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 라합은 민족반역자가 아닌가요?

 

[질문]

 

국가의 흥망과 개인의 생사의 기로에서 국가는 망해도 자신의 생명을 부지한 기생 라합의 선택이 과연 선한 것인가요?(수2:1-21) 기생 라합이 여리고성의 백성인지는 모르겠지만 국가를 배신한 이적행위가 아닌가요?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니까 당연히 하나님을 택한 신앙적 지혜를 칭찬할 수 있겠지만, 만약 신자에게 이처럼 국가의 흥망과 본인의 생사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하는 기로를 맞이한다면 과연 신자는 무엇을 택해야 할까 고민됩니다.

 

[답변]

 

안중근과 이또히로부미

 

많은 신자들이 궁금해 하면서도 제대로 정리가 되어있지 않는 문제입니다. 그 원인은 기독교의 윤리가 세상의 윤리와 어떻게 다른지 교회가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기독교 윤리가 일반 윤리와 모순 상충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바탕에서 범사를 분별 판단 결정 시행하는 훈련이 거의 되어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교회가 신앙을 도덕적 종교적인 관습, 의식, 계명의 차원으로 격하시켜서 그것도 율법주의 식으로 교인들에게 주입시켜왔기 때문입니다. 범사를 선한지 악한지, 혹은 세속적인지 신령한지 이분법으로만 접근 판단 적용하는 것이 신앙이라고 착각하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형상을 닮게 만드셨습니다. 그 형상 중에는 도덕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담의 원죄로 타락한 이후에도 양심의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한 측면은 영성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찾지도 않고 그분을 거역하게 된 것입니다. 양심은 인간 사회의 시대와 공간에 따라서 일부 상대적으로 모순되는 경우도 있지만 삶의 기본적인 문제들과 관련하여 모든 인간사회가 윤리라는 공통분모를 소지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모든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최선의 윤리는 바로 애국심입니다. 부모나 자식을 위해 죽는 것보다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가장 의롭습니다.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졌기에 본인의 인격과 상관없이 자연스레 죽을 수 있지만 나라를 위한 죽음은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한 것으로 아무나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신자들까지 포함해 애국심에도 아주 큰 모순이 포함되어 있음을 모릅니다. 상대적으로 선할 뿐 완전한 의가 아닙니다. 예컨대 한국 점령을 주도한 이또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은 한국에선 최고의 의인으로, 종교적으로도 단순하게 판단하면 천국에 가장 먼저 가야할 사람이라는 데에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선 완전히 반대의 인물로 취급됩니다. 살인자로 최고의 악인이며 지옥에 최우선적으로 가야할 원수가 됩니다. 반면에 이또히로부미는 나라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바친 최고의 의인이요 천국에 일등으로 입성할 자로 존경받습니다. 애국심은, 인간사회의 윤리가 다 그렇지만, 여기까지가 한계로 상대적이고 불완전한 의의 대표입니다.

 

애국심이 가장 큰 죄악이다.

 

그럼 하나님으로선 누구를 천국으로, 누구를 지옥으로 보내야합니까? 약하고 가만히 있는 한국을 일본이 침범하려고 했으니 안중근이 더 의롭고 이또히로부미를 더 악하다고 단순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럼 이또와 아무 상관이 없는 현대의 일본인들을 아직도 원수처럼 여기는 현대의 한국인들은 과연 의롭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 또한 일본에게 수탈당한 과거의 원한이 있으니 그럴 수 있다고 칩시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후진국, 최근의 예멘 난민 같은 예에서, 사람들을 홀대 차별하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든데 그들을 먹여 살릴 여유가 없다는 이유 때문인데 일종의 의로운 애국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그러는 것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과연 의로운 일인지 아닌지 신자라면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합니다.

 

죄송하고 가슴 아프지만 솔직히 이야기 하자면 한국인들의 인종차별이 아주 심한 편입니다. 오래 전 미국 엘에이의 흑인 폭동 때에 유독 한국인들의 희생이 컸던 이유 중의 하나는 인종차별도 하나 포함됩니다. 한국인들을 탓하려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애국심이 결코 최고의 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애국심이라는 허울 좋은 핑계로 얼마나 사악하고도 잔인한 죄악들이 자행되었습니까? 아프리카 같은 후진국들은 일본의 한국 강점보다 더 심하고 아픈 식민 지배를 더 오래 동안 당했습니다. 그것도 서구 기독교 국가들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실현한다는(창1:28) 구실로 말입니다.

 

지금도 미국을 다시 부강하게 만들겠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독불장군 식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비난하고 그로 인해 아픔을 겪는 자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도 일부 기독교인들이 동성애와 낙태 반대라는 몇 가지 근거만으로 그를 무조건 지지하는데 이는 잘못입니다. 정책별로 구분해서 잘잘못을 성경적으로 판단해서 반대할 것 반대하고 지지할 것 지지해야 합니다.

 

요컨대 애국심은 인간적 윤리로만 따져도 가장 의롭기도 하지만 살펴본 대로 가장 악한 것도 됩니다. 이는 불신자들도 인정할 수 있는 원리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기독교 윤리는 일반 윤리와 차원이 다르며 인간의 윤리는 불완전하고 상대적인데 그 가장 확실한 증거가 애국심입니다. 말하자면 신자가 성경을 읽을 때에 애국심 같은 윤리에 기준해서 해석 적용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심판 받은 유일한 이유

 

하나님은 인류를 아담 한 조상을 통해 당신께서 직접 지으셨습니다. 나라, 인종, 민족, 종교, 피부 상관없이 원칙적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합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그래서 로마나 이단 종교에 대해선 아무 꾸중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을 품고서 용서해주고 구원으로 인도하길 원했습니다. 애국심에 바탕을 둔 인간 윤리가 인간의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음을 인간을 지으시고 지금도 살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다시 안중근과 이또히로부미의 경우를 살펴보자면 하나님은 누구를 천국으로 인도해야 합니까? 누구를 더 의롭다고 칩니까? 둘 다 그분을 모르고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두 사람이 신자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기에) 그분의 긍휼을 받아야만 할 대상일 뿐입니다. 이 땅에서부터 당신을 몰라서 외면 거역했다면 죽음 이후에도 동일한 관계가 이어질 뿐입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의 경우를 봅시다. 그들은 연약한 소국으로 한국처럼 자주 외적의 침입을 받아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누구를 심판했습니까? 오히려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주변 대적을 당신의 도구로 삼아서 징계하셨습니다. 그 주된 이유는 윤리적 타락 때문이 아닙니다. 우상숭배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판단할 때는 제일 먼저, 엄격히 말하면 유일한 기준은 당신을 진심으로 경배하느냐 뿐입니다. 십계명의 첫째 계명인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악과나 이스라엘과 맺은 많은 언약들에서나 특별히 예수 십자가 구원에 계시된 하나님의 근본적인 뜻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일차적이고도 근본적인 관심과 사랑을 베풀 대상은 당신을 알고 따르는 당신의 백성입니다. 구원은 당신의 백성에게만 허락합니다. 그렇다고 당신을 모르는 이들을 방치 외면하려는 뜻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로 당신을 믿고 의지하게 만들려는 간절하고도 애끓는 마음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제사장 백성으로 삼아 그들로 당신만을 왕으로 삼는 나라를 세워서 열방이 그 거룩한 모습을 보고 당신께로 항복하고 나오길 바랐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소명에 충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방족속들의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차적인 심판도 이스라엘이 대상일 수밖에 없었고 이스라엘이 믿고 의지했던 대적을 통해서 시행했습니다. 그 도구로 쓰임 받은 이방나라 또한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뜻은 전혀 알지 못한 채 자기들의 탐욕을 채우려고 죄악을 저질렀기에 결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그들은 심판으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윤리로만 판단하면 이스라엘은 분명히 피해자로 더 의인입니다. 침략한 이방 나라만이 사악한 집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선 둘 다 죄인이고 오히려 이스라엘이 더 중한 심판을 받았습니다. 안중근이나 이또히로부미나 하나님을 모르면 둘 다 심판받을 죄인입니다. 인간사회에서 아무리 영웅대접을 받아도(각기 자기 나라에서만이지만) 당신은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라합은 자기 목숨만 건지려한 것이 아니다.

 

기생 라합의 경우 질문자님이 오해하는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자기 혼자 살려고 민족을 배반한 것이 아닙니다. 두 정탐꾼을 숨겨주고 또 여리고 왕이 그 집에 들어간 줄 이미 알고 추궁하는데도 거짓말을 하는 일은 사실상 자기 목숨을 건 일생일대의 모험이었습니다. 자칫 집안을 샅샅이 수색하면 바로 발각되고 그럼 그 자리에서 사형 당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이스라엘이 강하다는 소문을 들었다 해도 사람은 당장의 안락을 추구하기 마련이므로 자기 목숨이 걸린 그런 엄청난 모험은 어지간해선 감행하지 못합니다.

 

그 두 정탐꾼을 줄에 달아 내려서 안전하게 도망치게 도와주고, 그 후에도 그 일을 누설치 않았고, 창문에 붉은 줄을 매단 일들 모두도 목숨을 걸지 않고는 행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집이 여리고성 주민이라면 누구나 항상 볼 수 있는 “성벽 위에 있음에도”(수2:15) 붉은 줄을 내달았습니다. 여리고 왕이 일단 의심했던 집이었습니다. 단순히 자기 혼자만 육신적으로 살아남으려는 이기적이고도 악한 동기로 나라를 배신한 것으로 봐선 안 됩니다.

 

라합은 기생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사실상 창녀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매일 매일의 삶이 너무나 허무하고 죄가 크며 아무런 기쁨과 만족도 없이 흘러갔습니다. 남자들의 성적 노리개로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며 애끓는 슬픔과 죄책감에 휩싸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있다면 자기야말로 그분의 저주를 받은 인생일 것이라고 지레 포기하고 죽지 못해 하루하루 겨우 버텨나갔을 것입니다.

 

나아가 여리고 성에선 온갖 가나안 우상들을 음란하게 섬기고 있었습니다. 신전이 있었다면 신전소속 창기였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우상제사는 풍성한 식사와 화려한 음주가무가 따르고 난교 파티로 이어졌습니다. 나아가 자기들이 낳은 어린 아들들을 산 채로 불에 태워서 몰렉 신에 바쳤습니다. 라합은 그런 모습을 보아오면서 이곳은 정말로 사람 살 곳이 안 된다고 온 몸으로 절감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는 채로 세월만 흘렀습니다.

 

그런 어느 날 너무나 이상하고도 신기한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애굽에 사백 년 넘게 노예로 있던 히브리 민족이 당시로는 세계 최강인 애굽을 열 번이나 큰 재앙으로 곤욕을 치르게 하고 마지막에는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으로 탈출했다는 것입니다. 거기다 애굽의 정예 전차군단이 전멸했다는 꿈과 같은 스토리였습니다.

 

애굽은 자기들과 똑 같이 우상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는 나라입니다. 당시는 전쟁에 이기는 나라의 신을 더 강한 신으로 간주했습니다. 히브리 신이 애굽의 신들마저 다 이겼다면 가장 강력한 신으로 인정해줄 수밖에 없습니다. 애굽보다 훨씬 작은 족속들인 가나안의 신들은 아예 히브리 신의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정탐꾼들에게 이런 고백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수2:9-11)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그 전쟁을 팔십이 넘은 노인 한 명이 오직 하나님이 선포하는 말씀으로만 수행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인들의 신에는 신상도 조각도 없었고 이름도 없었는데도 애굽의 화려하고 장엄한 우상 신들을 무참히 패배시켰습니다. 우상은 신이라고 할 수도 없고 히브리인들의 신만이 참 신, 참 하나님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정말 비참하고 저주받을 만큼 추했던 존재와 인생 전부를 그 하나님께 목숨을 걸고 의탁해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가나안 같이 추악하고 타락한 땅에서 한 시라도 빨리 탈출하고 싶었는데 마침 두 정탐꾼의 행동거지나 말투는 가나안 사람과는 전혀 딴 판이었습니다. 더더욱 일생일대의 모험을 결행할 의미와 가치가 있음을 확신했을 것입니다. 라합은 민족을 배반하기보다는 참 하나님 그 한 분을 진정으로 경배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도 민족 배반자였다.

 

라합이 사악한 죄로 타락한 여리고 족속을, 이미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이 작정되어 있었음, 배반한 일과 비슷한 일이 오늘날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신앙을 말살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폭압적인 공산국가 북한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 한 것과 같은 차원입니다. 탈북자를 민족을 배반한 악한 자라고 매도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윤리로만 따져도 오히려 의롭다고 간주해야 할 것입니다.

 

단순히 민족을 배반한 것으로만 따지자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부터 그랬습니다. 갈대아 우르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왔습니다. 비록 그가 그곳에서 유력가였다 할지라도 당시에 타국으로 무작정 떠나는 것은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습니다. 부자일수록 도적 떼의 습격을 당할 위험이 항상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의 떠나라는 음성을 듣고 갈 바 모르지만 죽음을 무릅쓰고 믿음으로 떠났습니다. 그 또한 우르의 사람을 불에 태워 우상에 바치는 더러운 관습에 치를 떨고 떠나왔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기 전에 그는 틀림없이 오랫동안 인생의 갈급함과 허망함으로 인해 라합처럼 영적인 갈등과 고뇌의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도 어쩔 수 없이 또 결과적으로 유대민족을 배반한 셈이 됩니다. 신자의 경우 자기 생명을 보존해야 하느냐 민족을 따라야 하느냐는 갈등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당연히 그 둘보다도 하나님만 무조건 먼저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심지어 당신 때문에 나라보다 더 사랑해야 할 가족 간에조차 원수가 되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하나님만을 먼저 따르면 자연히 자기 안락은, 심지어 자기 생명마저 뒷전이 됩니다. 나아가 나라와 민족도 부차적인 문제가 됩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슨 일을 하던 오직 그분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해야만 하는 것이 신자입니다. 거꾸로 정말로 그런 순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있다면 자기 안위를 먼저 챙기지도 않습니다.

 

나아가 민족을 배반할만한 일이나 여건을 하나님은 미리 막아주십니다. 라합이나 아브라함처럼 배반하게 되더라도 하나님의 뜻 안에선 충분히 의가 됩니다. “국가의 흥망과 본인의 생사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하는 기로를 맞이한다면 과연 신자는 무엇을 택해야 할까 고민됩니다.”라는 질문은 사실상 신자로선 할 필요도 없고 해선 안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먼저 따르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합력해서 선으로 이끌어주십니다.

 

10/19/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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