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가운(예복)은 비성경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 이 글은 박종신 목사님의 '한국교회를 향해 통곡하시는 예수'에서 제7장 '주인의식을 버려야 예수가 산다.'의 소제목으로 다루고 '제발 가운 좀 벗고 사세요.'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다른 곳에서 나누었던 내용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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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예복(예배복)
▣ 들어가기
◉ 교회생활을 하면서 평신도들이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각양각색의 색상으로 제작된 목사 예복일 것입니다. 자기 교회의 담임목사 예복은 검정색인데, 다른 교회 담임목사는 흰색을 입고 있어, 왜 차이가 나는지 의아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 목사님들도 별다르게 가르쳐 주지 않고, 스스로 알아보려 해도 자료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아가 기독신앙에 핵심적인 사항도 아니기에, 하나의 가벼운 의문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가기 일쑤인 그런 것입니다.
◉ 사실상, 목사 예복은 신앙 차원에서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합니다. 이제부터 살펴보겠지만, 목사 예복은 성경적이지도 않고 신앙에 유익을 가져오는 면도 없으며, 오히려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으므로, 제 사견으로는 차라리 착용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목사 예복이 우리 신앙에 걸림으로 작용한다면, 목사 예복 사용을 철저히 반대해야 할 것입니다.
◉ 기독 신앙의 정수(精髓)와 무관한 목사 예복에 관해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목사 예복의 유래(기원)와 변천과정(신학자들의 공통적 견해 요약)
※ 이 부분은 인터넷 자료(http://Godislove.net/신학레포트 109번)인 ‘예복(예배복)에 대한 신학적 탐구/박은규 교수’를 근간으로 글쓴이가 추가/삽입/재정리한 것임을 밝힙니다.
◉ 평신도들은 목사 예복을 구약의 제사장 예복과 연계시켜 생각함으로써 성경적 근거가 있다고 여기기 십상인데, 이는 올바른 지식이 아닙니다.
○ 출애굽기 28장에 보면 대제사장 및 제사장 복장에 대해 아주 자세히 나옵니다. 속옷, 띠, 에봇 받침 겉옷, 에봇, 판결 흉패, 거룩한 면류관 등의 제작방법을 상세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제사장의 예복에는 분명 ‘거룩’의 의미가 부여되고 있습니다.
○ 이후 제사장 예복은 시대에 따라 잠방이형, 희색의 풍성한 외투형, 수놓은 긴 옷 형, 터번(turban) 형 등의 네 가지 형으로 변모 및 발전을 계속하였습니다.
○ 그러나 포로기 이후, 광범위하게 흩어진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중심의 종교생활이 현실적으로 힘들게 됨으로써, 그 대안으로 출현한 회당에서는 희생 제사를 드릴 수가 없었으므로 율법해석과 종교교육 중심의 신앙형태로 변화되었습니다.
○ 결국, 희생 제사와 밀접히 관련된 제사장 예복은 회당의 보편화에 따라 그 필요성이 점차 줄어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 예수님 당시까지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제사장 예복은 놀랍게도 신약교회 태동이후부터 일체의 언급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그렇고 사도들도 그렇고 제사장 예복을 입으신 적도 없으시고 단 한마디의 언급조차 없으셨습니다. 완전하게 사라져 버렸습니다. 신약에서 제사장 예복과 억지로나마 연계시킬 수 있는 말씀은 계시록의 ‘흰 옷’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흰 옷’은 ‘이김’을 상징하는 용어로서 그 의미는 ‘하나님의 권속(백성)’을 나타내므로, 제사장 예복과 연계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아무튼 불가사의하게도 제사장 예복은 철저하게 단절됩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임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약제사의 완성과 신약예배의 시작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제사의 한 형식을 담당했던 제사장 예복의 불필요성은 시대적 필수요건인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제사장의 예복 자체가 불필요해졌습니다.
○ 이러한 제사장 예복의 신약으로의 불연속성은 거의 모든 신학자들이 공감하는 일반적인 인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목사 예복이 구약과 연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약간 부연설명이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구약을 신약과 연결시킬 때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구약의 예표를 신약의 아무 사건에나 무분별하게 적용시키기도 하는데 이는 잘못일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구약의 예표는 거의 모두가 예수님께로 집중 적용되어야 합니다. 일차적으로 예수님께 적용해 보고 성경적 교훈 도출이 어려운 경우에 한하여 다른 사안에 이차 적용을 시도해야만 합니다. 제사장 예복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제사장 자체가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이므로, 제사장 예복 또한 예수님에게만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외형적인 제사장 복장을 착용하신 적이 없으십니다(언젠가 예수님께서 재판받으실 때 제사장 속옷을 입었다고 주장하는 분의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만 이는 완전히 소설가와 같은 허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입으셨던 가장 좋은 옷은 로마병정들이 조롱삼아 입혔던 홍포였습니다. 예수님은 평생 서민들 복장만 착용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마저 이러할 진데, 제사장 예복을 신약교회의 지도자 중의 일개 직분인 ‘목사’에게 배타적으로 적용시킨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처사입니다.
○ 아무튼 목사 예복은 구약에 근거하여 기원되는 복장이 아닙니다. 이어지는 설명을 읽어보시면 충분히 공감되실 것입니다.
◉ 대부분의 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목사 예복은 그리스 로마의 세속적인 의상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종교개혁 이전까지의 예복 변천 과정입니다.
○ 어떤 면에서 목사 예복은 원시종교의 무당(shaman)의 제의복과 연관시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무당이란 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로서 제의복을 입을 때 중재자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어린 시절 무당의 화려한 복장을 한 두 번씩은 보셨을 것입니다). 원시종교뿐 아니라 고등종교라 칭하는 모든 종교에도 예복은 존재합니다. 신부의 예복, 승려의 가사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 그러나 목사 예복은 확실하게 후기 로마제국 시대의 의상에서 연유되었습니다. 목사 예복의 유래를 간략하게 정리하겠습니다.
○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AD 150-215)는 성직자가 평신도보다 더 나은 옷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사역자의 의복이 ‘단순한 흰색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수세기 동안 ‘흰색’이 성직자의 색이 되었는데 이는 ‘흰색은 신들의 색깔이다’고 한 이교 철학자 플라톤으로부터 도입한 사상이었습니다. 클레멘트와 터툴리안(AD 160-225)은 염색한 옷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초기 400년 동안에는 특별한 예복이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교회는 분명한 정책에 따라 목사들이 예배를 집례할 때 평상복을 착용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AD 428년 교황 셀레스티누스(Celestinus)는 꼬울(Gaul)의 주교들이 평신도의 옷과 다른 의복을 입은 것에 대하여 질책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5세기 중엽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한편, 4세기 후반부터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결백과 무죄를 상징하는 흰색의상(white garment)을 착용하기 시작하였고 5세기 말엽까지 새 세례자는 부활절 전 주간 동안 흰색 세례복을 입었고 일반 주일에는 평상복을 입었습니다.
○ 또한, AD 330년 콘스탄틴 황제 시대에, 감독과 사제와 집사의 구분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로마의 공식적인 의상이 사제와 집사의 복장으로 서서히 채택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성직자들이 세상 관리들의 의복을 입음으로써 일반 시민들(평신도들)과 구별되기 시작하였습니다.
○ 그런데 성직자 복장과 관련하여 아주 묘한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게르만 민족이 로마를 침공했던 4세기 이후로, 길게 늘어졌던 로마의 세속 의상이 고트족의 옷에 영향을 받아 짧아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직자들은 평신도와의 구별을 원했기 때문에 구식 로마 의상을 고집하게 되었습니다. 성직자들은 세속생활에서 착용하는 옷을 그대로 입고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평신도들이 새로운 유행의 옷을 입고 예배에 참석하자 성직자들은 ‘세상적이고 야만적’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면서 성직자들은 자기들이 믿었던 ‘보다 문명적인’ 옷을 보존 시켰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직자의 예복의 기원인 것입니다.
○ 5세기 이후 감독들은 자주색 옷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성직자의 복장이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 6-7세기가 되면서, 점차 성직자 복장이 출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점점 비싸지고 정교해졌습니다. 거기에다 신비하고 상징적인 의미가 첨가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제의 나들이 옷과 바꿔 입는 특별한 성직자 예복을 교회당의 제구실(사제의 사무실)에 보관하는 관습이 생겼습니다. 소위 서방교회가 말하는 ‘성만찬 예복’(the eucharistic vestments)은 6세기 초 로마 제국의 공식적인 세속 의상으로부터 연유되었던 것입니다.
○ 7-8세기에는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별하기 위하여 성직자 예복의 필요성을 강조한 사람들이 출현하였습니다. 일부 성직자들은 성직자 예복이 구약의 레위 제사장들 가운에서 물려받은 신성한 예복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자기들의 관습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 9-12세기에는 당시 다른 전문직 의상인 학위복과 수도원복을 비롯하여 사계절에 필요한 의상들로 발전하였습니다. 딕스라는 학자에 의하면, 주교관, 코우프(Cope), 제의용 장갑, 백의(surplice)는 성직자들이 심사숙고하여 창안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성직자를 평신도들과 구별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었다고 합니다.
○ 13세기 이후, 예복의 유형과 장식이 다소 발전하였습니다. 그러다 종교개혁운동이 발발하게 되었습니다.
◉ 종교개혁자들은 천주교의 전통적인 예복을 버리거나 크게 간소화하였습니다. 이유는 개혁자들이 천주교의 교리를 반대할 뿐 아니라 그 제의(cultus)도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개인 이해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 일반적으로 천주교의 사제 예복은 거부하는 대신, 학자들의 검은색 가운을 채택하여 착용하였습니다. 즉 세속학자들의 의상이 목사 예복으로 전용되었으며 목사들은 매우 만족하였다고 합니다.
○ 아무튼, 종교개혁 이후의 개신교 목사들의 예복은 2가지의 뿌리를 지니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헬라․로마 시대의 상류층 외출복을 본 따서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형시킨 것입니다. 둘째는, 16세기의 교수/법관/관리들이 사용한 검정색 외출복을 변형시킨 것입니다. 이 두가지 흐름이 병합되어 개신교 성직자들의 예복이 형성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검정색 가운(basic black gown)입니다. 루터교 목사들은 긴 검은색 가운을 입으며 후일 커다란 둥근 칼라를 목에 두르기도 합니다.
○ 그런데 개신교는 각 교파마다 강조점이 다름에 따라 예복에 관한 견해도 차이가 생기기 시작했으며 크게 3가지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 첫째는, 성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특정한 예전을 사용하는 루터교와 성공회는 채스유블, 알브, 서플리스 등의 예복을 수용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즉, 천주교 예복 중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수용하였습니다.
- 둘째는, 설교를 강조하면서 자유교회 예배전통을 따르는 침례교, 나사렛교, 하나님의 성회 등은 특정한 예복을 입는 대신 평상복을 착용합니다. 이런 교회들은 정규적으로 성찬식을 거행하지 않거나 거의 거행하지 않는 교회들입니다.
- 셋째는, 중간노선을 걷는 감리교와 장로교는 설교와 성만찬의 비중을 중시하면서 학위 가운 모양의 검정색 가운을 사용했습니다. 특히 개혁교회 목사들은 칼빈이 소개한 제네바 가운(Geneva gown)을 입습니다.
○ 현대에 이르러 각 개신교단은 다양한 유형의 예복을 제작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색상은 검정색과 흰색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동절기와 하절기용 예복을 따로 만들기도 합니다. 심지어 박사 학위 가운을 착용하는 목사들도 있다고 합니다.
▣ 예수님과 초대교회로부터 배울 교훈은 없는가?
◉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마다, 예수님과 초대교회를 통해 교훈을 받는 것은 가장 성경적인 자세입니다. 그렇다면, 목사 예복에 대해서도 뭔가 단서를 찾기만 한다면 만사형통일 것입니다. 하지만, 목사 예복에 관한 한, 그 기대를 일찌감치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과 초대교회에서는 예복의 예자도 나오지 않습니다.
◉ 예수님은 두 벌 옷도 없으셨습니다. 사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사역하시면서 제사장 예복이나 좋은 세상 옷 같은 것을 입으신 적이 없습니다. 늘 평상복으로 설교하시고 치유하시고 섬기셨습니다.
◉ 교회 태동기만 이런 것이 아닙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교부시대에도 목사 예복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 한마디로, 예수님과 초대교회로부터는 목사 예복에 관한 한, 티끌만한 교훈도 도출해 낼 수 없습니다. 눈을 닦고 성경을 샅샅이 살펴도 헛일입니다. 일찍 포기하는 것이 신상에 이롭습니다. 그만큼 허망한 기대가 목사 예복에 관한 것입니다.
※ 주제와 동떨어진 내용입니다만, 우리가 정장과 넥타이 차림으로 한껏 차려입고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성경적인지에 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준비할 필요성을 몰라서 하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경건의 개념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깨끗한 옷을 입고 헌금도 깨끗한 돈을 선별하여 드리면 경건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닐 수 있습니다. 헌금할 돈을 다리미로 다렸느냐, 넥타이를 매느냐는 경건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예배는 더러운 옷을 입었기 때문에 참석할 수 없는 모임이 아닙니다. 언제 별도로 묵상해 볼 필요가 충분히 있을 것입니다만, 열두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께 나오던 상황을 음미해 보십시오. 아마 그 여인에게서는 향수 냄새가 풍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악취가 풍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목욕하지 않은 것, 옷에 먼지가 묻은 것 때문에 예수님 앞에 나오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좋은 옷을 입지 않으면 예배에 참석할 수 없다는 의미가 성경에는 전혀 없습니다.
▣ 목사 예복은 기독신앙에 필수적인 요소인가?
◉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현대 개신교회 목사들의 예복은 구약의 제사장 예복으로부터 유래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세상의 세속 복장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 그렇다면, 굳이 목사 예복을 존속시킬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재검토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느 교수님께서는 목사 예복의 목적성/심미성/상징성/실용성/토착성 요소로 구분하여 살피면서 토착화 발전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주장이야말로 허황된 것이며 비성경적인 것이라 확신합니다.
◉ 성경이 보증하지 않는 것은 과감하게 버리는 결단이 필요할 것입니다. 목사 예복의 유래가 성경과 무관함이 밝혀진 이상, 이러한 외형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습니다. 경문을 넓게 하고 옷술을 크게 하여 외형을 꾸민 것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모습이었고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결코 칭찬하지 않으셨습니다(마23:5).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단 한번도 제사장 복장을 입으시지도 않으셨습니다.
◉ 목사 예복이 지니는 가장 큰 피해는 목사 가운이 무슨 영적 권위의 상징인양 오해되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하여 목사가 성직자로서 평신도를 지배할 수 있는 성경적 근거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에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에 대한 모독입니다. 예수님과 사도들과 초대교회의 모든 지도자들은 단 한번도 ‘목사 예복’을 착용하지 않았습니다!(입고 싶어도 없었습니다). 목사 예복은 후대의 세상복장에서 기인된 비교회적 산물일 뿐입니다.
◉ 우스운 상상 하나 해 보시지요. TV에 나오는 어느 목사님 예복은 제법 휘황찬란합디다. 후일 이 목사님께서 천국 가시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애, 아무개 목사야! 네 목사가운이 너무 좋더구나. 나도 한번 입어 보게 좀 빌려 줄 수 없겠니?”라고 말입니다. 이 목사님은 아마 기쁨으로 빌려 드릴 것입니다. 가만! 가만! 가만! 목사가운은 천국에 가지고 갈 수 없지요? 예, 그렇다면 쓸데없는 것입니다.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쓸데없고 가치없는 것은 그렇게 대우해 버리면 됩니다. 목사 가운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아주 쉬운 원리인 것이지요. 이 정도가 이해되지 않는다면 더 설명해봐야 그렇겠네요. 아무튼, 들을 수 있는 분들은 들으시고 깨달으실 것입니다.
◉ 요즘 대부분의 교회들은 성가대 가운을 착용합니다. 또 극히 일부에서는 장로용 가운도 착용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운용성 측면에서 이해되는 바 없는 것은 아니지만, 권장할만한 자세는 아닐 것입니다. 꼭 필요하다면 목사용/장로용/성가대용을 구분하지 말고 일체로 제작하여 착용하는 방안도 있을 것입니다. 좀더 깊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 소위 교회의 지도자라 하는 목사와 신학자들이 성경적 예복관을 바로 깨우쳐서 교회에서 ‘목사 가운’이 사라지는 모습을 하루속히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