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애가 1:1-11 절기를 지키려 나아가는가? (3/13/2018)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1:1a)
유다 멸망의 비참한 상황을 애통해하는 이 애가는 히브리어의 알파벳 순서에 따라 각 연의 첫 글자를 배열하는 답관체 형식의 시(詩)다. 시란 자신의 체험에 대한 이성적 기록이 아닌 감성적 반응이다. 또 암송에 편하도록 그런 형식을 채택한 것이며 감정 표현을 위해 비유법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특별히 예루살렘을 여인으로 묘사하는 의인법도 사용되었다. 원래 시는 논리적 전개와는 거리가 멀지만 알파벳 순서를 맞추려니 더욱 그렇다. 순서에 따라 “슬프다!”라는 감탄사가 맨 처음 등장했고 시의 주제와도 너무 합당하다. 유대인들에겐 그런 묘사가 지금도 생생하게 실감될 것이나 오늘날의 이방인 독자로선 온갖 넋두리를 질서 없이 모아놓은 것처럼 여겨질 수 있으므로 나름 체계적으로 정리해가며 읽을 필요가 있다.
첫째 단락(1-4절)은 예루살렘 성이 최고의 위치에서 최악의 상태로 떨어졌음을 말하고 있다. 사람이 많다가 적막해졌고, 크던 자가 과부 같이 되었고, 공주가 강제 노동하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사로잡혀 갔으니 성은 더더욱 적막해졌다. 둘째 단락(5-7절)은 유다를 멸망시킨 원수들이 형통한다고 했다. 멸망의 원인은 유다의 죄가 많았던 때문이라고 한다. 형통하는 대적은 유다를 회개시킬 목적으로 하나님의 동원한 도구였다. 그런 도구에 불과한 자들이 스스로 교만해져 유다를 조롱까지 했다. 셋째 단락(8-11절)은 그 원수들의 죄악도 문제지만 그로 인해 유다는 놀랍도록 낮아졌음을 고백하고 너무나 큰 고난 가운데 구원해 달라고 간절히 호소하고 있다. 하루하루 생존만 걱정하는 처지에 빠졌으니 돌보아달라고 한다.
고대에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의해 멸망당하는 것은 상상 이상의 참혹한 결과를 부른다. 왕족과 귀족들은 갓난애까지 몰살,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건장한 남자들은 노예가 되거나 처참하게 처형, 모든 재물은 노략, 여인들은 강간 탈취 당한다. 한마디로 눈뜨고 볼 수 없는 지옥이다. 필설로 묘사가 불가능할 정도다. “주님!” 한 마디만 하고는 나머지 기도를 말로 이어갈 수 없을 정도로 힘들 때도 있다. 자신의 애통함 처참함 궁핍함을 마땅히 표현할 말이 없다. 애가의 첫 마디 “슬프다!”는 첫 알파벳이기도 하지만 바로 그런 차원인 셈이다.
우리로선 실감치 못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도 주목해야할 표현이 세 단락에 각기 나온다. 첫째 절기를 지키려 나아가는 사람이 없어 제사장이 탄식한다고 했다.(4절) 예루살렘이 존재해야 할 목적이 현실적 형통보다는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이라는 뜻이다. 둘째 대적들이 그의 멸망을 비웃는다고 한다.(7절) 육신적 고통보다 하나님도 모르는 대적에게 조롱당함으로 생기는 정신적 고통이 더 크다는 뜻이다. 셋째 그 원수들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간 것을 보았다고 탄식한다.(10절)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한 자들이 스스로 큰 체하며 하나님의 영광마저 짓밟았다는 뜻이다. 하루 생존하기도 힘들어 자기들 아이마저 죽여서 먹을 정도의 상황에서 애가의 저자(예레미야로 추정됨)는 유다백성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비뚤어졌음과 그분의 이름이 훼손당하는 것에 깊이 가슴 아파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주님만 불러놓고 기도가 안 나올 환난 때에 이런 묵상을 할 수 있는가? 그저 고통만 빨리 끝내달라는 떼만 쓰지 않는가? 그 고통이 사실은 이런 묵상조차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것도 모르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