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8:14-23 교회가 열 배로 부흥하는 법 12/10/2017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되리니.”(19절)
하나님은 벧엘 사람의 금식중지요청에 대해 금식이란 국가적 재난을 야기한 죄악을 철저히 회개하는 목적이므로 평소 죄를 짓지 않으면 먹고 마셔도 된다고 답변했다. 이제 더 나아가 애통과 회개의 금식절기들을 기쁨과 즐거움의 희락의 절기로 바꿔줄 것이라 약속한다. 물론 율법대로 거룩히 살아야하는 것이 전제다. 네 번 금식의 뜻이 예루살렘 포위(10월), 점령(4월), 불에 탄 성전(5월) 유대인학살(7월)이므로 유다가 회복될 것이라는 약속이기도 하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요구하는 사항은 의외로 아주 간단하다. 당신께서 좋아하는 것 두 가지 1) 진리를 말하고 2)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싫어하는 두 가지 3)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고 4) 거짓 맹세를 하지 않으면 된다.(15-17절) 합해서 넷인데 둘로 줄여서 “진리와 화평을 사랑하라”고 했다.(19절) 흥미롭게도 구제나 선행을 많이 하라고 하지 않았다. 요컨대 재판만이라도 율법에 따라 공정하게 행해 억울하게 손해 보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것이다. 죄에 찌든 인간들이 어울려 살다보면 온갖 시기 분쟁이 발생하기 마련이지만 재판을 진리대로 하면 화평이 회복된다는 것이다. 조상들이 그런 악한 길과 행위를 떠나 돌아오라는 선지자들의 외침을 듣지 않아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고(1:4-6) 또 금식할 수밖에 없었다고 다시 상기시켰다. 금식절기가 희락의 절기로 바뀌는 것은 메시야가 이루실 하나님 나라에서만 가능하다. 예수님은 십자가 대속구원으로 진리와 화평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확히 계시해주셨다. 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 둘을 완벽하게 직접 실현할 것이다.
그런데 진리와 화평이 실현된 예루살렘에 강대한 나라들이 여호와를 찾으러 몰려올 것이라고 한다. 이 일이 예수님이 다시 오셔야만 가능할까? 어차피 종말에 가능하다면 선지자들을 그렇게 많이 보내어 애꿎은 죽음을 당하게 하거나, 성경으로 기록해 오늘날 신자에게도 동일한 외침이 되도록 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 본문이 “공정한 재판”만으로 그렇게 된다고 선언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들이 현실적 형통과 축복을 바라고 예루살렘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우상을 숭배하던 이방인들도 하나님 닮게 지어진 형상이 남아있어 인간사회에 공의가 바로 서고 분쟁이 없어지길 소망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들이 모르는 것은 그 실현방법이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교만과 자기를 높이려는 탐욕에 젖은 인간끼리는 진리와 화평의 실현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오직 십자가 사랑에 바탕을 둔 하나님이 세우시는 공의여야 한다.
요컨대 교회가 공정한 재판만 해도 금식의 절기가 희락의 절기로 바뀌고 이방인들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신자와 그 공동체가 상기에 열거한 최하 네 가지만 실현해도 된다. 십자가 복음의 진리만 선포하고, 모든 사역과 치리를 성경대로 공정하게 하고, 서로 해하려는 것을 멈추고, 거짓말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럼 유다 사람 한 명에 이방인 열 명이 따른다고(23절) 즉, 열 배의 부흥이 가능하다고 한다. 작금의 실상은 너무나 불행하게도 교회 안에 세속과 동일한, 때로 더 심한 비진리와 분쟁이 판을 치고 있다. 심지어 일신의 형통을 속성으로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이 금식기도라고 가르쳐지고 있다. 신자 한 명이 열 명의 불신자들을 흑암의 나라로 밀어내고 있다. 도무지 용서받을 수 없는 성령훼방 죄를 범하고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