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자들은 믿음의 정확한 본질과 내용은 알지 못한 채 믿음으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는 믿음 만능 주의 신앙에 너무 젖어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도 신자 쪽에서 어떻게 잘 믿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더 받아 낼 수 있을 것인가에만 초점을 두고 읽습니다. 하나님 당신을 탐구해 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직 하나님의 하나님 다우심을 계시해 놓은 책입니다. 또 그 계시는 골고다 언덕에서 궁극적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성경 말씀을 전통적인 시각과는 다르게 접근하되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통해 증거 하고자 합니다.

기 안 죽이고 아이를 키우려면? (엡6:4)

조회 수 1792 추천 수 96 2004.12.28 14:32:22

12/26/200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부전자전의 속임수

흔히 기독교를 Paradox(역설)의 종교라고 한다. 사람들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상식과는 반대되거나 훨씬 뛰어넘는 진리가 많기 때문이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20:27), 또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마19:30) 등이 그런 가르침에 해당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을 때는 사탄에게 진 것처럼 보였지만 부활하셔서 완전한 승리를 거둠으로써 그 역설의 절정을 이루었다.  

본문도 그런 역설적인 가르침 중의 하나다. 부모들 생각에는 아이들이 부모를 화나게 하는 일이 더 많다. 그런데도 부모더러 아이를 화나게 하지 말라고 한다. 부모 입장에선 아이가 부모 말을 잘 안 듣거나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바르게 고치려고 훈계한 것이지 아이를 화나게 하려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러나 세상에 아이가 잘못하지 않는데 야단치는 부모는 없다. 알코올 중독자나 성격 파탄자가 아닌 다음에는 말이다.

부모 자식간은 세상의 어떤 인간 관계와도 그 성격이 다르다. 이해타산, 자존심, 사기, 조종, 거짓 등이 단 한치도 개입할 수 없다. 누가 잘못했고 또 누가 누구를 화나게 했는가 비교해서 따진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아직도 연약하고 죄의 본성이 남아 있어 부모 자식간에도 서로가 서로에게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상처를 주고 받으며 분노하는 일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본문의 뜻이 아이들을 절대 야단치지 말고 끝까지 주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참아라는 것이 아니다. ‘교양’이라고 번역된 원어의 뜻도 훈련이나 체벌이 동반된 교정을 말한다. 또 ‘훈계’는 말로 하는 가르침이다. 부모는 자식이 잘못하면 야단쳐야 하고 필요하다면 체벌도 가해야 한다.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13:24)고 했다. 초달을 하지 않으면 자식을 제대로 된 인격자로 성장 시키지 못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자식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 장래를 염려한다면 엄격하게 야단쳐야 한다.

그러나 자식의 입장에선 야단을 맞고도 기분이 좋고 화를 내지 않을 자는 없다. 사람이란 아이나 어른이나 일단 남에게 야단 맞으면 진정으로 뉘우치고 잘못을 빌기 보다 화부터 나게 마련이다. 그렇지 않은 자는 바보 뿐인데 바보 자식을 야단치는 부모라면 그도 바보다. 결국 아무리 선한 의도의 야단이라도 실제로는 아이로선 화나게 되는데 성경은 지금 분노케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모가 가장 먼저 기억할 것은 이것이다. 서로 분노케 하더라도 어느 쪽이 더 큰 상처를 받는가를 잘 알아라는 것이다. 부모는 어른으로 이미 인생관과 가치관이 형성되어 있고 완전히는 아니라도 상당 부분 사리를 분별하고 감정을 절제할 수 있다. 아이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잘잘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감수성이 예민하여 조그만 일에도 상처를 받기 쉽다.

골로새서 3:21에서는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하지 말찌니 낙심할까 함이라”고 아이들이 상처 받지 않도록 하라고 분명하게 지적해 놓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인격적 결함이 있거나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자들은 거의 전부가 어렸을 때 부모에게서 큰 상처를 받은 것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나아가 자녀는 부모로부터 인격의 형성과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와 가치관 등 모든 것을 배우며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부전자전이란 말 대로 천성만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도 모든 부분에서 부모 흉내를 내게 된다. 어떤 사람이 미국으로 이민 와서 가족들과 함께 놀이 공원에 갔다. 영어가 서툴러 아이더러 입장권을 사라고 했다. 아이가 학생표 2장과 시니어 디스카운트 표 2장을 사 왔다. 그 부모가 아니 우리는 이제 나이 겨우 50이 넘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표를 사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한국에 있을 때 아빠가 국민학교 다니는 나를 데리고 어린이 대공원에 가서 유치원생 표를 샀지 않느냐 나도 그렇게 한 것 뿐인데 왜 그래?”라고 반문했다.

기 안 죽이고 키우려면?

자녀 교육에 대한 열성은 한국 부모들이 세계 최고다. 반면에 죄송하지만 가장 엉터리로 교육하는 것도 세계 최고인 것 같다. 오직 출세해서 돈 많이 버는 사람으로 키운다. 출세와 돈 자체가 나쁜 것은 결코 아니다. 자녀 교육의 궁극적 목적을 거기에 둔 것이 문제다.

한국 부모들이 이전에는 자녀의 I.Q.(Intelligence Quotient 지능지수)에 신경을 가장 많이 썼다. 머리 좋아지도록 꿀이나 계란 뿐 아니라 약도 사 먹였다. 공부가 출세와 돈 버는 것과 정비례하는 사회라 그랬다.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자나깨나 듣는 소리가 공부, 공부, 공부였다.

근래에 와도 거의 형편은 바뀌지 않았지만 부모의 관심을 끄는 새로운 것이 등장했다. 운동선수나 연예인들이 더 돈을 잘 벌고 공부만 잘한 자는 늘 푼수 없이 꽁생원이 되거나 남의 밑에서 참모 역할만 하게 된다는 것을 부모들이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공부 잘한다고 큰 인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이 놀아 본 아이들이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이끌고 줄도 잘 서 승진이 빠르게 된 것이다. 그래서 E. Q.(Emotion Quotient 감성지수)를 중요시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경향이 너무 지나쳐서 아이는 절대 기를 죽이면 안 된다는 식으로 이상하게 변질되었다. 무조건 아이가 하자는 대로 다 해준다. 그 결과가 얼마나 나쁜지 쉽게 알 수 있는 예로 식당에 가보면 된다. 고급 식당에서 남이야 분위기 잡고 식사 하는데 방해가 되든 말든 아이들이 정신 없이 뛰어 다니는데도 그 부모는 전혀 제재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요즘 아이들은 기가 너무 살아 부모가 아무리 잘해 줘도 자기 마음에 조금만 안 들면 도리어 부모에게 물건을 집어 던지며 신경질 부리고 분노를 터뜨려도 오히려 부모가 쩔쩔 맨다.

아이들의 E. Q.를 높인다는 것은 감정이 풍부한 사람으로 키운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선 아이 스스로 온갖 감정을 다 느끼게 해야 한다. 힘들고 슬프고 화나는 일도 겪어 보아야 한다. 또 기를 안 죽인다는 것은 담대한 사람으로 키운다는 뜻이다. 담대한 자란 자신감 있게 어떤 일을 만나도 당당하게 처신할 수 있는 자다. 인생을 살다 보면 그 어떤 일에는 당연히 고달프고 슬프고 화나는 일도 포함된다. 그럼에도 기 안 죽인다는 것을 신나고 재미 있는 기분을 365일 유지 시켜주어야 한다고 착각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신나지 않으면 못 참는 아이로 키우겠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 젊은 세대들은 심심한 것을 가장 못 참는다. 그들에게는 심심한 것은 무조건 악이며 심심치 않고 화끈한 것은 무엇이든 선으로 바뀐 지 오래되었다. 그들이 최고로 좋아하는 단어가 주로 ‘cool’ ‘awesome’이다. 한국말 뉴앙스로 따지자면 한 마디로 ‘튄다’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 반드시 어딘가 특별해야 하고 신기해야 된다. 일상적이고 남들 다 하는 것은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의 삶에서 반드시 깨트려야 할 유일한 대적은 심심한 것이다.

많이 울어 본 사람만이 남의 울음에 진정으로 동참할 수 있다. 또 참 기쁨을 느껴 본 자만이 남의 기쁨에 시기 대신 축하할 줄 아는 자가 된다. 말하자면 어려서부터 온갖 어려움을 겪어 본 자라야 사촌이 논을 사도 배가 아프지 않고 또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  자질이 그 속에 심겨지고 자라게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I.Q. 와  E.Q 에만 신경 쓰지만 얼마 안가 제가 만든 말이지만 W. Q.(Will Quotient 의지 지수)를 더 중요시 하게 될 것이다. 출세하기 위해선 공부 잘하고 감정이 풍부한 것도 다 좋은데 결국은 시종일관 한 우물을 파야만 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일에 전문가가 되어 끝까지 버티는 자가 되지 않으면 요즘처럼 생존 경쟁이 극심한 사회에선 견뎌내기조차 힘들어진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조금씩 나타나지만 조만간 Military School 같은 스파르타식 교육이 틀림 없이 다시 인기를 끌 것이다.

의지력 지수(W.Q.)는 제가 만든 말이지만 이미 이에 관해 언급한 전문가가 있었다. 미국의 리더십 연구가인 폴 스토츠가 리더가 되려면 말하자면 출세하려면 역경을 잘 이겨내는 자질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고 그것을 역경 지수(Adversity Quotient)라고 표현했었다.  

어떤 지수가 가장 중요한가?

그럼 이 지능, 감성, 의지력 세 가지 지수 중에 성경은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했으니 E.Q.를 가장 중요시 해야 하는가? 성경은 그 셋 다 중요하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이거나 가장 중요하다고 한 적은 없다.

본문에서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가르치라고 했다. 오직(Only)이란 말은 최고(the best)나 가장 중요한(the most important) 것과는 다르다. 그것 하나만으로 충분하고 다른 것은 필요 없다는 뜻이다. 본문에선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을 대신하는 ‘주의 교양과 훈계’를 유별나게 강조한 용법으로 쓰였지만 결과적으론 같은 뜻이 된다.

그렇다면 과연 주의 교양과 훈계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 짓은 하나님이 싫어하니까 하지 마! 나도 기도할 테니까 너도 기도해! 성경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몇 번 읽고 반성문 써!” 등의 야단을 치며 아이를 붙들고 성경을 읽어주고 기도해야 하는가? 물론 그렇게 하는 것도 나쁠 것은 없지만 자칫 잘못하면 아이에게 또 다른 지수인 종교 지수(Religion Quotient: R. Q.)만 높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기독교적인 용어와 색채와 형태를 많이 띈다고 해서 다 주의 교양과 훈계는 아니다.

‘오직’이라고 하는 말 뜻 그대로 I.Q.와  E.Q.와  W.Q.를 높인다고 자녀를 잘 키울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부터 가장 먼저 없애야 한다. 아이를 잘 키우려면 아이의 내면의 구조부터 잘 알아야 한다. 만약 아이의 내면이 지정의(知情意)로만 구성되어 있다면 지정의적 능력을 높이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지정의가 아닌 다른 부분이 인간 안에 있고 또 그 부분이 더 중요한데도 그것을 등한시 하면 아무리 다른 것을 열심히 가꾸어보아야 헛수고일 뿐이다.

인간의 내면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두 말할 것 없이 영(靈)이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지정의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영이 따로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말하자면 자기의 자녀가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할 뿐 아니라 전부다.  

사람들은 흔히 “내 마음 나도 몰라’라고 말한다. 무슨 뜻인가? 인간에게 자기가 잘 알지도 못하고 제대로 통제도 되지 않는 자기 속의 또 다른 자기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하는 말을 언뜻 들었을 때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정상적인 부모로선 자녀를 노엽게 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지만 아이가 노엽게 되고 또 반대로 정상적인 아이치고 부모를 의도적으로 화나게 하려고 하는 적이 없는데도 부모는 화를 내게 된다. 즉 분노란 지정의만으로는 제대로 통제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지정의로 통제 할 수 없고 그것을 넘어선 영역인 영이 존재하며 또 그것이 지정의보다 더 우선이다. 따라서 지정의를 제대로 통제하고 성숙 발전시키려면 영이 바로 서 있어야 한다. 인간은 영적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육신(Body + Soul)을 창조하신 후에 영(Spirit)을 불어 넣어 주셔서 살아 있는 영적 존재(Living Soul)로 바꾸셨다. 인간에게 하나님의 영이 사라지면 육신은 생물학적으로는 살아 있지만 그 영이 죽은 존재(Dead Soul)가 되어 버린다. 원죄 하에 있는 모든 인간의 상태다. 신자는 자녀를 그런 상태에 두어선 안 된다. 가장 먼저 자기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또 항상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게 공급되어 그 지정의적 능력이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하게 작동되는 Living Soul로 키워야 한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키워야 하는가? 찰스 스펄전 목사가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은 피곤한 육체를 누일 의자와 침대가 없는 가정을 불쌍히 여긴다. 그러나 가정에 제단이 없고 가정에 기도가 없는 집이 가장 불쌍하다.” 당장에 매일 가정 예배를 보며 키워야지라고 섣불리 판단해선 안 된다.

이 말의 근본적인 뜻은 대조적인 두 가정이 있는데 어느 쪽이 더 불쌍한지 분명히 해야 한다는 데 있다. 현실적으로 부족한 것과 영적으로 부족한 가정 둘 중에 후자가 훨씬 더 불쌍하다는 것이다. 자녀 양육에 적용시키면 자기 아이가 일류대학을 가지 못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을 못하고, 안정된 수입을 벌지 못하고, 병으로 아픈 것을 불쌍히 여길 것인가? 아니면 아이가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고, 그 분과 기도로서 매일 인격적 교제를 하지 않고, 성경 말씀으로 영혼을 살찌우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아  세상과 사람 앞에 당당하게 서지 못하는 것을 더 불쌍히 여길 것인가? 부모부터 먼저 확실하게 해 두고 또 그렇게 사는 본을 자녀들 앞에 보이라는 것이다.

자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부모가 먼저 어떤 사람으로 변화 되며 또 어떻게 살 것인가를 확정 짓는 것이 우선이다. 환난과 고통 중에도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믿음 가운데서 평강과 자유함과 소망을 잃지 않아야 한다. 아무리 세상에서 현실적으로 뒤쳐진 것 같아도 오히려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찾아가 위로하고 도우며 기도해주어야 한다. 그 모든 섬김이 종교적 의무감이나 도덕적 책임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진짜 신나고 재미있고 기뻐야 한다. 그런 섬김이 완전히 몸에 익은 생활 습관(Life Style)처럼 아주 일상적인 삶 자체가 되어 있는 모습을 자녀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자녀도 어려서부터 자기 부모를 흉내내게 해야 한다. 스스로 기도하여 응답 받는 체험을 하도록 하고, 말씀을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야 하고, 주위의 어려운 친구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얼마나 보람찬지 알게 해야 한다. 꼭 아이들을 고아원을 찾아가 위문하도록 할 필요까지는 없다. 아이들도 영적인 존재라 부모가 하는 일만 보아도 그 일이 얼마나 선하고 거룩한지 아니면 악하고 추한지 깨닫는다. 아이들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일을 하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자신들의 영혼이 충만해짐을 누가 안 가르쳐도 그들 스스로 알 수 있다.    

마이클 조단이 되고 싶어!

인간으로서 나아가 신자로서 이 땅의 짧은 삶을 정말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야 할 가장 큰 목적이자 첫째 가는 소명은 무엇인가? 웨스트민스터 요리 문답 첫째 항목 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일년 365일 내내 기도하며 찬양하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현실의 삶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야 할 곳이 바로 신자의 자녀다.

신자는 자기 자녀들을 하나님의 ‘생령’(Living Soul)으로 자라게 하고 또 그 자녀도 커서 자기 자녀를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이삭의 하나님이 되게 하고 이삭의 하나님 또한 야곱의 하나님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나 자신에게서 시작해 가장 가까운 곳으로 번져 나가야 하고 또 대대로 이어져 내려가게 해야 한다.

미국 흑인 아이들의 가장 큰 꿈은 마이클 조단 같이 되고 싶은 것이다. 인간으로서 이땅의 삶에서 가장 큰 성공을 이루는 것은 바로 자기 자녀들이 자신을 닮아 아빠나 엄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듣고 또 그렇게 따라 하게 만드는 것이다. 신자로서 성공은 거기에서 하나 더 나아가 아이들이 자기 부모의 믿음을 그대로 이어 받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신자는 자기 자녀들 앞에 하나님 대신의 모습으로 서 있어야 한다. 특별히 아버지가 그렇게 해야 한다. 엄마의 영적인 역할을 과소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가정 안에 분명한 영적인 권위와 질서가 있어야 하고 하나님 앞에 그 가정을 대표 하는 자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아버지가 무릎이 닳도록 기도해야 하고 성경의 책장이 헤어지도록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한다. 아버지부터 자신 속에 성령으로 충만케 채워져 자신의 현실적인 지정의적 실력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으로 자녀를 교양하고 훈계해야 한다. 신령하고 거룩하고 선한 영향력을 자녀의 영혼에 끼쳐서 그들 또한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진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리더스 다이제스트 잡지에 아주 오래 전에 미국의 목사가 성도로부터 가장 자주 받는 질문 열 가지가 실린 적이 있다. 그 중에 세 번째가 부모가 가진 신앙을 어떻게 자녀에게 물려 줄 것인가 였다. 미국의 신자 부모가 그런 딜레마에 빠진 이유는 카토릭 신자였던 케네디 대통령이 1963년에 모든 학교에서 종교 교육을 제외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그가 학교에서 기도나 하나님에 대해 언급을 할 수 없도록 한 이후 모든 사회적 문화적 풍조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조차 잘못된 일인 양 치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부모들의 신앙이 삶 자체가 되어 있지 못하고 습관적 의무적인 종교 생활만 하기 때문이다. 교회에 출석은 하지만  출세하고 돈 버는 데만 모든 삶의 목적을 두고 있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아이들도 영적인 존재라 자기들 부모가 가진 신앙이 얼마나 엉터리인 줄 금방 알기 때문에 그것을 물려받고 싶을 리가 없다. 정말 자기 부모가 사는 삶이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은총과 평강이 넘친다는 것을 확인한다면 따라 하지 않을 자녀는 없다.

영적인 존재인 인간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세상에서 두 가지 뿐이다. 하나님과 사탄이다. 하나님의 영이 능력을 발휘 하는 곳에서는 어떤 영혼이라도 거룩하고 선하고 아름답게 변화될 수 밖에 없으며 어떤 악하고 더럽고 추한 세력이라도 절대 훼방을 놓지 못한다. 반면에 하나님 영의 공급이 중단되어 사탄의 힘이 미치는 곳에는 어떤 영혼도 죄악과 흑암과 죽음에 매이고 묶이지 않는 자 또한 없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아무 말 없이 돌아 가신 이유가 무엇인가? 인간은 말로도 매로도 그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를 지으신 바로 그 분이 더 잘 알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영만이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로 바꿀 수 있다. 인간의 지정의로 보고 듣고 인식하는 범위를 넘어선 인간 속의 인간 - 실체로서의 인간에게 당신의 영을 부어 주어 참 인간으로 바꿔주시기 위해 죽으셨다.        

자녀는 말로 훈계하고 매로 초달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어느 때라도 자녀를 분노케 하지 않으려고 단지 E.Q.만 신경 써선 안 된다. 아이도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부모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서 야단치지 않으면 자녀는 자연히 분노하고 반항하게 된다. 그 훈계와 야단 속에 부모의 진정한 사랑이 담겼는지 같은 죄인 된 인간으로서 자존심이나 욕심이 앞섰는지는 부모는 거의 모르고 지나가지만 아이는 단번에 알아 차린다.

신자 부모는 자녀를 양육할 때에 항상 자기 아이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적 후손으로 대해야 한다. 그 분께서 태초부터 그 아이를 사랑하셔서 영원하고도 신비한 계획 가운데에 자신들에게 잠시 어른이 되는 동안 맡겨 준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 바로 그렇게 하기 위해서 불신자가 아닌 신자 가정에  태어나게 하고 부모부터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해 주신 것이다.

아이들을 단지 자신들의 생물학적인 자녀로 그치게 해선 안 된다. 하나님의 큰 일꾼으로 쓰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자기 생명까지 바꾼 천하 보다 귀한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그 자녀를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나라가 더 크고 영원히 확장되기를 우리가 현실적이든 영적이든 우리 자녀에게 바라는 소원보다 더 강하고도 열정적으로 원하고 계신다. 신자의 자녀는 더 이상 자신들의 자녀가 아니다. 하나님의 유업을 이어 받을 하나님의 자녀일 뿐이다. 가장 먼저 그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편만하게 증거 되고 펼쳐질 수 있도록 40년 50년 후를 바라보며 기도해야 한다. 그저 대학교, 배우자, 직장, 건강만 붙들고 기도하는 것은 불신자도 다 하는 것이다.  

지능(I.Q.), 감성(E.Q.), 의지(W.Q.), 역경(A.Q.), 종교(R.Q.) 지수 다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 만으로 자녀를 양육해선 세상에서 출세하고 돈은 벌 수 있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성도들로부터 존경받는 직분자로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거룩한 자녀는 결코 되지 못한다. 신자는 자녀를 오직 영성 지수(Spirit Quotient)로 키워야 한다.

부모들이 자꾸 아이를 어떻게 하면 잘 키우고 기를 안 죽이는가 그 방법에만 신경을 쓴다. 가장 먼저 아이를 어떤 사람으로 키울 것인지 최종 목적을  부모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세상 사람의 마음에 합한 자로 부모 욕심대로 뜯어 고칠 것인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하나님 대신에 맡아 키울 것인지 그것부터 정하면 방법은 자연히 자동적으로 정해진다. 세상에서 출세 시키려면 S.Q를 빼고 나머지 모든 지수를 높이는 세상적 방법을 전부 동원하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키우려면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 즉 S.Q만 올려 주면 된다.

그리고 그 방법도 아주 간단하다. 오늘 헌아례 했던 바로 그 헌신과 결단으로 아이의 장래를 주님께 완전히 맡기면 된다. 부모는 오직 아이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달라는 기도부터 간절히 하면 된다. 어떤 대학, 직장, 배우자, 건강을 갖게 되더라도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 홀로 영광 받으시라는 진정한 헌아가 있으면 된다. 나아가 부모도 또한 하나님께 완전히 바쳐진 삶을 살고 있다면 교양과 훈계는 주님이 성령님을 통해 직접 그 아이를 야단치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자신의 큰 일꾼으로 키워주신다.    


김재원

2007.05.05 18:03:12
*.232.241.224

"기 안죽이고 아이를 키우려면" 너무도 좋은 설교입니다. 은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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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마음의 쉼을 얻는 세 가지 길 (마11:28-30) [2] 운영자 2005-01-18 2689
92 주님이 십자가에서 말이 없으셨던 진짜 이유(마11:28-30) [1] 운영자 2005-01-11 1987
91 벤허가 골고다 언덕으로 간 까닭은? (마11:28-30) [3] 운영자 2005-01-04 2938
90 빠삐용이 탈출한 진짜 이유(엡5:16,17) [1] 운영자 2005-01-03 1728
» 기 안 죽이고 아이를 키우려면? (엡6:4) [1] 운영자 2004-12-28 1792
88 기생집에서도 하나님을 찾는 인생들(요15:1-5) [2] 운영자 2004-12-21 1845
87 한국인의 세가지 종교적 유전인자 (마11:25-27) [1] 운영자 2004-12-14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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