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세상에 주는 메시지는?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고후3:2,3)
마하트마 간디는 크리스천은 아니었지만 이타적(利他的)인 삶을 산 표본으로 세계인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어떤 기자가 그에게 당신이 평생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느냐고 물었더니 “내 삶이 나의 메시지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영국으로부터 조국 인도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비폭력저항 운동을 주도하되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아픔에 동참하여 검소한 삶으로 일관했습니다. 그는 어떤 어려움과 핍박에 닥쳐도 일생을 바쳐 이루어야 할 목표를 향해 한걸음씩 전진했습니다. 말하자면 어느 누가 그의 삶을 보더라도 왜 그런 삶을 사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럼 신자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예배와 성경공부나 기도 등 교회의 각종 모임에 성실하게 참석해야 합니까? 이는 신자의 기본적 의무로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남들이 볼 때에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진 자라는 범주 이상으로는 평가하지 않습니다. 교회 활동 외에 평소 착하게 살면서 남들을 도와주어야 할까요? 이 또한 신자라면 응당해야 할 일일 뿐 아니라 불신자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간디가 대표적 예이지 않습니까? 예수 믿는 신자라서 그런지 더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밖에 인정하지 않습니다.
남들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내용이든 메시지를 전해 들으려면 반드시 그 인생에 분명한 목표가 있어서 그곳을 향해 진전해 나가는 모습과 그 열매를 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 간디가 왜 그렇게 사는지 누구나 알 수 있었지 않습니까? 마이크로 소프트 회장 빌게이츠의 삶을 보고도 그가 인생에서 추구하는 목표를 알아채지 못하는 바보는 없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이 신자의 삶을 보면서 “저 사람은 기독교인이구나.”라고 여길 정도로는 많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요컨대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미 기독교인이 되었지 않습니까? 신자로서 평생을 두고 추구해야 할 목표가 반드시 드러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것은 두말 할 것 없이 예수를 좇아 살면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강력하게 도래시키고 또 확장시키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 신자 혼자 거룩하게 바뀌는 것은 필요조건은 될 수 있어도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자로 인해 다른 사람이 거룩해져야 합니다. 또 거룩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것이라 그 다른 사람도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 아래 들어감으로써만, 그렇지 않고 거룩해질 방도도 사실 없음, 거룩해져야만 합니다.
다른 자를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인도하는 길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뿐입니다. 바울처럼 하나님의 영으로 다른 사람들의 심비에 십자가 은혜와 권능을 새겨주어야 합니다. 단순히 전도에 열심을 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참 전도는 또 다른 종교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예수를 따르는 자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또 그 일은 진정으로 예수를 따르는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신자가 속한 모든 공동체, 또 만나는 모든 사람과 사건 속에서 그 관계와 일을 주도하는 힘이 오직 예수님의 긍휼과 권세여야만 합니다. 신자의 가정에서부터 직장과 사회 모두를 견고하게 지탱하는 능력이 자기를 죽이며 남을 살리는 십자가뿐이어야 합니다. 신자가 가는 곳마다 행하는 일마다 예수님의 거룩한 빛이 비춰져야 합니다. 요컨대 기독교인끼리만 모여서 기독교적 업적을 쌓는 종교 왕국 대신에 예수를 좇는 제자들이 모여서 오직 십자가 사랑으로 섬기는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여야 합니다. 지금 다른 사람이 당신의 인생을 볼 때에 과연 어떤 메시지를 보고 듣고 읽을 수 있을까요?
10/19/2007
사랑으로 긍휼로 내가 받은 그 사랑으로 주님만 존귀케되는 삶이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