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는 먹음직하지 않았다.

조회 수 543 추천 수 17 2009.11.12 04:59:18
선악과는 먹음직하지 않았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3:6)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짓게 되는 것을 불가항력적(不可抗力的)인 것으로 오해하는 신자가 많습니다. 마치 사단이 꼼짝 못하도록 수족을 다 묶은 뒤 자기 영혼을 강력한 흑암의 권세로 마비시켰다는 식입니다. 자기 육신과 믿음이 너무 연약한데다 아직 남아 있는 죄성과 옛날 습관이 작동되어 자기와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표면적 과정과 결과만 살펴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또 솔직히 때때로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랬다면 한두 번에 그쳐야 하고 철저한 회개가, 그것도 도덕적 종교적 의무감이 아닌 진심에서 기꺼이 해야 합니다. 불가항력적이었다는 의미는 본인의 의도와 의지와는 정반대로 끌려갔다는, 다른 말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주 싫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가슴을 치는 회개가 따라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것이 우리 대부분의 솔직한 모습 아닙니까? 그럼 자기 잘못이 아니라 죄악과 사단에게 귀책사유가 있으니 가만히 있어도 되는 것입니까? 설령 그렇다 해도 죄가 진짜 혐오스러웠다면 다시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겠다는 다짐만은 최소한 해야 하지 않습니까?

유혹이란 단어가 함의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 뒤에 항상 뭔가 달콤하고 흥분되며 신나는 것이 대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무 조건 없이 손만 뻗치면 차지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나아가 그것을 취하고 난 후의 결과도 아주 유익하거나 재미있거나 행복해질 것 같습니다. 최고로 양보해도 자기에게 아무 피해를 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흔히 유혹이 너무 강렬해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었다고 변명합니다. 아닙니다. 유혹이 강해진 상태는 사실 이미 죄에 넘어간 것입니다. 죄와 반대되는 쪽을 얼마든지 택할 수 있었는데도 의식적으로 죄를 택한 것입니다. 바꿔 말해 유혹의 힘이 너무 강해 넘어진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유혹에 넘어간 후에 그 힘이 더 세어진 것입니다.  

이해하기 쉬운 예로 퇴근 후에 얼마든지 집으로 바로 갈 수 있는데도 직장 동료와 어울려 쓸 데 없이 흥청망청 돌아다니다 심하면 외박까지 하지 않습니까? 전자의 무료함을 일부러 외면하고 후자의 관능적 쾌락을 기꺼이 고른 것입니다. 이성적 분별력과 판단력이 마비가 되어 그런 선택을 한 것이 아닙니다. 술 먹기 전이라 문자 그대로 분명 맨 정신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선택한 후에 손발이 묶인 것이지 손발이 묶여서 끌려간 것이 아닙니다.

사단의 전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멸망으로 이끄는 길만 화려하고 풍성하게 포장 해 놓습니다. 생명으로 이끄는 길을 막거나 추하고 더러운 것으로 치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말하자면 신자 앞의 복수의 선택사항을 완전히 없애고 자기 쪽의 길만 남겨 두지 않습니다. 그럴 수 있는, 즉 불가항력적인 권세를 사단은 절대 갖지 못합니다. 올바른 길이 많이 있었는데도 오직 화려함과 풍성함에 반해서 정상적인 이성으로 나쁜 길을 선택한 것이 죄입니다.

인류 최초의 죄도 이브가 고의로 선악과를 따먹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 나무를 본즉”, 즉 모든 나무 중에 그 나무만 골라 주시했더니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여겨진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선악과를 따먹으려는 의사를 품었기에 언제든 다른 모든 열매를 먹을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선하고 풍성한 은혜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평소 선악과의 모습은 틀림없이 먹음직, 보암직, 탐스럽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식욕을 전혀 동하게 만들지 않는 완전히 볼품없는 모양이었을 것입니다. 동산 중앙에 아주 먹음직한 열매가 달려 있었다면 얼마나 큰 유혹이며 심지어 고문이 되었겠습니까? 사단의 유혹이 있기 전에 벌써 인간 스스로 뭔가 일을 저질렀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충분히 지킬 수 있을 만한 계명을 주시지 절대로 억지로 쥐어짜듯이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선악과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던 모습과 동일했을 것입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53:2) 어쩌면 먹으면 정말 죽을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외양이 형편없었을 것입니다.

이브로선 하나님이 마련해 주신 낙원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었습니다. 단 하나 모든 것을 다 베푸신 하나님을 잊지 말라는 것만 빼고는 말입니다. 나아가 그 사실을 항상 잊지 않도록 동산 중앙에 제일 볼품없는 열매를 두었습니다. “그렇지! 하나님은 가장 볼품없는 저 열매만 먹지 말고 다른 모든 좋은 것은 다 해도 된다고 하셨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라는 생각이 자연적으로 들게 말입니다. 항상 당신의 은혜 가운데 거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단이 너무나 교묘하게도 이브에게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선악과가 왜 저렇게 볼품이 없는지 아느냐? 그 속에 네가 절대 알 수 없는 비밀이 숨겨져 있지. 네가 저것을 먹는 순간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을 하나님이 염려하고 시기하여서 먹지 못하도록 일부러 더 맛없게 만들어 놓은 것이야. 어리석게 그 말에 속고 있느냐? 이 바보야!” 사기꾼인 사단이 하나님이 그렇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완벽하게 순수하고 진실하기에 거짓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모든 피조물과는 차원이 다른 지정의를 갖추었습니다. 사물의 외양에 따라 본성이 좌우되지 않고 오히려 본성에 따라 사물의 외양과 무관하게 행동할 수 있는, 즉 자유의지를 가진 유일한 존재입니다. 이브는 풍성한 하나님 은혜 대신 사단의 새빨간 거짓말 한 마디를 택했습니다. 그러자 가장 볼품없던 선악과가 가장, 아니 유일하게 먹음직 보암직하게 변했습니다. 사단의 꾐에 동조해 하나님이 소망했던 바와 반대로 자유의지를 작동한 것입니다.

그럼 궁극적으로 죄는 어디서부터 발단한 것입니까? 사단입니까? 이브입니까? 이브가 사단을 선택했기 때문입니까? 다 맞지만 사실은 그 전에 이브가 하나님의 은혜를 고의로 잊기로  선택한 데서부터입니다. 하나님을 외면, 망각, 상실하면 심지어 결핍되어도 그 자리가 절대 그런 상태로 계속 남아 있지 않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대적 사단이 그 빈자리를 채우려 순식간에 파고듭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립 회색 지대는 인간에게는 결코 없습니다.

그렇다면 신자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죄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도출되었습니다. 영적인 판단력과 분별력을 키우는 것입니까? 기도해서 죄를 이길 힘을 달라고 해야 합니까? 성령님이 대신해서 사단을 막아서 이겨주길 간구해야 합니까?

무슨 문제든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기 위해선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해소해야 합니다. 죄가 하나님을 외면한 자리를 사단이 대신 차지한 것이라면 간단하게 하나님을 다시 찾으면 됩니다. 선을 버리고 악으로 갔다면 앞뒤 가릴 것 없이 악을 버리고 무조건 선으로 되돌아서야 합니다. 죄가 주는 관능적 쾌락 대신에 선이 주는 풍성함을 선택해야 합니다.  

예컨대 퇴근 후 동료들과 술집에서 신나게 놀 수 있는 재미보다 아늑한 집에서 가족과 사랑을 나누고자 하는 소망을 먼저 키워야 합니다. 나아가 죄에 넘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선에만 모든 관심을 집중시켜야 합니다. 죄는 의도적으로 잊어버려야 합니다. 이브가 모든 것을 허락한 하나님의 은혜만 붙들고 있었다면 사단에게 결코 넘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단이 인간을 타락시키지 않습니다. 인간 스스로 죄악 쪽으로 간 것입니다. 사단은 단지 우리의 생각을 다른 것을 못 보게 죄 쪽으로 방향을 틀게 할 뿐입니다. 이미 방향이 틀어진 후에는 그 쪽이 너무나 좋아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판단력과 분별력을 훨씬 능가하는 사단이 온갖 술수, 치장, 가식으로 화력하게 장식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이상하게 그 일이 너무 좋아보여서 다른 일이 전혀 생각나지 않을 때가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악과는 볼품이 없지만 사단이 내미는 열매는 항상 아주 먹음직해 보입니다. 악을 줄여서 악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악은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악의 유혹이 너무 현란해 쉽게 버릴 수 없습니다. 인간의 의지와 무관한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만이 버릴 수 있게 해줍니다. 그 은혜를 받는 길은 인간 의지가 아니라 그분을 온전히 믿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에든 소망하고 자신의 형편과 상관없이 사랑하는 길뿐입니다.

10/10/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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