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같은 신자들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4:4)
과학자들이 튼튼한 연어를 골라 잡종교배를 시키고 호르몬도 주입해 물 밖에서도 살 수 있도록 변형시켰습니다. 그런데 마른 땅에서 사는 법을 익혔다 할지라도 혹시 물에 대한 은밀한 갈망이 남아 있을지 모르니 물에 젖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결심을 하게끔 만들었습니다.
어느 날 이 고기가 다리를 건너다 실수로 깊은 호수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하든 물에 젖지 않으려고 아가미를 벌리지 않고 지느러미도 몸에 붙이려 용을 썼습니다. 그러나 숨 쉬지 않고는 도저히 힘들어 지느러미를 흔들고 아가미도 벌려 보았더니 아주 편했습니다. 너무 기뻐서 마음껏 헤엄치고 다녔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인간의 구원을 상징하여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짐승과 새와 물고기를 만들고선 각기 땅과 하늘과 바다로 사는 곳을 정해 주었지만 인간은 정해주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품 안에서 당신의 생기를 받으며 거룩하게 살도록 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며 이 땅을 아름답게 가꾸어 공의와 사랑이 온전히 실현되어야 참 인간이 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이 인간을 죄악과 흑암 가운데서도 살 수 있도록 변형시켰고 아예 하나님에 대한 소원이 남아 있지 않도록 그 마음을 혼미케 했습니다. 단순히 하나님 쪽에 철조망을 친 것이 아니라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물론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도 살 수 있지만 제대로 살 수는 없습니다. 그 삶이 항상 갈급하고 공허합니다. 사단에게 조종당해 항상 이상한 형태의 삶, 즉 향방 없는 달음질과 허공을 치는 싸움만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 없이도, 아니 없어야 편히 살 수 있다고 고집해도 죽을 때가 되면 자기 인생이 너무나 덧없었음을 후회하지 않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흑암에서 헤매는 인간을 어느 날 성령의 바다에 빠트린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입니다.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신 것입니다. 물고기가 물을 만나듯이 영적 존재인 인간으로 성령 안에서 제대로 호흡하게 한 것입니다.
심지어 발 모습이 달린 물고기도 땅에선 불편하고 물을 만나야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래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형상대로 만든 인간도 성령의 인도대로 살지 않고는 절대 갈급함과 허망함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배제한 채 사는 것은 물고기가 뭍에 나온 꼴이요, 인간이 물속에서 호흡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예화에 등장하는 물고기는 틀림없이 아직 땅에서 살고 있는 동료 물고기를 만날 때마다 그렇게 힘들게 고생하지 말고 당장 물속에 뛰어들면 너무 편하다고 가장 먼저 알려줄 것입니다. 신자도 복음이 가리워 망해가는 자들마다 찾아가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비추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바다로 뛰어 들어와 너무나 기쁘고 신나는 삶을 함께 살자고 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너무나 많은 신자들이 교회 활동은 열심히 하지만 세상에선 불신자와 동일한 방식으로 삽니다. 사람들에게 성령에 따른 삶이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운지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 방식으로 살기 위해 모자라는 힘을 교회에서 보충 받으려고만 합니다. 물과 뭍 양쪽에서 다 살 수 있지만 물속이 더 편한 개구리 같은 신자입니다. 물고기가 물 밖에선 발버둥치는 것처럼 진정 거듭난 신자라면 세상에선 불편하게 마련입입니다. 혹시 아직도 세상 방식의 삶이 편하다면 사단에게 헤어나지 못했다는 반증일 뿐입니다.
10/29/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