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쉬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숨을 쉬어야 살 수 있는 것처럼 창조주를 찾는 것은 피조물의 본원적 속성이고, 또 창조주를 참으로 알아야만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육신의 생명은 의식하거나 의도하지 않아도 살아 있는 동안은 저절로 숨을 쉽니다. 숨이 다하면 생명도 끊어집니다. 사람은 그렇게 숨을 쉬는 동안 창조주의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게끔 지어졌습니다. 그 소망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고, 이 세상을 다 가진다고 해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기업집단의 회장이 죽기 직전에 비서를 통해 신의 존재와 이 세상에 대해, 그리고 죽음 뒤의 세계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한 까닭이 거기 있습니다.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부를 쌓았고, 보통사람은 상상하기도 힘든 성취를 이루었지만 정작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아무 답도 찾지 못한 채 생을 마치고 말았습니다. 즉, 그는 한 번 뿐인 기회를 헛되이 날렸고, 그의 인생은 완전히 실패하고 만 것입니다.
완전하신 창조주의 창조에는 분명한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이후, 모든 사람에게는 창조주가 아닌 각자의 기준이 생겼고, 그 기준으로 창조주까지 판단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성경이 주어진 이유이고, 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까닭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막연히 아는 것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시고 보여주신대로 창조주 안에서 그 분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조주께서 당신 스스로를 계시하신 성경을 통해 그분을 참으로 알고 만나야 합니다.
갓난 아기가 엄마를 찾는 것은 의무감이나 책임감, 또는 사랑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스스로의 생존을 위한 것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찾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피조물로서의 의무가 아니라, 막연히 사랑해서가 아니라, 존재의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창조주를 추구하는 것은 숨쉬는 것과 같습니다. 창조주는 생명수를 쉼없이 공급하는 영원한 샘이며, 영원한 양식입니다.
진리를 만나 하나가 되기까지 묻고 또 물으시기 바랍니다. 그 질문이 곧 성경공부이고 신학입니다. 성령의 인도가 있기를 바랍니다. 샬롬!
어차피 천국에 가게 되면 다 알게 될 것은 맞습니다. 그렇다면 천국 가기 전에는 전혀 모르거나 아주 부족하게 안다는 뜻입니다. 신자가 그렇게 살 수는 절대로 없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독생자와 맞바꾸어 베푸신 구원이 아무런 영적 지식도 없이 그 필연적인 결과로 삶에서의 순종 없이 살아도 될만큼 그렇게 시시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6,17)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벧후1:2,3)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히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거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