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큰 목사인가?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고후3:2,3)
현세대는 미국에서 시작된 실용주의적 사고에 너무 사로 잡혀 있습니다. 쉽게 말해 동기, 목적,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자연히 효율성이 개인이나 한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 중에 가장 큰 덕목이 되었습니다.
그런 사고가 심지어 교회 안에까지 침투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결과만 좋다면 세속적 인간적 방안을 얼마든지 동원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 예를 들자면 일일이 한이 없습니다. 그 결과도 오직 효율성의 잣대로만 선악 간을 판단합니다. 올바른 교회인지는 출석 교인 숫자와 건물의 위용만으로 결정됩니다. 명함에 붙어 다니는 학력, 경력, 공적직함이 화려할수록 또 설교도 사람들의 순간적 감흥을 많이 이끌어낼수록 큰 목사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에겐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고 열광(?)하는 천거서는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대신에 오직 복음을 전파한 열매, 즉 각 처에 세운 교회의 교인들이 자신의 천거서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올바른 사역자인지는 오직 그가 사역하고 있는 성도들이 복음 안에서 인생이 바뀌고 거룩하게 자라고 있는 모습으로만 판단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한다고 그가 밝힌 이유가 너무나 지당하지 않습니까? 일반 사회에서 통하는 천거서는 먹으로 돌비에 쓴 것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큰 업적을 세운 사람은 비석을 세워 기념하기에 그 돌비만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이었고 무슨 일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복음의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오직 육의 심비에 쓴 것이 천거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악과 사단과 사망에 묶여 있던 죄인들에게 참 복음을 순전하게 전하면 성령의 간섭으로 새 생명으로 거듭납니다. 그 죄인의 영혼을 차지하고 있던 흑암은 물러가고 하나님의 영이 좌정하여서 날마다 거룩하고도 의롭게 자라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요컨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들만 취급하는 세상일의 결과는 자연히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한 사회인의 자격과 능력 여부는 눈에 보이는 결과로 판단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도성은 가시적인 화려함과 풍성함으로 자랑합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눈에 안 보이고 귀에 안 들리는 영역에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공중 권세 잡은 사단에게서 단 한명이라도 더 구출해 내어 당신의 일에 쓰임 받게 하십니다. 그분의 나라는 한 죄인의 영혼이 얼마나 순수하고도 아름답게 바뀌었는지 또 그 변화된 영혼들끼리 모인 공동체에 당신의 온전하고도 거룩한 통치가 얼마나 강력하게 임했는지 만으로 자랑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어떤 교회와 사역자가 올바른지는 교회 안에서와 그에게서 느껴지는 눈에 안 보이는 분위기로 판단되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을 자비와 긍휼로 따뜻하고도 평안하게 품어 안아 주는 듯 한 느낌말입니다. 한 마디로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흘러나오는지 여부로만 판단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교회에 들어서면 예수님이 분명히 임재해 있는 것 같고 그 사역자를 만나면 예수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그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 교회와 목회자 안에 십자가 복음이 순전하고도 생생하게 역사하고 있어서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이 겉으로 드러나는 길 뿐입니다. 여러분의 교회와 목회자는 어떠하신지요? 진정으로 큰 교회와 큰 목회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10/17/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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