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이 이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너희도 아는 바니 집주인이 만일 도적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눅12:35-40)
미국 캘리포니아 주 주민들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지진에 대비해 침대 밑에 신발과 회중전등을 두고 잡니다. 지진이 나면 집이 무너져 내려 깔릴지 모르기 때문에 무조건 밖으로 뛰쳐나가야 하는데 문제는 제일 먼저 전기가 나가고 유리창이 깨어진다는 것입니다. 혹시 한밤중에 지진이 일어나면 어둠을 밝혀야 하고 유리 조각이 널려 있는 바닥을 맨발로 갈 수 없으니까 바로 손이 닿는 곳에 손전등과 신발을 항상 놓아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을 마지막으로 심판하러 재림하시는 시기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 외에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마지막 심판을 마지막에 가서야 준비할 수는 없습니다. 또 재림에 대한 대비가 방학숙제처럼 일찍 당겨 다 해놓고 그 다음에는 안심하고 놀 수 있는 성질이 아닙니다. 매 순간을 준비해야 하며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중동 지방의 옷은 뜨거운 태양의 직사광선이나 사막의 모래바람 등을 피할 수 있도록 기다란 가운처럼 만들어져 있어서 행동하기에 불편합니다. 신속한 행동을 하기 위해선 겉옷을 조금 걷어 올린 후에 띠로 묶어야 합니다. 띠를 띤다는 표현은 일, 여행, 전쟁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 등불을 켜고 기다린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예의를 갖추어 손님을 맞을 차비를 했다는 것입니다.
도적이 언제 올지 알았으면 주인이 집을 뚫지 못하게 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언제 올지 모르니까 준비를 안 하고 있을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비유컨대 자동도난경보기는 밤새 켜있어야지 도적이 오는 시간을 미리 알아 그 시간에만 작동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신자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던 예수님의 재림을 맞을 준비를 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이 재림의 시기에 관해 아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5:3) 멸망이 홀연히 이르러 결단코 피하지 못한다고 하니까 아무도 그 때를 짐작조차 못한다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분명히 “잉태된 여자가 해산 고통이 이르듯이” 온다고 했습니다. 배가 불러 오면 진통이 언제 올 지만 모를 뿐 해산할 때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결단코 피하지 못한 자는 그런 계산을 하지 않고 평안하다, 안전하다면서 전혀 대비하지 않은 자입니다. 만삭이 되어오기에 해산 준비를 한 자는 충분히 피할 수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도 혼인집에 갔던 주인이 돌아 올 시간은 경험이 많은 종이라면 정확하게 몇 시 몇 분은 몰라도 대충 초저녁, 한밤, 새벽 중 언제쯤 올 것이라고 짐작은 할 수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신자가 마지막 때를 추측할 수 있는 힌트를 이곳저곳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선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마24:7,8)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하지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여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다”(딤후3:2-4)고 합니다.
결정적으로는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한다.”(살후2:3,4)고 합니다. 멸망의 아들 스스로는 절대 사단이라고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나님 성전에 앉아 큰 능력을 보이며 하나님보다 더 높다고 할 것입니다. 그 때는 어쩌면 많은 신자가 오히려 하나님의 사람인줄 알고 넘어갈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막상 신자가 재림에 대해 가장 문제가 되는 생각은 그 시기를 모른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시기를 명확히 하지 않은 이유는 미리 알면 어느 누구도 대비 하지 않을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사람들로 겁을 먹게 해서 당신께 경배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재림의 징조는 비록 나타내 보여도 정확한 시기는 아무도 모르게 오실 것입니다.
또 재림의 징조들은 주후 이천년 동안 끊임없이 있어왔습니다. 성경도 그런 불법의 비밀은 이미 활동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신자들은 타성에 젖고 무감각해져 재림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심지어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마저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컨대 반드시 재림이 있을 것이라는 확고한 인식이 드뭅니다.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한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벧후3:3,4) 재림이 없다고 하는 자가 나타날 때가 오히려 말세라고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말세가 없다고 아예 태평치고 있다면 그때야말로 쭉정이와 알곡을 가려낼 가장 좋은 시기 아니겠습니까?
종은 주인이 언제 올지 몰라도 반드시 온다는 사실은 한 치도 의심하지 않고 주인도 도적이 언제든 들어 올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잉태한 여자도 언제 진통이 올지는 몰라도 반드시 해산한다는 것은 압니다. 온다는 것을 확신해야 기다리는 법입니다. 오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든지, 오긴 와도 언제 올지 아예 관심이 없는 자는 대비하지 않는 법입니다.
테러와 전쟁과 기근과 자연 재앙이 겹친다고 당장 재림이 오지 않습니다. 말세의 시작일 뿐입니다. 히틀러 같은 악마가 세상을 지배할 때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이 모두 재림이 없다고 착각하고 평안할 때에 옵니다. 십자가에 드러난 인류 구속의 진리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할 때에 예수님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성경도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할”(벧후3:5) 때라고 분명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부인될 때에 인간들이 당신을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모습으로 홀연히 나타나실 것입니다. 당연히 재림을 부인하고 있던 자는 결단코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언제일지 전혀 모르는 마지막 때를 미리 혹은 마지막에 준비할 수는 없습니다. 매일 지진이 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안고 누워 자듯이 오늘이 바로 재림의 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매일을 마지막 날처럼 살지 않으면 막상 마지막 날이 닥쳐도 마지막인지 전혀 알지 못하며 가만히 앉아서 마지막을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생업을 포기하고 찬양과 기도로 지새야 합니까? 또는 항상 전도만 하고 있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재림을 “부러 잊으려 하지 않고 반드시 있다는 확신부터” 있어야 합니다. 현 세대가 하나님을 부인함으로써 너무나 잘못되어 가기에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바로 잡지 않으면 소망이 없다는 안타까움과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현세대가 큰 잘못이 없다고 여겨지면 다시 바로 잡을 일도 없고 재림이 구태여 필요하지도 않을 것 아닙니까?
다른 말로 재림을 확신하고 소망하는 자만이 하늘의 신령한 가치를 땅에 심으며 자신은 한 알의 썩는 밀알이 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습니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일신상의 안락과 풍요를 위해 재물, 권력, 명예만 쌓아가는 세상 사람의 생활 방식과는 정반대로 살 수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하나님을 아는 자답게 신령하고 초월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또 그렇게 사는 인생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지 드러내 보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보시기에 작금의 세태는 어떻습니까? 핵전쟁을 염려하는 학자들 모임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했고 이란이 적극 개발을 하고 있는 바람에 인류멸망의 시계를 다시 자정 직전까지 당겼다고 합니다. 지구온난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는 모습이 세계 곳곳에서 관찰되고 있습니다. 이제 아무 것도 죄라고 여기지 않을 정도로 도덕은 타락할 대로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다시 올 때가 되었습니까? 물론 모든 징조는 재림의 때가 목전에 다다랐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신자는 가장 먼저 교회 안에서부터 예수님의 십자가 진리가 부인되는지 유심히 살펴야 합니다. 작금 과연 십자가가 얼마나 확실하게 선포되고 있습니까? 한 마디로 여러분은 깨어 있습니까? 졸고 있습니까? 아예 누워자고 있습니까?
1/22/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