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세습이 성경적인가요?

조회 수 3256 추천 수 88 2006.10.14 01:25:45
[질문]

지금 저희 교회는 담임 목사님의 은퇴와 새로 오실 목사님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저희 담임 목사님께서 은퇴 시기가 아직 4년 정도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기 은퇴를 선언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후임 목사님으로 자신의 아들을 세우시기로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목사님께서 꿈을 꾸시는 중에 받은 계시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이 문제로 교회는 시끄러울 뿐 만 아니라 목사님 뜻에 따르자는 쪽과 목회의 부자세습은 절대 안된다는 쪽으로 나뉘어 지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평소에 목회 세습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해 왔으며, 이러한 목회세습을 하는 교회, 그래서 목사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분열되는 교회를 보면서 이러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잘못된 것이라고 여겨왔었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사랑으로 용서하고 용납할 일, 성도로서 순종해야 할 부분은 무엇이며,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할 신앙의 신조는 무었입니까?
특히 교회가 분열되고 있음에도 목사님이 자기 아들로 후임을 세우기로 하신 일이 정말 성령의 계시라고 생각되십니까?  저희 교회 부 목회자께서도 일체 입을 다물고 있는 실정 입니다. 주님께서 피값주고 사신 교회에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할지 정말 답답한 마음으로 쓴 글이오니 정말 주님의 뜻을 이야기 해 주셨으면 합니다.

[답변]

최근 한국에서 꽤 많은 교회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문제를 질문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에 목회 세습에 관한 구체적 설명이 전무하고  또  그런 예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성도들이 판단하기 아주 애매하며 또 그런 약점을 이용해 성경지식이 많은 목회자들이 악용(?)하는 경우가 왕왕있습니다.

성경에 어떤 문제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없다고 해서 교회나 성도가 자기들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 전체에 흐르는 뜻에 비추어보면 성경 지식을 어느 정도 갖춘 자라면 얼마든지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라는 뜻입니다.  아니면 정말로 신자가 아무렇게나 해도 좋을 만큼  아주 사소한 문제라 아예 언급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알기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성도가 담배를 피워도 되느냐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육신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기에 건강하고 청결하게 유지하길 원하십니다. 레위기에서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나눈 까닭입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육신적 건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계시고 모든 좋은 것으로 마련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외에도 성경적인 이유가 더 있지만 우선 이것 하나만으로도 성도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야 합니다. 윤리적 종교적 죄냐 아니냐를 떠나서 하나님이 그렇게 원하십니다.  담배가 비록 성경을 기록할 당시에 유대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성경 전체의 의미로 보면 그 판단은 명확하고도 간단합니다.  

후자의 예로는 성도가 주일 날 꼭 정장을 입고 교회를 가야하느냐는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사람이 정장과 캐쥬얼을 구분할 만큼 옷이 많아진 것은 극히 최근의 일입니다. 이전에는 단지 외출복이냐 아니냐의 차이만, 그것도 아주 부유한 층에만 있을 정도입니다. 심지어 예수님 당시에는 외출복이 바로 간이 침구로도 사용했습니다.(마5:40) 오늘날의 캐쥬얼로도 이전에는 얼마든지 외출복 내지 정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캐쥬얼이라도 가능한 깨끗하고 격식에 어긋나지 않는 것을 입으면 됩니다. 이런 문제는 구태여 성경적 의미를 따지지 않더라도 상식으로 따져서 판단하면 되는 것입니다.

요컨대 성경에 언급이 없는 문제는 성경 전체에 흐르는 하나님의 뜻과 합리적인 상식 판단에 근거하여 해석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목회 세습의 문제는 어떻습니까? 해도 되고 안 해도 될 만큰 지엽적인 문제는 결코 아닙니다. 너무나 크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도 반드시 성경 전체의 연관된 뜻에 비추어 먼저 판단해 보고 상식으로도 그 판단이 어긋나지 않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약 시대 제사장 직분의 세습

구약 시대에는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이 대대로 세습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세습보다는 정 반대의 뜻, 즉 하나님이 따로 지정해서 부른 자를 구별해서 세웠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제사장을 레위 지파로만 세습토록 한 경위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광야 생활을 하는 도중에 모세의 누이 미리암과 형 아론이 그런 모세의 지도권에 대해 질투 섞인 항변을 했습니다.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민12:2) 그러나 하나님은 “내 종 모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민12:8)고 그들을 야단 치고 징계했습니다.

또 얼마 안가서 레위 자손 고라와 르우벤 자손 다단과 온이 당을 짓고 모세를 거스리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민16:3) 이 때도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이 모든 일을 행케 하신 것이요 나의 임의(임의)로 함이 아닌 줄을 이 일로 인하여 알리라”(민16:28)고 그들을 야단치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로서 불이 나와 분향하는 고라의 일당 250명을 소멸시키는 벌을 내렸습니다.

이 두 사건에서 사람들이 반발한 초점은 모세가 자기 마음대로 지도권을 행사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두 번 다 그가 임의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따로 구별하여 세운 당신의 종으로 오직 당신이 시킨 일만 한다고 확실히 못을 박았습니다. 주의 종의 권세를 더 한층 높였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주의 종은 절대로 자기 임의로 회중을 치리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두 사건 이후에 하나님은 12 지파 두령의 지팡이를 증거궤 앞에 두게 한 후에 아론의 지팡이에만 선택한 종이라는 표시로 싹이 나는 이적을 보였습니다.(민17:8) 그 후 아론 집안은 지성소에 들어가는 대제사장을, 레위 지파는 회막에서 봉사하는 제사장을 세습하도록 했습니다

구약 시대의 제사장과 오늘날의 목사는 그 맡은 역할과 의미에서 일부 중복되는 면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다르게 보아야 합니다. 우선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계획과 의미에서부터 구약시대의 성전 제도와 신약 이후의 교회 제도는다릅니다. 한 마디로 구약시대의 대 제사장은 모든 백성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자신이 죽음의 대속 제물로 바쳐져야 했습니다. 대 속죄일에 그 속죄를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으면 지성소 안에서 죽었어야 했습니다.

회막에서 봉사하는 역할로 레위 인을 따로 구별하신 의미도 동일합니다.  “내가 이스라엘 중에서 레위인을 취하여 그들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선물로 주어서 그들로 회막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봉사하게 하며 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성소에 가까이할  때에 그들 중에 재앙이 없게 하였음이니라.”(민8:19) 레위 인들도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대표하여  대속적인 의미로 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성소에 가까이 하여 죽음을 당하는 것을 면하게 하는 역할을 맡은 것입니다.  

한 마디로 구약의 제사장들은  특권을 부여 받기 위해 뽑힌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 전 지파를 대표하는 죽음의 제물이란 의미로 선택되었습니다. 오늘 날의 목사가 회중을 대신하여 속죄 제물로 바쳐지는 헌신과  실천이 없는데도 만약  목회 세습을 구약 제사장 제도에 비견한다면 성경을 견강부회로 해석한 것에 불과합니다.  

제사장직분은 이스라엘 전지파를 대표해서, 죽음을 각오하고 속죄의 제물로 바쳐져야 하고, 또  기업과 분깃이 없이 활당된 주거지 안에서만 생활하여야 하니까 당연히 세습이 허용 된 것뿐입니다. 그래서 세습이 오히려 하나님이 세우신 자를 구별하는 의미였지 아버지 제사장이 아들에게 그 직분을 물려 주어도 된다는 의미는 단 한 치도 없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레위 지파가 아닌 자를 제사장으로 세울 때를 당연히 더 문제 삼았습니다. “온 이스라엘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그 모든 지방에서부터 르호보암에게 돌아오되 레위 사람이 그 향리와 산업을 떠나  유다와 예루살렘에 이르렀으니 이는 여로보암과 그 아들들이 저희를 폐하여 여호와께 제사장의 직분을 행치 못하게 하고 여로보암이 여러 산당과 수염소 우상과 자기가 만든 송아지 우상을 위하여 스스로 제사장들을 세움이라.”(대하11:13-17)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왕국 이스라엘을 둘로 나눈 죄에다  제사장제도도 제 마음대로 바꾸고 우상을 세운 죄를 범했습니다. 이후 북왕국은 완전히 배교의 죄악으로 치닫고 하나님의 징계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제사장 직분은 오직 하나님 당신께서 택하신 자를 직접 구별하여 세웠기에 맡을 수 있었던 것이지, 인간이 자격이 없는 자(신학교육의 유무 여부가 아님, 하나님이 택하여 구별하지 않은 자를 말함)에게 그 직분을 임의로 수여해선 절대 안 된다는 것이 구약에 나타난 의미입니다.

신약  시대의 직분자 선택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흘리신 피로 영단번의 속죄 제사가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이제 구약의 제사장 제도는 폐하여졌습니다. 세습제로 따로 구별된 레위인이 대속제물의 역할을 더 이상 맡을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대신에 각 지역별로 성도들의 모임이 가정에서 회당에서 활성화되었고 오늘날의 교회로 발전하는 모태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레위인이 그런 모임을 주관할 이유도 없어졌습니다.  초대 교회에는 사도가 그 이후에는 그에 준하는 자들이 가문과 학벌에 관계 없이 교회를 이끄는 자가 되었습니다. 또 초기의 교회에는 지금과 같은 담임 목사제가 없었고 여러 직분자들이 함께 협력하며 사역하는 형태를 취했습니다.

교회가 현재 형태로 발전되고 담임목사 직분이 생기게 된 경위는 정확하게 추적할 수는 없습니다. 또 성경에 나타난 뜻을 제쳐둔 채  전통과 관례를 먼저 살펴볼  필요도 없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교회의 직분자들을 어떻게 세웠는지 그 원리를 살펴 보면 서두에서 밝힌대로 구체적 설명이 없는 목사 직분에도 적용시키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저희가 두 사람을 천(薦)하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제비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행1:21-26)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7인을)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행6:3-6)

첫번 구절은 가롯 유다의 배반으로 12 사도 중에 결원이 된 한 명을 보충하는 내용입니다. 사도와 현대 교회의 목사의 역할이 다르긴 하지만  교회의 직분자를 세우는 성경적인 기본 원칙은 동일합니다.  두 번째 예는 교회가 최초로 일곱 집사를 세울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 두 기사에서 공통되는 몇 가지 중요한 원리는 아래와 같습니다.

1) 회중들이 잘 아는 사람을 뽑았습니다. 사도를 세울 때는 항상 그들과  함께 다니던 즉, 요한의 세례부터 부활하신 주님이 승천하실 때까지  같이 동고동락하며 동역했던 자 중에서 뽑았습니다. 또 일곱 집사도 제자들이 익히 그 사람의 믿음과 품성과 평소의 행동거지를 잘 알고 있는 자 중에서 뽑았습니다.

2) 직분의 성격을 정확하게 규정하였고 그에 맞는 소명과 자격을 갖춘  자라야 했습니다. 사도는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으로 실제로 그 모든 것을 분명히 목격한 증인이어야 했습니다. 집사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으로서 공궤하는 일을 잘 맡을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3) 회중들이 (복수를) 추천하고 결정했습니다. 사도들이 제비 뽑은 것이 언뜻 미신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제비의 의미는 인간의 선입관, 편견, 선호도, 이해나 친소 관계를 전부 배제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 묻는 절차입니다. 간절히 기도하고 시행하면, 특별히 성령이 보편적으로 강림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방법이었습니다. 또 집사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뽑았는지는 모르지만 회중이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을 고르는데에 아무런 의견 충돌 없이  골랐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자격 있는 자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공평한 방식으로 선출했다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신약 시대에 교회에 직분자를 세우는 절차는 회중들이 잘 아는 사람 중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고 직분자로서 영적인 자격을 갖춘 자를 회중들이 기도하여 뽑았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목회 세습의 예

다시 말하지만 목회자를 비롯해 교회의 직분자를 세우는 가장 중요한 성경적 원칙은 회중의 인정과 선택 여부입니다. 그 말은 원칙적으로만 따지면 만약에 목사의 아들이라도 자격이 합당하여 전회중이 자발적 동의로 선임했다면 꼭 후임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그런 성공적인 세습의 케이스가 그것도 아주 유명한 목사 두분에게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신학적 노선의 옳고 그름은 본 주제와 연관이 없으므로 따지지 않고 목회 세습의 예로만 제시하겠습니다.

은퇴한 Billy Graham 목사의 아들인 Franklyn Graham이 BGEA(Billy Graham Evangelistic Association – 빌리 그래햄 선교재단)의 공식 후임자가 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 미국 California Anaheim(LA지역)에 있는 Crystal Cathedral(수정교회)도 아버지 Dr. Robert H.  Schuler 목사가 최근에 은퇴하고 그 아들 Robert A. Shuler 2세 목사에게 큰 무리 없이  담임목사 직분이 승계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경우 다 성경적 원칙을 준수했습니다. 즉 아들들이 아버지 교회에서 어려서부터  양육받았고 또 본인이 소명을 받아 소정의 신학교육을 마친 후에도 모교회에 돌아와 아버지와 함께 사역하면서 오랜 기간 현장에서 목회자로서의 수련을 거쳤습니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전도사, 강도사, 부목사를 거치며 여러 직분을 맡았고 또 성인 주일예배의 설교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교인들이 교회를 개척한 전임 목사의 아들로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별도 목회자 후보로서 자격과 품성과 영성의 검증을 다 거친 후에 담임으로 청빙한 것입니다.

물론 아무리 엄격하고도 공정한 검증을 거쳤다 할지라도 선임 개척목사에 대한 인간적인 의리가 개입되지 않았다고는 보장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처럼 아버지 목사가 은근 슬쩍 혹은 반강압적으로 자기 아들을 담임 목사 후보로 천거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목사가 신학교를 졸업한 자기  아들을 전도사부터 시켰고 또 그렇게 하는데에 구태여 반대한 교인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담임 목사로서 오랜 기간 어려운 일을 맡기며 장래의 목사 후보로  더 엄격하게 훈련시키는 모습을 곁에서 봤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두 경우 다 아들이지만 자기들의  담임 목사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고 회중이 인정하였고 또 기꺼이 그 가르침을 따르겠다고 선택했습니다. 나아가 이왕이면  아들이니까 아버지 목사의 비전을 잘 이어갈 수 있고, 선임과 후임 목사간의 알력을 방지하며, 교회가 급격하게 변화되는 것을 싫어 했을 것입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이처럼 공정한 방식으로 세습하겠다고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이 신학 공부 그것도 미국 유학을 했다는 이유 하나로 마치 관가에서 낙하산 인사하듯이 후임으로 삼으려 드니 문제입니다. 비록 교회에서 여러 훈련을 오랜 기간 거쳤다 할지라도 교인들이 볼 때에 도저히 자격과 품성이 모자라는데도 억지로 세습시키겠다고 나서니 문제입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모든 면에서 하자가 없는 아들 목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신학, 인격, 영성, 목회 철학과 경험 등에서 오히려 아버지 목사보다 더 낫고 또 본교회에서 많은 사역을 하여 교인들의  인정과 지지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한국인의 정서 특성상 세습을 하기에는 많은 문제가 따릅니다.

우선 한국인들은 공사(公私) 간에 구별이 엄격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두루뭉실 넘어가기 일쑤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사를 공으로 착각하는 것과 공을 사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전자는 담임 목사가 전혀 자격도 안 되는 아들을 훈련과 검증 기간을 거치지 않고 후계자로 세우려는 것입니다. 이는 두 말할 것 없이 나쁜 것입니다.

그 반대로 공을 사와 구분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은 문제입니다. 아들이 자격이 되었고 교인들의 충분한 인정과 압도적 지지로 청빙했다 할지라도, 즉 완전히 공적으로 일을 처리했음에도 여전히 세습에 대한 사적인 감정을 지우지 못합니다. 소위 체면과 명분을 세우는 것을 최우선시 하는 한국인 특유의 태도 때문입니다. 해당 교회내에선 아무 문제가 없지만 다른 교회에서 어떻게 보겠느냐에 신경을 더 쓴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전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란 관점에서 덕이 되지 않거나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에게 혼란을 주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목회 세습을 일반적으로 부정시하고 있는 상태에선 함부로 시도해선 안 된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미국 사람들은 한국인에 비해 공과 사의 구분이 엄격하고 또 페어플레이 정신이 강하기 때문에 예의 두 경우에도 교계에서나 해당 교인들 사이에 크게 문제 삼지 않고 있습니다.  아들이라도 목회자로서의 충분한 자격이 되고 (공과 사의 구분), 또 교인들이 객관적으로 검증해서 정당한 절차에 따라 인정했다면(페어플레이 정신), 제 삼자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 고려해볼 사항은 예의 두 경우 모두 아버지 목사들이 평생을 두고 아무런 사심 없이 정말로 성실하고도 진실되게 목회를 수행했다는 전적인 신뢰가 있었기에 세습에 큰 문제를 삼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아들에게서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진정으로 헌신되어서 개인적인 욕심 없이 오직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기에 오히려 더 믿을 수 있고 나아가 아버지 목사에 대한 아쉬움을 모든 면에서 비슷한, 예컨대 설교 스타일과 음성과 제스츄어 등, 아들 목사에게서 보충할 수 있다는 점도 좋은 면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이런 것도 결국 공과 사의 엄격한 구분과 개인주의가 강한 미국인들의 성향  때문에 가능할 것입니다.

한국의 경우는 아버지와 아들 목사의 사심을 채우는데에 세습을 악용하기에 항상 말썽이 됩니다.  원로 목사로서 수렴청정을 계속하고 싶다든지, 아들이 따로 개척하려면  힘드니까 모든 면에서 지원해주든지(변칙적 세습의 예) 아예 잘 정비된 모교회를 직접 물려주려 합니다. 그럼에도 목사의 잘못은 오직 하나님만이 벌 주실 수 있으니  교인들은 하나님의 종에게 무조건 순종하라는 그럴듯한 구실을 내세워서 편안하고 손쉽게 목회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개척한 교회를 마치 자기 사유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목자가 눈물과 땀을 쏟아 부어 넣는 희생이 따르지 않는 목회는 종교 사업일 뿐입니다.  선한 목자는 자기 양떼를 위해서 피를 흘려야 함에도 오히려 양더러 목자를 위해 수고하고 희생하라고 합니다. 본말이 전도되어도 한창 전도된 것입니다.

목회 세습에 대한 상식적 해석

최근 미국에선 동성애 결혼에 관해 찬반 논란이 그치지 않는데 부시 대통령은 헌법을 고쳐서라도 동성애 결혼을 막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현재의 헌법상에 결혼을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살기로 약속하는 것이라고 정의가 되어있어서, 동성애 결혼 찬성자들이 그 규정에 남녀라는 명시적 구분이 없다는 것을 구실로 삼아 남자끼리 결혼해도 된다고 물고 늘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발하는 진영은 헌법을 처음 만들 때에는 결혼은 당연히 남녀간의 결합으로 누구나 알고 있었지 동성간의 결혼은 꿈도 못  꾸었기 때문에 구태여 남녀라고 명시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목회자 세습도 신약 성경을 기록할 당시에 그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아예 꿈도 못꾸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교회 2천년 역사에 유례가 없다가 최근에 그것도 한국교회에서만 유독 불거졌지 않습니까? 지난 세대에 거의 유례가 없었다면 그만큼 목회 세습은 누구나 비상식적인 이야기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위에 든 두 가지 미국의 예는 세습이 옳으니 그렇게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세습을 주장하는 한국 목사들이 성경의 뜻과 상식을 무시하고 그 두 경우에 비추어 세습을 해도 된다고 강변할까 염려해서 든 예입니다. 미국의 두 성공적인 예는 아직은 전임 아버지 목사가 생존해 있어서 그 영향력이 남아 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물론 그 아들들이 아버지만큼 잘하고 있기도 하지만 미국에서도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합니다.

또 아들에게 성공적인 세습이 되었다 할지라도 손자 대에 가서, 설령 자격을 갖춘 손자가 나서도 세습이 성공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또 만약 자격 있는 손자가 나서서 목회를 하는 상황이 오면 벌써 모든 시대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에 세습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별도 목회를 시작하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이래저래 목회의 세습은 기껏해야 1-2대 정도 밖에 효과를 볼 수 없습니다. 성경의 진리는 항상 영원해야 합니다. 만약 목회 세습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라면 항상 세습해도 되고  또 그 효력이 나타나야만 합니다. 목회 세습은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상식으로만 따져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도가 아니라는 것은 자명합니다. 목사의 아들이 목사는 될 수 있어도 교인들의 전적이고도 자발적인 동의가 없는 한 아버지 교회를 세습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빌리 그래함의 손자인 William F. Graham도 마침 금주부터 부흥선교사로 나서서 자기 이름으로 하는 대전도집회를 미국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 자리는 할아버지인 빌리 그래함 목사가 대신할 수 없다. 나는 빌리 그래함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조부의 명성에 기대지 않고 독립적인 집회를 인도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목회자 선임은 성경의 뜻과 상식 두가지 기준에 다 맞아야 합니다. 성경적 원칙이란 몇 번 말씀드린대로 자격, 품성, 영성을 다 갖춘 자로서 분명한 소명을 받았음을 회중이 다 검증하여 회중이 청빙하고 결정 선택하는 것입니다. 또 상식에 맞아야 한다는 것은 그 선임 방법도 분명히 공정 타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각 개별 교회마다 사정이 다 다르겠지만  2세 목사를 모든 조건이 맞아 꼭 담임으로 선임하겠다면 전임 아버지 목사가 결정하거나 권면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교인들이 선택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또 아무리 하나님의 뜻에 맞다고 할지라도 방법이 틀리면 하나님은 그 뜻을 절대 강요하지 않습니다. 방법도 하나님의 방법을 사용해야만 합니다. 정당한 방법만 사용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전임 아버지 목사는 교인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강요하거나 사적인 영향력을 미쳐선 안 됩니다. 정말로 순수한 무기명 비밀 투표를 통해 교회 헌법에 규정된 청빙절차의 의사 및 의결 정족수를 얻을 가능성이 없으면 전임 목사가 아예 그런 천거 자체를 하지 않든지 했더라도 자진해서 철회해야 합니다.  

바울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을 각 성의 장로들이 반대할 때에 그들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행20:28) 교회의 치리자는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며 그 임명 절차는 성령의 인도에 따랐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인도하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교인들이 정말 진지하게 합심하여 기도하여 해당자의 평소 믿음과 품성 등을 판단하여 교회 내에 별다른 의견 충돌 없이 압도적 지지로 결정했다는 뜻입니다.


첨언:

1) 제가 컴퓨터가 고장이 나서 자의반타의반으로 조금 게으름을 부렸더니 정순태 집사님이 친절하게도 실천목회적 차원에서 답을 다 달아주셨네요. 상기의 제 답변은 그 글을 읽기 전에 작성이 된 것이라 혹시 중복이 되거나 상충되는 점이 있더라도 함께 비교해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문답 사이트에 이와 연관해서 참고할만한 내용의 글(#70-73)이 올라 있으므로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질문자님의 해당 교회의 특수한 사정을 제가 알 수 없기에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상기의 제 답변과 정순태 집사님의 글과 또 이전 문답들을 참고하여 질문자님 본인께서 판단하고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정순태 집사님의 염려대로 어렵고도 괴로운 일입니다만 성령님의 인도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항상 전체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교회와 성도들의 덕을 세우는 관점에서 결정을 하시기 바랍니다.

3) 그러나 한가지 제가 부탁 드리고 싶은 것은 하나님이 성도에게 일차적으로 원하는 것은 성도 자신이 영적으로 바로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 일에 대한 순종과 충성과 헌신은 이차적입니다. 본인이 영적으로 바로 서 있지 않는데 하나님의 일을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또 영적으로 바로 섰는데 충성 헌신 하지 않을 신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다른 말로 이 일로 교회에 자꾸 문제가 생겨 자신의 영적 상태마저 완전히 침체된다면 조용히 영적으로 바로 선 다른 교회로 옮기는 문제를 너무 죄스럽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4) 신앙은 상식, 이성, 과학 등을 초월하지만 서로 상충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지금도 하나님이  꿈으로 당신의 뜻을 계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이 정말 현재 담임 목사님의 아들을 후임 목사로 세우기를 원하시면 성도들 중에 가장 신망이 있고 신앙이 좋은 분들에게 먼저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도 한 분이 아니라 여러 분에게 서로 모여 의논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도 꿈, 말씀, 기도의 응답 등으로 개별적으로 분명하게 알려 줍니다.  그런데도 목사님 혼자 당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세우라는 계시를 꿈으로 혼자서만 받았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역사하는 방법과는 거리가 멀뿐 아니라 상식적으로 벌써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지 않습니까?

5) 목회 세습에만 초점을 맞추어 답변을 하다보니 “신앙생활에 있어서 사랑으로 용서하고 용납할 일, 성도로서 순종해야 할 부분은 무엇이며,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할 신앙의 신조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는 미처 답을 못했습니다. 이에 관해선 간단하게 성경 구절 하나로 대신하겠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하니”(행4:19,20) 성도가 끝까지 순종하고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 할 신앙의 신조는 오직 하나님 말씀에 나타난 진리입니다. 본 질문의 주제와 연관해서 생각해보면 목회자를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리는 오직 교회의 회중이지 전임 목사가 아니라는 것이 양보 타협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에게 소명을 받고 신학, 품성, 영성 등에서 충분한 자격을 갖춘 자여야 함은 회중이 선택할 때도 당연히 포기되어선 안 되는 진리입니다.

10/13/2006

김문수

2006.10.14 08:09:24
*.75.16.68

아멘!!

순태 형님의 오야붕과 똘마니의 비유의 글을읽고
한참 웃었습니다!!
역시 순태형님에게는 뭔가 특별한것이 있었습니다. ㅋㅋㅋ 샬롬!!

정순태

2006.10.14 14:29:24
*.75.152.60

귀가 화~~~아~~~악~~~ 뚫리는 기분입니다!!!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목사님의 설명은, 제 견해(아직은 미공개된)와 거의 대부분 일치되기에 더욱 기쁩니다!

몇 가지 짚어보고 싶으나 길어질 것 같아, 하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구약 제사장의 세습과 관련된 견해입니다. 목사님의 설명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즉, 아론을 포함한 레위지파에게 세습되었던 제사장의 사명은 이스라엘 민족의 장자권과 관련이 됩니다.

잘 아시다시피, 출애굽 시발점인 유월절의 결정적 촉매는 장자의 죽음입니다. 인간과 짐승의 장자(초태생)는 모두 죽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장자는 한 명도 죽지 않았습니다(아멘!).

이 사건의 영적 의미는 여러 가지이겠으나 그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주권 내지 소유권”입니다. 우주만물이 모두 하나님의 소유이지만, 특별히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택하셨고, 그 중에서도 장자를 더 특별히 ‘하나님의 소유’라고 선포하셨습니다(민8:17).

그러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12지파의 모든 장자들을 레위지파로 대치시키셨습니다(민3:41). 즉, 레위지파는 장자의 임무를 대신 수행하도록 명령받았습니다(민8:18).

결국, 레위(아론족속 포함)의 제사장 임무는 장자권의 대행임을 알 수 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해, 장자 대신 제사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레위지파의 제사장 세습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장자권은 신약에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모든 율법의 요구(하나님의 뜻)를 완수하시고 영원한 장자의 임무를 완결하셨기 때문입니다(‘십자가 죽으심=영단번의 제사’입니다. 더 이상의 제사는 효력이 없습니다! 아멘!!!). 구약의 제사가 종결되고 신약의 예배가 시작된 근거인 것입니다.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이것입니다. 장자권은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이고, 제사장도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지당하게도, 구약의 모든 예표는 예수님께 적용되어야 합니다. 성경의 모든 것은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약의 증거는 단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열매요 맏아들이시며 대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경의 선포의 의미가, 예수님이 아니면 하나님께로 나아 갈 방법이 없다는 뜻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나머지 성도들의 지위는 어찌 될까요? 목사와 장로와 집사들의 위상은요?

모두 형제입니다(마23:8). 이것을 주님께서는 포도나무의 비유로 다시 설명해 주셨고, 사도 바울께서는 몸의 지체의 비유로 보충해 주셨던 것입니다.

결국 이것입니다. 처음부터 계시되었던 장자권은 예수님을 통해 완성되었으며, 나머지 성도들은 모두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할 형제의 지위인 것이지요.

현대교회 목사의 직무가 구약 제사장과도 연계되어 있다는 주장은 심히 자의적이고 욕심에 사로잡힌 자들의 오해일 뿐입니다.

목사세습은 부끄러운 짓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주님을 모르는 가운데에서도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는다는 자존심을 지니고 살았습니다(李下不整冠 瓜田不納履).
그런데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백성들이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인 줄도 모르고 행한다면 심히 유감스럽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목사세습은 ‘아닌 현상’이므로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좋은 질문을 주신 형제님과 성경적인 답변을 해주신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샬롬!!!

운영자

2006.10.14 17:04:19
*.104.226.66

정순태 집사님 맞습니다. 제가 구약 제사장 직분에 대해 집사님과 동일한 의미로 장자권을 예표하는 내용도 쓰다가 너무 길어질 것 같고 또 세습에 대한 논쟁에만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 빼버렸습니다. 역시 예리한 집사님이 감사하게도 저보다 더 설명을 잘하셔서 보충해주셨군요.

집사님 같은 분이라면 충분히 회중을 성경적으로 잘 이끌어 갈 수 있는데 왜 목회 세습이 필요하며
꼭 제도적인 기독교 체제를 따라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평신도들이 더 많이 깨일 수 있도록 목회자들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정확하게 가르쳐야 할 줄 믿습니다. 샬롬!

허경조

2006.10.17 12:15:04
*.80.180.77

목사님 말씀과 정순태집사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태광

2011.03.20 15:34:32
*.32.182.220

제 개인적인 생각도 세습은 반대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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