 징계는 강조할 수 있습니다만 구원이 취소된다고 가르쳐선 안 됩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징계를 논하기 직전에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히12:4) 했기 때문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히12:5) 권한다고 했습니다. 신자는 무시로 기도하며 성령의 전신갑주를 입고 정말 피 흘리기까지 죄와 사망과 사단의 세력과 싸워야 합니다. 또 교회는 함께 그 일을 독려하고 서로 힘을 합해 싸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행하는 어떤 권면이라도 사랑하는 아들을 대하듯이 당사자의 영적 회복과 유익만을 위한 목적이어야 합니다. 혹시라도 겁을 주거나 강제력을 동원해 어떤 다른 목적에 이용 하려거나 비난 정죄하는 뜻으로 해선 안 됩니다. 신자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구원이 취소되고 지옥 갈 수 있다고 함부로 말하는 것이 그 가장 잘못된 권면의 예입니다. 신자 개인은 교회의 이런 잘못된 권면을 구별할 줄 아는 영적인 분별력을 가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라도 성경을 잘 묵상하고 그리스도 십자가의 진리를 정확하게 아셔야 합니다.    

상당히 유감스럽게도 질문자께서 염려(?)하셨듯이 본문이 그 뜻과는 달리 교회의 외적 활동에 참여토록 신자를 독려하고 심지어 겁을 주는데(?) 남용되다시피 합니다. 본문의 정확한 뜻은 이미 성도가 된 자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징계를 받거나 구원이 취소된다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한 문단 안에서 성경을 읽어라

신자들이 성경을 볼 때에 가장 신경을 써야 할 것은 앞 뒤 문맥을 연결하여 최소한도 한 문단(sentence가 아니라 paragraph) 안에서의 주제로 그 뜻을 파악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자들이 한 구절 한 구절을 따로 떼어 생각하고 그것도 자기 마음에 드는 구절만 골라 순간적으로 떠 오르는 생각과 기분대로 임의로 해석해 버립니다. 목회자도 간혹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심지어 신자 가운데는 한 문단이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나는지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에는 주석 성경과 자습(self-study)서 형식의 성경이 많이 나와 평신도 혼자서도 충분히 말씀의 깊은 의미를 찾아 내고 묵상할 수 있는데도 실제로는 그런 성경들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꼭 주석 성경이 아니라도 모든 성경에는 문단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있도록 조그만 동그라미로 새 문단이 시작되는 부분에 표시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에는 어떤 구절이라도 반드시 그 구절이 속해 있는 문단 전체 뜻을 생각하기 위해 이 동그라미 표를 주시해야 합니다. 동그라미로 시작하는 구절에서 다음 동그라미 표시되기 바로 앞 구절까지는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 지금 질문하신 구절의 의미도 특별한 신학적 지식 없이 이렇게만 따져도 금방 그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의 의미

(1)“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태복음 20:16)

이 구절은 사실은 그 앞 19:30에 이미 나온 말씀의 반복으로 그것을 더 상세하게 비유로 풀어서 하신 말씀의 결론으로 등장했습니다. 따라서 마19:30과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위에서 말씀 드린 대로 동그라미를 찾으면 19:23-30이 한 문장입니다. 그리고 또 그것은 앞 문단 16-22절까지 부자 청년과 천국에 관한 논쟁에 이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19:30과 20:16은 그 청년이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9:16)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의 연장으로 제시된 말씀입니다. 이제 앞뒤 문맥을 간단하게 따져 보아 질문하신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19:13-20:16까지 자세히 묵상하며 여러 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부자 청년은 예수님이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19:21)고 한 말씀에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여”(19:22)가 버렸습니다. 재물과 하나님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는 요구에 비록 세상에서 많은 선한 일을 하고 율법대로 살았던 청년이지만 종국에는 하나님 대신에 재물을 택하기로 한 것입니다.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죽음 이후의 천국을 간절히 사모해야만 가능한데도 그는 이 땅에서의 부귀를 더 귀하게 여겼으니 구원을 받는데 실패했습니다.

그 이후 예수님은 낙타의 바늘 구멍 비유를 통해 부자는 천국 가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시자 제자들이 그런 선한 부자 청년도 영생을 얻지 못하면 누가 감히 천국 갈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주님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19:26)고 대답했습니다. 여기까지 내용은 한마디로 사람이 선행을 하며 율법을 지킨 것으로는 구원을 얻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부자 청년과는 달리 세상의 모든 것 대신에 주님을 선택해 따랐으니 과연 영생을 얻을 것인지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영생을 얻을 뿐 아니라 천국보좌에서 열 두 지파를 심판하는 영광에까지 이른다고 하면서 바로 이어서 30절의 “먼저 된 자 나중 되고 나중 된 자 먼저 된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럼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는 직접적으로는 누구를 대비한 셈입니까? 부자 청년과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그럼 왜 먼저 되고 나중 된 것으로 구분했습니까? 유대인으로 태어나 율법을 제대로 지키면 인간의 공적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생각한 사람들이 먼저 된 자입니다. 반면에 갈릴리 변방에서 율법을 제대로 알지 못한 무식한 어부들이지만 오직 세상 대신에 주님을 선택한 자들이 나중 된 자입니다. 율법으로 구원을 얻지 못한 자가 먼저 된 자이고 은혜로 구원을 얻게 된 자가 나중 된 자입니다.

살펴 본대로 앞뒤 문맥상 믿은 지 오래된 신자가 신앙 생활을 게을리 하거나 죄와 시험에 빠지면 나중 된다는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흔히들 생각하듯이 장로가 되어 제대로 봉사 안 하면 현실에서도 복을 못 받고 천국에서도 상급이 적어지지만 대신에 이제 갓 믿은 초신자라도 열심히 봉사하고 뜨겁게 믿으면 금방 장로 되고 복도 많이 받는다는 식의 해석이 성립될 여지는 없습니다. 순전히 외양적인 모습으로만 따지면 신자도 인간인지라 초신자일 때는 은혜 받은 지 얼마 안 되어 모든 교회 활동에 열심이고 뜨거울 수 밖에 없고 대신에 장로는 연륜이 오래 되어 좀 시들해질 수 있지 않습니까? 단순하게 그런 것으로 신앙 수준을 나누거나 심지어 축복의 차별  혹은  구원 여부 자체를 논할 수는 없습니다.    

정말 그러한지 다음 비유도 살펴 봅시다. 과수원 주인이 오전부터 하루 종일 일한 자나 일이 끝나기 직전에 와서 잠깐 일한 자나 그 삯을 똑 같이 주자 먼저 온 자들이 집주인을 원망했습니다. 먼저 일한 자로선 억울할 만도 하고 집 주인이 불공평해 보입니다. 이 비유는 세상적인 경제 원칙의 공평성을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 또한 구원에 관한 비유입니다.

집 주인의 대답을 자세히 살펴 보아야 합니다.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마19:13-15)

이 비유의 초점은 모든 사람에게 일한 시간과 상관 없이 한 데나리온 씩 주는 이유는 오직 그것이 주인의 뜻 때문이라 것입니다. 그 품삯은 영생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일한 것과 상관 없이 당신 뜻대로 모든 자에게 오직 자신의 주관적 선택과 은혜로 구원을 선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말 하나님만의 선하신 뜻입니다.

그런데 먼저 온 일군들은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선민이 되었고 율법을 받아 열심히 율법을 준수했으므로 자기들은 이방인들과 다른 특별한 취급을 받을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지 못하자 하나님을 악하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구원을 잃어 버렸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맡기신 제사장 나라의 역할 – 즉 먼저 불려와 일을 하는 계약을 제대로 이행했으면 구원을 얻을 뿐 아니라 제사장 나라의 직분을 수행하는 것 자체가 먼저 뽑힌 자의 축복입니다. 제사장 나라라는 것은 다른 나라의 이방인들도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 임무입니다. 그럼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는 것-늦게 왔더라도 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을 보고 기뻐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자기들 할 일은 제대로 못해 놓고 하나님이 이방인을 구원하는 것조차 잘못되었다고 불평했습니다. 오직 자기들만 구원 받고 상급이 당연히 더 많아야 한다고 하나님에게 주장한 셈입니다.  

집 주인이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나중에 택함을 받은 이방인이든 먼저 선택 받은 유대인이든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누구나 주께로 오는 자는 공평하게 다 구원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과수원에 와서 먼저 일한 자는 유대인이고 나중에 불려와 일한 자는 이방인입니다. 나중 된 이방인은 구원 받았고 먼저 된 유대인은 구원 받지 못했습니다. 이 비유 또한 이미 구원 받은 신자가 죄 짓고 게으른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2)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13:30)

마가 복음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10:31)가 포함된 문단의 내용은 마태 복음과 동일합니다. 따라서 누가복음의 이 구절만 한 번 더 살펴 보기로 합시다.  

누가 복음의 경우 본문이 포함 된 문단(13:22-30)의 내용은 마태와 마가와는 다르지만 그 주제는 여전히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구원을 얻는 자가 왜 적느냐는 질문에 주님은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은 좁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시작으로 영생에 관한 동일한 진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태 복음의 포도원 비유처럼 이번에도 집주인이 임의로 문을 닫습니다.(25절) 인간의 공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26절)라고 항의합니다. 메시야되신 예수님이 인간으로 오셨지만 그 복음에 항복하지 않았던 유대인들이 단지 유대인으로 태어나 이미 여호와를 알고 그 가르침을 받았다는 이유로 천국에 들어가야 한다고 항변합니다.

특별히 28절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선지자들이 천국에 있음에도 저희들은 문 밖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간다고 표현했습니다. 또 다시 유대인들은 혈통이나 육신의 공로로 자기들 선민이 당연히 구원 받아야 한다는 교만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동서남북으로부터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한다고 했습니다.(29절) 이방인들이 복음에 항복하여 주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는 또 누구를 지칭한 것입니까? 여기서도 먼저 된 자는 유대인들이고 나중 된 자는 이방인들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의 공적과 능력으로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교만한 자들과 오직 주님의 십자가 은혜로 인해 하나님 앞에 완전히 낮아져 항복한 자들의 비교입니다.  

결론

성경을 한 절만 두고 생각하는 것과 전체 문맥에서 분석해 보는 것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또 앞뒤 줄거리와 주제만 따져 보아도 신학적 지식이나 주석을 참고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내용을 깊이 알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성경 본문의 일차적 해석으로는 먼저 된 자는 유대인이며 나중 된 자는 이방인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인종적 구분만은 아닌 것임을 이미 아셨을 것입니다. 인간의 공적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자와 오직 십자가 그리스도의 대속적 은혜로만 영생을 얻는다는 자의 구분입니다.

결론적으로 본문은 하나님의 구원의 원리에 관한 설명으로 요약하면; 1) 먼저 된 자나 나중 된 자나 관계 없이 인간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의해 구원되며(엡1:4,5) 2) 그 주권에 관해 인간은 누구도 의의를 제기할 수 없으며(롬9:20,21) 3)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사랑에 의한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선물로 받았으며(엡2:8,9) 4) 주님의 십자가 사랑 앞에 항복하는 자들에게 차별 없이 주어진다(롬3:22)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이미 얻은 구원에 대해 보일 온당한 반응은 겸손하게 하나님께 감사하며 결코 자랑하지 않고 혹시라도 영적으로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헌신해야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본문이 게으르고 죄에 빠진 신자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언급될 때의 취지가  만약 자칫 구원의 확신에 너무 도취되어 영적인 교만과 태만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라면 분명히 맞습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그것으로 인해 신자의 구원이 취소된다고 말하면 틀린 것입니다. 또 징계 혹은 상급에 차별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너무 강조해 신자에게 두려움을 주고 어떤 다른 목적으로 유도하려 든다면 성경의 본문의 의미와는 너무 동떨어진 목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히려 남을 죽이는 경우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이미 구원을 얻은 자에게는 징계는 분명히 있지만 심판은 더 이상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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