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를 변호함 5 - 십계명 돌판보다 거룩한 예수님
*** 마리아를 변호함 4 에서 이어짐.
마태기자가 의인으로 선언한 요셉,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너희 의가 바리새인보다 낫지 아니하면" 의 義, 및 노아, 다니엘, 욥의 義 이 모든 것에서 우리는 유태인들이 또는 레위기 신명기, 민수기 등에서 유태인들에게 요구하는 거룩과 성별의 수준이 어느 정도까지인지를 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셉과 마리아를 성행위 한 것으로 퍼뜨리고 모욕하는 한국 개신교인들의 그러한 발언인즉 바로 그들의 수준이 갖는 눈높이에서 요셉과 마리아를 대하기 때문이라 보여집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일상적 잣대로써 요셉과 마리아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어른의 일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은혜와 은총"만"을 강조하기 일쑤인 한국 개신교는 그리함으로써 기독교의 뿌리인 유태교가 강조하는 거룩과 경건을 잃어버리고 -- 그 쪽은 전부 예수님의 어깨에다 지워버리고 -- 홀홀하고 가벼운 몸으로 세상의 온갖 불의와 죄를 벗하다가 또는 세상 사람들의 룰을 그대로 따라 살다가 생각이 날 적에만 통회의 장소로 뛰어가 예수님께 자기 더러운 쓰레기를 죄 부어버리는 짓이나 거듭하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 사실, 저도 이 부류에서 크게 다르지 않음을 고백드립니다.)
유태교의 가장 큰 중심은 유일신 중심, 하나님 중심일 것이며,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소매로 가리고 건너뛰어 읽지 않을 정도로 거룩과 경건을 뚜렷이 성별하려 애쓰는 민족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 그는 가나안에 돌아와 거룩한 나무를 따로 정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신발을 벗어라. 네가 선 땅은 거룩한 땅이다 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갖고 내려온 돌판을 -- 처음 것은 이스라엘인들의 죄 때문에 깨어버리고 두 번 째 돌판 -- 그들의 왕조가 지속되는 동안 지성소 [지극히 거룩한 장소]인 성막과 성전의 가장 내밀한 중심에 두어두고 보존하였는데, -- 둘째 성막 [히9:3]-- 그 이유는 그 돌판이 하나님이 직접 쓰신 것이며 유태인들의 생활의 중심인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성막과 성전의 지성소 그 곳은 일반 제사장이 못 들어가며 대제사장이 그것도 일년에 단 한 차례 들어가게 되어 있으며 이를 어기고 함부로 들어가려던 아론의 두 아들은 급사한 전력이 있습니다. [레10장,16장]
레위기 16:2 에 따르면 그 이유로 지성소에 함부로 들어오면 사망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내리고 있습니다. 헌데, 함부로 들어가면 사망할 것이라는 경고가 붙은 지성소엔 사실 돌판, 하나님이 오래 전 직접 쓰셨다는, 글자의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 두 개가 있었을 뿐입니다.
요셉이 마리아와 성행위를 했다고 믿으시는 개신교인들은 십계명 돌판이 예수님의 십개월간 태아인 존재보다 더 거룩했다고 믿고 있습니까 ? 태아상태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입니까, 아닙니까 ?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과 동격의 삼위일체 존재 이십니까, 아닙니까 ? 여러분은 예수님의 하나님과 동체임을 부인하는 이단입니까 ?
설혹, 한국 개신교인들이 옛날 유태인들의 성막 지성소 안에 머물던 십계명의 돌판이 예수님보다 더 거룩했다고 믿는다손 치더라도 그들은 그 십계명 돌판이 머물던 지성소에는 제사장은 커녕 대제사장조차 일년에 단 일 차례 외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는 성경이 말하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은 거룩한 것이란 현대적 해석에 따라 대제사장이 만약 자기 성기를 드러내고 -- 그것도 발정한 상태로 -- 지성소에 들어간다면 ? 대번에 (높으신 분의 손에)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또는 이천년전 유태인들의 관념에서는 그런 일이 하나님의 벼락을 맞을 일로 생각하는 것이 천번 만번 타당했을 것입니다.
지성소가 거룩한 이유는 거기가 십계명 돌판이 거하였기 때문이며 아울러 하나님이 거하는 장소라고 유태인들은 보았습니다. 그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이 홀로 그것도 일년에 단 한 차례만 들어갈 뿐이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죽었습니다. 하물며, 돌판과 돌판이 있을 뿐인 주변장소-- 지성소--도 거룩한데 하나님의 아들, 나아가 하나님과 삼위일체의 일위이신 아들 예수님 및 그 예수님이 10 개월간 자랐던 태는 돌판보다 더더욱 거룩하게 판단되지 않습니까 ?
여러분이 정직하다면, 거룩하며 거룩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설혹, 21세기의 여러분의 관념에선 거룩하지 않다고 해도 2천년전 유태율법에 철저했던 요셉의 경우에선 거룩하지 않을 래야 거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기껏하게 세운 교회 건물 조차 거룩한 장소로 판단내리고 있습니다. 왜 예수님이 머무신 그 태에 대해서는 부인합니까 ?
이리 설명드리면 이제 개신교인들은 요셉이 예수님의 하나님과 동체인 삼위일체 거룩하신 존재를 몰라봤을 것이라고 우길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요셉은 마리아와 성행위를 했다는 식으로 논리를 발전시키는 행태입니다.
다시 신약복음서로 돌아가겠습니다. 요셉은 과연 예수를 몰라보았다는 것이 가능합니까 ? 노아가 의인이다. 다니엘이 의인이다. 및 욥이 의인이다 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알았겠습니까. 모르고도 의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
요한사도는 예수님을 태초부터 존재한 말씀이라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하나님이 의인으로 선언한 사람들이 -- 성경이 단호하게 의인이라 말한 사람의 숫자는 극히 적습니다. -- 몰라보았을 것이라 우기는 한국 기독교인의 논리는 성경과 도무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의 가장 근본원리로 따질 때, 의인의 자격으로는 의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헌데 노아와 욥, 다니엘, 요셉을 성경은 의인이라 표현하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몰랐다고 이제 개신교인들은 우기실 참입니까 ?
요셉이 과연 예수님을 어떻게 판단하고 이해했을 지 복음서를 통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 계속
2006.3.9. 파아란 한은경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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