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6:1-15 평신도가 사도역할 하는 교회가 되라. 1/13/2018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6:15)
공회가 사도들을 채찍질하며 다시는 예수 이름으로 부활의 도를 전하지 말라고 위협한 후에 풀어주었다. 그 후 예수 공동체에는 큰 변화 둘이 생겼다. 교회 조직체계가 정비되어 복음 전파가 더 부흥한 반면에, 그에 따라 핍박도 자연히 증가되었다.
먼저 교회 내의 구제사역에서 헬라파 과부들이 소홀하게 대우받는 것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었다. 그럼 자세한 사정을 알아서 공평하게 배분하면 되는데 사도들의 대책은 조금 달랐다. 그를 계기로 자신들의 사역부터 되돌아보았다. 구제사역에 자신들의 시간과 노력을 소진함으로써 정작 말씀 전파와 기도하는 일에 등한하게 된 것이다. 사도들은 이미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느꼈겠지만 구제도 시급하고 중요한 일인지라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을 것이다. 교회 내의 문제는 그 심각성에 모두 공감할 때에 합당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 좋다. 아무리 선한 일이라도 지도자들이 먼저 앞서면 독선이 되고 반대가 따른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다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는 일곱 집사를 세워 구제사역을 감당하게 하고 자신들은 본연의 소명에 전념하기로 했다.
이는 서로 맡은 일이 다르다고 구별만 했지 권세와 지위로 차별한 조직이 아니다. 또 교회를 말씀과 기도로 충만한 영성 공동체이자 그 구성원들의 궁핍함을 제거해주는 사랑 공동체로 확립시켰다. 이중 전자에만 집중하면 현실 삶과 무관하며 교인들 사이에 유대가 없는 종교교육기관이 되며, 후자에만 집중하면 단순히 사회사업기관으로 전락한다. 초대교회는 이 둘을 다 갖추고 오직 주님께만 순종함으로써 그들의 가장 반대파였던 제사장들 무리마저 개종시키는 역사가 가능했다.
이때 선임된 일곱 헬라파 집사 중 한 사람인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다 최초로 순교하는 일이 이어진다. 구제사역에 전념하라고 선임된 집사였지만 그도 말씀을 전했고 큰 기사와 표적까지 따랐음에 주목해야 한다.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가 모든 이를 제자로 삼으라고 한 대로 신자라면 누구나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시 복음은 아주 단순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그분만 믿으면 구원 얻고 부활한다는 것이다. 오직 예수였다. 부활의 목격자들이 아짐 많이 살아있었고 성령이 충만이 역사해 그렇게 간단히 전해진 복음이 염병처럼 번져나갔다.
오늘날은 전도하는 내용이 복잡해졌고 불신자들의 질문과 반발도 다양해졌다. 그래서 복음전파가 사도들 같은 전문사역자들의 몫으로 넘겨졌다. 그렇다고 성경대로 된 것이 아니다. 스데반 같은 평신도가 사도역할 했음을 간과하고 있다. 오늘날도 복음을 단순화시켜야 한다. 교리를 줄이라는 뜻이 아니다. 신자의 인생과 삶이 예수 믿기 전후가 확연히 달라졌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세상 사람들과 정반대의 인생목표와 생활방식을 드러내야 한다. 스데반을 보라. 성전과 율법을 거역했다는 모함을 받아 예수님처럼 처형당할 처지에 빠졌음에도 전혀 두려워하지도 당황하지도 않았다. 대신에 그의 얼굴은 천사와 같았다. 구체적인 모습은 알 수 없으나 세상 사람들의 표정과는 완전히 달랐다는 뜻이다. 교리와 신학으로 예수 대적자를 무릎 꿇릴 수는 결코 없다. 세상에선 볼 수 없고, 최소한 스스로 이룬 것이 아니라 그 배후에 뭔가가 있는 삶의 변화라는 인식을 주면 예수 이름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본문만큼 오늘날 교회와 신자가 어떻게 행해야 할지 정확히 가르치는 구절도 없다.